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을 보고.인권을 읽는다

2006/01/23 14:55
세상 이야기
차별을 보고, 인권을 읽는다
2006/01/21 오후 12:06 | 세상 이야기

[책소개] 인권사진집 <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
강서희 기자 

△ <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
ⓒ 현실문화연구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한 두 번째 인권사진 프로젝트 <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가 현실문화연구에서 발간됐다. 2003년 인권사진 프로젝트 <눈 밖에 나다> 이후 3년 만에 제작된 인권사진집이다.

책장을 몇 장 넘기지 않았는데, 가슴이 먹먹하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부모없이 시골에서 조부모와 함께 사는 아이들의 기록을 시작으로 한국으로 시집온 여인네의 삶, 울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야기, 보호시설에 갖친 정신장애인들의 일상까지 목차만 봐도 눈길을 뗄 수 없다.

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

인권사진집 <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에는 10명의 사진작가와, 4명의 시인ㆍ소설가가 참여했다. 김문호, 박여선, 임종진, 한금선 등 이전부터 거리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찍어오던 사진작가들이 2005년동안 전국의 도시와 농촌, 노동현장, 격리시설 등을 찾아 기록했다. 사진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은 글이 보완했다.

주제는 소수자이다. 조손(祖孫)가정의 어린이, 노인들과 어린이들만 남은 농촌, 중국동포, 장애인과 그 가족들, 대기업 공장의 비정규직 노동현장, 다양한 유형의 비정규직 노동자들, 한국으로 시집온 아시아 각지의 여성들, 국제 난민, 산간벽지의 여성들, 보호시설의 정신장애인이 사진의 주인공이다. 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

“그곳에는 우리의 누이들이 산다”

△ <엄마, 저 오네> ⓒ 성남훈
책장을 더 넘기다 보면 ‘농촌의 현실’과 마주한다. 농촌에서 조손가정의 어린이들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엄마, 아빠를 떠나 할머니에게 맡겨진 아이들은 ‘어린이는 나라의 보배’라는 말과 동떨어져 보인다. <엄마, 저 오네>(사진 성남훈, 글 공선옥) 속의 아이들의 해맑게 웃고 있지만, 슬픔이 느껴진다. “진실을 말하자면 어른들은 모른다. 아이들이 사실은 너무나 슬퍼서 그냥, 하늘과 바람과 달 같은 것에 ‘행복해 해버린다’는 것을.”(31쪽)

농촌 아이들 저편에는 농촌을 쓸쓸히 지키고 있는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있다. 초등학교 분교에서 몇 안되는 아이들과 노인들이 여는 운동회 사진이 펼쳐진다. <촌아, 울지마>(사진 이갑철, 글 공선옥)는 농촌 노인들의 소외현상에 주목했다. “농촌은 운다. 도시는 농촌이 울거나 말거나 저 혼자 신이 났다. 살맛이 차고 넘쳐서 밤인지, 낮인지 분간도 할 수 없다. 우는 농촌을 위로하는 것은 아이들뿐이다.”(63쪽)

그런데 그 너머에는 “필리핀에서, 베트남에서, 몽골에서, 우즈베키스탄에서, 중국에서, 일본에서, 인도네시아에서, 미얀마에서……. 참 멀리도 시집온 여자들”(82쪽)이 있다. <그곳엔 우리의 누이들이 산다>(사진 임종진, 글 조병준)는 전라도 나주로 시집온 필리핀 여성 로나씨를 통해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애환과 희망을 담았다.

카메라 앞에 선 비정규직 노동자

△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던진 질문> ⓒ 박여선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비정규직 규모는 정규직 노동자의 1/3을 육박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던진 질문>(사진 박여선, 글 방현석)은 어렵지 않다. 동일노동을 하면서 동일임금을 받지 못하는 이유를 알고 싶었을 뿐이다.

“관리직과 생산직으로 나뉘었던 차별은 이제 정규직과 비정규직 이란 이름으로 부활했다.…물론 다르지 않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하는 일과 도급업체 노동자들이 하는일, 2차 하청 노동자들이 하는 일이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 그들도 똑같이 인격을 가지고 태어난 다르지 않은 인간이다. 그러나 그들이 받는 대우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르다.”(128쪽)

‘비정규직 철폐’를 주장하는 이들이 하고 싶은 말, 어쩌면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내일이다”가 아닐까.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내일이다>(사진 김중만, 글 방현석)를 통해 우리는 방송사 비정규직노조 주봉희 위원장, 산업인력관리공단 비정규노조 임세병 위원장,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김미순 교사 등 투쟁의 현장에서 만난 비정규직 노동자를 볼 수 있다.

기대어 선 가족들과 장애인시설의 ‘막막한 평화’

△ <기대어 선 가족들> ⓒ 김문호
장애인 가족 사진을 통해 장애인 정책의 문제점을 짚어 낼 수 있을까 싶었다만, <기대어 선 가족들>(사진, 글 김문호)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장애인으로 태어난 것이 어느 누구의 이유 때문이 아닐 터인데, 장애인들과 그 가족은 서로에게만 기대어 서 있다. 자폐증세를 가진 찬석이의 아버지 오세영씨는 “정신지체라는 현상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도 없는 상황에서 타인들의 이해와 배려, 그리고 최소한의 정책적인 대책을 기대한다는 것이 아직도 멀고 먼 일인 것만 같다”(93쪽)고 말한다.

마지막 포토스토리 <꽃무늬 몸빼, 막막한 평화>(사진 한금선, 글 공선옥)는 전남 무안의 한 다수인보호시설의 정신장애인들을 담았다. 여성원생들과 함께 해바라기를 하던 공선옥씨는 “평화롭다고 말하는 순간 어쩔 수 없이 몰려드는 슬픔이라니. 사진작가의 말대로 평화긴 평화지만 ‘막막한 평화’라서 슬플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 외에도 가리봉동에 밀집해 있는 중국동포들의 삶을 다룬 <유민의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사진 이규철, 글 이문재), 아프리카 지역에서 입국한 난민신청자들의 목소리 <두 개의 벽, 두 개의 문>(사진 최항영, 글 이문재), 산골 벽지의 ‘촌여자’의 기록 <촌 여자의 굽이굽이 이야기>(사진, 글 노익상) 등이 있다.

작가들이 다닌 현장을 우리가 모두 찾아다니기 어렵다. 그래서 의미가 있다. 사진과 글을 통해 현장감 있는 ‘차별’을 제기하고 ‘인권’을 생각하는 것, 또 다른 울림으로 다가온다.

꽃들

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

감옥안에 핀다고
한탄하지 않고

갇힌 자들과 함께
너희들 환한 얼굴로 하루를 여나니

간혹
담을 넘어 들어오는 소식들은 밝고

짐승처럼 갇혀도
우리들 아직 인간으로 남아

오늘 하루 웃으면서 견딜 수 있음을

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

감옥 안에 핀다고
한탄하지 않고

갇힌 자들과 함께
너희들 환한 얼굴로 하루를 여나니

- 문부식

<출처 : 프로메테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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