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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주> 조용한 호수의 도시

 

항저우에서의 첫날을 보내고 다음날 일찍 서호를 보러 나선다. 워낙 큰 호수라고 들어서 한바퀴 둘러볼 엄두는 못 내고 그저 호숫가를 따라 걸어 다닌다. 물가에 식당이나 매점 따위가 있긴 해도 산책로며 벤치같은 것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게다가 중국인들의 생활필수품 자전거도 서호에 진입이 금지되어 오랜만에 느긋하게 거리를 걷는다. 한시간쯤 걷다보니 얼추 호수의 1/4은 돈 거 같아 보인다. 뭐야.. 별로 안 크잖아.. 다시 돌아가는 것도 어정쩡해 그냥 한 바퀴 돌아보기로 한다. 서호는 바다에다 제방을 쌓아 만든 인공 호수라는데 그 호수 가운데 다시 호수 강바닥의 흙을 긁어내 만든 바이디와 수디라는 둑길이 호수를 가르고 있다. 그 둑길 위로 놀며 쉬며 걸어다닌다.


 

 서호위로 한가롭게 떠다니는 배들, 사실 한가롭진 않고 열심히 고기잡이 중이다. 


 

 같은 날 서호

 

세시간쯤 걷다가 다리도 아프고 해서 유람선을 타기로 한다. 섬 가운데에 무슨 삼도라는 세 개의 섬 중 두개를 돌아보고 제자리에 내려주는 배인데 이 놈의 배가 첫 번째 섬에 내려주고는 기다리지도 않고 바로 떠나버리는 거다. 섬이라야 손바닥만한 곳에 호심정이라는 정자 하나만 달랑 서 있다. 다시 선착장에 갔더니 다른 배가 서 있고 끊었던 배표를 보여주니 그냥 타란다. 그리하여 다음 섬까지는 무사히 도착을 했는데.. 이 섬 역시 이전 섬보다야 약간 크지만 한 바퀴 도는데 십분이 걸리지 않는다. 게다가 온통 공사 중이다. -뭐 중국 전체가 공사 중인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문제는 다시 배를 타야 하는데 내가 탄 곳으로 내리는 배가 뭔지를 모르겠더라는 것이다. 내가 탄 곳의 명칭을 알아야 적어라도 보여줄 텐데 것도 모르겠고 표를 보여주니 무조건 타란다.. 에휴 운에 맡기자 싶어 아무 배나 올라탔더니 운도 없지 이 배가 내가 한시간 반전에 걸었던 곳에다 내려준다. 


다시 걸을 엄두가 안나 택시를 탈까 하고 있는데 호수를 한 바퀴 도는 전동차가 눈에 뛴다. 대략 서울랜드 입구에 있는 코끼리차 비슷한데 레일은 없는 자동차라 생각하면 된다. 다행히 구간구간 사람을 내려준다. 두시간 전만해도 누가 저런 걸 타나 했는데 쾌재를 부르며 냉큼 올라탄다. 배 탔던 곳을 조금 지나 다시 걷는다. 어느새 날이 흐려지더니 호수 서쪽은 하얗게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서쪽에서 보면 더 이상 호수가 아니라 바다처럼 느껴진다. 이제 식당도 매점도 보이지 않고 몇몇 현지인들만 호숫가를 산책 중이다. 역시 같은 호수라도 시간에 따라, 날씨에 따라 혹은 마음에 따라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이는 법이다.   


웬지 쓸쓸해 보이는 의자


 

어디서나 염장지르는 것들은 꼭 있다^^

 

다음날은 자전거를 탄다. 숙소에서 자전거를 빌려 자전거길이라고 나섰는데 도로 한 편에 줄만 그어놓은 길이다. 내 자전거 실력이야 그저 넘어지지 않고 달리는 정돈데 그것도 호수공원처럼 차 절대 없는 자전거 길에서나 가능한 수준이다. 그런데 이 곳 중국의 차들과 사람들은 교통신호 절대 무시.. 차도 인도 보도 안가림.. 등등을 이미 봐 왔던터라 사거리 하나만 지나도 등줄기에 식은 땀이 흐른다. 그렇게 삽십분 정도 가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뭔가 이상하다. 왜 모든 자전거가 나를 향해 오고 있는 거지? 알고 보니 나만 역주행을 하고 있었던거다. 으.. 미안해라.. 근데 이 사람들 고맙게도 저쪽으로 가라든가 왜 이리 다니냐든가 뭐 그런 제스쳐 한 번을 안 한다. 횡단보도를 건너 반대편으로 달리니 자전거 타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조금씩 적응이 되는 것인가?


서호를 지나 영은사쪽으로 길을 잡는다. 중국의 도로는 안내판이 기가 막히게 잘 되어 있다. 어디나 이곳이 무슨 도로인지 동쪽인지 서쪽인지 표시가 되어 있는 것이다. 즉 지도가 있고 한자를 읽을 줄 만 알면 목적지까지 찾아가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영은사를 둘러보고 다시 방향을 롱징차 마을로 잡는다. 지도상에는 그리 먼길은 아닌데 바로 가는 길이 없다. 일단 서호쪽으로 나왔다가 방향을 튼다. 엉덩이가 슬슬 아파오지만 자전거 타는 재미에 힘든 줄도 모르고 달린다. 그런데 롱징차 마을 가는 길에 산길이 버티고 서 있다. 롱징차마을로 간다는 버스가 다니는 걸로 봐서 이 길이 맞긴 한데 웬 산길 더구나 입구에 자전거 가지고 가지 말라는 표지까지 붙어 있다. 다시 돌아와 지도를 살펴봐도 이 길밖엔 길이 없다. 에이 설마 얼마나 멀겠어 하면서 경고를 무시하고 자전거를 끌고 산길을 오른다. 오르막이라 타지는 못하고 그저 끌고 산길을 오르는데 땀이 비오듯 한다. 그렇게 산길을 한 한시간이나 걸었을까 이번에는 한계령에서나 볼 수 있는-내눈에 그렇게 보였다는 얘기다^^- 구불구불한 오르막이 나타난다. 포기다. 올라갈 자신도 없을뿐더러 오는 건 또 어쩐단 말이냐.. 올라왔던 길을 다시 자전거를 타고 내려 가는데 스릴 만점이다.


 

 영은사 입구의 석불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좀 더 남쪽으로 내려가 보기로 한다. 원래 갈 생각이 없었던 육화탑이라는 곳인데 탑 꼭대기에 오르면 도시 전체가 보인다나 어쩐다나 하는 곳이다. 육화탑 근처에 도착하니 강이 보인다. 서호가 아니라 첸탕강인가 하는 거의 한강보다도 큰 항저우의 주요 지류다. 이때쯤 그러니까 추석지나고 이삼일쯤 뒤에 만조에 의해 강물이 역류하는 모습을 보러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고 하는데 원래 어디로 흘렀는지도 모르니 역류해도 별로 이상하지도 않다. 사실 강가에 모인 사람들이 역류 때문에 모인 건지 늘 그리 많은 건지도 알 수는 없다.^^


육화탑에서 내려다본 첸탕강

 

다시 자전거를 타고 까르푸로 간다. 스낵코너에서 가장 만만한 국수를 먹고 있는데 사람들이 먹는 음식 중에 우리네 떡국떡 같은 것을 간장에 야채와 함께 볶아주는 것이 보인다. 앗! 저것은 궁중떡볶기가 아니더냐.. 배가 너무 불러서 더 먹을 수도 없고 낼 아침에 다시 와서 먹자니 시간이 없고 아쉬움에 입맛만 다신다. 까르푸에서 과일이랑 몇가지 간식거리를 사서 숙소로 돌아온다. 그래도 안 다치고 돌아온 게 어디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나중에 보니 여기저기 멍투성이다. 그럼 그렇지.. 내일은 롱징차 마을만 버스로 둘러보고 황산으로 떠나야겠다. 이렇게 되면 황산 등반이 주말에 걸리긴 하지만 정 안되면 그냥 산 밑에서 하루 더 버티면 될 일이다. 근데 차마을로 가는 산길은 얼마나 더 올라갔어야 하는지 낼 버스타고 가면서 꼭 확인해 봐야겠다. 


롱징다원. 이리 큰 주전자며 다구 따위가 주위경관을 완전히 망쳐 주신다. 그리고 그 산길은 그때 포기하길 잘 했다. 그후로도 오랫동안 오르막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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