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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림> 호수에서 보낸 오후

 계림북역에 내려 계림역까지 택시를 탄다. 한 번에 가는 버스가 보이지 않는데다 배낭까지 메고 헤맬 엄두가 나지 않는다. 택시는 시내 중심가를 가로질러 가고 주변으로 동글동글한 카르스트 지형-그렇다니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카르스트 지형이 뭔지 나도 확실히는 모른다- 특유의 산봉우리들이 자못 이국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여기도 항주처럼 시내는 제법 높은 건물들이 들어서 있고 여기저기 맥도날드며 KFC 간판들이 시내를 점령하고 있다. 역에 내려 유스호스텔을 찾아간다. 허접한 입구에 비해 실내가 깨끗하다. 가격도 상해서부터 도시마다 5원 단위로 싸지고 있다. 앗싸!


도착한 날 비가 내리더니 목이 아프고 콧물이 나기 시작한다. 그래 아플 때도 됐다 싶은데 그래도 양수오나 가서 아프자고 나를 추스른다. 담날 그냥 몸이 안 좋은대로 시내 구경을 나선다. 그 동글동글한 봉우리마다 계단을 만들고 담장을 쳐 입장료를 받는다. 가이드북에 소개된 봉우리는 대략 5개.. 그 중에 <아름다운 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는 독수봉과 <아름다운 경치를 조망할 수 있다>는 복파산을 제치고 <산정상에서 둘러보는 전망은 장관이다>라는 데차이샨 우리말로는 첩채산을 오른다. 황산을 오르고 나니 이까짓 산쯤이야 그저 언덕처럼 느껴졌다..고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만 다시 숨이 턱에 까지 찬다. 실연 말고도 면역이 안 되는 것이 사실 여럿 있다^^


첩채산에서 바라본 계림 시내, 숨차게 올라간 보람을 느낀다.


<지구 한가운데로의 여행 세트>처럼 보인다는 루디옌 우리말로 노적암을 과감히 포기하고  이번에는 칠성공원으로 간다. 동굴 하나를 과감히 포기하고 왔더니 이건 또 무슨 유혹이라는 말이더냐.. 공원 입장료는 35원인데 공원안의 동굴을 가려면 30원을 더 내야 한단다. 그래, 그래도 동굴하나는 봐야지 하며 또 65원짜리 표를 끊는다.


공원입구의 벤치에는 중국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옹기종기 모여 노름(?)에 전념하고 계신다.

 


낙타봉. 워쩌 낙타같은겨?


공원 안에 폭포도 있고


나는 비만 호랑이^^ 저거 올라타고 사진 찍는 데 10원이다. 근데 좁은데 가둬놓고 얼마나 먹여놨는지 차마 눈뜨고는 보기 힘든 지경이다. 에구 호랑이 팔자도 원..


칠성암.. 죄다 조명발이다.


오후 네시 무렵에 시내 중심에 있는 호수에 도착한다. 요술왕자의 부인인 고구마가 얼마 전 중국에 왔다가 쓴 글에 의하면 자기는 계림에서 호수가 특히 호수의 야경이 가장 아름다웠다고 쓴 글을 보고 야경을 꼭 보리라 다짐한 터다. 그러나 야경을 보려면 아직 세시간이나 더 있어야 하니 그냥 호수나 한 바퀴 돌아보자고 걷는다. 근데 이게 뭐 서호도 아니고 쉬엄쉬엄 걸어도 한시간에서 한시간 반이면 한 바퀴를 돌 수 있는 거리다. 그래도 야경을 보겠다는 욕심에 쉬었다 또 쉬었다 하면서 세시간을 보낸다. 마침 MP3나 듣자 하고 틀어보니 받아 논 노래라는 게 연가라는 이름의 CD다. 다들 알지? 이미연의 연가라고.. 모르나.. 그냥 삼사년전 유행하던 사랑 노래 묶음라고 보면 되는데 세시간 내내 줄창 내가 얼마나 너를 사랑했는지 아냐는 둥 내가 널 잊어주길 바라냐는 둥 이게 그때의 댓가인가 보다는 둥 둥둥둥을 듣고 있으니 괜시리 옛날 남자들도 떠오르고^^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심지어 여기가 중국인지 한국인지 내가 계림 호수에 있는지 일산 호수에 있는지도 모르겠더라는 것이다.


 호수 위의 이란성 쌍둥이탑

여기 중국맞다니까요^^

 

드디어 해가 지고 그 아름답다는 야경은 언제 보여줄래나 기다리고 있는데 야경은 커녕 산책로에 불도 안 켜진다. 어 뭐 이래.. 좀더 기다리면 보여줄래나 했더니 일곱시에 배처럼 생긴 식당에 불하나 켜지곤 그만이다. 이제 열도 나는 것 같고 배도 고프고 더 이상 호수 구경도 싫고 이 호수가 아닌가벼 하는 맘으로 숙소로 돌아온다. 그리곤 못내 아쉬운 맘에 인터넷으로 다시 그 글을 읽는다. 그 호수가 맞다. 글 밑에 있는 사진을 보니 낮에 본 것들에 죄 불이 켜져 있는 것이다. 이런.. 이거 국경일에만 켜는 거 아냐?^^ 양수오 갔다가 오는 날 혹시 가능하면 늦은 시간에 다시 한 번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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