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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3/15
    <따리> 티벳가는 일행을 만나다(10)
    제이리
  2. 2006/03/14
    <징홍> 조짐이 이상하다(4)
    제이리

<따리> 티벳가는 일행을 만나다

징홍에서 따리까지는 버스로 18시간이 걸린다. 다행이라면 앉아가는 버스가 아니라 누워 가는 버스라는 점일텐데 이 또한 단점이 있으니 지독한 발냄새에 시달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버스를 경험해 본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인데다 심지어 강제로 양말을 나눠 주기도 한다는 주인장의 언급까지 고려해 보면 그 정도가 보통은 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에 조금 가라앉은 것 같은 체기가 버스에 오르니 좀더 심해진다. 뭐 발냄새는 각오를 한 탓이지 아님 후각이라는 게 워낙 금새 익숙해지는 탓인지 그저 견딜만하다. 버스를 탄 시간은 오후 4시 30분, 정상적으로 도착한다 해도 담날 아침 10시 30분 도착 예정이다. 열여덟 시간을 내리 잘 수는 없으니 해가 질 때까지는 창밖이나 바라보기로 한다. 그저 배가 지금보다 더 아프지 않기를 바라며 저녁도 굶고 아침도 굶고 시간을 보낸다. 다행히 버스는 연착없이 터미널에 도착해준다.

 

이놈의 따리행 버스는 예외없이 따리가 아닌 근처에 새로 생긴 신도시인 샤관에 사람을 내려주는데 샤관이냐고 물으니 기사는 따리라고 박박 우긴다. 그래 행적 구역상 여기도 따리인가 보다 그냥 수긍해 주기로 한다. 미리 알아둔 대로 터미널 앞에서 4번 버스를 타고 40분쯤 가니 따리 고성이 나온다. 이곳에서도 역시 한국인 게스트 하우스인 넘버3를 찾아간다. 이 곳에서 10년간 넘버3를 경영하던 문씨 아저씨는 게스트하우스를 처분하고 리장 근처의 옥룡설산으로 거처를 옮기셨다고 하고 이곳은 제임스라는 한국 아저씨가 운영을 하고 있다고 한다. 올해 새로 오픈 했다는 숙소는 두 달이 채 안 지나서 그런지 다녀 본 어느 곳 보다 깔끔하다. 비록 도미토리이긴 해도 공용 욕실 등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고 침대도 개인등이며 칸막이 등이 달려 있어 사생활이 어느 정도 보장이 되는 점도 맘에 든다. 게다가 침대에는 전기장판도 깔려 있다. 그래 이제 더운 곳에서 추운 곳으로 옮겨 온 것이다. 이제 티벳 올라가는 길에 들어서면 훨씬 더 추워질 텐데 벌써부터 걱정이 들기 시작한다. 아닌 게 아니라 한낮을 제외하고는 제법 추운 기운이 느껴진다.

 

도미토리 한구석에 짐을 풀고 나니 반가운 얼굴이 보인다. <나무야>에서 만났던 쿤밍에서 차공부 한다던 원섭씨와 리장으로 떠났던 화사동료 세 명이 따리로 내려온 것이다. 이삼일만에 다시 만나니 십년지기라도 만난 것 같다. 게스트하우스 마당에서 삽겹살을 구워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결국 따리에서도 그냥 뒹굴거리다 말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담날은 원섭씨가 한국에서 찻집을 내는데 필요한 소품이 필요하다고 해 따라 나선다. 따리를 중국의 인사동이라고 표현한 누구의 글이 떠오른다. 잠시 다녀 본 따리 시내는 인사동 같기도 하고 그냥 거대한 영화세트장 같기도 하다. 대체 사람들은 어디 사는 거야.. 투덜거리며 온통 상점뿐인 거리를 헤집고 다닌다. 그래도 여기는 리장보다는 나아요. 같이 따라 나선 회사 동료 셋 중 청일점인 노과장의 말이다. 리장은 여기보다 사람도 더 많고 상점도 더 많고 진짜 영화세트장 같다니까요.. 한다. 뭐 그래도 도시는 예뻐요. 하는데 웬지 심상치 않은 느낌이다.


귀찮아서 사진도 안 찍었다. 올릴 사진이 없다ㅠㅠ

 

이틀이 지나고 다시 모두들 다음 도시로 떠난다. 그래도 따리 뒤에 있는 창산은 한 번 올라 줘야지 싶어 그냥 하루를 더 머물기로 한다. 창산은 해발이 사천미터가 넘는다는 따리 북쪽에 있는 산인데-하긴 따리 자체의 해발이 이천이 넘는다- 대부분 꼭대기까지 가기보단 산중턱에 나 있는 긴 산책로를 한 번 걸어주는 것으로 트레킹을 마감한다. 올라가는 길과 내려오는 길은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있는데다 그걸 타기 싫으면 말을 타고 오를 수도 있고 일단 올라가기만하면 11km에 이르는 등산로가 아니 산책로가 완전히 포장되어 있어 비오는 날도 문제없이 갈 수 있다는 쉬운 코스이다. 숙소에 같이 묵었던 한국인 몇몇과 산을 오른다. 말타는 게 걷는 거 보다 더 힘들다는 소문도 있고 해서 올라갈 때는 케이블카를 탄다. 그리고 쭉 이어진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산 위에서는 따리 시내뿐 아니라 멀리 얼하이 호수까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내려오는 길은 그냥 걸어서 내려온다. 이곳 따리의 산은 진달래며 민들레가 벌서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는 것이 완연한 봄산이다. 내려오는 길에 보이는 논밭에도 푸른색의 채소며 노란 유채가 한창이다. 아.. 서울도 봄이겠구나 잠시 아득해진다.


 창산의 운유로, 평탄한 길이다.


창산에서 내려다 본 따리, 멀리 얼하이 호수가 보인다.


벌써 봄꽃이 피기 시작한다.

 

트레킹을 하고 내려와 내일은 리장으로 가야지.. 하고 있는데 한국 남자 하나가 체크인을 한다. 마침 내 옆 침대다. 어디서 오셨어요? 했더니 쿤밍에서 오는 길인데 티벳가는 길이란다. 아싸!! 나랑 행선지가 같은 사람을 드디어 만난 거다. 어떻게 가실건데요? 했더니 그냥 버스타고 간단다. 거기 퍼밋 없이는 육로로 못가잖아요? 했더니 그래도 그냥 갈 거란다. 안되면 트럭 히치라도 할 거란다. 잘 됐다 싶어 같이 가자고 한다. 그 친구도 흔쾌이 오케이다. 다만 자기는 이전에 운남을 두 번이나 여행해서 따리니 리장은 그냥 지나가는 길이라 리장에 그리 오래 머물 수는 없다고 한다. 그래요. 그럼 리장에서 이틀만 자고 가죠 한다. 아.. 호도협도 가야 하는데 하는 생각은 들지만 지금같은 비수기에 티벳 가는 일행을 만나기는 쉽냐 말이다. 게다가 이 친구.. 술 무척이나 좋아한단다. 따리도 안들리려다 한국사람하고 술이나 마실려고 들렸다니 말 다했다^^. 저녁에 같이 술 한잔하고 다음날 따리를 떠난다. 이 친구 덕에 따리에서는 그래도 사흘 밖에 안 머물렀다. 병이 나아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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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홍> 조짐이 이상하다

 

징홍에 있는 한국인 게스트 하우스 <나무야>에 짐을 풀고 나니 갑자기 맥이 풀린다. 집이 나갔다고는 하지만 몇 가지 처리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는데다 만약 한국에 가면.. 하고 마냥 미뤄두었던 일들도 이것저것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도무지 그 일들이 뭔지도 잘 정리가 안되는 게 머릿속만 복잡하다. 다행히 숙소에는 성수기가 지나서인지 아님 징홍이 운남의 주요 여행지가 아니라서 그런지 여행자들이 그리 많지는 않다. 며칠 복잡한 맘이며 지친 몸이나 추슬러야겠다 싶어 하루 이틀을 게스트 하우스에서 빈둥거린다. <나무야>의 여주인인 선영씨가 가져다 놓은 구슬 꿰는 일이나 거들며 수다나 떤다. 역시.. 단순노동이 체질인 듯 구슬만 꿰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하루가 흘러간다^^

 

그래도 어디론가 움직여야지 싶어 가방 깊숙이 넣어 두었던 론리 플레닛 쪼가리-분철했다^^-를 다시 꺼내 징홍과 징홍 주변의 갈만한 곳을 살펴봐도 그리 내키는 곳이 없다. 마침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는 프로그램 중에 주변의 소수 민족인 하니족 마을에 다녀오는 프로그램이 있다면서 같이 가겠느냐고 누가 물어온다. 옆방에 묵고 있는 아이 셋과 함께 여행하는 일가족의 아빠다. 사실 고산족이나 소수민족 투어는 더이상 가보고 싶은 맘은 없지만 그냥 일반적인 투어 프로그램이 아니라 숙소 스탭인 하니족 친구의 집을 방문하는 것이라는 점과 숙소 주인인 선영씨가 소수 민족을 돕고 있는데 그 마을로 간다는 점 등에 마음이 끌려 다녀오기로 한다.

 

담날 아침 일찍 나서보니 옆방의 부부와 아이 셋, 나랑 같은 방을 쓰던 청도에서 유학하고 있는 여학생 둘, 그리고 회사에서 연수차 북경에 왔다가 여행 중인 회사 동료 셋 그리고 주인인 선영씨까지 모두 12명이나 되는 대부대다. 여느 투어 프로그램과는 다르게 대중 교통수단을 타고 움직인다. 택시를 타고 터미널에 가서 근교 도시인 멍하이로 다시 멍하이에서 하니족 마을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 어느 산길에 내려 30분을 걸어가니 드디어 마을이 보인다. 그냥 마을이다. 맘이 놓인다. 최소한 소수 민족 마을을 빙자한 관광지는 아닌 듯싶다. 그저 어릴 적 외가집에나 가듯 마중 나온 주인아주머니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선다. 중국의 마을들은 지붕이 기와라 그런지 그냥 우리나라 어느 시골을 연상시키는 데가 있다.


하루를 묵었던 하니족 마을의 숙소


마을 전경

 

프로그램도 소박하다. 마을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고 마을 어귀 뒷산에서 참게를 잡으러 간다. 제법 큰 개울인가 했더니 조그만 실개천이다. 그래도 아이들 셋은 신나게 논다. 참게를 잡아다가-뭐, 우리는 한 마리로 못잡고 주인 아주머니와 그 딸래미가 다 잡긴 했지만- 장작불에 구워서 대나무밥이랑 역시 대나무통에 삶은 계란과 함께 먹는다. 참게 밑에 깔아 함께 구운 돌미나리의 향이 향긋하다. 논밭이 눈앞에 펼쳐진 전경이며 야트막한 산들이 그저  우리나라 어느 교외에 하루쯤 나들이 나온 것만 같다. 저녁에는 숯불을 피워 구운 돼지고기와 함께 맥주며 중국술인 바이주가 한순배씩 돈다. 사람들과도 적당히 친해지고 그래.. 한국 사람들하고 트레킹을 하니 이런 게 좋구나 싶은 맘이 든다.


굽기 전 참게


대나무밥을 만드는 주인 부부

 

그리고 나선 다시 게스트 하우스에서 뒹굴거린다. 떠나야 하는데 웬지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다. 제법 친해진 일행들은 아침마다 오늘도 안 나가요? 하며 놀리는데 아.. 예.. 뭐 별로 갈 데도 없고.. 하면서도 뭘 하는지 하루는 순식간에 지나간다. 결국 유학생 친구둘이 쿤밍으로 떠나고, 회사 동료 셋이 리장으로 떠나고, 일가족 다섯이 태국으로 떠난 뒤에야 슬슬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따리로 가는 버스를 끊어 놓고 잠이 들었다가 한밤중에 잠이 깬다. 머리가 어질어질한게 뱃속이 울렁거린다. 저녁에 먹은 사발면이 잘못된 모양인지 속이 영 거북하다. 후레쉬를 꺼내들고 배낭 어딘가에 넣어둔 소화제를 꺼내 먹고 다시 잠을 청한다. 아침에 일어나도 상태는 그대로다. 전날 체크인한 한의대생 친구가 이리저리 맥을 집더니 체한 것 같다더니 양약으로는 안된다며 한방 소화제를 사다 준다. 역시 룸메이트는 잘 만나고 볼일이다^^ 결국 따리가는 버스를 하루 연기하고 선영씨가 끓여준 죽으로 하루를 연명한다.

 

결국 징홍에 8일이나 머무른 셈이다. 여행하고 처음으로 아무 것도 보지 않은 채 그 도시를 떠난다. 여행하기 전 1년 4개월을 여행하고 돌아 온 하우아시아가 그런 말을 한 기억이 난다. 한달, 6개월 그리고 1년 되는 때가 고비라고.. 한번씩 내가 뭐하러 여행하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 무기력해지는 시기가 그때인데 그때는 빨리 환경을 바꿔주는 게 좋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니 여행 시작한지 어언 6개월이 되어 간다. 돌이켜보면 베트남 넘어가기 전 쿤밍에서 내가 뭐하는 짓이지.. 하며 꽤나 우울했던 것도 여행 시작하고 약 한달쯤 되었을 때의 일이다. 이게 장기여행 증후군인가 싶으면서도 설마.. 하며 버스를 탄다. 


하니족 마을에서 찍은 단체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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