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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다이-구찌> 또 투어를 가다

호치민의 대표적인 투어 상품은 <카오다이-구찌> 일일투어와 <메콩델타> 투어인데 메콩델타는 캄보디아를 넘어가는 일정과 연계하기로 하고 혼자서 일일투어를 다녀온다. 일행이 둘다 별로 내켜하지 않아 그저 구찌만 반나절 갔다오려다가 메신져에서 만난 일산주민의 “되게 웃겨” 한마디에 맘을 바꿔 카오다이까지 들러보기로 한다. 카오다이 투어는 베트남산 반외세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종교인 카오다이교의 사원을 둘러보고 매일 거행되는 정오 예배를 관람하는 투어인데 투어를 가다가다 못해 이제 남의 종교 의식까지 구경을 가는가 싶지만 시간도 남아도는데다, 1불만 더 내면 되는 것을, 게다가 되게 웃기기까지 한다는데 굳이 안갈 이유도 없지 않은가 말이다.


버스는 정확히 11시 40분에 카오다이 사원에 내려준다. 별다른 문화재라거나 눈에 띄는 사원 하나 제대로 없는 베트남에서 오래 되어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제법 외관을 갖춘 건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니 실내는 더 으리 번쩍하다. 용이 휘감고 있는 여러 개의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사원에는 이들의 상징인 카오다이 즉 하늘의 눈이 정면에 자리를 잡고 있다. 유교, 불교, 도교와 기독교가 혼합된 교리를 가진 종교답게 하늘의 눈 아래에 공자님, 부처님, 에수님 그리고 노자 내지 장자님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사이좋게 부조되어 있는데 총 8명인 그 부조들의 나머지 4명을 두고 같은 버스에 탔던 한국인 일행 2명과 추측을 해보았으나 별로 아는 사람도, 그나마 아는 이름의 얼굴도 가물가물해 결국 훌륭한 사람이겠지 뭐 하고 포기하고 만다^^


정오 예배가 시작되자 흰옷을 입은 카오다이교 신도들이 열을 지어 사원 안으로 들어오고 정확히 간격을 맞추어 자리에 앉는다. 이 모습은 이층에 마련된 관광객 전용으로 보이는 난간에서 볼 수 있는데 그 움직임이 무슨 매스게임이라도 하듯이 일사불란하다. 가이드북에 따르면 이들은 선한 본심과 평등을 추구하며 이상 사회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되어 있는데 교리는 얼마나 훌륭한가 말이다. 종교란 그 교리대로 산다면 혹은 살기 위해 노력한다면 누구를 믿든지 간에 나쁠 건 없다는 생각은 드는데 외형적인 질서가 주는 일사불란함 때문인지 무슨 사이비 종교 행사나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무슨 입장료를 받는 것도 아니고 어쩌자고 자신들의 종교적 의식을 구경거리로 만드는지 알 수가 없다. 글쎄, 이것도 넓은 의미의 선교 활동일지도 모를 일이다^^


카오다이교 사원


카오다이교 정오 예배 모습


예배가 채 끝나기도 전에 버스는 사람들을 태우고 구찌로 향한다. 정확하게는 구찌지역 주변에 있다는 여러 개의 지하터널 중 하나를 보러 가는 것이다. 구찌터널은 프랑스 식민통치 시대에 지방게릴라들이 파기 시작한 것을 베트남전 당시에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 보수하고 확장하게 되었다는데 총연장 250km에 지하 30m 지점까지 마치 개미굴같은 땅굴이 만들어져 게릴라전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물론 미국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아 이 지역 주변에 하루 80톤의 폭탄을 쏟아붓는가 하면 그걸로도 모자라 고엽제 7,200만 리터를 살포해 지금까지 도 그 후유증이 심각하다고 한다.


그러나 터널이란 지하에 있는데다가 워낙 넓은 지역에 분포되어 있어 모형단면으로나마 짐작할 수 있을 뿐 막상 구찌 터널에서는 그 입구 몇 개와 실물 크기의 인형을 제작해 재연해놓은-우리 나라의 민속박물관을 떠올리면 된다- 몇 개의 모형이 있을 뿐이다. 뭐 한 20미터 가량 터널 속을 들어갔다 나오는 체험코스도 있긴 하지만 이도 관광객을 위해 실제보다는 약간 넓게 되어 있다고 하고, 부분부분 조명이 설치되어 있어 그저 투어의 이벤트 정도로 느껴진다. 물론 구찌 자체가 대단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반나절 구찌투어라는 상품이 그렇다는 말이다. 터널을 빠져나오면 베트남전 당시 베트콩들이 먹었다는 파피오카라는 고구마 비슷한 음식을 시식하게 되는데 육이오때 전쟁기념관에서 열리는 주먹밥먹기 행사를 연상시키는 데가 있다. 차이가 있다면 시식 이후 판매가 있다는 정도일 것이다. 뭐 물론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코스의 마지막은 실탄 사격을 하는 것이다. 물론 돈을 내고 신청한 사람에 한해서인데 다행히 우리 투어에서는 신청한 사람이 없어 그 꼴은 안 봐도 되긴 했지만 투어 내내 들리는 총소리는 묘한 아이러니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땅굴입구,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넓이가 아니다^^


 땅굴체험, 길진 않지만 폐쇄공포증이 있는 분들은 삼가하시는 게 좋겠다. 아울러 덩치 큰 분들도 가급적 자제하시기를..


시식용 파피오카. 고구마랑 감자를 섞어놓은 맛이 난다.


여느 투어와는 이번 가이드는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다. 당연히 베트남전 즈음에는 열혈 청년의 나이이었을 그는 나만 그렇게 보였는지 몰라도 뭔가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듯 보인다. 한때 자신들의 생존 기지였을 땅에서 그 적들의 나라에서 온 관광객을 상대로 가이드를 하는 기분이라니.. 그는 투어 내내 알 수 없는 미소를 흘리더니 마지막으로 한마디 한다. 베트남에 평화가 온 것은 그저 30년 정도의 세월일 뿐이라고, 전쟁 기간 중에 사람들은 고통스러웠으며, 아직도 그 고통은 계속되고 있지만 지금 찾아온 이 평화가 지속되기를 바란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며칠 들렀다 가는 관광객의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이 나라 어디에나 전쟁의 상흔은 마을마다, 거리미다 그리고 사람들의 가슴마다 남아 있을 것이다. 그 상처의 깊이를 내가 짐작이나 하겠는가 그저 베트남에도, 한국에도 그리고 전세계 어디에도 전쟁이라는 광기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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