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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두> 다시 봄날이다

 

다행히도 청두 가는 버스는 꽤 여러 대가 있는 모양이다. 숙소에서 물어보니 8시 차가 있다고 해서 간만에 여유 있게 길을 나선다. 해도 뜨지 않은 새벽길을 게다가 추위에 떨면서 나서는 일은 당분간은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캉딩의 아침은 여전히 춥지만 다행히 터미널은 코앞에 있다. 버스가 떠나자 이번에는 사뭇 다른 풍경이 이어진다. 늘 어느 산으론가 올라가기만 하던 버스가 이번에는 산과 산 사이로 이어진 계곡을 따라 달린다. 좁은 계곡을 끼고 형성된 마을도 끊임없이 이어진다. 해발이 높지 않아서일까.. 주변은 온통 유채밭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 신혼여행지의 대명사인 유채꽃이 여기서는 당당히 밭작물의 하나다. 어린 순은 볶아 먹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주 목적은 기름을 짜는데 있는 것 같다. 하루 사이에 겨울과 봄을 넘나들고 있다.



청두 가는 길에 만난 유채밭, 봄빛이 완연하다.


버스는 이제 고속도로에 접어들더니 드디어 커다란 빌딩들이 즐비하게 서 있는 대도시로 들어선다. 드디어 청두에 도착한 것이다. 대도시에서 내리면 항상 숙소를 찾는 일이 고민인데-대부분 그냥 택시를 타긴 하지만 택시 기사도 숙소를 잘 찾는 편은 아니다- 여기서는 고민할 새도 없이 내려보니 그 유명한 교통빈관이 바로 눈앞에 보인다. 잠깐이지만 온통 봄날인 길을 혼자 겨울옷을 바리바리 입고 숙소에 들어선다. 다행히 교통빈관은 그 유명세답게 도미토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비스나 운영의 수준이 거의 호텔을 방불케 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도미토리가 있는 호텔인 셈이다. 먼저 더운물로 샤워를 하고 그간 입었던 겨울옷들을 세탁기에 돌려 널고 나니 비로소 한숨이 돌려진다. 호텔 앞 여행자 식당에 들러 간만에 맥주도 한잔 마시고 인터넷도 접속해본다. 여행을 다니면서도 도시에 와야 맘이 편해진다는 건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다음날은 그냥 청두 시내를 돌아다닌다. 살 물건이라고 해야 매번 샴푸니 치약이 고작이지만 그래도 쇼핑센터나 백화점에서 이것저것 고르는 일은 나름 재미가 있다. 이번에는 로션과 스킨이다. 여행 떠날 때 그 큰 걸 들고 간다고 구박구박을 받으면서도 들고 왔는데 어느새 새로 살 때가 된 것이다. 로션은 샴푸랑은 달라서 한번 사면 꽤 오래 써야 하는데다 피부에도 맞아야 해서 좀 비싸더라도 익숙한 외국제품을 사야 하나 백화점을 기웃거리고 있는데 이게 웬일인가.. 늘 쓰던 한국 제품 매장이 백화점에 있는 게 아닌가. 반가운 마음에 들러 보니 한국 제품은 그대로 다 있다. 문제는 물건값이 한국이랑 거의 같다는 건데 한국에선 별 생각 없이 쓰던 물건이 여기 가격으로 환산되어 있으니 왜 그리 비싸게 느껴지는지 살까 말까 잠시 망설여진다. 결국 로션과 스킨 두 개를 508원(6만5천원 정도)을 주고 산다. 손이 떨린다.^^게다가 여기는 샘플 화장품 하나, 화장솜 하나도 더 얹어 주는 게 없다ㅠㅠ.


청두 시내. 시내 한가운데 모택동의 동상이 서 있다.


그 다음날은 가이드북을 뒤져 시내 여기저기 가볼 만한 곳을 찍는다. 참 오랜만에 해 보는 일이다. 가고 싶은 몇 곳을 버스 노선과 동선을 고려해 정한 뒤 숙소를 나선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청두에서 가장 크고 보존이 잘된 절이라는 문수원이다. 절을 한 바퀴 둘러본 뒤 경내에 있는 찻집에 앉아 봄볕을 즐긴다. 그저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흐른다. 천천히 절을 빠져 나와 버스를 타고 청양궁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번에는 도교 사원이다. 뭐 그만그만하다. 다시 걸어서 두보초당으로 옮겨 본다. 다들 두보는 아실 것이다. 당나라때의 시인인 그는 20세 때 세상을 보기 위해 고향을 떠나 천하를 유람하다가 반란군을 피해 청두에서 4년간 살면서 200수가 넘는 시를 지었다고 한다. 말이 당나라 때지 우리나라로 치면 고구려쯤인데 그가 살았던 흔적이야 있을 리 만무하고 그저 잘 꾸며 놓은 정원에 복원해 놓은 초당이며 두보의 흔적을 모아 놓은 전시실이 군데군데 있는 곳이다. 간만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니 여행 초반 죽어라고 돌아다니던 기억이 새로워진다.


문수원 내의 찻집


청양사내의 탑, 단 하나의 못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탑으로 도교 철학의 건축적 성과를 보여 준다는데 그게 그리 어려운 일인지 모르겠다.


이 양반이 두보다. 중국 동상들은 근엄하지 않아서 좋다 -모택동 동상은 빼고^^-.


하루는 판다를 보러 간다. 중국의 동물 대사라는 판다는 청두 근처에 있는 판다 번식 연구센터라는 곳에서 연구와 서식을 함께 하고 있는데 일반 동물원과는 달리 제법 자유롭게 판다를 만날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단 판다의 습성상 아침 일찍 가야 하는데다 -아침을 먹고 나면 주된 소일거리인 잠을 자러 우리로 돌아가 버린단다- 대중 교통편도 없어서 여행사의 투어를 이용해야 하는데 갈까 말까 고민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실제로 판다를 한 번도 본적이 없다는데 생각이 미친다. 결국 반나절 투어를 신청한다. 아침 7시에 떠나 시내를 한바퀴 돌아 오늘의 투어 시청자를 죄다 싣고 공원에 도착하니 8시가 조금 지나 있다. 몇 개의 우리들을 둘러보며 판다를 구경한다. 생각했던 것 보다 조금 크긴 하지만 하는 짓이 제법 귀여워 한참을 우리 주변에서 서성이다 센터 내에서 보여주는 판다의 일생쯤 되는 영화도 한편보고 돌아오니 여전히 오전이다.



판다들, 무지 먹는다


누워서도 먹고..


아님 늘어져 자고..


이제 청두에서 할일은 거의 마친 셈인데 바로 티벳으로 가야할지 아니면 그 유명하다는 구채구와 송판을 들렀다 가야할지 여전히 고민이다. 특히 구채구는 한번 가보고 싶긴 한데 가는 길도 만만치 않은데다 여전히 춥다는 소문에 계속 망설여진다. 대체 움직이기 전날까지도 일정을 결정하지 못하다니 여행이 계속될수록 점점 더 고민만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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