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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사완> 항아리 평원을 가다.

 

미얀마에서 태국에 도착한 날이 1월 30일 월요일. 태국으로 넘어오면서 그 다음날인 31일에 중국 비자를 신청하고 비자를 받는 대로 라오스로 넘어가 한 열흘 라오스 북부를 둘러본 뒤 중국으로 들어가면 대략 2월 중순일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기간이라면 대충 춘절도 끝나 있을 거고 혹 2월 말에 한국에 들어가더라도 한 보름쯤 운남을 둘러 볼 시간적 여유도 있을 거란 계산도 함께 해 둔 터였다. 하지만 중국의 춘절 기간엔 대사관도 쉰다는 생각은 왜 진작 못했던 것인지 그 사실을 비자 받으러 방콕주재 중국대사관까지 가서야 깨닫는다. 중국대사관은 2월 6일에나 문을 연단다. 결국 방콕에서 6일이나 할 일 없이 빈둥거리고 라오스로 넘어와 다시 비자를 받기까지 4일을 빈둥거리니 비엔티안을 떠나는 날이 이미 2월 10일이다. 라오스 북부를 열흘 만에 둘러본대도 중국에 들어가는 날은 20일 전후, 대충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간다 해도 2월 말까지 징홍-다리-리장-중덴의 운남 여정은 도무지 견적이 나오질 않는다.


그래도 뭐 어찌 되겠지.. 하며 중국 비자를 받아들자마자 떠날 준비를 한다. 일반적으로 라오스 북부는 방비엥을 지나 루앙프라방을 둘러보고 훼이싸이를 거쳐 태국으로 넘어가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루트는 삼년 전에 한 번 가본 적이 있어 이번에는 동북부로 방향을 잡는다. 폰사완.. 항아리 평원으로 유명한 곳이다. 항아리 평원이란 폰사완을 중심으로 몇 군데 지역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돌항아리들이 널려 있어 붙여진 이름인데 큰 것은 6톤이나 되는 것도 있다고 한다. 약 2000년 전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은 하고 있지만 그 용도나 쓰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모양인데 곡식을 저장하는 것이라는 설에서 술을 빚었던 것이라설, 제의적인 목적에서 사용되었으리라는 설까지 다양한 설이 존재하지만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어 자칭(?) 세계 8대 불가사의라고 부르기도 하는 곳이다.  


이런 돌항아리들이 널려 있다.


비엔티안에서 폰사완까지는 버스로 약 10시간 가량 걸리는데 이상하게도 밤버스가 없어 아침 일찍 버스를 탄다. 대충 서너 시간을 지나니 밤버스가 없는 이유를 짐작하게 되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한계령 올라가는 듯한 길을 거의 예닐곱 시간을 간다. 뭐 계속 올라가는 건 아니고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는데 처음 두어 시간은 경치에 정신이 팔려 아무 생각없이 가다가 서너 시간이 지나니 녹초가 된다. 말은 VIP버스지만 90년대 우리나라에서 굴러 다녔을 좌석버스는 이미 그 수명은 지난 듯 하다. 결국 폰사완을 30km 남겨두고 버스가 선다. 라오스 남부에서 한 번, 미얀마에서 한 번, 이번이 세 번째다. 누군가의 여행 무용담 중에 라오스에서 차가 퍼져 외딴 마을에서 하루밤 묵었는데 경치가 끝내줬다나 어쨌다나 하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나지만 글쎄 외딴 마을에서 밤을 새우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래도 별 수 있나.. 뭐 차 없으면 도리 없지.. 약간 불안한 맘으로 기다리는데 이삼십분이 흐르고 누군가, 어디선가 기름을 사와서 채워 넣으니 버스가 다시 출발한다. 아니, 무슨 버스가 기름도 안 넣고 다니냔 말이다. 그것도 하루 이틀 운행하는 렌트카도 아니고 하루 한번 정기적으로 운행하는 로컬 버스가 이래도 되는지 어이가 없다.


여튼 아침 7시 30분에 떠난 버스가 폰사완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5시 10분. 론리 지도에는 터미널이 바로 시내 중심가에 있었는데 그새 이전을 했는지 게스트하우스까지는 4km가 넘는다며 무료 픽업이니 제각기 자기 게스트하우스로 가자는 호객꾼들이 즐비하다. 픽업이 무료라지만 그게 진짜로 무료겠는가, 픽업타고 가면 3불짜리 방이 4불짜리로 변신한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안다. 결국 1불내고 툭툭 타고가 3불짜리 방에 묵나, 무료 픽업타고 가 3불짜리 방 4불에 묵나 그게 그거니 좀 더 편한 쪽을 택하는 거다. 버텨봐야 득 될 것도 없어 가격이 적당한 한 곳을 찍어 따라 나선다. 뭐 방은 싼 방이 으레 그렇듯 상태는 썩 좋지 않지만 어쩌겠는가.. 세상에 싸고 좋은 방이란 없는 법이다^^. 내친 김에 다음날 항아리 평원 투어까지 신청해놓고 나니 주위가 어느새 어두워져 있다. 



폰사완 가는길. 굽이굽이 고개길이다.


폰사완은 라오스의 씨엥쾅이라는 지역에 있는 곳인데 이 씨엥쾅이란 지역은 베트남전 당시 미국의 집중 폭격을 받았던 곳이라고 한다. 언젠가 보았던 TV다큐멘터리-제목도 잊혀지지 않는다. <폭탄의 땅 라오스>였다네-에서 본 바에 의하면 이곳이 그 유명한 호치민 레일의 중심지였다는데 미군이 이곳을 차단하기 무려 600만 톤 이상의 폭탄을 쏟아 부었다고 한다. 지형이 산인데다 우기가 되면 거의 정글로 변하는 이곳을 공격하는 데는 폭격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는데 그 당시 거의 10여 년간 폭격이 지속되었다니 그 참혹함이야 도무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그 참혹함은 당시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후유증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데 그 많은 포탄 중에 수많은 불발탄들이 아직도 곳곳에 묻혀 있어 땅을 개간할 수도, 건물을 지을 수도 없다고 한다. 그러니 개발은 늦어지고 라오스에서도 가장 가난한 지역에 속하는 이곳 주민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불발탄을 파내거나 폭탄의 잔해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게 되는데 일 년에도 수십 명씩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불발탄이 터져 팔다리가 잘리거나, 실명이 되거나 심하면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그나마 폰사완 시내는 관광지라 특별히 다른 곳과의 차이를 느끼지는 못한다. 그러나 폰사완 주변에 있다는 항아리 평원은 현재 갈 수 있는 곳만 사이트1, 사이트2, 사이트3의 세 개의 지역으로 구분해 놓았는데 갈 수 있다는 것은 그 지역이 불발탄이며 지뢰를 제거해 안전한 지역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가이드북 등에서는 그 지역 내에서도 일정한 거리 안에서만 움직일 것을 경고해 두고 있다. 아닌게 아니라 항아리 평원 내에도 곳곳에 폭탄이 터진 자리가 아직 메워지지 않은 채 그 흔적을 드러내고 있다. 그 중 규모가 가장 크다는 사이트1을 먼저 방문한다. 모두 334개의 정체모를 돌항아리가 널려 있다는 곳이다. 큰 것이 6톤이라는 얘기지 보통의 것들을 까치발을 하고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정도의 크기다. 어쨌든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 같지는 않고 인공적인 구조물임은 분명해 보이는데 그 목적이 무엇이었던 간에 이거 만들고, 나르느라고 힘없는 사람 꽤나 죽어나갔을 거란 생각이 든다. 사실 그런 생각은 왕창 큰 구조물들-그것이 사원이거나 파고다거나 아님 왕궁이거나 간에-을  대하면 늘 드는 걸 보면 아마 전생에 이거 만드는 사람이었지, 만들라고 시킨 사람은 아니었던 듯 싶다^^.


폭탄이 떨어진 자리에 이제 잡초만 무성하다.


원래는 항아리에 뚜껑도 있었던 모양이다.


이어지는 사이트2와 사이트3는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 사이트2에서 사이트3까지는 산등성이를 따라 약 한 시간 걸으면 갈 수 있다는데  가이드 겸 운전기사 왈 걸어가고 싶은 사람은 걸어가도 좋단다. 20대로 보이는 프랑스 청년 둘이 걸어가겠다고 나선다. 시간은 오전 11경, 잠시 고민하다 이럴 때 잘못 걸으면 일사병으로 쓰러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냥 차에 올라탄다. 이제 자중해야 하는 나이인 것이다^^. 사이트 세 개를 둘러보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4시간 남짓.. 크게 특별한 볼거리는 아닌 것 같다. 다만 세 사이트를 오가면서 보는 주변의 경관은 라오스의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풍경을 보여주는데 풀 한포기없는 붉은 평원이 저 멀리 산 밑까지 이어지는 특이한 모습이다. 그렇다고 사막은 아닌 것이 제법 붉은 황토빛 흙으로 덮여 있는데 왜 풀이 안 자라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사이트2와 3을 잇는 고개길


부서진 항아리 사이로 나무가 자란다.


항아리 평원 투어를 마치고 나니 딱히 할일이 없어 그냥 짐을 싼다. 원래 다음 행선지는 폰사완에서 동북쪽으로 더 들어가야 하는 생각했던 비엥싸이라는 곳이었다. 뭐 라오스에서 떠오르는 새로운 휴양지라나 하는 곳인데 이곳을 가려면 네다섯 시간 버스를 타고 남능이라는 곳까지 가서, 버스를 갈아타고 다시 쌈느아라는 곳까지 네다섯 시간을 간 뒤, 다시 트럭버스를 타고 한 시간가량 들어가야 한다기에 그냥 포기한다. 새로운 휴양지 아니라 뭐래도 이제 하루 열 시간 이상 낮버스 타는 건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들어가기면 하면 되는 것도 아니고 되짚어 나와야 하지 않는가 말이다. 도무지 갈 엄두가 나지 않아 그냥 루앙프라방으로 향한다. 폰사완을 떠나는 날 아침에는 건기임에도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버스터미널에는 아.. 저거 아직도 굴러다니나 싶은 버스가 서 있다. 그 버스란다. 에휴..  그래도 오랜만에 비 오는 걸 보니 운치 있네 해가며 창가에 기대 음악을 들으며 주접을 떠는데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창가에 고여 있던 빗물이 내 자리로 왕창 흘러든다. 인생이 그렇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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