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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덴> 론리 너무하다!!!

 

리장에서 퍼진 이유야 그저 쉬고 싶었다는 것이 가장 크겠지만 다음 일정이 엄두가 안 났다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추위와 더불어 고도와의 힘겨운 싸움 역시 조금 뒤로 미루거나 아님 피해갈 방법이 없을까 하는 맘도 컸었는데 결국 여러 가지 고민 끝에 그냥 원래 일정대로 움직이기로 한다. 나란 인간도 꽤 융통성이 없는 것이 매번 고민은 하지만 나중에 보면 꼭 원래 루트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여튼 중덴은 무지하게 춥다는 여러 여행자들의 조언에 따라 가지고 있는 옷 중에서 두꺼운 것들은 죄다 꺼내 입고 버스를 탄다. -다행히 겨울옷은 징홍에서 태국으로 내려간 세아이 엄마에게 미리 얻어둔 게 있었다는- 리장에서 중덴까지는 4시간.. 두시간 정도는 제법 봄 들녘이 이어지더니 호도협 입구인 처우터우를 지나자마자 황량한 겨울 풍경이 이어진다. 창문 틈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예사롭지 않다.


중덴의 티벳식 사원식 송찬림사(송짠린쓰)


티벳식 기도 깃발인 타르초가 보이기 시작한다


송짠린쓰 가는 길에 만난 할머니, 점심 공양하러 가신단다.


버스가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괜히 왔나 싶은 게 풍경은 우울하기 그지없다. 도무지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중에 봄빛은 하나도 감지되지 않는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자 버스는 여지없이 중덴 터미널에 도착한다. 듣던대로 중덴의 날씨는 꽤 쌀쌀하다. 그래도 한참 추울 때는 영하 20도까지 내려가기도 하고 3월 중순까지 눈이 내린다는 소문에 비하면 견딜만한 정도다. 일단 다음 행선지인 샹청 가는 버스를 알아보니 아침 7시 반에 한대 있단다. 론리에는 삼사일에 한대씩 있다고 되어 있는데 그새 변했는지 매일 있는 모양이다. 배낭을 메고 택시를 세워 론리 숙소편 젤 앞줄에 나와 있는 친절하고 깨끗하다는 티벳 호텔로 가자고 한다. 말이 호텔이지 저가의 도미토리도 있는 곳이다. 다행히 기사가 그 곳을 알고 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택시를 내리고 보니 황당 그 자체다. 호텔에 들어서니 방은 거의 삼사십 개는 되어 보이고 식당이며 카페 간판은 보이는데 도무지 사람의 흔적이 보이질 않는다. 리셉션에도 아무도 없다. 뭐 여행자 거리도 아닌 것 같은데 나가서 다시 택시를 타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누군가 핼로우 하고 인사를 한다.


다행히 영업은 하는 모양인데 이렇게 손님이 없다니.. 그새 사람이 그리워진 나로서는 우울하기 그지없는 노릇이다. 4인실 도미토리에 짐을 풀어도 손님은 달랑 나 하나다. 저녁이라도 먹으려고 식당을 기웃거려 보니 아까 인사하던 그 친구가 식당은 영업을 안하니 나가서 먹으란다. 다행히 근처에 가격은 좀 비싸지만 여행자를 대상으로 하는 식당이 눈에 뛴다. 조금 더 나가볼까 했지만 썰렁한 거리 풍경에 질려 그저 밥만 먹고 돌아온다. 론리에는 공용 욕실이 깔끔하고 저녁 8시 이후엔 더운물도 나온다고 되어 있는데 게스트하우스 사상 처음 보는 문 없는 화장실에, 수도 꼭지하나 덜렁 있는 샤워실에, 더운물은 밤 10시 이후에나 나온다고 하니 도무지 씻을 엄두가 나질 않는다. 간신히 이만 닦고 방에 들어오니 그나마 전기장판이 위안이 된다. 생각 같아서는 내일 당장 중덴을 뜨고 싶지만 담부터 가야 하는 곳이 거의 이 수준이거나 이것보다 나쁠 것이 뻔한데 싶어 하루 더 머물기로 한다.


뭐 모든 여행기에 나와 있듯이 중덴은 중국 정부가 <샹그릴라> -뭐 이상향, 그런 뜻인데 제임스 힐튼이라는 작가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 나오는 배경이 된 곳이라고 우기는 모양이다- 라고 개명하고 대대적으로 관광객 유치에 힘쓰는 곳이라는데 샹그릴라는 커녕 을씨년스럽기가 무슨 유령의 도시 같다. 옥룡설산에서 만났던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티벳의 험준한 여러 도시들을 거쳐 중덴에 도착하면 마침내 넓은 초원이 펼쳐지고 그때야 비로소 샹그릴라로서의 중덴의 참맛을 알 수 있다는데 티벳의 험준한 도시는 커녕 따리와 리장의 아기자기한 고성을 거쳐 온 나로서는 도무지 실감이 나질 않는 이야기이다. 


중덴에도 규모는 작지만 고성이 있긴 하다


누구말대로 할머니들이 관광 자원이다. 고성 앞 광장에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민속춤을 추시는 할머니들


담날도 거의 씻지도 못한 채로 시내로 나선다. 이 동네 아저씨들 머리가 떡져 있다고 은근 흉봤더니 남의 일도 아니다. 아시다시피 내 머리 하루만 안감아 주면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데다 날도 추워 이불 속에서 비비고 잤더니 뭐 거의 이 동네 아저씨 머리와 별다를 바가 없다. 에고..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더니.. 앞으로 남 흉보지 말아야겠다 싶다. 중덴에서 유일한 볼거리인 티벳식 사찰인 송찬림사에 들렀다가.. 중덴 시내를 걸어서 한 바퀴 돌고.. 아직 남아 있다는 구시가지를 돌아보니 얼추 하루가 간다. 다음 행선지인 샹청도, 리탕도 여기 보다 환경이 나쁘면 나빴지 좋을 리는 없는데 그렇담 머리는 언제까지 떡져서 다녀야 하나 고민이 된다. 그렇다고 얼음짱같이 찬물에 머리 감을 엄두는 전혀 나질 않는다. 물론 더운물이 나온다는 밤 10시 이후까지 기다릴 생각은 더더욱 안난다.


고민하고 있는데 미용실이 눈에 뛴다. 그래, 미용실에서 머리를 감으면 되는구나 생각하다가 내친 김에 아마추어의 손길이 완연한 머리를 나름 프로에게 맡겨보기로 한다. 일단 말이 안 통하니 손짓으로 감고 자르려고 한다 했더니 알아듣는다. 일단 머리를 감겨 주는데 샴푸를 머리에 바르더니 머리 밑을 확실히 손톱으로 문질러준다. 그것도 매우 여러 번 꼼꼼히.. 손톱으로 머리 밑을 문지르면 피부가 죄다 상한다는데.. 그래도 시원은 하다만 우리나라 미용계 인사가 알면 기절할 일이다. 그 다음 커트에 들어가는데 이 꽃미남 되다만 남자 미용사 조금만 잘라달라는 사인을 조금만 남기고 다 잘라달라는 소리로 알아들었는지 성큼성큼 가위질이다. 후회가 몰려온다. 그냥 감기만 할 걸 어쩌자고 이 시골 프로에게 머리를 들이밀었단 말인가^^ 그래도 이 친구 이 가위 저 가위 심지어 이 면도기 저 칼까지 동원해 공을 들인다. 원래 머리 자를 때는 안경을 벗는 법이라 내 머리 몰골이 어찌 되어 가는지 과정은 보이지 않는데 여튼 이 친구가 이리 공을 들이니 맘에 안 들어도 웃어줘야지 굳게 다짐한다. 막상 안경을 쓰니 헉!! 이건 완전히 <영구업따>다. 그러나 어쩌랴 머리야 자라는 거고.. 억지로 웃어준다. 머리감고 깍은 값이 6원, 우리 돈으로 780원이다. 에구 가격대비 화낼 계제도 아니다.


다시 숙소로 돌아온다. 뭐 어제와 그대로 아무도 없다. 그리고 여전히 춥다. 론리 숙소편 첫줄에 있으면서도 도무지 손님이 안 드는 이유를 모르겠지만 여전히 도미토리는 내 싱글룸이다^^ 앞으로 여정이 만만치 않으니 일찍 자두어야 할 텐데 잠은 오지 않고 밤만 깊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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