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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나시2> 조금씩 무심해진다

 

바라나시의 평균 온도는 대략 40도를 오르내리는 듯 도무지 낮에는 돌아다닐 엄두가 나지 않는다. 담날 아침부터 생각나는 단어는 무거움이나 아득함이 아니라 그저 덥다이다. 그랬던 것 같다. 그저 담담해지려고 나가 본 강가도, 익숙해지려고 나간 골목길도 도무지 다니기 힘든 온도가 계속된다. 더워더워 하다가 그저 숙소로 돌아온다. 물론 숙소도 시원하진 않지만 그나마 볕이라도 안드니 그래도 바깥보다는 조금 낫다. 이곳 숙소에는 한국 음식을 파는 식당이 있어서인지 꼭 이곳에 묵지 않더라도 다양한 한국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데 지금은 인도 여행의 비수기인 5월임에도 불구하고 꽤 다양한 연령층의 한국 사람들이 눈에 띈다. 인도에서 3년 동안 살았다는 남자와 첫 여행에서 그 남자를 가이드로 만나 사랑에 빠져 두 번째 인도로 온 여자, 인도로 신혼여행을 온 새내기 부부, 도로공사에서 회사 연수차 왔다는 직원 일행, 그리고 시따르, 따블라, 반수리 등의 인도 전통 악기를 배우는 바라나시 죽순이 언니들이 끼니때마다 바꿔가며 얼굴을 보인다. 이곳 인도는 장기 여행자 아니면 수차례 다녀간 여행자들이 많아서 인지 적당히 수다를 떨고 적당히 정보도 나누다 또 적당하게 일어서는 미덕이 몸에 배인 듯 그저 편안한 분위기다.


아침에만 여는 4루피(100원)짜리 탈리집


꽃불(디아)을 파는 부자


가끔은 더위를 피해 아침이나 저녁나절에 보트를 탄다. 강가에 다가면 거의 예외 없이 구걸하는 아이들이나 물건을 팔려는 사람, 마사지를 권하는 사람 아님 그냥 저팬? 코리아?를 묻는 사람들로 도무지 심심할 틈이 없는데 그 중 가장 말을 많이 건네는 사람은 보트를 타라고 권하는 사람들이다. 마담, 보트, 베리 췹 프라이스, 보트 호객꾼들은 지치지도 않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성별에 따라 마담이나 써 혹은 마이프렌드로 호칭만 바꿔가며 보트 탈 것을 권한다. 바가지로 악명이 높은 이곳에서도 그들이 부르는 가격은 그리 높지 않다. 대체로 4인 정도가 1시간가량 타면 50에서 60루피 정도를 주는데 뭐 우리 돈으로 1500원이 넘지 않는 가격이다. 아침에 해가 막 떠오르는 때나 해가 뉘엿뉘엿 질 때 즈음 아무 생각없이 보트에 앉아 강변에 있는 사람들을 구경하면 그저 시간이 흐른다. 결국 한시간 가량 보트를 타다보면 어김없이 화장 가트를 지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시신이 운구 되어 오거나 뽀얀 연기로 피어오르는 모습도 무심히 보게 된다.     


가트에서 목욕하는 사람들


여자들은 옷을 입은 채로 들어간다


그러다 하루는 혼자 걸어서 화장 가트쪽으로 가본다. 아직 한낮이라 강변에는 호객꾼 몇을 제외하곤 순례객도 그리 많지 않다. 화장가트인 마니까르니까 근처에 가니 사람 타는 냄새가 바람에 실려 온다. 차마 가트 안까지는 들어가지 못하고 근처에서 화장하는 모습을 바라본다. 피어오르는 연기로 봐서 서너 구의 시신이 화장되고 있는 것 같다. 화장하는 사이사이로 오가는 사람, 구경하는 사람, 그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근처를 서성이는 사람들로 화장터는 그저 다른 가트와 별 다를 바가 없다 여기서 돌아설까 좀더 가까이 가볼까 고민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다가온다. 사진을 찍으면 안된다, 화장을 하는 것은 가족만 볼 수 있다, 여기에 있지 마라, 하지만 나는 화장터가 잘 보이는 곳을 알고 있다. 나를 따라 와라, 인터넷에서 이미 읽은 전형적인 사기 수법이다. 따라가면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들이 모여 있고 그들에게 박시시(기부)를 하라며 거의 협박조로 돈을 뺏는다고 하는데 그 돈이 결국 그 노인에게 가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에고.. 역시 예외는 없는 듯.. 귀찮아.. 하면서 사진은 안 찍었다. 화장터는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난 더 이상 보고 싶은 맘이 없다. 하면서 돌아선다. 굳이 누군가 화장되는 모습을 꼭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던 것도 아닌데 굳이 실랑이까지 하면서 앉아 있고 싶은 생각은 없다. 결국 화장가트 입구에서 그냥 돌아선다.


오후가 되면 갠지스강가에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수영교실이 열린다


수영을 배우는 아이를 지켜보고 있는 엄마들


이렇게 한차례 실랑이라도 하고 나면 저녁 무렵에는 맥주 생각이 더욱 간절해지는데 정작 인도에서는 허가를 받은 식당이 아니면 술을 팔지 않는다. 물론 여행자 식당 같은 데에서는 몰래 술을 팔기도 하지만 모든 몰래가 그렇듯 가격이 장난이 아니다. 인도에서 술을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주류 판매점까지 릭샤를 타고 가서 직접 사오는 방법이 제일 저렴한데 이 또한 더위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니다. 맥주를 사와도 얼음이나 냉장고가 없으니 곧 식어버려 차가운 맥주를 먹을 수가 없는 것이다. 가방에 꽁꽁 싸온 맥주를 다시 수건으로 말아 마셔도 도무지 시원하지를 않으니 이번엔 인도위스키를 사다가 찬 콜라나 소다와 섞어 마셔 본다. 그래도 갈증은 쉬 가시지 않는다. 결국 하루는 릭샤를 타고 나가 주류 판매점 앞에 쭈그리고 앉아 맥주 한 병을 마시고 돌아온다. 오가는 인도 사람들을 죄다 쳐다보고 골목에는 파리가 들끓는데 시원한 맥주 한 병 마셔 보겠다고 한 짓이라니.. 그래도 뭐 시원하기는 했다^^


어느 날 저녁에는 누군가의 주도로 인도 전통 음악 공연을 보러간다. 그저 게스트 하우스 옥상에서 한명이 따블라를, 다른 한 명이 시따르를 연주하고 나머지 하나가 인도의 전통춤인 까딱댄스를 잠시 보여주는 공연인데 인원이 일정 정도 되면 의뢰를 해서 만들어지는 공연이다. 한국사람 열대여섯 명이 우르르 공연을 보러간다. 밤에도 덥긴 마찬가지여서 옥상으로 바람이 통함에도 불구하고 땀이 비오듯 흐른다. 싯따르의 연주에 이어 따블라가 이어지고 그 다음은 댄스가 이어진다. 인도의 까닥댄스는 남자가 여장을 하고 하는 경우가 많은 모양인데 여성스러운 손동작에 비해 현란하면서도 힘이 많아 들어가는 발동작을 보니 남자 무용수들에게 전수되는 까닭을 알 것 같기도 하다. 한시간반 가량 되는 공연을 보고 다시 밤길을 걸어 우루루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온다. 같이 다니니 밤에는 나갈 엄두가 나지 않던 가트도 그리 무섭지 않다. 그렇게 또 하루가 간다. 


게스트 하우스 옥상에서 열린 작은 콘서트


그러다 어느 날 델리로 떠난다. 바라나시와 델리 사이에는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가 있건만 이 더위에서는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 처음에는 델리에서 그래도 시원하다는 북부를 돌아볼까 하는 생각도 안 한 건 아니지만 흔히 가는 코스인 다람살라-마날리-레-스리나가르 코스가 대략 티벳이나 안나푸르나와 비슷하다는 소문에 것도 그냥 건너뛰기로 한다. 그래도 스리나가르는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었는데 이곳은 여전히 파키스탄과 분쟁 중인데다 얼마 전 반군이 공공연히 외국인에 대한 살해를 공언한 곳이라니 아무리 가고 싶어도 참아 주어야 할 것 같다. 결국 바라나시 찍고, 델리 찍고, 암리차르 찍고 파키스탄을 넘어가는 일정이 될 것 같은데 인도가 아무리 아쉬워도 이 날씨에 다른 곳으로 움직이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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