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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장> 증세가 점점 심해진다

 

리장에 도착하고 이틀간은 비교적 정상적인 여행자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벌써 기억이 아득하다^^. 티벳까지 동행하기로 한 친구가 이전에 가본 적이 있다는 나시족 숙소에 짐을 풀고 나니 그간 한국인 숙소를 다니며 늘어졌던 맘도 조금은 긴장이 살아나는 것 같은 게 웬지 거리도 새롭게 보인다. 리장은 들은 대로 한옥을 연상시키는 집들이며, 미로 같은 골목길 그리고 그 옆을 흐르는 수로들만으로도 맘을 빼앗길 만한 도시다. 그러나 그 골목길이 전부 상점으로 변해있고 어느 골목이나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으니 누구 표현대로 세계문화유산 지정이 재앙이 된 도시라는 감상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단체 관광객이 붐비는 메인 거리를 조금만 벗어나도 70년대 도시 변두리에서 보았음직한 골목길이며 집들, 시장을 만날 수 있으니 어디서나 발품은 조금 팔고 볼 일이다^^



언덕 위에서 본 리장고성


이층 객실에서 내려다 본 게스트하우스 마당, 이 지역 소수민족인 나시족의 집을 개조한 것이다.


도착한 날 오후부터 동행한 친구가 이 길로 가면 이전에 보았던 어디가 나올 것 같은데.. 해가며 헤매는 통에 골목 구석구석을 몇시간 누비고 다니다 시장통에 앉아서 저녁을 먹는다. 당근 술이 빠질 리 없다. 둘이서 서너 병 먹어 주고 나서야 저녁 식사가 끝난다. 근데 이 친구 보기보다 말이 좀 많다. 주로 자기 옛날 여행담이 주 레파토리인데 사실 남의 여행 이야기처럼 지겨운 게 어디 있냐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여행기를 매번 읽어주시는 여러분들도 대단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긴 한다. 뭐 대략 사진만 보시는 분들도 많다는 사실도 알고는 있다^^- 슬며시 술 먹는 일이 고문이 된다. 담날도 고성 주변이며 리장 신시가지를 돌아다니는 걸로 하루를 마감한다. 이제 다음날이면 리장을 떠나 중덴으로 움직일 차례인데 문득 내가 이렇게 정신없이 움직여야 하는 이유가 뭘까 하는 생각이 든다. 리장에서 며칠 더 있고 싶기도 하고 호도협도 다녀오고 싶고.. 하는 맘이 다시 고개를 든다. 게다가 따리에서 만난 노과장 왈 리장의 한국인 게스트하우스에 장기 체류자가 하나 있는데 매우 괜찮다고 몇 번이나 강조하지 않았냐 말이다^^


사실 티벳 가는 길이란 게 이 친구를 따라 간다고 해서 육로로 들어갈 수 있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같이 움직여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게다가 같이 다니는 일이 썩 즐거운 것도 아닌데 말이다. 밤에 다시 맥주를 마시다가 혹시 육로로 못가면 어떻게 갈 꺼냐고 물었더니 이 친구 그런 생각은 안 해 봤단다. 대책이 없다ㅠㅠ. 실제로 공안에 잡혀서 되돌아 나오는 사람이 있는 것이 현실인데 그런 생각을 안 해봤다는 건 무슨 오기란 말인가.. 그랬더니 들어가는 사람도 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내가 몬살아.. 그래도 만에 하나 걸리면 어쩔 거냐고 했더니 꺼얼무로 돌아서 들어갈 거라고 대답은 하면서도 못 들어갈 일은 없다고 호언장담이다. 혹시 문제가 되면 그 다음 루트도 나랑은 다르다. 어떻게 하나.. 어떤게 잘하는 결정일까.. 잠시 고민하다 그냥 리장에 며칠 더 있겠다고 한다. 다행히 쉽게 받아들인다.


리장의 골목길


담장너머 봄꽃이 환하다


길에서 만난 꼬마, 지가 모델인 줄 안다^^


다음날 중덴으로 떠나는 그 친구를 보내고 한국인 여자 승경씨와 대만인 남자 앤디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 <낭만일생>으로 방을 옮긴다. 해발이 비교적 높다는 리장에서도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한 이곳을 배낭을 메고 오르니 숨이 턱에 까지 찬다. 이곳은 도미토리가 주가 아니라 욕실이 딸린 소위 표준방이 주가 되는 곳인데 욕실 없는 트윈방 두개를 그냥 침대당 20원을 받고 내주고 있다. 방하나를 다 쓰고 싶으면 나머지 침대 가격까지 내면 되는데 이 비수기에 손님이 들까 싶지도 않아 그냥 침대 하나만 쓰기로 한다. 사실 한국인 게스트하우스라고는 하지만 주인이 늘 붙어 있는 것도 아니라 주로 중국인 복무원들과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이 복무원들 중 영어가 가능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게 현실이라 이 정도 이야기를 하려면 온갖 손짓과 발짓이 동원되어야 하는 바 이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이다.


막 짐을 풀고 게스트하우스에서 함께 운영하는 카페에 앉아 있는데 따리에서 만났던 비구니 한 분이 들어온다. 함께 온 일행이 이전 따리에서 넘버3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시던 문씨 아저씨다. 셋이 차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새로 만든 옥룡설산 밑 게스트하우스 이야기가 나온다. 따리의 게스트하우스를 정리하고 새로 만든 이 게스트하우스는 아직 오픈은 하지 않은 상태로 공사를 마치고 인터넷은 깔았는데 다음 카페에 글이 써지질 않으신단다. 지금은 중문 XP가 깔려 있는데 한글 XP로 바꾸셨으면 좋겠다는 말씀도 함께다. 쿤밍에 있는 동생들에게 부탁했는데 공사기간 넉달이 지나도록 한 놈도 안 온다고 속상해하신다. XP는 몰라도 다음 카페에 글 정도는 쓰게 해 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더니 지금 당장 같이 올라 가자신다. 비구니 스님도 좀 도와드리라고 역성이다. 뭐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옥룡설산에 가보겠냐 싶어 짐은 게스트하우스에 둔 채로 따라나선다. 도대체 장기 체류자 얼굴은 언제 본단 말이냐^^


옥룡설산


옥룡설산 아래 호수


리장에서 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옥룡설산은 한여름에도 눈이 녹지 않는다는 산으로 멀리서도 그 위용이 한눈에 드러난다. 입장료가 120원이라는데 문씨 아저씨의 차를 타고 올라가니 무사통과다. 매표소를 지나 20분이나 달렸을까.. 드디어 게스트하우스가 모습을 드러낸다. 사실 게스트 하우스라기 보단 무슨 펜션 같다. 도미토리가 아니라 개별 방에 욕실, 방마다 컴퓨터까지 설치되어 있는 최고급 숙소다. 방에 있는 전면 유리창을 통해 호수며 멀리 설산이 한 눈에 보인다. 배낭여행하는 학생들이 묵기에는 좀 고급 숙소다 싶은 느낌이었는데 아닌게 아니라 바쁘게 움직이는 배낭여행객들보다 그저 며칠 조용히 쉬었다 가는 사람들이 묵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만든 곳이란다. 언제 오픈하시냐고 물어보니 공사하느라고 너무 지쳐서 쉴 때까지 쉬다가 내키면 하시겠다는데 글쎄.. 그게 언제일지는 모를 일이다.


다음 카페에 글이 안 써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방화벽 때문에 activ-x라는 프로그램이 안 깔려서 그런 건데 방화벽을 몇 개 낮추고 프로그램을 내려받으니 해결이 된다. 내친김에 한글XP까지 깔까 하다가 혹 깔다가 문제라도 생기면 이 산중에 AS부를 데도 없는데 하는 생각에 그냥 두기로 한다. 저녁을 거하게 얻어먹고 담날은 차로 옥룡설산 아래 산길을 따라 따쥐까지 다녀온다. 비포장도로를 덜컹거리며 달리기는 했어도 산 중턱에 있는 마을 어귀마다 복숭아꽃을 환하게 피워 올린 나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봄날을 실감할 수 있는 하루를 보낸다. 결국 하루만 자고 내려가려 했던 것이 이틀이 된다. 며칠 더 머물고 가라시는 걸 짐이 아무것도 없어서요.. 했더니 그럼 리장에 며칠 묵다가 오고 싶으면 전화를 하면 데리러 오시겠단다. 말씀은 고맙지만 뭐 그럴 일이 있을까요..하는 맘이었지만 그저 네.. 하고 대답은 해놓고 리장에서 호도협이나 갔다가 중덴으로 올라가야지 하는 맘으로 다시 리장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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