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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전 자영업자인데... 아주 작은 자본가로 분류할 수도 있지만, 자영업자라고 하는 것이 우리사회의 현실적 조건과 제가 처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합리적인 것 같습니다. 옛날엔 대기업 노동자였죠... 연구개발직 고급노동자!!! 80년대 중반에 대학을 다닌 덕에 사회의 분위기를 따라 정말 올바른 삶과 사회에 대해 다른 사람들처럼 열심히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았고, 지금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기에... 지금 노동자의 처지는 아니지만, 같은 바람을 우리사회에 갖고 있는 한 민초로서 지금의 민주노총사태에 정말 답답함을 금할 길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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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또 터진 강승규라는 민주노총 2인자의 비리소식에... 사실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노동자세력을 포함한 좀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맘으로 삶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민주세력들' 모두가 '그렇고 그런' 속물들이란 인상을 각인시켰다는 것이... 가장 큰 손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저런 분석들과 해결방향들을 제시하고 나서고들 있지만... 곰곰히 따져보면 그 어느 것도 속시원한 것이 없는 상황이고 보면, 모두가 어떤 틀 안에 갇혀 어느 때의 모습에 멎어버린 '시공간속의 한 장면'처럼 느껴집니다. 여러 분석들 가운데 고민택 논설위원의 분석은 그나마 가장 뚜렷하고 시원한 분석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해결책에 대해서는 딱히 별다른 '묘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한국노동운동의 현주소'를 보는 답답함이자 우울함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런 답답함 속에 저 같은 사람이 약간은 떨어진 3자적 입장에서 한국노동운동의 문제점을 생각해 보고 해결을 위한 기본방향과 전제에 대해 얘기해 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을 가져보았습니다. 이에 짧은 생각이지만, 몇 자 적어보려 합니다. 먼저 우리 노동운동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 마땅한 차례일 것입니다!!! 한국노동운동은 한국사회의 변화와 발전에 따라 같이 바뀌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사회가 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며 그나마 올바른 방향으로 서서히 바뀌어오던 흐름들이 한꺼번에 신자유주의로 무장한 전지구적 자본의 역풍을 맞으며, 노동운동을 중심으로 그나마 저항을 불씨를 지켜가며 김영삼 정권의 세계화 노력을 더디게 해왔던 '진정한 역사의 흐름'이 아주 큰 단절적 변화에 직면하며, 전지구적 자본과 이를 뒷받침해 주는 국가권력에 의해 놀랄 만큼 빠른 경제양극화는 물론, 이의 사회적 구조화까지 단숨에 이뤄지고 말았습니다. 이는 나아가 한국사회의 민주화 발전역사를, 정치적으로는 민주화 확대, 경제 및 사회적으로는 오히려 퇴보라는 기이한 모순적인 이중적 사회구조를 갖게끔 만들었습니다. 한국사회가 남북으로 분단된 민족분열의 시대를 아직 마감하지 못하고 그 분단의 현실속에 60여해를 살아온 바, 이데올로기적 대립으로부터 오는 또다른 커다란, 사회발전을 위한 전제로서 그 흐름과 방향에 대한 합의과정의, '왜곡'을 생각해 본다면, 그야말로 우리네 사회의 올바른 발전이란 먼먼 앞을 기약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조바심과 불안감마저 들게 할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이런 한국사회의 흐름을 한국노동운동도 크게 벗어나지 못한 듯합니다!!! 87년 이후, 엄청난 노동운동과 세력의 성장, 그로 인한 사회의 전반적 민주화... 다시금 세계화에 대한 저항을 계기로 노동운동은 무언가 새롭게 깨달은 듯했지만... 이미 8년전, 급격한 사회의 변화과정속에서 '갈 길'을 잃어버린 듯합니다. 한국노동운동의 지도세력들(노총 지도부, 민노당 등의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치세력, 기타 진보좌파단체 등등)은 스스로 일궈낸 비약적 성장과 발전에 너무나 쉽게 안주해 버린 듯합니다. 우선 먼저 보이는 가장 큰 문제는 한국노동운동의 대표성 문제입니다!!! 한국노동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노조가 과연 대부분의 노동자들의 이해를 제대로 대표하고 있는가... 이는 어떤 운동이건 그 운동의 주체가 세워지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따져보아야 하는 중대한 요소입니다. 제대로 노동자계급의 이해 전반을 대표해 내지 못한다면 그 운동의 주체세력이 빠지는 길은 뻔합니다. 바로 계급안에 특권계층의 등장과 그에 따른 운동틀의 관료화입니다. 이는 노동운동뿐만 아니라 대의적 권력기구를 만들어야만 하는 세상의 모든 조직에서 나타나는 문제입니다. 따라서 이는 한국노동운동 지도세력이 부패해서라기 보다는, 그 조직바탕이 되는 사람과 계급들의 이해를 제대로 대변해 내지 못했을 때 생겨나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패하기로 따지면 어찌 자본가와 그에 결탁한 국가관료들만 하겠습니까? 문제의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하려면 개인적 측면의 문제를 근본원인으로 생각하고서 문제해결방향을 끌고 갈 것이 아니라 그 문제가 구조적으로 생겨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런 근본적 문제는 여러 파생적인 문제들을 불러일으킵니다!!! 노동운동 조직안에서는 이런 지도부의 비리가 생겨나지만, 노동자계급 전체적으로는 분열과 혼란을 불러옵니다. 노동자 계급 전반의 이해가 제대로 대표되지 않기 때문이죠!!! 이는 운동주체의 확대재생산을 막는 것은 물론 오히려 퇴보를 가져옵니다. 한번 구체적인 자료로 볼까요? 이런 자료들을 한번도 보지 않았을 리는 없고... 한국노동운동의 쇠퇴를 보며 그 지도세력들은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해왔는지 몹시 궁금해집니다!!! 신광영 교수의 연구논문에 실린 자료를 인용해 보죠!!! 오이씨디(OECD)국가들의 노조 조직률과 교섭적용범위에 대한 1970년에서 2000년까지의 자료입니다. ------------------------------------------------------------------------- 국가----------1970---1980---1990---2000-- 교섭적용범위 ------------------------------------------------------------------------- 한국------------13-------15------17-------11----------14 미국------------27-------22------15-------13----------15 스페인---------------------7------11-------15----------80+ 프랑스---------22-------18------10-------10----------95 스웨덴---------68-------80------80-------79----------89 일본------------35-------31------25-------21----------20 영국------------45-------51------39-------31----------36 -------------------------------------------------------------------------- 오이씨디------42-------47------42-------34----------60 평균(OECD) -------------------------------------------------------------------------- (스캐너가 없어 표를 만들어 넣다 보니, 널값이 먹히지 않아 그냥 줄로 빈칸을 채웠습니다. 이해해 부탁드리며, 스캐너 자료 나오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가운데 년도별 숫자들은 노조조직률입니다!!! 노조의 조직비율을 나타내는데, 전체 노동자 가운데 노조에 가입되어 있는 노동자의 비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교섭적용범위는 단체교섭의 적용범위를 나타내는 것으로 단체교섭의 내용이 노동시장에 적용되는 범위를 뜻하는데, 이는 시장의 지배력과 반비례합니다. 먼저 노조조직률을 살펴볼까요? 제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 경향을 한 눈에 알아채실 수 있습니다. 임시직, 일용직 등의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이 증가하고,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이랍시고 대기업의 입지만을 더욱 확대시켜 주면서 오히려 대기업 노동자들 숫자가 줄어들고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증가함에 따라 노조조직률은 현저히 낮아졌습니다. 이 자료는 2000년까지의 자료이므로 지금이 5년이 지난 2005년임을 생각해 본다면, 더욱 낮아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1989년의 약 8천개에 비해 지금의 노조숫자는 5천개를 밑도는 상황이므로 거의 반으로 줄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는 표에서도 아실 수 있지만, 전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수치입니다!!! 다음으로 노조교섭적용범위를 살펴보죠!!! 어떠세요? 뜻을 새기면서 한번 보시죠... 프랑스의 아주 낮은 노조조직률을 보시고서... 우리나라보다 낮네... 라며 무릎을 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이 교섭적용범위를 보시고서 생각을 바꾸셔야 합니다. 프랑스는 공화정의 전통을 바탕으로 유럽 선진국에서도 가장 민주적인 분위기의 정치, 사회, 경제적 바탕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작은 노조조직률이지만, 그 영향력은 거의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조직된 노조의 단체교섭결과는 다른 노동시장에 절대적인 기준으로 작용한다는 것이죠!!! 이런 상황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의 교섭적용범위가 미국을 능가할 정도로 낮다는 것은 무언가 우리 노동운동이 정말 무엇이 잘못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흘러오고 있음을 입증해 줍니다. 보수적인 나라의 2인자격인 일본의 적용범위조차도 우리보다 높습니다. 한 가지 덤으로 알게 되는 것은... 우리나라는 '작은 미국'이라고 해도 이젠 틀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회의 양극화를 따져보기 위한 관련 모든 자료들은, 위 자료를 포함하여 미국과 어찌 그리고 똑같은지... 보시면 아마도 혀를 끌끌 찰 정도의 비슷함에 놀라실 겁니다. 어찌나 미국을 그리 닮았는지... 아마도 기득권을 장악한 지배세력이 끝장날 수 있는 상황에 구세주처럼 나타나 여러 차례 구해주었기에 그에 대한 '보답(?)'으로 나라를 온통 미국과 똑같이 만들려고 했나 봅니다. 마치 이명박 서울시장이 하느님한테 서울시를 바치겠다고 했듯이 말입니다. 하긴 그들에게 나라와 겨레, 대다수 더불어 살아야 하는 다른 민초들이 안중에나 있겠습니까? 말이 잠시 딴 곳으로 샜는데... 보이시나요? 우리 노동운동의 현실이... 이런 현실에도 우리 노동운동은 분열과 혼란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한국노동운동의 확대재생산을 위해 과연 무엇이 문제인지조차도 지도세력들은 제대로 알고 있었는지 의심스러울 따름입니다. 노동자의 이익을 대표한다면서 겨우 10% 정도의 이익만을 대표하는 상황에서 과연 그 중심지도부가 얼마나 건강하게 조직을 꾸려갈 수 있을까요? 이들의 모습을 보며 나머지 90%의 노동자들은 어떤 생각과 느낌을 가질까요?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정치민주화를 그나마 여기까지 일궈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국민들의 절대다수인 노동자의 이해와 이익을 대표하는 정치세력이 이제야 비로서 제도권안에 나타나게 된 것은 어떤 까닭일까요? 우리의 분단상황, 그로 인한 극심한 이데올로기 공세... 다른 여러 부정적 요소들을 포함하여 말하기에 앞서, 먹고 사는 문제보다 더 급한 것이 없을진대... 양극화가 더욱 깊어지는 지금, 대다수 먹고 살기 힘든 민초들은 왜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민주노동당'에 표를 몰아주지 않았을까요? 이에 대한 해답을 일부 사람들은 알고 있는 듯합니다. 엊그제 노회찬 의원의 민노당에 대한 쇄신과 각성의 필요에 대한 문제제기는 아주 타당하다고 보여집니다. 민노당이 과연 누구의 이해를 대변해 왔는가... 과연 노동자들의 이익 전반을 대변해 왔는가를 스스로 물어야 할 것입니다. 조선일보의 열렬핵심구독자층이 극부와 극빈층이라고 합니다!!! 상위 15%와 하위 15%가 조선일보의 '매니아'라니... 이 웃기지 않습니까? 민조노총이나 민노당이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한다고 하지만, 과연 그것이 어떻게 현실적으로 나타나고 있고, 실제 영향력과 결과들을 만들고 있는지... 정말 노동운동세력 스스로 곰곰히 물어보아야 합니다. 왜 나머지 90%의 노동자들을 조직화하려는 고민이 부족했을까요? 어떤 분들은 노력했지만, 그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그것은 자기변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원인이 없는 결과가 어디 있습니까? 이는 고민의 방향이 잘못되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한국노동운동의 지도세력들은 이제라도 나머지 노동자들을 조직화하기 위한 방안에 온통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합니다. 아직 한국노동운동은 사회적으로 그 영향력이 미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너무 길어진 듯합니다!!! 대부분 노동자들을 조직화하는 수준과 범위, 구체적인 방법...!!! 이에 대한 나름의 '짧은 생각'은 앞으로 같이 고민해 가며, 틈나는대로 또한 밝혀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자는데... 왜 이런 말과 방향 설정에 실천적인 '어울림'이 노동자 계급 전반에 걸쳐 일어나지 않는지... 이는 우리 한국노동운동 주도세력이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하는 '절실한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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