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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2/25
    "정규직은 비정규직의 하늘입니다"
    파란 하늘
  2. 2005/02/20
    내게 큰 힘주는 여성노동자들
    파란 하늘
  3. 2005/02/20
    버릇 든 오타 오보(1)
    파란 하늘
  4. 2005/02/16
    어수선한 노동현장
    파란 하늘
  5. 2005/02/02
    그냥 두는 것과 막는 것(1)
    파란 하늘
  6. 2005/02/01
    내 계획에 두번째 차질
    파란 하늘

"정규직은 비정규직의 하늘입니다"

"누가 비정규직입니까?" 어떤 이는 하청업체 노동자를 정규직이라고 말한다. 비정규직은 처음부터 업체로 들어 왔으니 "차별은 당연한 거 아니냐"는 얘기다. 허나 본질을 놓치고 하는 소리. 정규직으로 들어오는 게 하늘의 별 따기란 걸 모르지 않을 텐데... 어쩌면 그들의 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싶다는 정규직, 내 안의 차별이 아닐까?   .

 

그래서일까? 현대차회사가 비정규직 노동자들 1백여 명을 계약해지하고, 노조위원장을 백주 대낮에 납치 구타한 뒤 경찰에 넘기는 등 천인공로 한 짓을 서슴지 않는데, 분위기가 냉랭하다. 비정규직 여성노동자가 알몸까지 드러내며 수치심보다 무서운 자본의 폭력에 저항하지만 아직까지 정규직 노조의 연대는 기대에 못 미친다.
지난 해 현대자동차가 2조원 순이익을 냈다. 정규직 노조는 성과급을 따냈지만, 비정규직의 정규직 채용을 요구하진 않았다. "우린 어떻게 되냐"며... 되레 회사가 떠드는 논리에 갇혀 있으니...이를 뚫을 수 있는 노조 간부들, 활동가들의 앞선 고민과 투쟁이 절실하다.

 

친구나 가족처럼 다가가기

 

"20년 전 통근버스를 타면 자리는 젊디젊은 관리들 차지였다. 이들에게 받았던 설움과 모멸감을 지금 비정규직이 우리에게 느끼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의 말이다.
솔직히 말해 우리는 부끄러운 짓도 많이 했다. 1998년 정리해고법과 파견법을 막아내지 못했다. 열심히 투쟁했지만 죽기로 싸워내지 못했다. 혹시 제아무리 법이 바꿔도 단체협약이 있기에 끄덕 없으리라 여기지 않았을까. 그 결과 840만 비정규직 시대,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많은 일터가 됐고, 노조의 조직력도 바닥을 긁고 있다. 

"형으로서 그런 사정을 모른 것도 부끄럽지만 지금 현재 어떻게 해주지 못하는 심정, 정말 죽고 싶다" 정규직형이 노조게시판에 올린 글.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인 동생이 일요일도 없이 뼈 빠지게 일하는 데 고작 한 달 1백 여 만원 받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는 고민을 하는 글이다. 진실로 가슴 아파했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런 마음이 아닐까. 같은 노동자를 향해 닫혀있던 마음을 열고 비정규직들을 친구나 가족같이 생각하는 마음. 자본의 속성이 경쟁과 분열이라면, 노동은 일할 때처럼 단결과 화합 아닐까.

 

올해 뭔가를 저지르자

 

우선 일상의 차별을 없애자. 말은 않지만, 비정규직들은 임금, 노동조건, 산재 등에서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수두룩한 차별, 하나 씩 줄여가자. 그러자면 임단협 요구로 가져가야 할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 임금인상과 처우개선을 내걸고 연대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둘째, 정규직으로 닫혀 있는 규약을 여는 것이다. 같은 현장에서 늘 함께 일하는 노동자들,소속에 상관없이 모두 조합원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현대자동차노조는 지난 해 대의원대회에서 규약개정하기로 결의했고, 금속노조는 올해 지회 규약을 바꿔 일터에서 함께 일하는 비정규직부터 조직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셋째, 비정규직도 노동3권을 갖게 하자. 정규직 노조의 '든든한 연대'가 눈에 띈다. 현대차노조 전주지부 얘기다. 1년을 하청노동자 조직화에 힘썼다. 비정규직 주체를 꾸려 모임을 만들다. 드디어 23일 지회를 결성해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가입대상의 2/3가 가입했다. 이들은 결성식이 끝난 뒤 평소보다 두시간이나 늦었는데 '대기'한 통근버스를 타고 퇴근 할 수 있었다. 정규직이 어떻게 하냐에 달렸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이 밖에 불법파견 투쟁, 신규채용 100% 정규직화 등 노조의 현실과 자본의 계획을 철두철미하게 분석해서 비정규직 비율을 줄여나가자.

 

어느 비정규직이 꼭 하고 싶어했던 말 

 

한진중공업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이 말하듯 오늘 날 비정규직은 '죽기보다 싫은 하류인생'이다. 그러나 이들은 20년 전 지금 정규직의 모습과 너무 닮았다.  
지난 1월, 어느 수련회장에서 하청노동자가 따뜻한 연대를 당부하며 한 얘기가 가슴을 쳤다. 
"정규직은 비정규직의 하늘입니다" 정규직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비정규직을 살게 하고, 차가운 냉대가 우리를 주눅들게 한다고 평소 이 말을 꼭 하고 싶었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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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제를 겨우 마쳤다. 마감을 이틀이나 넘겼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3일이다.

그동안 고민을 많이 하게 했다.

조선노동자들이 어떻게 사는 지 몰랐고, 함께 일하는 비정규직이 어떠한지.... 무슨 얘길 해야 할 것인가. 그래서 읽고 여운이 남는 글이 될까. 그러나 글을 쓰면서 내내 내가 비정규직에 대한 뭘하는 가 아는 게 실상은 다 판에 박힌 것 같은 사건과 사실 말고 그들의 삶과 고민을 하나 하나 함께 느끼지 못했음을 알게 됐다. 한참 멀리서 기사를 써왔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내 주변에도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데  평소 대화를 못하고 그냥 살았다. 쓰고 싶었던 생활글을 포기하고 해설기사처럼 쓴 데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과 고민 가까이 서려하지 있지 않기 때문이다. 거꾸로 나를 반성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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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큰 힘주는 여성노동자들

10년 전 동지들이 모였다. 인천에서 제일 큰 옷공장 미싱사들이. 백아무개 어용노조 몰아내고 민주노조를 만들자고 꿈만 가졌던 사람들. 쪽수도 능력도 못되어 노동자들에게 '작은 파문'만 던지고 해고되거나 정리했던 언니, 동생들. 살다보니 그렇게 인연을 맺고 산 10년지기가 됐다. 언니는 낭군 하늘나라 보내고 애비 쏙 빼닮은 딸내미와 함께 살고 있다. 조건부 기초수급자다. 미싱탈때 얻은 직업병으로 허리가 망가진 채 가진 재산 하나 없어 다행히 정부의 큰 혜택(?)을 받는다. 자활센타에서 일한다. 그런데 정부는 12개월 중 1월 한달은 고 퇴직금 안줄려고 놀린다. 굶던지 어쩌던지 알게 뭐냐식이다. 2월부터 다시 가보니 인원은 팍 줄이고, 6명 가지고 월100만원 수익 내겠다고 난리란다. 언니는 발목부터 약10센티가량이 너무 아프다고 호소한다. 동생 하나는 몇 년만에 인천에 와서 사는 얘길 하고 갔다. 자기 주장 분명하고 마음이 아주 착한 동생이다. 결혼하고 애둘 낳고 보수적이고 제멋대로였던 남편을 180도 바꿔냈다고 한다. 그 몇년전보다 예뻐지고 살이 붙은 이유였다. 빚이 8천만원. 시댁에 보태고 남편 차 때문에 생긴 거란다. 그 때문에 일을 나갔고, 지금 너무나 힘든 일을 해서 근력이 세졌다나. 키고 작고 제 몸무게보다 많은 50Kg짜릴 나르고, 도배, 미장, 물품운반 등 그냥 막노동꾼과 다름없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내색 일절 않고 자다가 끙끙앓고 하니 그런 모습을 보며 남편이 차츰 변했다고. 뼈마디 마디 성한 데 없지만, 집에 돌아오면 애들 보랴 집안 치우랴 그렇게 산다고. 그래도 밝았다. 다른 동생하나는 공부방 선생님이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방송통신학교로 10년 공부하고 있다. 올해 여름에 학사모를 쓴다. 싹싹하니 곰살 맞은 예쁜이다. 그런 예쁜이가 민주노동당 활동하느라 생활비 한푼 못 가져다주는 남편땜에 속을 끓인다. 바가지 안긁는 편이다. 나처럼 관심을 끊고, 공부방에서 버는 몇십만원으로 2005년을 사는 알뜰 주부다. 20대 젊은 노동자들이 30-40대 중년 노동자로 바뀐 모습들. 그러나 여전히 착하고 순진하다. 가진 것 없는 고통, 어려움, 꿋꿋이 이겨내며 산다. 나를 가슴까지 노동자로 만들어 줬던 나의 동지들...그들이 오늘 나를 살게 한다. 조만 간 얼마 전 두 동생들, 멀리 마산 사는 언니까지 1박2일 회포를 풀기로 했다. 그들 사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내게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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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릇 든 오타 오보

으악! 또 오타다. 이번에는 제법 큰 오보를 냈으니, 이를 어쩐담. 나도 참 이상타. 보고 또 보고 확인해야 하는 데 그런 마음을 어디에 잃어버렸나보다. 꼭 다 만든 뒤 인쇄해 나온 걸 보고 이것 저것 오타를 찾는다. 큰일이다. 뒷 북치면 이렇게 후회도 한번이 아니라 수차례 계속돼 이젠 버릇이 들렸나보다 그런데 이번에는 더 심해졌다. 한 기사에서 날짜와 인원을 무려 세곳에서 틀린 것은 글쓰기 기본이 안된 것이다. 왜 이럴까. 넉 나간 듯 맥이 탁 풀려 있는 지금 나의 상태를 진단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한 달 동안 겪은 여러 사건이 나를 굉장히 힘들게 했다. 두차례 연맹의 대대, 기아차사태, 민주노총 임대...그리고 현장. 중앙엔 판단력잃고 권력을 추구하는 꾼들이 늘어가고, 현장엔 노조운동의 기본을 상실한 간부들이 자리를 차지해 나간다. 왜 내눈에 보이는 것들이 암울하기만 할까. 밖에서 나로 돌아오면, 스스로 상실감이 커져 간다. 내가 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나.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어찌어찌 20여년 운동인생. 사회 변혁을 위해 할 수 있을 때까지 이바지하고자 했던 마음을 이젠 접고 다른 길을 찾아야 할 텐가. 쉬면서 내머릿속과 마음에 가득찼던 생각이었는데 그걸 털지 못한 채 일머리를 잡으려니, 글이 안써졌다. 그랬다. 나는 전문적인 신문쟁이가 아니다. 2000년 7월부터 지금까지 신문을 놓지 않고 만들수 있었던 것은, 내 의지력이었다. 그 의지력은 조직에 대한 신뢰였고, 상급단체가 노조운동에서 당연히 해야할 역할 있었다. 어느 한 순간도 먹고 살기 위해 여기 붙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최근 몇년간 나를 갈등케 했다. 조직의 상태가. 예전에 단체 활동을 하면서 내가 느낀 것은 노동운동에서 상급단체의 역할이 참 크다는 거였다. 아무리 단위사업장에 허벌나게 방문을 해도 형식적인 관계이상을 맺기 어려웠다. 그런 관계를 뛰어 넘자면 꼬셔야 했다. 또 그런 재주는 젬병이어서 잘못했다. 그냥 성실하게 다가가고, 원칙적으로 얘기하고 더뎠다. 중앙조직이 만들어지면서 더 그랬다. 단체들도 중앙조직을 만들고, 회원조직으로 전환하고,...노조 활동을 도우면서 올바른 방향으로 설 수 있게 만드는 지원단체. 설 자리가 점점 약해 졌다. 그래서 부러웠다. 일거리가 넘쳐나가는 상급단체, 노동조합. 변혁의 주역인 노동자를 단단하게 만드는 일. 내가 바라던 모습이다. 다시 그런 의지를 불태울 수 있을까. 그 의지를 되살리지 못한다면 내 희망은 꺽일 수 밖에 없다. 이 똥탕물 같은 현실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아! 한심타. 글재주없고, 정신이 맹해서 오보를 내놓고 세상을 탓하는 내모습이...나도 울퉁불퉁 찌그러진 2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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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선한 노동현장

어제 경기지역의 한 노조 교선담당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간담회라기 보다는 '소식지 제작과정'에 대한 교육에 가까웠다. 교육준비가 제대로 안되고 끝나서 충분히 얘기할 시간조차 없었던 걸 보니, 지역의 설득에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마련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노조 사무실 분위기도 어수선했다.

노조간부들, 전과 비교해 보면 참 많이 변했다. 

기아차 채용비리 사건땜에 주눅들어 있는 건가하는 생각도 들고 여러가지 생각들이 스쳐지나가지만 이들에게 연맹이나 민주노총은 어떻게 자리하는 걸까 궁금했다. 들이대고 묻지 못했다. 아니 그럴 시간이 없었다. 교육을 하건 간담회를 하건 노조 돌아가는 상황이나 알고 있었어야 하는 데 지역에서 필요하다니까 그냥 간 것 뿐 준비가 없었다.

되돌아 오는 길이 더 무거웠다.  

내가 그들에게 무엇을 알려 준 것일까. 소식지 한 장 제대로 내는 것. 그래서 실력을 인정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왜 노조 활동을 하는 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고민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그 노조는 선거때 이권개입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부패노조 척결'을 내걸고 당선됐다. 그러나 불과 두달밖에 안됐는데 삐꺽이는 소리도 들린다. 그러니 언론에 뜬 제2의 비리 문제를 노조가 스스로 정화 능력이 없다는 평가다. 

이들은 고민한다. 어떻게 조합원의 신뢰를 얻을 것인가. 그러나 엉뚱한 방향으로 고민이 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공약사항이었던 성과금 문제를 해결 할 수 없어 안절 부절하고 있다. 못따내면 조합원에게 실력없다는 소릴 들을 것이고, 따내자니 회사와 교섭에 뭔가를 내놔야 하고. 이거야 말로 '노조활동의 기본'을 잃어버린 간부들의 고민아닌가. 

노조간부가 조끼를 입고 현장에 내려가면 커피한잔은 커녕 "왜 왔냐?"는 소릴 듣고 "말로만 조합원한다"는 비난까지 받고 있는 냉랭한 현장.

어디서 무엇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지. 초짜 간부들이 보기에도 무능력해 보이는 상급단체는 어떤 일을 해야 할 지.

나도 그동안 현장을 거의 보고 않고 달려만 왔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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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두는 것과 막는 것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파행을 겪고 인원이 모자라 사회적 교섭 안건을 처리하지 못했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매우 찹찹했다. 한편으론 이수호집행부가 자초한 무리수였고 그것이 부른 '화'라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꼭 이렇게 까지 해야 할까라는 두 마음이 엇갈리고 있다. 민주노총에 이수호 집행부가 들어선 것이 증명하듯 민주노총의 대의원 절반이상의 성향이 그러할진대 이렇게 무력으로 막아선다고 해결될 것인가하는 점이다. 악에 바쳐(지도부에 대한 도전), 다른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지는 않을까 우려스럽다. 다수의 횡포에 소수의 무력행사.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겉으론 안건처리를 못했으니 소수가 이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내용상으로는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우리를 잃고 갈개갈개 찢어버렸기 때문이다. 조직의 다수가 어쩌면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이 적고, 개악법안 통과는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적당히 타협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갈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 만약에 그것이 통과된 다음에 그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문제는 이 지도부에 있다. 현장의 분노와 정서에 밀려 그 때 번복하거나 사퇴시킬 수도 있는 일이다. 대중조직의 원리에 따라. 그러나 무력으로 부결을 외쳤던 동지들은 이런 믿음이 부족했거나 아예 없었다고 생각한다. 현장을 대변한다거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변한다고 말하면서 폭력으로 진압해 버린 것에 대해 어떻게 변명할 것인가? 민주노총의 조직의 지도부들이 그러한데...어떻게 할 것인가. 노무현의 구도에 이미 말려 있는 이 상황이 바꿔지기? 좀더 길게 보았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다. 만약 나에게 대의원 표가 있었다면 반대를 당당히 밝혔을 것이다. 그래도 통과가 된다면 그 사실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 밖에 없지만...과거의 전철을 그대로 밟지 않도록 현장을 조직할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의 힘이 현장에 있다고 믿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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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계획에 두번째 차질

내 계획이 두 번 차질을 빚었다. 하나는 아들내미를 강화에 두고 온 것이고, 두번째는 휴가를 내고 민주노총 임시대대에는 안가고 돌아가는 상황은 인터넷으로 본다는 것이었는데...뒤늦게 3시가 훌쩍넘어 확인해 보니 생중계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그 때 부터 갈등이 생겨 머리속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몸은 의연히 집에서 휴가를 즐기고...어떤가 궁금하니 이리저리 전화해대고 있다. 왜 민주노총은 가장 예민한 문제를 위원장 직권으로 대의원대회를 열어 다루면서 생중계조차 않는 걸까. 조용히 처리되기를 바래서일까. 노사정위 복귀든 새로운 노사정위든 들어가서 얻을 게 뭐가 있다고 이토록 목을 매는지 알 수 없다. 약속한거라도 있는 거 아니냐는 의문을 갖게 만들 행보를 하고 있다. 비록 공약으로보면 노사정위 참여라는 걸 얘기하지 않은 바 아니지만 그렇다고 조합원들의 뜻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은 채 앞서 나가는 것은 맞지 않다. 더구나 기아차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때 민주노총의 모습은 문제를 정면을 풀기보다는 엉뚱한 처방을 내려 명분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봐야 한다. 나는 오늘 아주 편한 마음으로 이런 저런 모습들 안보고 '사회적 교섭'을 두고 어떤 얘기들을 하면서 서로를 설득하는가 보려고 했다. 나의 바램은 가차없이 깨지고 닫힌 민주노총 홈페이지만 야속할 따름이다. 그리고 갈등을 한다. 가 볼까? 말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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