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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판> 결국 싸우고 헤어진다

 

송판으로 떠나는 버스는 아침에 한번 밖에 없어 열한시경에 택시를 탄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주자이거우나 한나절 더 보고 오후에나 떠나면 되는 건데 이래저래 처음부터 일이 꼬인다. 주자이거우에서 송판까지는 대략 2시간, 택시에서 내내 이 군인아저씨 떠난 사람들 욕이다. 하루 밤이지만 내가 보기엔 고사리 아저씨, 그리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는데 사정을 잘 알지는 못해도 나로서는 군인 아저씨의 일방적인 얘기가 그리 신빙성 있게 들리지는 않는다. 건성건성 예예 하기도 참 보통 일이 아니다. 게다가 이 아저씨도 변함없이 말이 많다. 정말이지 이제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들은 지긋지긋하다. 이건 뭐 아줌마들 반상회도 아니고 도무지 남의 말이라곤 듣지를 않으니 여행 다니는 사람들이 외로워서 그런 건지 내가 만나는 인간들만 그런 건지 모를 일이지만 이 인간들 실컷 자기 얘기만 해놓고 미안한지 끝에는 꼭 한마디 한다. 참 과묵하시네요.. (내가 과묵한 인간이라니 소가 웃을 일이다^^)


송판에는 다행히도 한국식당이 있어 그나마 위로가 된다. 당근 론리에는 나오지 않는데 언젠가 다른 여행자들에게서 얼핏 들어본 기억이 있어 물어물어 찾아간다. 이야기를 들을 당시에는 송판에 갈 생각이 없어서 염두에 두지는 않았지만 <나쁜 삼촌>이라는 식당이름이 인상적이라 다행히 기억이 난다. 중국 간판은 호숙숙 뭐 대략 좋은 아저씨쯤 되는데 뭐 한국어로 된 간판에도 나쁜 삼촌이라고 되어 있다^^. 송판에 내려 그곳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있는데 나쁜 삼촌이 나타난다. 다행히 상태가 괜찮아 보인다. 식당만으로는 운영이 힘들어 다음날이면 돈벌러 몇 달간 심천에 간다는데 하루 먼저 오길 다행이다 싶다. 술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이 양반이 담궈 놓은 각종 희귀주들을 마시며 간만에 맘 편하게 술을 마신다. 나중에 족보를 따져보니 학교 선배이기도 하다. 학번은 거의 10년 차이가 나지만 중간 중간에 아는 이들도 있어 군인아저씨가 사이사이 놓는 삑사리를 이리저리 피해 이러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담날 일찍 나쁜 삼촌은 심천으로 떠나고 우리는 말트레킹을 떠난다. 전날 밤에 이미 1박 2일로 예약을 해 둔 터다. 말트레킹은 1박2일짜리부터 일주일짜리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는데 2박3일 코스가 일반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다양한(?) 트레킹 경험에 의해 모든 트레킹은 밤이 매우 춥고 긴 관계로 일행이 마땅치 않을 경우 상당히 힘든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나로써는 이 아저씨와 2박 3일은 결코 가고 싶은 맘이 없다. 1박 2일 코스도 쉬운 코스와 힘든 코스 두 가지가 있는 모양인데 쉬운 코스는 반나절 가량 말을 타고 가서 오후에는 국립공원 하나를 돌아보고 담날 돌아오는 코스인데 비해 힘든 코스는 반나절 말을 타고 산을 하나 넘은 뒤 점심을 먹고 다시 산을 하나 더 넘어 갔다가 돌아오는 코스라고 한다. 그 무섭다는 말을 하루종일 탈 자신은 없어 또 쉬운 코스를 택한다.   


트레킹 코스 중에 있는 산의 정상, 이 길부터는 걸어 내려가다 아스팔트가 나오면 다시 말을 탄다.


군인 아저씨의 권유로 털모자도 샀다. 따뜻은 하더라만 모양새는 영^^ 글구 전날 술 먹다 카메라 배터리 충전하는 걸 깜빡해 말트레킹 사진은 거의 못 찍었다는ㅠㅠ 

 

 아침에 약속 장소로 나가보니 트레킹을 떠나는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비수기라 마부 하나에 우리 둘 달랑 세 명만 떠나는 길이다. 말이 생각보다 무섭다는 말은 많이 들어 제법 긴장이 된다. 처음 30분은 이걸 왜 하겠다고 했나 싶게 무섭더니 조금씩 나아진다. 산위로 올라가니 주변으로는 채 녹지 않은 눈들이 나뭇가지를 하얗게 덮고 있고 멀리 설산이 보이는 것이 조금씩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길 주변이 낭떠러지라 아찔하기는 하지만 조금씩 재미가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군인아저씨 잠시도 입을 그만두지 않는데 입만 열었다 하면 지난 일행들 욕 아니면 자기 자랑이다. 듣기 좋은 소리도 여러 번 들으면 듣기 싫은 법인데 욕 아니면 자랑이니 아주 듣기 싫어 돌아버릴 지경이 된다. 자랑의 수준도 어찌나 유치 찬란인지 자기가 한손으로 말고삐를 잡고 다른 한손으로는 빵을 먹으며 여유 있게 말을 탔다는 자랑을 그날 하루 종일 스무번쯤한다. 네네 잘 타시네요를 하다하다 그 담엔 아예 못 들은 척 한다.   



모닝구라는 이름의 풍경구(우리로 치면 국립공원쯤 되지 싶은데 아직 채 녹지 않은 눈이 쌓여있다)



구채구를 안봤으면 모를까 그냥 그만그만하다


서너시간 말을 타고 모닝구라는 호수 공원에 도착한다. 어려운 코스를 택하면 산을 하나 더 넘어야 한다는데 쉬운 코스를 택하니 오후에는 공원 구경이나 하며 보낸다. 인터넷에서 본 트레킹 정보에 의하면 초원에서 천막을 치고 잔다는데 잠자리도 공원 내에 있는 쓰지 않는 건물에 마련된다. 아무래도 이곳이 덜 춥긴 하겠지만 아무래도 운치는 좀 떨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점심은 수제비로 저녁은 감자와 양고기 볶음을 먹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든다. 술을 가져가긴 했지만 그 전날 숙취도 숙취려니와 도무지 이 아저씨랑 긴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다. 결국 아침은 오고 6시부터 들락이던 이 아저씨 결국 10시에 떠난다는 마부에게 부득부득 9시에 떠나자고 해서 일찌감치 길을 나선다. 참 피곤한 양반이다.



점심에 먹은 수제비, 우리나라 수제비랑 거의 같은 맛이다.


송판에 돌아오는 길에는 또 나쁜 삼촌 욕이다. 그전에도 이런저런 소리를 하는 걸 못 들은 척 했는데 결국 내가 못 참고 싫은 소리를 한다. 나는 그전 일행에 대해서도 나쁜 삼촌에 대해서도 그런 생각이 안 드니 제발 그렇게 생각하시더라도 나한테 동의는 구하지 말아달라고 일침을 놓는다. 도대체 자기 이외의 모든 사람은 다 나쁜 사람이니 나랑 헤어지고 또 나는 얼마나 나쁜 년이 되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랬더니 삐졌는지 내려오자마자 이번엔 비행기를 타고 가겠다고 한다. 원래 청두까지는 같이 가지고 한 길이었지만 차라리 잘됐다 싶다. 하지만 운도 지지리 없는 것이 이번엔 비행기가 없다는 거다. 어차피 청두까지는 같이 가야 하나 보다 싶다.


그럭저럭 외면 수습은 하고 저녁을 먹다 -사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만 참자 다짐하면서 먹은 저녁이었는데- 결국 내가 폭발한다. 만나고 나서부터 자기가 젊어 보인다느니, 잘 생겼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열 번쯤은 했는데 이번엔 식당에서 일하는 어린 중국 여자친구들에게 자기가 몇 살쯤 되어 보이느냐고 묻는다. 뭐 대략 사십 후반이라는 대답이 나온다 -아마 오십 초반의 나이인 것 같다- 그랬더니 하는 말이 가관이다. 쟤들이 저렇게 대답하는 건 나쁜 삼촌이 자기 나이를 이야기해서이고 모든 중국 사람들은 자기를 삼십대 후반으로 본단다. 그러면서 중국 친구들에게 자기 근육을 만져보라고 난리다. 더는 도저히 봐줄 수가 없다. 오십대로 보이시거든요 그리고 그만하세요 한두 번도 아니고. 입만 열면 자기 자랑 아니면 남 욕이니 참 같이 다니기 힘든 분이시네요. 해 버린다. 결국 저녁 먹는 분위기는 썰렁해지고 담날 새벽에 버스를 타러 나가니 이 아저씨 사람을 본 척도 않는다. 에구 차라리 잘됐다 싶은 게 청두까지 대략 8시간 동안 그 수다를 듣느니 그냥 모른 척 해주는 게 고마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버스에서도, 버스를 내려서도 데면데면 헤어진다. 맘이 불편한 건 아닌데 그래도 여행 다니면서 이렇게 헤어지는 사람도 있구나 싶은 게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그래도 이쯤에서 놓여났으니 한편으론 발걸음이 가볍다.


이번에 청두에 도착해서는 바이러스의 동생이 강력 추천하는 심스코지 게스트하우스에 묵는다. 바이러스 동생이 <궁극의 게스트하우스>라고 극찬한 이곳은 여행자들의 편의를 최대한 생각해 운영되는 곳인 듯 여러모로 편리한 점이 많은데다 교통빈관보다 거의 모든 가격이 저렴하다. 게다가 인터넷은 랜선만 이용할 경우는 무료이고 주위에 대형마트와 공안국도 있어 필요한 것은 거의 걸어가서 해결할 수 있는 점도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티벳행 비행기 가격이 교통빈관의 여행사보다 250원이나 싸서 완전히 본전을 뽑는 느낌이다. 일단 도착해 샤워를 마친 후 빨래를 돌려놓고 저녁을 먹으니 다시 마음이 상쾌해진다.


심스코지 게스트하우스 입구


심스코지 게스트하우스 식당


다음날 비자 연장하러 공안국으로 간다. 흑 그러나 비자를 연장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휴일 빼고 5일이나 걸린다는 소리에 막막해진다. 여기서 비자를 연장하려면 오늘이 수요일이니 무려 일주일을 넘게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다른 여행기에서 읽은 바로는 징홍이나 캉딩에서는 하루 만에 연장이 된다고 해서 여기서도 그런 줄 알았더니 생각지도 못한 복병에 발목이 잡힌 셈이다. 어쩔까 고민하다 그냥 티벳행 비행기표를 예약한다. 아직 비자 기간은 일주일쯤 남아 있고 라싸에서 일주일 정도 연기가 가능하다니 티벳은 2주 만에 빠져 나오는 수 밖에 없다. 정 안되면 비행기로 카트만두까지 가거나 여행사를 통하면 기간을 조금 더 연장할 수도 있다고 하니 라싸에 도착하자마자 비자 문제부터 알아봐야 할 것 같다. 여튼 내일 떠나는 비행기를 예약해 두었으니 우여곡절 끝에 티벳 가는 길로 접어드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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