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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매(???)

옛부터 우리나라에선...

아이들에게 '베푸는(?)' 매질에 대해 '사랑의 매'라는 이름을 붙여 그에 담긴 높고 깊은 참뜻을 늘 생각케 했다. 그러나 과연 그게 늘 그런 참뜻에 맞게끔 역할을 하는지는... 사람들은 쉽게 답할 수 있다... 아니라고...!!!

 

나도 아이들에게 5년 전까지만 해도 매질을 했다.

물론 거의 없는 일이지만,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매를 든 적이 있었다. 하지만 대개의 부모들은 스스로의 감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이들의 삶에 자신의 삶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온통 집어 넣는다... 그래서 부모가 드는 매는 '사랑의 매'가 되기 힘들다. 차라리 학교에서 선생님과 배우는 학생으로서의 관계라면 좀더 이성이 바탕이 된 진짜 '사랑의 매'가 될 확률이 높다. 그것은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감정을 빼내고 좀더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바라보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5년 전 마지막 '사랑의 매'를 큰 아이에게 댈 때...

솔직히 '사랑의 매'라고 하기엔 감정이 좀 앞섰다.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느낀 나는, 흥분하여 아이를 윽발질르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종아리를 5대 이상을 때린 것 같다. 큰 아이는 겁에 질려, 이미 사실을 말하고서도, 결국 정말 거짓말을 했다. 공포 분위기에서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의 '스스로의 짐작에 대한 미친 확신'이 불러온 '일종의 고문'이었던 셈이다.

 

큰 아이는 그렇게 매 자국이 있는 종아리로 유치원을 다녔다.

그 매 자국을 보며 너무 맘이 아팠다. 왜 그랬을까? 자식에 대한 사랑이 너무나 감정적으로 앞선 나머지 벌어진 일이다. 그래서 이 때 깊이 반성한 뒤로는 절대로 매를 들지 않았다. 그냥 쥐어박는 일이 있었긴 하지만... 매를 대신해서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하거나 벌을 주는 것으로 바꿨다. '상점제'도 도입하고... 지금은 조금 자리를 잡았지만... 그래도 큰 아이에겐 그 때의 기억이 공포로 남아있는 것 같다. 지금도 큰 아이를 나무랄 일이 생겨서 나의 목소리가 좀 올라갈 때면 큰 아이의 얼굴이 정말 두려움과 여러 느낌들이 뒤섞인 묘한 표정으로 바뀌는 것을 본다... 이럴 때면, 꾸지람을 그만둘 정도로 심한 '자책'을 느낀다.

 

과도한 집착과 사랑은 오히려 그 반대의 결과를 낳는다!!!

그래서 늘 양극단의 판단이나 생각들은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 내지 못하고 갈팡질팡 하다가 갑자기 깊은 수렁에 빠지거나 아님 높은 산꼭대기에 올라가 있게 된다. 이성적 소통 자체가 되지 않음은 물론이다.

 

나의 아이들에 대한 잘못된 과도한 사랑 갈무리가...

'아이들을 고문'한 것과 같은 결과와 후유증을 낳게 되었다. 우리사회의 과도한 피해의식과 폭력에 대한 두려움과 이중적 자세와 의식 등의 문제들이 바로 내 안에 내재화 되어있음을 뼈저리게 느낀다.

 

스스로를 돌이켜보며...

아이들과 구체적인 일상에서 새로운 길찾기를 또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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