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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룡설산> 완전히 퍼지다

 

두 번째 오는 이 곳은 비교적 익숙하다. 아래층에 방하나를 잡고 짐을 푸니 맘이 편해진다. 호도협에 가서 씻지도 못했는데 욕조에 더운 받아 누워 있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 한국에서도 안 밀던 때도 밀고^^ 한식으로 된 저녁도 먹고, 맥주까지 한 잔 하니 기분이 알딸딸하다. 하지만 저번에는 뭔가 해드리러 온 거였고 이번엔 그냥 신세를 지는 셈이니 밥상 차리기며 설거지 등등을 열심히 한다. 참 그러고보니 설거지 해 본 것도 무척이나 오래간만이다. 문씨 아저씨도 거의 서너달을 이 인적도 없는 곳에서 공사하느라 지치셨는지 이런 저런 말씀이 많으시다. 그저 말동무도 되어 드리고 하면 되겠다 싶다.

 

별로 하는 일이 없는데도 하루는 순식간에 지나간다. 가끔 리장에 가서 시장을 보거나 하는 정도가 고작인데도 어느새 삼사일이 지나 있다. 컴퓨터가 24시간 되니 메신져나 하려고 간만에 접속을 해 봐도 온라인 되어 있는 인간 하나가 없다. 별 수 있나.. 네이트 온으로 문자를 날린다. 메신져에 접속해라 오바!! -참 좋은 세상이긴 하다^^- 결국 별 방법을 다 써 메신져로 수다도 떨고 간만에 이런 사이트 저런 사이트 웹서핑도 하고 밀린 메일 답장도 쓰고.. 그러다 보니 갑자기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이상한 것이 그저 연락도 못 할 상황일 때는 오히려 그러려니 싶은데 조금씩 관계의 끈이 닿으니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나 싶은 게 두고 것들이 못 견디게 그리워지더라는 얘기다. 한국에 잠시 다녀올까.. 아니면 북경에 가서 김과장 아니 김차장이랑 수다라도 떨고 올까.. 아니 그냥 티벳으로 가는 게 맞는 것 같은데..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을 바꿔 먹는다.



객실, 컴퓨터도 있다 물론 인터넷도 된다.


설거지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낸^^ 부엌 겸 거실


삼사일이 지나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오기 시작한다. 컴퓨터가 되고 나서 다음 카페에 아직 오픈은 안 했지만 그래도 지나는 사람들은 들르시라는 글이 올라간 탓일까.. 이전부터 아는 동생이라는 한국인 가이드가 데리고 온 손님 7명을 필두로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찾아온다. 사람들이 찾아오면 심심하지는 않아 좋은데 조금 애매한 처지가 된다. 이곳은 산 속이라 따로 밥 사먹을 곳도 마땅치 않은데다 쥔장 성격에 밥 사먹으라고 내보내지도 못하니 그저 삼시 세때 다 밥을 해 먹여야 하는데 요리는 쥔장이 하지만 객식구 주제에 두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는 처지라 이것저것 거들고 설거지까지 하다보면 도대체 내가 여행자인지 이곳 복무원인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일주일쯤 지나니 슬슬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도무지 개인적인 여유는 없어지고 점점 복무원화되어 가는 내 상태가 영 말이 아니다.


주인장이 스님들을 따라 호도협으로 떠난 어느날 그래도 떠나기 전에 신세는 갚아야지 싶어서 한글XP 까는 작업을 시작한다. 혹시 하는 마음에 쥔장방 컴퓨터는 그냥 둔 채로 내가 묵고 있는 방부터 포맷을 시작한다.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나, XP포맷하는 거 구경만 했지 직접 해보는 건 처음이다. 일단 포맷하는 것 까지는 성공했는데 복사판 한글XP CD가 말썽이다. 프로그램을 한참 깔다가 무슨 파일인가를 찾을 수가 없다고 버틴다. 네이버에 물어보니 대충 CD가 불량이라는 답변이 나온다. 여기가 한국이라면 한글XP CD구하는 게 뭐 어려운 일이겠는가 마는 헉 여기는 중국인 것이다. 컴퓨터는 이미 포맷되어 버렸는데 프로그램은 안 깔리고 이런 난감할 데가 어디 있냐 말이다. 할 수 없이 이곳저곳을 뒤져 보니 한글 XP CD 하나가 더 나온다. 이걸로 다시 깔아보니 애도 또 무슨 파일인가가 없단다. 에라 모르겠다 싶어 파일이 없다는 대목마다 CD를 번갈아 넣어주니 알아서 프로그램이 깔아진다.



숙소에서 바라본 옥룡설산


숙소 앞의 호수, 물막이 공사가 한창이다. 공사가 완료되면 숙소 앞에 제법 큰 호수가 생긴다고 한다.


여튼 우여곡절 끝에 한글XP를 깔고 나니 이제 대충 신세는 갚았다 싶은 생각이 든다. 설거지하기 싫어서^^ 내려간다는 말은 차마 못하고 그저 오늘 내일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번엔 감기가 온다. 열심히 다닐 때는 감기도 안 들더니 막상 쉬니까 긴장이 풀린 모양이다. 별 수 없이 며칠을 더 보내고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은 어느 날 짐을 싼다. 이런저런 고민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원래 가려고 했던 루트대로 움직이기로 한다. 며칠 쉬면 떠나는 발걸음이 가벼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반대다. 마치 처음 떠나는 길처럼 발걸음이 무겁다. 결국 삼주 만에 리장을 떠난다. 믿거나 말거나 여행자들의 전설에 따르면 삼주 안에 못 떠나면 석달 이내엔 못 떠난다는데 간신히 기간 안에 떠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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