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05/02/20

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2/20
    내게 큰 힘주는 여성노동자들
    파란 하늘
  2. 2005/02/20
    버릇 든 오타 오보(1)
    파란 하늘

내게 큰 힘주는 여성노동자들

10년 전 동지들이 모였다. 인천에서 제일 큰 옷공장 미싱사들이. 백아무개 어용노조 몰아내고 민주노조를 만들자고 꿈만 가졌던 사람들. 쪽수도 능력도 못되어 노동자들에게 '작은 파문'만 던지고 해고되거나 정리했던 언니, 동생들. 살다보니 그렇게 인연을 맺고 산 10년지기가 됐다. 언니는 낭군 하늘나라 보내고 애비 쏙 빼닮은 딸내미와 함께 살고 있다. 조건부 기초수급자다. 미싱탈때 얻은 직업병으로 허리가 망가진 채 가진 재산 하나 없어 다행히 정부의 큰 혜택(?)을 받는다. 자활센타에서 일한다. 그런데 정부는 12개월 중 1월 한달은 고 퇴직금 안줄려고 놀린다. 굶던지 어쩌던지 알게 뭐냐식이다. 2월부터 다시 가보니 인원은 팍 줄이고, 6명 가지고 월100만원 수익 내겠다고 난리란다. 언니는 발목부터 약10센티가량이 너무 아프다고 호소한다. 동생 하나는 몇 년만에 인천에 와서 사는 얘길 하고 갔다. 자기 주장 분명하고 마음이 아주 착한 동생이다. 결혼하고 애둘 낳고 보수적이고 제멋대로였던 남편을 180도 바꿔냈다고 한다. 그 몇년전보다 예뻐지고 살이 붙은 이유였다. 빚이 8천만원. 시댁에 보태고 남편 차 때문에 생긴 거란다. 그 때문에 일을 나갔고, 지금 너무나 힘든 일을 해서 근력이 세졌다나. 키고 작고 제 몸무게보다 많은 50Kg짜릴 나르고, 도배, 미장, 물품운반 등 그냥 막노동꾼과 다름없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내색 일절 않고 자다가 끙끙앓고 하니 그런 모습을 보며 남편이 차츰 변했다고. 뼈마디 마디 성한 데 없지만, 집에 돌아오면 애들 보랴 집안 치우랴 그렇게 산다고. 그래도 밝았다. 다른 동생하나는 공부방 선생님이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방송통신학교로 10년 공부하고 있다. 올해 여름에 학사모를 쓴다. 싹싹하니 곰살 맞은 예쁜이다. 그런 예쁜이가 민주노동당 활동하느라 생활비 한푼 못 가져다주는 남편땜에 속을 끓인다. 바가지 안긁는 편이다. 나처럼 관심을 끊고, 공부방에서 버는 몇십만원으로 2005년을 사는 알뜰 주부다. 20대 젊은 노동자들이 30-40대 중년 노동자로 바뀐 모습들. 그러나 여전히 착하고 순진하다. 가진 것 없는 고통, 어려움, 꿋꿋이 이겨내며 산다. 나를 가슴까지 노동자로 만들어 줬던 나의 동지들...그들이 오늘 나를 살게 한다. 조만 간 얼마 전 두 동생들, 멀리 마산 사는 언니까지 1박2일 회포를 풀기로 했다. 그들 사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내게 힘이 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버릇 든 오타 오보

으악! 또 오타다. 이번에는 제법 큰 오보를 냈으니, 이를 어쩐담. 나도 참 이상타. 보고 또 보고 확인해야 하는 데 그런 마음을 어디에 잃어버렸나보다. 꼭 다 만든 뒤 인쇄해 나온 걸 보고 이것 저것 오타를 찾는다. 큰일이다. 뒷 북치면 이렇게 후회도 한번이 아니라 수차례 계속돼 이젠 버릇이 들렸나보다 그런데 이번에는 더 심해졌다. 한 기사에서 날짜와 인원을 무려 세곳에서 틀린 것은 글쓰기 기본이 안된 것이다. 왜 이럴까. 넉 나간 듯 맥이 탁 풀려 있는 지금 나의 상태를 진단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한 달 동안 겪은 여러 사건이 나를 굉장히 힘들게 했다. 두차례 연맹의 대대, 기아차사태, 민주노총 임대...그리고 현장. 중앙엔 판단력잃고 권력을 추구하는 꾼들이 늘어가고, 현장엔 노조운동의 기본을 상실한 간부들이 자리를 차지해 나간다. 왜 내눈에 보이는 것들이 암울하기만 할까. 밖에서 나로 돌아오면, 스스로 상실감이 커져 간다. 내가 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나.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어찌어찌 20여년 운동인생. 사회 변혁을 위해 할 수 있을 때까지 이바지하고자 했던 마음을 이젠 접고 다른 길을 찾아야 할 텐가. 쉬면서 내머릿속과 마음에 가득찼던 생각이었는데 그걸 털지 못한 채 일머리를 잡으려니, 글이 안써졌다. 그랬다. 나는 전문적인 신문쟁이가 아니다. 2000년 7월부터 지금까지 신문을 놓지 않고 만들수 있었던 것은, 내 의지력이었다. 그 의지력은 조직에 대한 신뢰였고, 상급단체가 노조운동에서 당연히 해야할 역할 있었다. 어느 한 순간도 먹고 살기 위해 여기 붙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최근 몇년간 나를 갈등케 했다. 조직의 상태가. 예전에 단체 활동을 하면서 내가 느낀 것은 노동운동에서 상급단체의 역할이 참 크다는 거였다. 아무리 단위사업장에 허벌나게 방문을 해도 형식적인 관계이상을 맺기 어려웠다. 그런 관계를 뛰어 넘자면 꼬셔야 했다. 또 그런 재주는 젬병이어서 잘못했다. 그냥 성실하게 다가가고, 원칙적으로 얘기하고 더뎠다. 중앙조직이 만들어지면서 더 그랬다. 단체들도 중앙조직을 만들고, 회원조직으로 전환하고,...노조 활동을 도우면서 올바른 방향으로 설 수 있게 만드는 지원단체. 설 자리가 점점 약해 졌다. 그래서 부러웠다. 일거리가 넘쳐나가는 상급단체, 노동조합. 변혁의 주역인 노동자를 단단하게 만드는 일. 내가 바라던 모습이다. 다시 그런 의지를 불태울 수 있을까. 그 의지를 되살리지 못한다면 내 희망은 꺽일 수 밖에 없다. 이 똥탕물 같은 현실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아! 한심타. 글재주없고, 정신이 맹해서 오보를 내놓고 세상을 탓하는 내모습이...나도 울퉁불퉁 찌그러진 2월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