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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살라> 월드컵 축구 보다

다람살라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다람살라에서 차로 약 30분가량 떨어진 곳에 자리잡은 맥그로드 간지는 티벳 망명 정부가 있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달라이 라마를 따라 많은 티베탄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이주해 와 마을을 이루고 살아 인도 속에 작은 티벳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특히 인도 북부에 자리잡고 있어 레, 마날리와 더불어 여름철에는 더위를 피해 올라온 많은 여행객들로 붐비는 곳이기도 하다. 오후 4시에 빠하르간지를 떠난 여행자 버스는 델리 외곽의 티베탄 마을인 티베탄 꼴로니에서 거의 두시간을 정차해 사람을 태우더니 주변이 어둑해서야 델리를 벗어난다. 떠나기 전 버스 뒤 트렁크에 짐을 싣더니 짐 싣는 값을 따로 달라기에 어이가 없어 그저 코웃음을 치고 말았더니 정차하는 사이에 다시 차에 올라와 돈을 안주면 짐을 내리겠다는 둥 행패가 가관이 아니다. 인도에서는 종종 이런 일이 생긴다는데 그냥 관행이라고 생각하고 줘야 하는지 아니면 싸워야 하는 건지 잘 가늠이 서질 않는다. 결국 달라는 돈의 반을 주고서야 실갱이는 끝이 난다. 뭐 이것도 지들 말대로 디스 이즈 인디아라고 생각해야 하는 모양이다.

 

아침에 자다 일어나 보니 어느새 차는 맥그로드 간지에 들어서고 있다. 여튼 아무데서나 잘 자는 거 하나는 타고 난 듯 친구는 물론 같이 타고 온 신혼부부도 머리를 아주 창밖으로 내놓고 주무시던데요 하며 놀려댄다. 뭐 창문이 열려 있으니 그럴 수도.. 하고 생각해보지만 약간 민망하기는 하다^^ 숙소를 찾아 들어가는 길에서 전통 복장을 한 티베탄이며 라마승들이 눈에 띄는데 그래서인가 아무래도 인도가 아닌 다른 곳에 온 것 같다. 거리도 인도의 다른 곳보다는 깨끗하고 무엇보다 살만한 건 기온이 제법 선선하다는 건데 아무래도 고도도 높은데다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탓이지 싶다. 방을 잡고 나서 보니 바라나시와 델리에서 연이어 만났던 가이드와 여행자 커플의 옆방이다. 원래 다람살라에 올 계획이 아니어서 인사까지 다하고 헤어졌는데 결국 다시 만나 버린 것이다. 원래 혼자 다닐 때는 기피 여행자 1호가 커플인데 이상하게 둘이 다니니 신혼부부랑 이들 커플까지 주변에 커플들이 꼬인다^^


맥그로드 간지 전경


거리의 과일 가게

 

맥그로드 간지는 티벳 사원 주변의 코라를 산책하거나 주변 마을 두어 군데를 다녀오는 것 이외에 크게 볼거리가 있는 곳은 아니다. 그저 하루 한군데씩 박수 마을이니 다람콧 마을이니 하는 곳을 산책삼아 다녀온다. 하지만 이곳도 그리 안전하지는 않은 듯 론리에도 밤에 혼자 다니지 말라는 경고가 나와 있고 한국식당 주인에게도 한 달 전에도 영국여행자가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며 조심하라는 얘기를 들으니 대낮에 다녀도 조금 불안한 것이 사실이다. 대낮에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시간에만 움직인다. 나머지 시간은 그저 티비를 보거나 수다나 떨면서 지낸다. 숙소의 전망이 좋아 굳이 밖으로 나가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는다. 털실을 한 뭉치 사다가 뜨개질을 해 본다. 거의 10년 만에 뜨개질을 해보는 것 같다. 한때는 조끼 같은 것도 떴던 것 같은데 지금 기억나는 건 목도리밖에 없으니 이 더운 날 별 소용도 되지 않을 게 뻔하지만 그냥 떠 본다. 뜨다 보면 훌쩍 몇 시간이 흘러 있다. 참 여행도 오래 하다 보니 가지가지 다해보는 것 같다.


박수마을 가는 길에서 만난 아이들


다람콧 마을의 공사현장, 일은 여자들만 하더만^^

 

다람살라에는 한국인 여행자가 많다. 고로 당연히 한국 식당이 있다. 것도 두개씩이나.. 그 중 한 식당에서 월드컵 중계를 같이 보기로 한다. 저녁 6시에 시작된 토고와의 경기를 보기 위해 다람살라에 있는 한국여행자는 모두 모인 듯 그리 크지 않은 식당에 탁자와 의자를 치우고도 거의 빽빽하게 사람들이 들어선다. 한국에서 가져 왔는지 몇 년 전 보았던 그 빨간 티셔츠를 입고 온 커플도 있다 -대단한 분들이시다^^- 사실 2002년 그 월드컵 광풍 때 광화문 사거리에 있는 사무실에 앉아 쏟아져 나온 인간들을 보고 다들 미쳤나보다 냉소를 보냈는데 4년 뒤에 내가 한국도 아닌 인도에서 월드컵 보겠다고 이러고 있을 줄을 몰랐으니 사람일이란 한치 앞도 모르는 법이다. 뭐 같이 보니까 재미는 있더구만^^ 경기가 시작되자 독일경기장 한국응원석이 비춰진다. 누군가의 <역시 유럽 배낭여행하는 여자들은 물이 좋구만>하는 소리에 졸지에 물 안좋은 배낭 여행자가 되어버린 인도 여성여행자들의 한바탕 야유는 연이은 응원 소리에 묻혀진다. 전반전 어느 시간대인가 10분가량 정전이 된 걸 제외하고는 경기는 순조롭게 끝나고 한참 응원에 열을 올리던 사람들은 결국 누군가의 방에 모여 축하주를 한잔씩 마시고서야 일어선다.

 

결국 토고전만 보고 떠나기로 했던 일정이 프랑스전까지 보고 떠나는 걸로 바뀐다. 프랑스전은 거의 자정을 넘긴 시간에 시작된다. 결국 경기 시작 전 두어 시간을 술을 마시면서 경기가 시작되기를 기다린다. 이날은 이상하게도 케이블TV가 나오지 않는다. 그것도 한국인들이 많이 가는 숙소와 한국 식당이 있는 블록만 나오지 않는 거다. 초조해진 식당 주인이 여기저기 전화를 해 거의 경기 시작 이삼전 분에 TV가 나오기는 했으나 이 역시 10분을 못 버티고 다시 끊어진다. 결국 조그만 영화관-말이 영화관이지 액정 하나 걸어놓고 비디오 보여주는게 고작인-으로 자리를 옮겨 일인당 40루피-천원정도인데 평소에는 30루피란다-를 주고 경기를 본다. 재미있는 건 먼저 보고 있던 프랑스 여행자들과 몇몇 티베탄들이 경기를 보고 있다가 한국인들이 들이닥치니 얘네들, 경기보다 우리들 하는 짓이 더 재미있는지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다. 믿거나 말거나 그날의 케이블티비 불방 사태는 이 영화관 주인인 인도인이 저지른 일이라는데.. 글쎄 어떻게들 생각하시는지? 뭐 이것도 역시 디스 이즈 인디아인 것이다.


먹는 것도 일이다. 한국 식당에 앉아 뭘 먹을까 고민 중

 

결국 예정을 훌쩍 넘겨 다람살라에 열흘 가까이 머물고 나서야 암리차르로 떠난다. 신혼부부는 마날리로, 또 다른 커플은 델리로, 그리고 나와 친구는 인도의 마지막 도시가 될 암리차르로 떠난다. 암리차르는 파키스탄으로 넘어가기 위해 들러야 되는 곳이기도 하지만 씨크교도의 성지인 황금 사원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오래 머무르진 않겠지만 이곳은 인도의 여느 도시들처럼 다시 40도를 오르내리는 곳이니 다시 당분간은 잠 못 이루는 밤들이 시작되려나 보다. 가이드북을 찾아보니 인도와 파키스탄은 5,6월이 가장 덥고 이란은 7,8월이 가장 덥다. 어째 이 더위는 당분간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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