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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밍> 베트남 비자 받다.

 

누군가가 잠든 나를 깨운다. 눈을 떠보니 6시 20분, 열차는 벌써 쿤밍역에 들어서고 있다. 긴장이 풀리기는 했나 보다. 아무리 쿤밍역이 종점이라지만 승무원이 -아니 여긴 복무원이다^^- 깨울 때까지 자다니.. 주섬주섬 짐을 챙겨들고 내린다. 이제 새벽 공기가 제법 차다. 택시를 타고 차화빈관으로 간다. 기차에서 내내 차화빈관으로 갈까, 험프로 갈까 고민했지만 아무래도 택시기사가 험프의 위치를 알 것 같지 않다. 다행히 일곱 시 조금 넘은 시간인데도 체크인을 해준다. 자기도 뭣해서 그냥 샤워나 하고 베트남 대사관에 가서 비자 신청을 먼저 하기로 한다.


문제는 베트남 대사관의 위치를 모른다는 것인데.. 론리에는 쿤밍에는 아예 베트남 영사관이 없다고 나와 있는바 위치가 있을 리 만무하고 베트남이 대략 15일 무비자이다 보니 인터넷에도 대사관 위치에 대한 언급은 없다. 예전 하우아시아가 쓴 글에서 베트남 비자를 쿤밍에서 받을 수 있다는 정보만 믿고 그냥 베트남 대사관을 찾기로 한 것이다. 뭐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정보가 없으면 없을수록 더 용감해지는 것 같긴 하다. 일단 도미토리 데스크에 묻는다. 근데 문제는 이 양반들 도무지 베트남이란 말을 못 알아듣는 것이다. 내가 아무렴 베트남 그랬겠는가^^ 나름 굴려서 비엣남 엠바시 어쩌구 해도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그래서 비자 어쩌구 했더니 환하게 웃으며 나가서 왼쪽 골목으로 가면 있다는 거다. 그리 가깝다니.. 역시 위치가 좋은 곳이라더니.. 의외로 쉽게 찾아진다 하며 쎄쎄하고 돌아서는 데 뭐 베리 굿이라나 나이스 플레이스라나 하는 말이 뒤통수를 친다. 대사관이 아무리 친절해도 그렇지 뭐 베리 굿에다 나이스 플레이스씩이나.. 이상하다 하고 가보니 거기는 피.자.집.이었던 것이었다. 비자랑 피자랑 헷갈렸던 모양이다^^


여튼 대행의 유혹을 뿌리치고 우여곡절 끝에 베트남 비자를 신청한다. 생각보다 나오는 건 빠른데-2박 3일만에 나온다- 가격은 400원으로 만만치 않다. 아무래도 15일 만에 베트남을 주파하기는 힘들고 베트남에서 연장 신청하는 건 130달러라니 이 방법 밖에 없긴 하다. 베트남이란 곳이 좀 껄끄럽기도 하고, 남아 있는 중국 비자 일정이 아깝기도 해서 여러 가지로 머리가 복잡했는데 막상 비자를 신청하고 나니 이제 결정이 됐다 싶어 한편으로 편안해진다. 베트남에서 가장 먼저 가게 될 사파와 박하가 각각 토요 시장과 일요 시장이 유명하다니 금요일 밤차로 국경도시 하커우로 가서 토요일 아침에 국경을 넘어 사파로 들어가기로 한다.


베트남 비자 Valid from 15/10/2005 until 15/11/2005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 안 선명한 건 사진을 잘못 찍은 탓이래두--:;


그러면 쿤밍에 있게 되는 날은 사오일쯤 되는 셈이다.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면 으레 그렇듯이 뚜벅이 투어로 하루가 간다. 뚜벅이 투어란 대략 가이드북에 있는 지도와 그 지도 안에서 이동 가능하다고 보여 지는 관광지들 사이를 걷거나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시내 지리를 익히는 건데 종일 걷게 되는 경우가 많다. 뭐 쿤밍이라고 예외겠는가.. 거리 노점에서 파는 각종 먹거리와 좌판들에 넋을 놓고 다니다가 결국 남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 마냥 걷는다. 이제 탑들도, 절들도, 호수도 시들해져 여기가 가이드북에 나온 거긴가벼.. 하면서 눈도장만 찍고 다니다가 갑자기 내가 뭐하고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든다. 발길에 채인다던 한국인 여행자 본지는 어언 삼주 가까이 되고, 매일 과묵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혼자 행복했다가 심심했다가도 한두 번이지 이렇게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런지.. 대체 왜 다녀야 하는 건지.. 여행 시작하고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시내 북쪽에 추이후 공원 이렇게 않아서 악기도 연주하고 노래도 부르는 팀이 꽤 여럿 있다.


 그러다 신나면 춤도 추고


 이 동네 아이들 안 같게 때깔이 심하게 고운 아이들


그래도 사람이 살 수 있는 원동력이란 게 시간이란 놈이라더니 담날 늘어지게 자고 났더니 약간 낙관적으로 변한다. 계림까지는 도미토리 인간들의 바지런함에 치를 떨었는데 이곳 쿤밍에 오니 게으름뱅이들이 많다. 일단 배낭이 커지고 -이건 장기여행자들이 많다는 것 일테고- 얘들이 전반적으로 지저분해 뵈더니 이 인간들 아침에 아무도 안 일어난다. 어찌나 맘이 편안해지는지.. 결국 9시 가까이 되서야 내가 일등으로 일어난다^^ 그래도 또 습관적으로 갈 곳을 만들어 나선다. 이번엔 쿤밍에서 약간 떨어진 서산이란 곳으로 버스를 타고 간다. 이제 로컬버스 타는 데는 거의 선수가 된 것 같다. 가이드북에 나온 대로 5번 버스 타고 가다가 6번 버스로 갈아타고 가는데 아무한테도 안 물어보고 그냥 목적지까지 갔으니이게 어찌 된 일인지 나도 모르겠다^^


서산은 쿤밍에서 15km 정도 떨어져 있는 덴이라는 호수를 끼고 있는 산인데 이 산 중턱쯤에 있는 석굴인 룽먼 즉 용문에서 바라보는 덴호수의 경치가 때.때.로. 환상적이라는 것이다. 이 서산에서 룽먼석굴로 들어가는 입구에 네얼묘가 있다. 론리에 의하면 네얼은 뛰어난 작곡가로써 현 중국의 국가를 작곡하였으며 공부를 더하기 위해 일본에서 러시아로 가던 중 익사하였다고 되어 있다. 그때 그의 나이는 23살이었단다. 그의 묘에는 인민음악가 네얼묘라고 되어있고 묘를 둘러싼 담벽엔 인민들의 투쟁의 모습이 부조되어 있다. 요절한 천재음악가와 혁명 그리고 이제 관광지가 된 그의 묘지 사이에서 묘한 아이러니를 느낀다. 이후에는 물론 룽먼 석굴도 갔으며, 거기서 덴호수도 바라보았고,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대로 덴호수를 가로지르는 작은 길을 찾아내려고 30분간 노력하다 포기하고 케이블카를 타고 덴호수를 넘어 운남에 산다는 26개 소수 민족을 박제해 놓은 민족원이라는 데도 가고 뭐 그렇게 하루를 보낸다. 


네얼묘. 동상 뒤로 그의 묘가 있고 그 뒤로 부조된 벽면이 둘러쳐져 있다.


시산 룽먼에서 바라본 덴호수. 저 호수 가까이서 봐도 물감 풀어놓은 듯한 초록색이던데.. 멀리서나 봐야 예쁘지 가까이서 보면 좀 섬뜩하다.


 민족원의 어느 소수민족 마을. 원래 민속촌이라는 게 그렇듯 몇 개의 구획으로 나눠 소수 민족들의 문화를 소개하고 있는데 무슨 동물원 구경하는 것도 아니고 좀 그렇다. 하지만 뭐 그 마을로 트레킹을 간다고 한들 뭐 다르겠는가. 다 그런거다.


여행이 한 달을 넘어서면서부터 자연스럽게 몸과 맘이 널럴해지기 시작한다. 고구마 왈 지나친 술은 간을 딱딱하게 만들고 지나친 경치는 마음과 눈을 딱딱하게 만든다더니 이제 어떤 관광지든 제법 특별하지 않으면 어떤 걸 봐도 그러려니 싶다. 관광지 구경이 아니라 여행이 하고 싶어진다. 근데 관광지 구경이 아닌 여행은 어떻게 하는 건지 아직 방법을 모르겠다. 그래도 낯선 길거리를 걷고 사람들을 구경하는 일은 아직 재미있으니 그렇게 다니는 거 아닌가 싶다. 아님 친구를 사귀어야 하나.. 그럴러면 동남아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필리핀에 틀어박혀서 영어 공부라도 몇 달 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여튼 몸 편하고 맘 복잡한 쿤밍에서의 며칠이 지나가고 있다.

 


그래도 먹는 일을 멈출 순 없다. 윈난 토속 음식 치궈지, 닭에 여러 가지 약초를 넣고 끓인 건데 몸에는 좋을지 몰라도 맛은 뭐 그럭저럭..


 

 


 이것 역시 윈난 토속음식 궈챠오 미센, 위의 쟤들과 국수를 뜨거운 국물에 담궈서 먹는 요리이다. 같이 넣는 부재료의 종류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국물은 비교적 담백한데 그 정도 국물 온도에 부재료들이 제대로 익었을까 약간 걱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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