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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키아우> 시간을 죽이다

 

<몇 년 전 왕위앙이 그랬듯 여행자의 입과 입을 통해 아름다움이 전해지고 있는 곳으로 흐드러진 자연을 보는 일 이외에는 별 것이 없는 이곳은 라오스 북부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곳으로 다가오고 있다> 트레블 게릴라에 나온 농키아누에 대한 설명이다. 자연을 보는 일 외에는 별 것이 없는.. 헉 무서운 말이다. 그야말로 아무 할 일이 없는 곳이라는 뜻인데 갈까 말까 잠시 망설인다. 특히 다음 행선지인 므앙씽도 <평화롭고 조용한 자연 풍경만큼이나 아직은 순박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 므앙씽은 서두르지 않고 시간을 보낸다면 순박함과 아름다움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곳이다>라는 표현으로 봤을 땐 할 일 없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인데 심심하다고 죄 피해간다면 바로 중국으로 넘어가야 할 판이다. 그래 내가 또 언제 라오스에 오겠어.. 하며 하루쯤 심심함을 견뎌 주기로 한다.


농키아우는 사실 농키아우와 므앙응오이를 합쳐서 편하게 부르는 말인데 므앙응오이는 농키아우에서 배를 타고 한 시간쯤 더 들어가는 곳에 있다. 아침에 루앙프라방에서 출발하여 농키아누에 도착하니 12시경이다. 므앙응오이로 가는 배는 2시에나 있다니 잠시 농키아우를 둘러보기로 한다. 뭐 흐드러진 자연이라더니 그저 대성리 비슷하다. 갑자기 무지 심심할 거란 예감이 확 들면서 그나마 전기가 들어온다는 이 마을에 그냥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서둘러 게스트 하우스 몇 군데를 둘러본다. 경치가 가장 좋다는 선셋게스트하우스는 이미 풀이다. 방갈로를 더 짓는지 하루종일 전기톱 소리와 망치 소리가 요란한데도 풀인걸 보면 론리의 힘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대체 농키아우까지 와서 하루 종일 전기톱 소리를 듣는 사람들의 심정은 뭔지 궁금하다^^. 그 옆에 있는 파라다이스뱀부 방갈로에 가 본다. 위치 좋은 방갈로는 4불이고, 2불짜리 방은 발코니도 없이 어두침침하다. 게다가 방안에 전기 코트도 없다. 그냥 므앙응오이로 가자고 맘을 바꿔 먹는다. 



므앙응오이 가는 길


므앙응오이의 방갈로


점심을 먹고 므앙응오이로 가는 배를 탄다. 주변 경관이 대성리 버전에서 내린천 버전으로 바뀔 무렵 배는 므앙응오이에 닿는다. 강가로 난 언덕 위로 방갈로가 즐비하게 서 있다. 중심거리가 300미터가 안되는 동네에 게스트하우스가 18개나 있다니 그럴 만도 하다. 배에서 내리자 동네 꼬마란 꼬마는 다 모여 든다. 이 동네 꼬마치고 영어 한마디 못 하는 애가 없다는데 말솜씨도 어른 찜쪄먹는다. 어디서 왔냐고 일일이 물어보고 그 나라말로 인사하고 방의 종류부터 가격까지 일사천리로 내뱉는다. 이 동네 방갈로는 대충 2불 정도인 모양이다. 한 꼬마를 따라 어떤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뒤에서 또 다른 꼬마가 1불짜리 방 있단다. 잠시 혹 했으나 싼 게 비지떡이다 싶어 그냥 앞서가는 꼬마를 따라 들어간다. 앞에 강도 흐르고, 방은 방이 분명하고, 발코니도 있고, 발코니에는 해먹도 걸려 있는데 어딘지 모르게 어설프다. 그래 방갈로가 다 그렇지 뭐 하면서 그냥 묵기로 한다. 짐을 풀고 300미터가 안되는 거리를 걷고, 이른 저녁을 먹고 나니 해가 진다. 어라.. 전기 코드는 없어도 전기가 들어오네.. 그럼 인도가이드북이라도 읽을까 하는데 한 시간이 채 못 되어 발전기가 꺼진다. 시간을 보니 7시 42분, 그냥 잠을 청한다.



숙소


숙소에서 바라본 풍경


당연하게도 다음날 아침에는 일찍 눈이 떠진다. 일찍 잔 탓도 있지만 곳곳에서 울어대는 닭울음소리 때문이라도 더는 잘 수 없을 것 같다. 이곳 날씨는 북부라서 그런지, 강가라서 그런지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함을 넘어 제법 추운 기운이 느껴지는데 해만 뜨면 찌는 듯한 더위가 이어지는 그야말로 아침 다르고 저녁 다른 날씨다. 제법 쌀쌀한 아침 기운을 느끼면서 시간 죽이기에 들어간다. 아침을 먹고 조금 쉬다가 닭들이 잠잠한 틈을 타 한숨을 더 자준다. 그리곤 해먹에 누워 전자 사전에 있는 테트리스-내가 아는 거의 유일한 오락이다, 오델로, 지뢰찾기 등등의 게임이 더 있으나 할 줄을 모르니 그림의 떡이다-를 두어 시간 한다. 열두시 반이 조금 넘어 있다. 그리곤 점심을 먹는다. 점심을 먹고 다시 해먹에 누워 내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한글 서적인 인도가이드북을 뒤적이며 시간을 보낸다. 그도 지치면 음악을 듣는다. 음악을 들으며 한국에 남아 재미나게 놀고 있을 인간들 생각에 잠시 빠진다. 그러다 잠시 존다. 이제 네 시다. 좀만 버티면 된다. 다시 300미터의 거리를 걷고 이번엔 강변도 한 번 걸어준다. 움직였으니 샤워를 하고 다시 이른 저녁을 먹는다. 다시 해가 진다. 최후의 보루인 노트북을 켠다. 배터리 수명이 다할 때 이것저것 정리하니 한시간반 가량이 지난다. 다시 발전기가 꺼진다. 어둠 속이다. 오늘은 어제처럼 쉽게 잠이 들질 않는다. 낮잠을 너무 잔 탓이다. MP3 배터리가 다 할 때까지 음악을 듣는다. 시계는 어느새 10시를 넘어선다. 그래도 잠이 안 온다. 미치겠다. 다시는 전기 안 들어오는 곳에는 들어가지 말아야지 다짐하다 잠이 든다.


므앙응오이의 중심거리


므앙응오이 강변


다음날 하루에 한 번 있다는 배를 놓칠세라 일찌감치 짐을 싼다. 이틀 만에 나간다니 주인 아줌마가 서운해한다. 하긴 나처럼 삼시 세때 꼬박 게스트하우스 식당에서 먹는 착한 손님이 어디 있단 말이냐^^ 저기 전기만 들어와도.. 할 수도 없어 그냥 웃는다. 아침을 먹고 계산서를 받아든다. 이곳은 보트를 타는 것 외에 따로 도망갈 방법이 없어서인지 방값이며 음식값을 나갈 때 한꺼번에 계산한다. 이틀자고, 다섯끼 먹고, 커피도 마시고, 쉐이크도 마시고 -맥주는 안 마셨다. 화장실 갈 일이 꿈만 같아서- 총 합계가 89,000낍이다. 뭐 우리나라 돈으로 하면 8,900원 되겠다. 광화문에서 스파게티 한 그릇 먹을 돈으로 이틀을 자고 먹고 마신 셈이니 고맙다고 해야 하나.. 여튼 배를 타고 나오는 맘이 날아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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