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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 트레킹2>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된다

 

트레킹 4일(따또빠니-가사)


이날은 대충 7시간 정도 걸으면 되는 여정이긴 하지만 중간에 상당히 가파른 길을 한시간 이상 올라야 하는 난코스가 도사리고 있다. 아니게 아니라 첫날과는 달리 제법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첫날은 시간이 좀 많이 걸려서 그렇지 경사는 거의 없다시피 했는데 이날은 긴 오르막과 짧은 내리막이 계속된다. 그냥 이삼일 기다리더라도 그냥 비행기를 타고 올라갔어야 하나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뭐 후회해본들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다 안가겠다는 일행을 꼬셔서 올라온 죄로 싫은 내색도 못하고 그저 묵묵히 걷는다. 중간 마을인 룩세에서 점심을 먹는다. 산을 조금씩 오를수록 음식값이 조금씩 비싸진다. 볶음밥이며 국수 따위의 가장 간단한 음식도 이천원 돈이고 맥주는 한병에 거의 삼천원 돈이다. 물값도 만만치 않아서 한병에 거의 천원정도 하는데 그것도 하루에 두세병 정도 마시면 꽤 부담스런 금액이 된다. 그나마 가사부터는 안나푸르나 보존계획이라는 곳에서 정수한 물을 세이프티 워터라는 이름으로 약 500원 정도에 팔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여튼 비싸도 먹을 건 먹어야 하는 법이니 맥주 한 병을 나눠 마시고 다시 길을 떠난다. 점심 이후로 슬슬 오르막의 난이도가 높아지더니 결국 마의 오르막이 나타난다. 어느 마을부터인가 끝없이 계단이 이어지더니 계곡 옆으로 난 길이 어느덧 사라지고 높디높은 언덕이 버티고 있다. 별 수 없이 그저 꾸준히 걷는다. 땀은 비오듯 쏟아지고 숨소리가 핵핵거리다 못해 쌕쌕거리는 지경이 되어서야 오르막은 끝이 난다. 그래도 한국의 산처럼 끊임없이 올라가야 하는 건 아니라서 생각보다는 조금 수월한 것 같다. 다시 평지를 두어 시간 걸으니 이날 숙소로 점찍어 둔 가사가 나타난다. 전날보다 조금 이른 5시 경에 숙소에 도착한다. 그나마 좀솜-묵디나뜨 구간은 전기도 들어오고 숙소도 제법 번듯한 편이라 상대적으로 트레킹하기에는 환경이 괜찮은 편이다. 이른 저녁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가사 가는 길, 저 멀리 가야할 길이 보인다.


차가 다니지 않는 갈은 사람이 음식물을 지고 나른다.


  

트레킹 5일(가사-투쿠체)


오늘도 변함없는 9시간의 여정이다-현지인들에게 물어보면 천천히 가도 6시간에 간다는데 우리에겐 가능한 일이 아니지 싶다- 중간 마을인 레떼까지는 변함없는 오르막길인데다 어느 여름에 무너져 내린 길인지 길은 온통 공사 중이다. 뭐 공사라야 포크레인 이런 게 동원되는 게 아니라 쇠꼬챙이 하나., 새끼줄 단 삽 하나가 고작이라 어느 천년에 공사를 마칠지 알 수 없으나 여튼 남녀를 막론하고 십수명씩 모여 공사를 계속하고 있다. 가사를 지나고 나서부터는 멀리 설산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기후도 조금씩 쌀쌀해지기 시작해 어제까지 입던 반팔 대신 긴팔을 입고 걸어도 그다지 덥지 않다. 고도도 2500 정도가 된다. 아직 숨이 찰 정도로 높은 건 아니지만 슬슬 풍광이 달라지니 트레킹에도 새로운 재미가 생기기 시작한다. 레떼에 도착해 점심을 먹고 나니 이제 평지만 남았다 싶은 게 한숨이 돌려진다. 중간에 들린 마을에서 결혼식이라도 올리는지 춤과 음악이 한창이다. 한참을 구경하다 공짜로 짜이도 한잔 얻어 마시고 나서 길을 재촉한다. 계곡은 상류로 올라갈수록 수량이 적어져 마을을 향해 나 있는 굽이길보다 강바닥으로 가는 게 시간이 단축되는데 결국 조금 빨리 가려다 한시간 이상을 헤매는 삽질을 한다. 다리를 건너야 하는 상황에서 다리는 저 언덕위에 있고 우리는 강바닥을 걷고 있다가 그냥 강을 넘어보기로 한다. 그리 깊지 않은 강을 신발까지 벗고 건너가 보니 건너편 가에 다시 강이 흐르는 게 보인다. 이번엔 물살이 장난이 아니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봐도 방법이 없다. 결국 다시 신발을 벗고 물길을 건너 제자리로 되돌아와 언덕 위로 올라가 다리를 건넌다. 이 삽질을 하느라 한 시간 헤매느라 다리를 건너고 나니 벌써 4시가 훌쩍 지나 있다. 다리를 건너니 또 풍광이 확 달라진다. 아래에서부터 계속 이어지던 계곡은 이제 거의 시내물이 되어 흐르고 메말라 버린 강바닥 옆으로는 나무 하나 없는 산들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멀리 목적지인 투쿠체 마을이 보이긴 하는데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바람도 만만치 않다. 결국 황량한 강바닥을 걸어 걸어 6시가 다 되어서야 목적지인 투쿠체에 도착한다.  


중간 마을인 레떼, 마을 너머로 설산이 보인다.


저 다리가 문제의 다리다. 


트레킹 6일(투쿠체-좀솜)


투쿠체에서 좀솜까지 대략 4시간.. 하지만 다음 목적지인 묵디나트까지 가기엔 시간이 부족하고 오후에는 내려가는 비행기편도 알아봐야 하기 때문에 일찍 도착해 그냥 좀솜에서 쉬기로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숙소를 나선다. 좀솜까지는 거의 평지로 산사이로 난 길을 따라 그냥 걷기만 하는 곳이다. 이번에는 현지인들의 움직임을 면밀히 살피면서 강바닥으로 걷는다. 현지인들이 안 간다면 안가는 게 좋다. 그 경우 거의 100% 건널 수 없는 강이 도사리고 있게 마련이다. 길은 편안한데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다행히 뒤에서 앞으로 불기에 망정이지 반대로 불었다면 한 발자국 걷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간단할 거라 생각했던 길에서 사진작가 친구의 발이 말썽을 부린다. 이삼일 전부터 물집이 잡혀 조금씩 절기는 했지만 오늘은 특히 심한지 거의 걸음 걷는 것이 고역인 듯 보인다. 나야 이미 두어 번 물집이 잡히고 터져서 이젠 어지간한 길에서는 견딜 만 한데 이 친구 원래 많이 걸으면 발상태가 좋지 않다고 한다. 게다가 좀솜에서 비행장 근처에서 숙소를 잡자는 걸 비행장 근처가 아닌 좀솜 마을이 아주 예뻤다는 소풍의 여행기가 생각나 발 아픈 친구를 끌고 좀솜 마을에서 숙소를 잡자며 끌고 올라간다. 하지만 좀솜 마을의 숙소 상태는 보던 중 최악이어서 다시 비행장 근처로 돌아온다. 거의 절다시피 숙소에 도착하는 그 친구에게 미안한 맘뿐이다. 그나마 좀솜은 비행장이 있는 동네의 숙소 상태가 훨씬 좋다. 점심을 먹고 사흘 뒤에 내려가는 비행기를 예약하고 난 뒤 푹 쉬어준다. 이번에는 양심상 도저히 같이 올라가자고 꼬실 수가 없어 혼자 묵디나뜨까지 다녀올테니 여기서 기다리던지 아니면 결국 포카라로 먼저 내려가라고 말한다. 근데 이 친구 묵디나뜨까지 같이 가겠단다. 왜 맘이 바뀌었냐고 물어보니 이때까지 경치다운 경치를 하나도 못봐서 억울해서라도 가볼 참이란다. 여튼 묵디나뜨까지 같이 동행하기로는 헀는데 저 발 상태로 제대로 걸을 수나 있는 지 걱정이다.


그래도 마을에는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다.


이제 풍광이 완연히 달라진다.



트레킹 7일(좀솜-묵디나트)


상류로 올라올수록 높아진 고도 탓인지 나무 하나 보이지 않는 황량한 풍경이 이어진다. 등산로는 여전히 계곡을 끼고 나 있지만 건기라 그런지 이제 계곡물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현지인들을 따라 강바닥을 그냥 걸어간다. 눈앞에는 나무 하나 없는 거대하나 산들만 첩첩히 버티고 있다. 눈앞에 빤히 보이는 거리를 가는데도 이삼십분은 족히 걸리는 것 같다. 강바닥을 따라 한시간 반을 걷다가 다시 산길을 타고 한시간 쯤을 걸으니 묵디나트 가는 오르막의 시작점인 에클로버티가 나타난다. 묵디나트로 가는 길은 에클로버티에서 바로 가는 길과 그림 같은 마을이라고 명성이 자자한 커크베니로 돌아가는 길 두가지가 있는데 이 돌아가는 길이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소문에 커크베니는 돌아오는 길에 들르기로 하고 바로 묵디나뜨 가는 길로 접어든다. 그런데 분명히 윗길로 올라왔음에도 가다보니 자꾸 커크베니가 가까워진다. 지나가는 현지인도 하나 없어 지도를 살펴보고, 시계에 있는 나침판도 살펴보던 친구가 한숨을 쉰다. 더 윗길로 올라갔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세히 보니 우리가 가던 길 위로 길이 하나 더 나 있으면서 그 길을 따라 전신주가 연결되어 있다. 오던 길을 되돌아가 윗길을 타기엔 너무 많이 와 버린 우리는 아랫길에서 윗길로 난 벼랑을 그냥 오르기로 한다. 어차피 길도 없으니 가장 만만해 보이는 경사로를 택해 한발씩 올라간다, 고도가 높은 곳이라 약간의 오르막에도 숨이 거칠어지는데 경사가 거의 70도에 가까우니 100m 정도의 높이를 오르는데도 턱이 숨에까지 찬다. 결국 윗길까지 올라가선 기진맥진 상태가 된다. 그러나 묵디나뜨까지의 오르막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다시 계속된 오르막을 두시간 남짓 걸으니 멀리 묵디나뜨 가는 마지막 마을인 자르코트와 묵디나뜨가 한눈에 들어온다. 보이긴 눈앞에 보이는데 현지인들에게 물으니 아직 두시간은 더 걸어가야 한단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제부터의 경사지는 그리 높지 않다는 정도일 것이다. 결국 묵디니뜨에 도착해 숙소를 잡으니 그제서야 주변 경관이 눈에 들어온다. 설산이 눈앞에 펼쳐지고 산 아래에서 구름이 하얗게 피어오르는 것이 장관인 풍경을 연출한다. 그래 올라오길 잘 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든다. 해가 지는 마을 한 바퀴 돌고 별이 뜰 때까지 숙소 난간에 앉아 멀리 설산을 바라본다. 설산은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제 빛을 발하고 있다.


묵디나뜨 가는 길


묵다나뜨의 아침


트레킹 8일(묵디나트-좀솜)


이제 내려가는 일만 남겨두고 있으니 마음이 편안하다. 게다가 좀솜가는 길은 어제 올라온 길이니 길도 알겠다, 대략 내리막이겠다 걱정할 일이 전혀 없는 듯 하다. 새벽 일찍 일어나 묵디나뜨 사원을 둘러보고 일찌감치 길을 나선다. 그리 먼길은 아니지만 빨리 내려가 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지금이 5월이라 그런지 황량한 산들에 비해 근처 마을은 사과나무를 비롯해 각종 밭작물들이 파랗게 자라고 있다. 바쁠 것도 없으니 등산로를 벗어나 근처 마을로 이어지는 오솔길로 들어가 본다. 눈 쌓인 설산을 배경으로 자라난 푸른 나무들이 한 폭의 그림같다. 사진작가 친구도 연방 셔터를 눌러대며 떠날 줄을 모른다. 한참을 마을에서 놀다가 다시 산을 내려온다. 커크베니에서 점심을 먹는데 창밖으로 부는 바람이 심상치 않다. 어제와 방향이 같다면 이는 분명 맞바람일터 다시 두시간 가까이 강바닥을 걸어야 하는 우리로써는 대략 낭패인 상황이다. 옆에 있는 현지인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커크베니-좀솜 구간은 일년내내 이렇게 발람이 부는데다 아침 10시부터 5시까지는 거의 멈추는 법이 없다고 한다. 그 말대로라면 바람이 잦아지길 기다릴 수도 없어 그냥 길을 나선다. 식당 입구를 나서자마자 만난 바람은 거의 몸을 가누기가 힘들 정도의 강풍이다. 게다가 바람이 일으키는 흙먼지 때문에 숨쉬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그냥 걷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한시간 쯤을 걸으니 거의 죽을 것 같다. 바람이 너무 세니 어디 앉아서 쉬기도 마땅찮아 그냥 걷기만 했더니 평지인데도 어깨며 다리가 안 아픈 데가 없다. 결국 만만한 길이란 건 하나도 없구나 깨달을 즈음에야 간신히 좀솜에 도착한다. 그래도 다행히 묵디나뜨 올라갈 때에는 숙소에 노트북이며 옷가지를 빼놓고 왔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중간 어디쯤에선가 나 못가 하고 주저앉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튼 다시 숙소에 돌아와 씻고 나니 드디어 트레킹이 끝났다는 안도감이 든다. 뭐 내일 비행기가 떠야 완전히 끝나는 것이긴 하지만 설마 두 번씩이나 비행기가 안뜨겠어 하는 마음은 들지만 바람은 저역 늦게까지 그 기세가 잦아들 줄을 모른다. 


내려오는 길에 만난 마을


점심을 먹은 커크베니


트레킹 9일(좀솜-포카라)


좀솜에서 포카라로 가는 비행기는 바람이 그나마 덜 부는 이른 아침에 뜨는 것이 보통이다. 3분 거리에 비행장이 있건만 그래도 7시에 뜨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5시 30분부터 서두른다. 표 파는 아저씨도 6시 10분까지는 나오라고 했는데 막상 공항이라고 가보니 시골 버스대합실만도 못한 크기다. 그래도 할 건 다 하는 데 일단 짐검사 -일일이 가방을 열어 보여야 한다-를 하고 항공권을 좌석표로 바꾸고, 짐도 무게를 재어 따로 부치고-짐 재는 저울이 옛날 목욕탕에서 보던 눈금 저울인데 아저씨에게 허락을 얻고 슬쩍 몸무게도 재어 본다- 마지막으로 남녀가 구분되어 있는 방으로 들어가 몸수색까지 마치면 모든 절차가 끝이 난다. 비행기는 좌석이 달랑 두 줄로 되어 있고 한 20명 쯤 탑승 가능한 경비행기다. 그래도 스튜어디스까지 있어 사탕이며 솜뭉치 등을 나눠준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오른쩍으로 안나푸르나의 설산들이 펼쳐진다. 경비행기라 고도를 많이 높이지는 않는지 설산이 아래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대략 옆에서 보인다. 아래로는 며칠에 걸쳐서 땀나게 걸은 것이 분명한 길들이 희미한 점선처럼 보인다. 이륙한 지 15분 만에 비행기는 포카라 공항에 도착한다. 고작 15분 걸릴 길을 몇날며칠을 걸어올라 갔나 싶은 게 조금 허무한 생각이 든다. 포카라에는 추척추적 비가 내린다. 더울 줄 알았던 날씨도 비 탓인지 제법 선선하다. 숙소도 잡아야하고, 맡겨 놓은 짐도 찾아야 하고, 렌트했던 장비도 반납해야 하는데 만사를 제치고 한국 식당으로 달려간다. 쇠고기 국밥을 시켜 허겁지겁 먹고 나니 이제야 트레킹이 끝났다는 실감이 든다. 이제 당분간은 아무 것도 하지 말고 탱자탱자 놀아야겠다^^

 


우리가 탄 비행기다.


묵디나뜨의 숙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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