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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신들의 도시에 가다

버스는 새벽 무렵 아테네의 어느 터미널에 도착한다. 이렇게 새벽이나 늦은 시간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건 어지간하면 피하고 싶은데 별 도리가 없는 경우가 더 많다. 이런 시간엔 대부분 대중교통 수단이 없기 때문에 가급적 택시로 숙소까지 이동해야 하는데 가이드북에는 아테네의 택시는 세계적으로도 악명이 높으니 어지간하면 타지 말라고 권하고 있다. 그냥 지하철이 다닐 시간까지 터미널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날이 밝기를 기다린다. 이럴 때면 한 번씩 내가 뭐 하러 이런 짓을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뭐하러 사서 고생이냐 말이냐. 젊은 나이도 아닌데^^ 그러다 다시 주섬주섬 짐을 챙겨 길을 나선다. 날이 얼핏 밝아지는 것이 느껴진다. 지하철을 타고 여행자 거리가 있다는 신따그마 광장을 찾아간다.

 

이곳에서는 어떤 여행자가 추천해준 한국인 민박에 묵을 생각이었다. 가격이 하루 20유로로 싸진 않지만 부엌 사용도 가능하고 인터넷도 무료인데다 무엇보다 편안한 분위기가 좋다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한 곳이었다. 하지만 이 친구 왈, 한국인 민박이 으레 그렇듯 건물의 한층 정도를 세내어 운영하는 곳이라 간판도 없고 위치를 설명하기 어려우니 근처에 있는 한국 식당에서 물어 보라며 식당의 이름과 위치를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동서남북의 가늠도 안되는 새벽 거리를 이리저리 헤매 식당을 찾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어라.. 식당문이 닫혀 있다. 이른 시간인가 싶어 자세히 살펴보니 오늘은 일요일, 식당이 쉬는 날인 것이다. 앞에 전화번호가 하나 적혀 있긴 한데 아테네의 전화기는 죄다 카드식이라 카드 하나 구입하는데도 사오천원이 든다. 전화 한 통 하자고 이 돈을 쓰고 싶지는 않다. 간판은 없더라도 조그만 표시는 있겠지 싶어 근처를 두어바퀴 둘러보아도 찾을 수가 없다.

 

한시간 가량을 헤매다 포기하고 그냥 유스호스텔로 방향을 바꾼다. 그런데 유스호스텔 가격이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것과는 차이가 많이 난다. 오히려 민박집 값이 더 싸다. 유스호스텔은 체크인 시간까지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 다시 짐을 맡겨 놓고 다시 한 바퀴를 둘러보다 우연히 한국인 여행자를 만난다. 다행히 그 친구들이 그 숙소에 묵고 있단다. 아직 내 운이 다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차에서 내린지 네시간 만에 한국인 민박집에 짐을 푼다. 한숨자고 일어나 시내를 어슬렁거린다. 역시 물가가 만만치 않다. 빅맥세트가 5.9유료, 거의 8천원 돈이다. 그래도 서유럽 돌고 온 친구들은 이곳이 싸다고 생각한다니 날씨도 날씨지만 유럽 올라가는 건 재고해봐야 봐야겠다는 생각이 새삼 든다.

 

첫날은 그저 시내만 어슬렁거리다 박물관만 잠시 다녀온다. 어치피 아테네의 유적들을 보는 데는 한나절이 채 걸리지 않는다니 그냥 내일 하루 몰아서 다녀볼 생각이다. 하지만 박물관은 규머나 크기가 만만치 안다. 아쉬운 게 있다면 거의 모든 유물이 부조거나 조각이라는 점이긴 하지만 돌아보는데 지루하지는 않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근처 여행사에서 산토리니와 미코노스로 가는 배편을 미리 예약해 둔다. 다행히 성수기가 지나서인지 배표는 쉽게 구해진다. 숙소에서 몇몇 한국 친구들을 만난다. 이때까지 보던 여행자들과 다른 점이라면 여행 가방이 배낭이 아니라 캐리어라는 점일텐데 이곳을 여행하는 친구들은 주로 유럽에서 내려 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저녁에 한 친구의 생일을 핑계로 술자리가 시작된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여럿이 어울려 술을 마셔본 것도 한참이나 전의 일인 것 같다.


국립박물관에 소장된 조각 아프로디테를 유혹하는 헤파이토스라나 뭐라나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음날 아크로폴리스를 찾아간다. 아크로폴리스는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작은 언덕 위에 있다. 그리스 시대 시민-이라야 귀족 남자들만 지칭하는 말이긴 하지만-들의 광장이었다는 이곳은 지금은 여전히 보수 공사가 한창인데다 떼거지로 몰려드는 단체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그나마 신전의 형태라도 갖춘 건 원형극장과 파르테논 신전 정도다. 잠시 둘러보다 고대 아고라터로 내려 온다. 아크로폴리스 아래에 자리한 이곳은 예전의 시장터로 교역과 사교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뭐 소크라테스도 이곳에서 강연을 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돌더미로 된 잔해들만 남아 있다. 이런 돌더미들로 그때는 상상하기엔 내 상상력은 너무 부족하고 괜히 그래픽으로 유적지가 눈앞에서 복원되던 역사스페셜만 아쉬워진다. 


아크로폴리스의 디오니소스극장, 원형극장이다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고대아고라 터, 멀리 아크로폴리스가 보인다.

 

오후에는 수니온 곶을 찾아간다. 포세이돈 신전이 있었던 바닷가라는데 신전에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단 수니온 곶 근처 바다가 볼만하다고 해서 나선 참이다. 포세이돈신전 역시 남아있는 기둥 몇 개가 전부다. 게다가 바닷가 언덕에 세워진 이 신전엔 바람이 심하게 분다. 일몰도 볼만하다고는 하지만 혼자서 일몰시간까지 기다리기에 바람은 너무 심하고 시간은 너무 많이 남아 있다. 두어시간 가량 머물다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온다. 돌아오는 버스 창밖으로 빨갛게 해가 지는 것이 보인다. 숙소로 돌아오니 어제의 한국 친구들이 백숙을 해 먹었다며 에이.. 좀만 빨리 오시지.. 한다. 밥을 해서 먹으려고 하니 백숙 국물이 좀 남았다며 같이 먹으란다. 제법 건더기도 있다^^ . 그리스 섬들은 물가가 많이 비싸다기에 저녁을 먹고 슈퍼에 들러 쌀이랑 몇가지 물건들을 산다. 또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게 아닌가 싶긴 하지만 다시 무거워진 가방을 대충 싸두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든다.


포세이돈 신전


포세이돈 신전에서 바라본 수니온 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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