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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리니> 못 갈뻔하다

눈을 떠보니 6시가 훌쩍 지나 있다. 7시 밴데 아무래도 시간에 맞춰 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정신없이 짐을 싸서 민박집을 빠져 나온다, 택시를 탈까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막힐 것 같다. 전절역으로 달린다. 아.. 이 배낭을 메고 달리다니.. 바쁘니까 별 게 다 가능해진다^^. 다행히 전철은 금방 와 준다. 남아있는 역수는 7개쯤 된다. 2를 곱해본다. 10분 정도 남는다. 하지만 지하철 역 사이가 2분이라는 건 서울 지하철 얘기지 아테네 지하철 얘기는 아니다. 그래도 지하철 공사에 매뉴얼이라는 게 있는지 이곳 지하철도 대략 2분 정도마다 역이 있다. 그러면 난관은 하나가 남는다. 역에서 항구 사이의 거리... 우리 나라를 생각해 보면 남아 있는 10분은 배를 타기엔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시간이다. 아.. 늦어서 못 타도 환불이 될라나.. 고민하며 지하철역을 빠져 나간다. 다행히 길하나 건너편에 내가 타야 할 배가 보인다. 역시 죽으라는 법은 없군,., 무단 횡단까지 감행해 배에 올라타니 배가 떠난다.

 

어차피 가장 싼 배표는 좌석이 있는 게 아니라 그냥 갑판 아무데서나 앉아서 가야 하니 그나마 바다가 잘 보이면서 바람을 막아주는 곧이 가장 좋은 자리인 셈이다. 배의 갑판은 이미 관광객들로 만원이다. 그나마 혼자라서 좋은 점은 이런 경우 슬며시 끼어 앉기 좋다는 건데 다행히 구석에 끼어들만한 공간이 보인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비로소 주변 경치가 눈에 들어온다. 주변은 온통 검푸른 바다다. 이곳이 지중해란 말이지.. 배는 그리 빠르지 않은 속도를 항구를 벗어나고 있다. 지금 가고 있는 산토리니까지는 대략 6시간이 걸린단다. 산토리니까지는 밤배를 많이 이용한다는데-사실 밤배를 타면 시간도 절약되는데다 하루밤 숙박비도 아낄 수 있다- 이제 밤에 이동하면 어차피 한나절은 쉬어야 하니 그냥 바다나 보고 가자하는 생각이다. 배는 근처에 섬들을 하나씩 들러가며 천천히 산토리니를 향해 나간다.


 산토리니 가는 페리


페리에서 본 산토리니

 

멀리서 산토리니가 보이기 시작한다. 산토리니는 화산섬이다. 그래서인지 멀리서 보면 -뭐,가까이서 봐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 불모의 섬이다. 그나마 온통 흰색으로 칠해진 건물들만 눈이 내린 것 같이 하얀 경계를 긋고 있다. 배가 섬에 닿자 배에서 내린 관광객들과 숙소에서 나온 삐끼들로 한바탕 북새통이 일어난다. 선착장에서 마을까지는 깍아지른 듯한 절벽도로를 타고 10분 이상을 올라가야 하니 대략 이곳에서 픽업 나온 숙소 주인과 합의를 봐야 한다. 사진으로 보는 방이라는 게 으레 그렇듯 뭐 방은 그럭저럭 좋아 보이는데다 가격도 성수기를 지나서인지 생각보다는 잘 깍이는데 실제 모습이나 위치를 알 수 없으니 그저 운에 맡기고 차에 올라탄다. 도착한 숙소의 시설은 생각보다 훌륭하다. 방안에 취사시설까지 갖춰져 있는데다 베란다에선 멀리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방값을 치르고 나서 생각해본다. 아무래도 다운타운에서는 좀 떨어져 있는 거 같은데.. 음 여기가 어디지?

 

산토리니의 중심 마을은 피라 마을이다. 그 달력에서 본 하얀 골목길들이 바닷가를 향해 쭈욱 나 있는 바로 거기 말이다. 알고보니 숙소는 그 마을에서 2킬로 남짓 떨어져 있다. 대략 이삼십분을 걸어야 하는 거리다. 그럼 그렇지 어쩐지 싸고 좋더라니.. 그래도 밤늦게만 안다니면 그냥 걸어다닐 만한 거리니 하루이틀 머물기에 그리 나쁠 건 없다 싶다. 가지고 온 쌀로 밥을 해 먹고 피라 마을쪽으로 슬슬 걸어가 본다. 어느덧 해가 질 무렵이다. 산토리니의 일몰포인트는 섬북쪽에 있는 이아마을이지만 오늘은 그냥 피라에서 일몰을 본다. 해는 주변의 있는 흰 건물들을 붉게 물들이며 바다 너머로 사라진다. 바다를 따라 난 하얀 집들에 온통 불이 켜진다. 사실 이 집들은 거의 호텔이거나 음식점 아니면 가게들이다. 이집들을 사이로 둥글고 파란 지붕의 그리스 교회들이 보인다. 이거였나.. 내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게.. 뭐 아무려면 어떠랴.. 어쨌든 여기는 산토리니인 것이다.


피라마을의 전경


피라마을의 골목길

 

이곳 산토리니에도 유적이 있단다. 가이드북에는 가는 방법이 나와 있다. 가볼까 망설이다 그만 둔다. 내가 무슨 고고학자도 아니고 여기까지 와서 유적은 뭔 유적.. 그냥 해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먼저 가본 곳은 일명 블랙비치라 불리는 까마리 해변이다. 이 비치는 모래가 아니라 검은 화산재로 이루어져 붙은 이름이란다. 해변 가득 온통 비치파라솔이다. 수영을 하는 사람들보다는 그저 햇빛을 즐기는 사람들이 더 많다. 이미 여러번 말했지만 바다라는 게 물놀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겐, 더구나 일행이 없는 경우엔 더더욱 할 일이 없는 곳이다. 바다에 잠시 앉아 잇다 백사장 아니 흑사장을 끝에서 끝까지 걷고 나니 아.. 또 할일이 없다. 다시 버스를 타고 레드비치로 옮긴다. 이곳은 무슨 연유인지 붉은 흙으로 이루어진 비치다. 여기서도 똑같은 짓을 해본다. 바다에 앉았다가 끝에서 끝까지 걸어주고.. 그나마 이곳은 뒤가 절벽으로 이루어져 그늘 한 점이 없다. 에구.. 돌아가자. 내 다시는 일행없이 바닷가에 오나봐라 하는 쓸데없는 다짐을 또 해 본다.


블랙비치


레드비치

 

저녁에는 이아마을로 향한다. 산토리니 최고의 일몰 지점이란다. 이아마을로 향하는 버스는 이미 발디딜틈도 없다. 매일 지는 해보려고 이게 뭐 하는 짓이람. 쯧쯧.. 해봐야 나도 똑같은 인간이다. 마을 끝 지점에 풍차있는 곳 까지 가랬지? 뭐 여기에 풍차가 있다고? 가보니 그 풍차란 건 어느 호텔의 인테리어용이다. 이아마을도 피라마을과 비슷하다. 온통 하얀 건물들 사이로 숙소와 음식점, 가게들이 잔뜩 모여 있다. 사람들 사이에 앉아 해지기를 기다린다. 오늘은 날씨가 좋지 않다. 수평너머 부근엔 이미 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 결국 해는 조금 붉어지는가 싶더니 구름 뒤로 사라져 버린다. 해가 지자마자 사람들이 하나들 일어서기 시작한다. 다시 만원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온다.


일몰을 기다리는 사람들


이아마을의 일몰

 

숙소에서 늦은 저녁을 해 먹는다. 이곳 산토리니에선 밥을 사먹은 기억이 없다. 아침저녁으론 밥을 해먹었고 나갈 땐 샌드위치를 도시락 삼아 들고 나갔으니 사먹을 기회가 없었던 것인데.. 여기까지 와서 웬 궁상인가 싶다가도 음식점 기격표를 보면 잘했다 싶은 생각도 든다. 어차피 미코노스에서는 밥해먹기가 쉽지 않다니 어디 한국인 일행이나 만나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우아라도 떨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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