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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락푸르> 기차표 사다 죽을 뻔 했다

룸비니를 떠나 소나울리 국경에 도착하자 먼저 정신이라곤 하나도 없는 국경 모습에 기가 질린다. 네팔은 거의 모든 물자를 인도에서 들여온다는데 그 물자를 수송하는 화물차가 도로를 가득 메운 사이로 양손에 짐을 가득 든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간다. 육로 국경이라면 제법 넘어본 편인데도 내가 본 가장 혼잡한 국경인 태국 캄보디아 국경 저리 가라다. 일단 네팔 쪽 출입국신고소에서 출국 신고를 한 뒤 남은 네팔 루피를 인도 루피로 환전한다. 대충 맞춰서 썼기 때문에 환전 금액은 그리 크지 않다. 대신 인도에서 넘어 온 한국 사람에게 이미 인도 루피를 얼마간 환전해 두었기 때문에 ATM을 찾을 수 있을 때까지는 대충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혼잡은 인도로 들어서자 더 심해진다. 거리도 훨씬 더 지저분한데다 이미그레이션 마저 따로 사무실이 있는 게 아니라 처마 밑에 책상 하나 두고 있는 것이 전부다. 인도 비자는 카트만두에서 이미 받아두었으니 출입국 절차라야 입국신고서 한 장 쓰고 비자에 도장하나 찍으니 끝이긴 하지만 이런 이미그레이션은 또 처음이다. 


다시 혼잡한 거리를 걸어 바라나시 가는 버스를 알아본다. 이곳 소나울리에서 바라나시까지는 버스로 대략 10시간 걸리는 거리이고 일찍 출발한 덕에 아직 오전이니 버스를 탈 수만 있으면 저녁 늦게 바라나시에 도착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다. 하지만 거짓말인지 진짜인지 만나는 사람마다 하나같이 바라나시 가는 버스는 이미 떠났으며 다음 버스는 오후에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오후 버스를 타면 한밤중에 도착하게 되는데 아무리 일행이 여럿이라도 그 악명 높은 바라나시에 한밤중에 도착하는 건 아무래도 내키지 않는다. 결국 가장 가까운 도시인 고락푸르로 이동해 버스를 알아보거나 아니면 한밤중에 출발해 바라나시에 새벽에 도착하는 기차를 타거나 하기로 하고 일단 고락푸르행 버스를 탄다. 버스는 두 시간여를 달리더니 다행히 고락푸르 기차역 바로 앞에 선다. 룸비니에서 같이 떠난 일행은 모두 일곱 명, 그중 다섯 명은 바라나시 갈 예정이고 둘은 델리로 떠날 사람들이다. 고락푸르에 도착해 버스를 알아봐도 역시 저녁에 떠나는 버스뿐이다. 일단 기차표를 끊어보기로 한다.


고락푸르역은 상당히 큰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지저분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는데다 누가 인도 아니랄까봐 그 혼잡한 대합실에 개가 누워 자고 있지를 않나.. 떡 하니 소가 버티고 있지를 않나.. 게다가 개와 소 사이에는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누워 있지를 않나.. 한마디로 무슨 난민수용소 같은 분위기다. 그 틈을 비집고 창구마다 표를 사려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대합실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다행히 그 중 한 창구가 외국인과 여성 전용 창구라고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그 창구는 무늬만 외국인과 여성 전용 창구인지 현지 남성들까지 버젓이 줄을 서 있는데다 남녀가 유별이어서 그런지 창구는 하난데 줄은 남자줄 여자줄 해서 모두 두 줄이다. 일단 남자줄이 좀 짧아 보여 남자줄 뒤에 일행 하나가 줄은 선다. 그러나 줄은 창구 가까이 갈수록 엉망이 되는데다 중간에 새치기하는 사람, 아는 사람에게 표를 부탁하는 사람 등등 때문에 전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표 파는 속도는 왜 이리 느린지 한사람 표 파는데도 부지하세월이다. 


음식점 옥상에서 본 고락푸르역


기차시간을 기다리며 죽치고 있었던 음식점 옥상, 무지 더웠다.


두 시간쯤 기다려도 도무지 줄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아 결국 일행들을 동원해 새치기 정리에 나선다. 일행 하나는 줄을 서고 나머지가 창구 옆을 지키고 있다가 슬며시 끼어들려는 사람들이 있으면 슬쩍 팔로 막거나 그래도 안 되면 내놓고 뒤에 가서 줄을 서라고 한마디 해준다. 사람들이 아직은 순진한 건지 대부분은 멋쩍은 듯 뒤에 가서 줄을 선다. 그 와중에 매표소 직원과 표사는 남자 하나가 말다툼을 하는지 언성이 높아지더니 결국 경비원인 듯 한 사람이 와서 창구 앞에 서 있는 현지 남성들을 모두 쫓아낸다. 멀쩡하게 표 팔때는 언제고 수틀리니까 쫓아내는 것도 황당한데 모두 항의 한마디 못하고 비실비실 쫓겨난다.


여튼 덕분에 창구 앞까지 가는 데는 성공했는데 창구 앞은 대략 아수라장이다. 그동안 현지 남성들 때문에 표 살 엄두를 못 냈던 여성들 줄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너도나도 창구 안으로 손을 집어넣으려는데 아귀다툼이 따로 없다. 결국 남자 일행으로는 힘들 것 같아 그 줄에 내가 가세를 한다. 뒤에서 미는 여자들의 힘이 장난이 아닌데다 큰소리 반, 사정 반의 목소리가 계속 들린다. 자기가 먼저 표를 사야겠다는 것이다. 나도 두시간 이상 기다렸다니까 자기들은 세시간 넘게 기다렸단다. 사실 나도 누구 사정을 봐 줄만한 상황은 아니다. 지금 당신들 사정 봐줄 때가 아니거든요 속으로 중얼거리며 그냥 무시한다. 몸싸움이라면 뭐 내가 인도 여자들 보다는 한수 위다. 다행히 주먹 하나 밀어 넣는데 성공은 했으나 그 창구에는 이미 내 것까지 주먹이 세 개이다. 다행히 내 신청서를 먼저 받아든다.


인도에서는 기차표를 사기 위해 먼저 신청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행선지, 이름, 나이 등을 명기해야 한다. 문제는 열차편을 써 넣어야 하는데 이곳 타임테이블에는 바라나시행 열차편명이 나와 있지 않아 빈칸으로 두었더니 대뜸 열차 편명을 적어 오라며 신청서를 집어 던진다. 뒤에서는 빨리 나오라고 아우성인데 여기서 나갔다간 다시 두어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하는 판이니 열이 확 뻗치기는 하지만 다시 웃으면서 사정을 해본다. 열차편명을 모르겠으니 좀 알려주면 안 되겠냐고.. 한사람을 처리하고 나선 마지못해 열차편명을 불러준다. 여전히 창구에 왼손은 집어넣은 채로 오른손으로 열차편명을 쓴다. 다시 이리저리 신청서를 살펴보던 매표원이 이번에는 주소를 쓰라며 다시 신청서를 집어 던진다. 으.. 열받어.. 하지만 어쩌랴 아쉬운 건 난데.. 다시 나는 여행자고 인도 주소가 없다고 했더니 한국 주소를 쓰란다. 참 나.. 한국주소는 알아 뭣하게.. 하면서도 다시 한손은 왼쪽 창구에 박은 채로 한국 주소를 대충 적어 준다. 그동안 뒤쪽에선 다시 몰려온 현지 남성들이 빨리 비키라고 툭툭치고 뒤에서 밀고 장난이 아니다. 다행히 일행인 남자들이 뒤에서 아직 안 끝났다, 밀지 말라며 계속 싸운다. 결국 바라나시행 2등 침대칸 표를 받아쥐니 어느새 3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옴 몸은 땀으로 젖어 있고 거의 모든 진이 다 빠진 것 같은 상태가 된다. 에고 기차표 두 번만 샀다간 탈진할 것 같다^^


늦은 점심을 먹고 기다리다 밤10시 45분발 바라나시행 열차를 타러 간다. 기차역은 여전히 사람들로 발디딜 틈 조차 없다. 결국 물어물어 열차가 들어오는 플랫폼 넘버를 찾아간다. -인도에서는 열차가 들어오기 얼마 전에야 그 열차가 몇 번 플랫폼으로 들어오는지 알 수 있다고 한다. 뭐 가끔 그래놓고도 다른 곳으로 들어오는 경우도 있단다^^- 간신히 기차를 찾고보니 이번엔 칸찾기를 해야 한다. 인도 기차는 등급이 다른 경우 기차칸과 기차칸 사이를 막아 놓기 때문에 아무 칸에나 올라타면 안된다는 거다. 어떤 경우는 칠판에 백묵으로 대충 써놓기도 한다는데 그래도 이번 기차는 플라스틱으로 된 표지를 걸어놓긴 했다. 대신 기차가 아주 길기 때문에 만약의 경우 짐들고 죽어라 뛰지 않으려면 조금은 여유 있게 역에 도착하는 편이 좋다. 간신히 기차칸을 찾아 올라탄다. 바라나시에서 출발하는 기차라 다행히 자리는 비어있다. 3층으로 된 침대가 마주 보고 있는 모양은 중국 기차와 비슷한데 통로 쪽에 두개의 침대가 더 있다. 뭐 좀더 많은 인원을 수용하는 셈이다. 인도 기차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은 이미 들을 만큼 들었지만 그래도 일행이 여러 명이니 조금은 맘을 놓아도 될 것 같다. 중간 칸에 배낭을 묶어 놓고 덜컹거리는 기차 안에서 인도에서의 첫 밤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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