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사여 ~우리가하겠슴다~

2005/08/17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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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파 몬 ~살겠다~비정규직 철폐 하라

2005/08/17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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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점거농성 을 풀며 ~김~치~~

2005/08/17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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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분노 없이 파견법 5년의 역사를 말할 수 없다

2005/08/17 10:32
나는 분노없이 파견법 5년의 역사를 말할 수 없다. | 공동행동 2004/09/06 22:23
http://blog.naver.com/onlymom3/100005563692
================ 나는 분노 없이 파견법 5년의 역사를 말할 수 없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김혜진 집행위원장

97년 노동악법이 통과되었을 때만 해도 내 관심은 '정리해고제'에 있었지 이름도 생소한 '근로자파견제'에 있지 않았다. 98년 7월 1일 파견법이 시행되고 나서 2년이 지난 2000년에 와서야 나는 자본가들이 왜 93년부터 이 법을 만들려고 그렇게 애를 썼는지, 또 96년말 왜 날치기까지 하면서 이 법을 통과시키려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파견법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어처구니없게도 그 이름은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었다. 자본가와 정권은 이 법이 만들어지면 프리랜서로 일하고 싶어하는 전문가들의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고, 2년이상 된 노동자들은 정규직으로 채용될 수 있으며, 불법파견에 대해서도 규제할 수 있으니 1석 3조라고 떠들었다. 그러나 지난 파견법 5년 동안 우리가 본 현실은 그것이 아니었다.

일단 파견법에 의해 정규직 일자리를 박탈당한 노동자들은 그들이 이야기하는 '전문가'가 아니었다. 사무보조라는 이름의 젊은 여성노동자들, 쉴새 없이 전화에 매달려 있는 텔레마케터들, 나이 많은 청소용역 아주머니들, 간병인들, 홀대받는 운전직들이었다. 이들은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힘들게 일하는 노동자들이 정규직으로 채용되었어야 할 그 자리에서 정규직의 반도 안 되는 임금으로, 게다가 자신의 임금의 일부를 파견회사에 헌납하면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원해서가 아니라, 이미 이런 일자리에서는 정규직을 뽑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파견직이 된 노동자들이다.

또 2년이상 된 노동자들은 정규직으로 채용되는 것이 아니라, 길거리로 쫓겨났다. 방송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해왔던 운전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채용을 회피하는 방송사측에 의해 해고당했다. 간병인으로 일해왔던 길병원 제니엘 파견노동자들도 2년이 되기 하루 전, 자신의 유일한 생계수단을 박탈당했다. SK텔레콤 노동자들의 경우 파견에서 1개월짜리 계약직으로, 또다시 파견으로 자기도 모르는 새 이리저리 다른 회사들에 고용계약서가 팔려나갔다. 지금도 파견노동자들은 2년에 한번씩 해고당한다. 삶의 불안정성이 그만큼 심해졌다.

불법파견을 규제할 수 있다고 떠들었으나 오히려 불법파견은 더욱 성행하고 있다. 대구 성서공단의 아세아시멘트 노동자들, 현대 모비스 노동자들, 미포조선 노동자들, 대우조선 노동자들, 한진면세점 노동자들…. 셀 수 없이 많은 노동자들이 불법적인 중간착취로 고통받아도 노동부는 불법을 제대로 조사할 생각도 않고, 불법파견이 명백해도 눈감아주고, 설령 불법파견 판정이 나와도 노동자들 계약해지 해버리면 그만이다. 누가 노동자들을 중간 착취할 권한을 주었는가? 누가 노동자들을 마음대로 폐기처분할 권한을 주었는가?


이런 인신매매에 재미를 붙였는지, 자본가들은 이제 노동자들을 파견으로 쓰는 것도 모자라 파견업체를 차리려고 난리다. 중간착취까지 해서 돈을 더 벌어볼 심산이다. 맨파워 같은 외국계 파견회사도 눈독을 들인다. 자본가들에게 파견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파견노동자들을 일을 시키면 자신은 사용주로서의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이름만 달랑 있는 파견업체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면 된다. 노동자 한 사람씩 정규직으로 고용할 때 들어가는 임금보다 엄청난 싼 임금으로 노동자들을 부린다.

그러니 자본가들은 26개 대상업종만 파견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는 현행법이 문제라고 아우성친다. 빨리 모든 업종에 파견을 허용하자고 주장한다. 그렇게 되면 이제 업종과 기업의 규모와 기업의 형태에 상관없이 노동자들은 2년살이 노예생활을 감내하게 될 것이다.

정부와 자본은 이미 파견법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왔다. 노사정위원회에서는 속칭 '공익위원'이라는 자들이 불법파견도 합법파견에 준해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그렇다면 도대체 합법과 불법의 차이는 어디에 있는 걸까?), 앞으로 파견법의 범위를 확대하기 위한 논의를 하자고 말한다. 남의 생존을 놓고 책상머리에 앉아서 재단하는 자들은 파견노동자들의 고통을 똑똑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러고도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그들은 이미 노동자를 노동자로 보지 않는 것이다.

또한 노사정위원회의 논의와 별도로 '경제자유구역법'을 통과시키면서 경제자유구역 안에서는 파견법 대상 업종을 확대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 회사가 하고 있는 업무에 '전문'이라는 말만 붙일 수 있다면 이제 마음대로 파견노동자들을 쓸 수 있다.

또한 파견노동자들이 2년마다 한번씩 짤리는 것이 안타까우니, 이제 3년으로 파견기간을 연장하자고 한다. 자기들도 2년마다 노동자들을 교체하려니 그동안 노동자들을 길들여놓았던 것이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그러나 3년마다 짤리든, 2년마다 짤리든 노동자들의 신세는 하루살이 신세다.

지하철에서 예쁜 웃음을 지으며 "우리는 보보스 파견사원"이라고 외치는 광고 속의 노동자들을 볼 때마다 나는 그 웃음 뒤에 숨어있는 파견노동자들의 눈물을 본다. 인재를 키운다고 떠들어대는 '맨파워'사의 광고에서 낮은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고통을 읽는다. 그리고 97년 총파업투쟁 때 정리해고와 근로자파견제를 막지 못하고, 그것이 우리사회에서 홀대받아왔던 노동자들에게 적용되어 그들이 더 깊은 고통의 수렁으로 빠질 때,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외면해왔던 우리들의 뻔뻔함도.

그래서 파견법이 시행된 지 5년이 되는 지금 '파견법 철폐하라고' 목놓아 외치는 방송사 비정규노조 주봉희 위원장님과 '불법파견 노동자들을 정규직화하라'고 외치는 인사이트코리아 동지들의 길을 따라서 우리 노동운동 진영 모두가 함께 하기를 원한다. 그것이 우리가 책임져야 할 우리의 과제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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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남은 자들이 이루겠다"

2005/08/17 10:28
"살아 남은 자들이 이루겠다." | 마이너리티 이야기 2003/12/09 11:33
http://blog.naver.com/kysrcw/40000420223

꽃다운 비정규직노동자의 죽음을 슬퍼하는 하늘의 눈물이 얼어붙은 것이었을까. 비정규직이 차별받는 더러운 세상을 하얗게 뒤덮기 위한 것이었을까. 고 이용석 근로복지공단비정규직노조 광주본부장의 장례식이 열린 지난 8일 오전에는 숨 막히도록 굵은 눈발이 날렸다.

 

비정규직 차별을 외치며 분신으로 항거했던 고 이용석 본부장이 숨진 지 37일 만인 8일, 광주 망월동 5.18 묘역 민주열사들 곁에 묻혔다. ‘고 이용석 노동열사 장례위원회’는 이날 오전8시 발인제, 오전 10시 영결식, 오후 5시 노제를 거치며 전국노동자장으로 고 이용석 본부장의 장례를 치렀다.

사진- 마지막 걸음. 고 이용석 본부장이 자신이 묻힐 땅, 광주 망월동 묘역을 향해 영결식장을 나서고 있다.



이날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서울의 첫 눈이 멈추지 않은 가운데 오전 8시 영등포 서울중앙장례식장에서 발인제가 열렸다. 유족부터 시작해 근로복지공단비정규직노조 조합원들,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차례로 절을 했다. 유족들과 조합원들의 통곡소리가 장례식장을 가득 메웠다.

발인이 끝난 뒤 고인의 영정은 근로복지공단으로 향했고 공단 로비에 잠시 머물렀다. 공단 쪽의 시설보호요청으로 살아남은 자들도 들어가지 못했던 그들의 직장에 고 이용석 본부장은 마지막 가는 길에야 발길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오전 10시 꽃상여가 영결식이 예정된 서울 종묘공원으로 들어왔다. 불길 속에 스러졌던 그 장소에 꽃상여를 타고 44일 만에 다시 온 것이다.

 

“동지 여러분! 하나가 모여 둘이 되고 둘이 모여 넷이 되듯, 모든 것을 한꺼번에 이루려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린 정당하고 새로운 길을 찾았으므로 꼭 승리할 것입니다.” 고인의 유서가 낭독됐다. “참여하지 않은 조합원, 깨어나지 않은 조합원에게 몸으로써 느끼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의 몫을 제가 다하고자 합니다.”

분신 직후 이용석 본부장을 붙들고 절규했던 방송사비정규노조 주봉희 위원장. 젊은 후배를 먼저 보내고 유서를 듣고 있던 늙은 비정규직노동자의 굵은 눈물이 볼을 타고 내렸다.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이 영정 앞에 고개를 숙였다. “비정규직 차별이 없는 세상, 정규직으로 거듭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제대로 싸워오지 못한 민주노총이 당신을 죽였습니다. 저들이 쳐놓은 분할지배의 그물에 갇혀 연대하기를 주저했던 우리 정규직이 당신의 결단을 재촉했습니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의 염원을, 당신이 몸 살랐던 그 비장한 결의로 이루어 낼지니 그 무거운 짐 그만 내려놓으시고 이젠 편히 쉬십시오.”

 

공공연맹 이승원 위원장은 무거운 짐을 남겨놓고 먼저 간 동지에게 숨겨놓은 서러움을 토했다. “32살의 족적이 너무나 아름다워 불혹과 지천명의 나이에도 고개 숙이게 한 사람아. 저는 당신이 밉습니다. 미치도록 밉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투쟁의 과제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가버렸기에 (중략) 우리는 작으나마 동지 앞에 단체협약서와 정규직 추서, 고용안정 협약서를 바칩니다.”

고인의 떠나가는 길을 상징하는 검은 색 천이 펼쳐졌고 살아남은 자들의 의지와 신념을 상징하는 수백송이 흰색 국화가 그 위에 던져졌다.

고인의 형 병우 씨는 “동생이 마지막 가는 길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용석이는 행복할 것”이라면서 고마움을 표했고,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 자존심을 남겨두고 떠나라”며 울부짖었다. 모친 오강님 여사도 먼저 보내는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오열했다.

 

중앙무대 빈소에 있던 영정이 내려와 광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흐리던 하늘은 이미 개였고 영정을 따스하게 비추었다. 광주역 광장에서 노제를 지낸 뒤 고인은 망월동 5.18 묘역에 안장됐다.

김학태 기자(tae@labo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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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꼐 살아가는 세상을 위해

2005/08/17 10:24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위해 | 곳간의 씨앗자루 2005/03/16 19:57
http://blog.naver.com/gusehwa/120011124395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위해 - 글, 낭송 / 방송사비정규직노동조합 주봉희 위원장

 

 


끝내고 싶은 지난 세월이었습니다.
고독과 슬픔보다 더 한 것은 내가 사랑하는 동지들을

하나 둘 떠나 보내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이었습니다.
가슴에 뭉친 응어리 아무리 쓸어내려도 맺힌 분노 삭힐 수 없었습니다.

 

격하게 살아왔던 세월,
나뭇가지에 걸린 마지막 잎새가 팔랑거리며 헐떡대는 것처럼
우린 아마도 갈기갈기 찢어진 낙엽일 겁니다.
지난 세월 악몽과 같은 날들이
얼마나 많은 비정규 노동자들이
깨지고 터지고 짖밟히며
산산히 조각나는 것을 우린 보았습니다.

 

노동자이면서도 노동 3권을 인정받지 못하고
특수고용이라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용어가 우릴 힘들게 합니다.
학습지 교사, 보험 노동자, 건설 운송 레미콘 노동자, 화물 연대
20kg가 넘는 가진 놈들의 골프백을 짊어지고
바람이 불면 쓰러질 듯 비틀거리며 생존권과 싸워야 하는 골프 경기장 보조원
건물 속의 시설 관리 노동자들.
연차를 달랬더니 목을 조르고
월차를 달랬더니 발목을 자르는 사내하청 동지들.
일하고 싶은 소망과는 관계없이 2년 주기적 해고를 당하는 파견 노동자.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파견법이라 한다.
파견법 시행 5년. 파견 노동자 보호한 적 있습니까?
보호 받은 자 누구입니까?

 

노동자들여,
동지들이여,
이제 하나여야 합니다.
구호로만 남을 게 아니라
비정규직을 철폐시키고
노동자는 하나라고 자신있게
당당하게 온 몸으로 보여줄 때입니다.
굴종의 세월 굴절되어 가는 역사를 후대에 물려주지 말아야 합니다.
함께 하는 세상
나의 삶을 나눌 수 있는 동지가 됩시다.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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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해요

2005/08/17 10:22
죄송해요 2005/03/13 05:19

화이팅입니다. 지난 2004년에 방송차량서비스의료보험증을 받았습니다.

2003년에 취업했구요. 전 2년후에 퇴직이라는 것도 모르고 입사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피나게 투쟁하시는 분이 계시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덕분에 제가 정년까지는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어라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할는지요...

비록 월급은 많지 않지만, 60세까지 일할 수 있는 곳을 얻었다는데에

만족했습니다.

 

하지만 새벽내내 주봉희 위원장님의 기사를 검색해 보면서

수년간 피와 살을 태워 투쟁해 오신 것에

저는

빈대의 간을 빼먹듯이

염통머리없게

위원장님의 후광에 살짝

업혀져 이자리에 선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드러내놓고

응원을 못 할 미련한 사람입니다.

그래도 평생 감사하는 맘으로 살겠습니다.

 

파견법 철회를 위해 고생하신 모든 분들께 고개숙여

감사드리며

특별히 주 위원장님의 건강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언제 직접 뵐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때 어떻게 이 부끄러운 육신을

드러낼 수 있을까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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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끝나지 않은 파견 철폐

2005/08/17 10:21
아직 끝나지 않은 파견 철폐 | 낙서장 2005/08/10 13:11
http://blog.naver.com/kmsy1953/60015996856
아직 끝나지 않은 길, ‘파견 철폐’
  방송사비정규직노조 주봉희 위원장, 4년만에 복직

박석진(인권운동사랑방)   


아직 끝나지 않은 길, ‘파견 철폐’

방송사비정규직노조 주봉희 위원장, 4년만에 복직

2000년 6월 해고된 후 만 4년여의 시간동안 쉼없이 ‘비정규직 철폐’ 투쟁을 벌여온 ‘파견철폐의 상징’ 주봉희 전국언론노조 방송사비정규지부 위원장. 주 위원장은 파견법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알려내기 위해 머리에까지 ‘파견철폐’ 글자를 새겨 ‘유명’해지기도 했다. 그런 그가 지난 1일 만 4년 30일만에 다시 KBS 자회사로 복귀했다.

“복직을 축하한다”는 인사에 주 위원장은 극구 ‘복직’이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KBS에서 일은 하고 있지만 KBS에 직접고용된 것이 아니라 도급회사로 원직복귀한 것이므로 ‘복직’은 아니라는게 주 위원장의 생각이다. 주 위원장의 아쉬움은 “파견 철폐를 위해 지난 4년여 동안 싸워왔지만 여전히 직접고용이 이뤄지지 않아 복귀한 것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말에서도 그대로 묻어난다. 주 위원장은 “파견제에 의한 간접고용의 상황에서 노동자는 언제나 고용 불안에 처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주 위원장은 KBS에서 방송차량을 운전하는 운전직 노동자다. 방송사 운전직 노동자들은 애초에 인력회사인 자회사에 고용되어 모회사인 KBS와 관계를 맺고 있었다. 하지만 96년 ‘개악 노동법 날치기 통과’ 이후 렌트카 회사에서 직접 인력을 파견받을 수 있게 되면서 KBS와 렌트카 회사, 렌트카 회사와 인력회사, 인력회사와 노동자, 이렇게 삼중의 계약이 맺어졌다. 그러면서 노동자들은 이중의 착취 구조 속에 갇히게 되었다. 모회사인 KBS가 파견업체에게 준 돈에서 부가세 10%를 기본으로 관리비, 세금, 보험료, 수수료 등을 각종 명목으로 떼고 나면 노동자는 어느새 저임금의 구조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그마저도 1998년 7월 1일부터 시행돼 올해로 6년에 접어든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아래 파견법)’ 제6조 3항에 의해 노동자들이 2년마다 반복적으로 해고되면서 상황은 악화되었다. 파견법은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목적에 따라 2년 이상 간접고용된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게 했으나, 현실에서는 2년이 되기 전날 반복해서 합법적으로 해고당하는 결과만을 낳았을 뿐이다. 주 위원장도 파견법이 시행된 2년 후, 2000년 6월 30일 해고당했다.

주 위원장은 “10년, 15년 동안 일하던 직장에서 쫓겨났을 때 누구도 책임지고자 하는 사람이 없어 ‘딱 3개월만’ 투쟁할 거라 생각하며 파견철폐 투쟁을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번 시작한 투쟁은 쉽게 끝나지 않았고, 2001년 6월부터 KBS가 렌트카 회사, 인력회사와 각각 계약을 맺으면서 이중 착취구조가 없어지고 “함께 싸웠던 동지들이 다른 현장으로 취업해 떠나면서 2002년에는 정말 그만 둘 생각까지 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민주노총 서울본부에서 ‘주봉희 후원회’를 꾸려 올해 6월까지 계속 후원해 준 것이 큰 힘이 되었다”며 “가슴을 쥐어뜯고 괴로워할 때 어둠의 길목에 선 못난 비정규노동자에게 반딧불 희망을 새겨준 동지들이 고맙다”고 전했다.

현재 260여 명의 KBS 운전직 노동자들은 ‘방송차량 서비스’라는 KBS 자회사에 모두 정규직으로 채용됐다. 따라서 2년마다 반복됐던 해고는 면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KBS가 58세까지 정년을 약속한 것이 성과라면 성과”라고 주 위원장은 전했다.

“지난 4년여 동안 파견철폐 투쟁이 있어왔지만, 투쟁을 통해 수십 개의 비정규직 노조가 만들어져도 외롭고 소외된 싸움을 넘어서지 못했다”고 주 위원장은 토로했다. 이어 “비정규직 문제는 전사회적인 문제이지만 조직된 노동자 중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은 2%도 채 되지 않는 게 현실”이라며 “간접고용, 특수고용 등으로 나뉘어 있는 비정규직이 모두 뭉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사회단체들이 비정규직 투쟁을 끝까지 책임지지 못하는게 안타깝다”고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주 위원장은 “아직 적응이 잘 안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면서도 “조합원들과 함께 다음 비정규직 투쟁을 준비하겠다”며 파견 철폐의 끝나지 않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기사등록일자:2004-07-07  조회수: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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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

2005/08/17 10:17
 
2004/11/21 12:19
http://blog.naver.com/kmsy1953/60007772277

노란봉투

- 주봉희 님의 글을 읽고 (비정규노동자를 생각하며..)

작곡 / 노래 / 기타 : 우리나라(백자)
편곡 : 한기룡, 백자


1.늦은 밤 집에 돌아 와보니
야윈 아내 거칠은 손으로
편지가 왔노라고 내미는
노란 봉투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지
등줄기에선 식은 땀이 흘러
조심히 뜯어본 노란 봉투
" 귀하는 파견법에 의거
해고되었음을 통보합니다."

*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니
창백한 형광등불빛
눈물이 흘러
가슴에 흘러
주먹이 불끈 떨리네

** 세상아 이 썩어빠진 세상아
맘놓고 일할 권리마저없는
세상아 이 미쳐버린 세상아
뒤집어 엎을 세상아

2. 병들어 누워계신 어머니
무슨 일이냐 물어오시네
한구석 겁에질린 딸아이
얼굴이 샛노래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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