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연습

2005/08/16 15:03
출근연습

주봉희 | 언론노조 방송사비정규지부 지부장

소갈머리 없이 살아가는 놈 이라고 했다.
세상사 하고 많은 일 중에 데모질이냐고
한번 데모질에 일당이 얼마냐는 비아냥 소리도
그저 흘러가는 시냇물소리 쯤으로 지나쳐왔던 세월5년
새까맣게 타버렸을 가슴에는
아직도 응엉거릴 그 무엇이 꿈틀댄다.
오월이 오면
촉촉아 젖어오는 연인의 눈가에 맺힌 한 맺힌 눈망울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그 무엇을 기다려야 한다는 작은 소망을 빌곤 한다
무언의 기도라면 꿈이라고 하고 싶다
아지랑이 이글거리는 여의도 516광장
아스팔트에서 초원의 푸르름이 넘실대는데
너는 아직도 어딜 헤매고 있는가
쥐어뜯으며 살아가면 인생역전될까
하고 많은 직업 중에 데모질이냐고
오늘도 터벅터벅 향하는 길목
어느새 사쿠라꽃 휘휘 감은
여의도라네

- 2004.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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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끝나지 않은길 파견 펄폐

2005/08/16 14:59
아직 끝나지 않은 길, ‘파견 철폐’
  방송사비정규직노조 주봉희 위원장, 4년만에 복직

박석진(인권운동사랑방)   


아직 끝나지 않은 길, ‘파견 철폐’

방송사비정규직노조 주봉희 위원장, 4년만에 복직

2000년 6월 해고된 후 만 4년여의 시간동안 쉼없이 ‘비정규직 철폐’ 투쟁을 벌여온 ‘파견철폐의 상징’ 주봉희 전국언론노조 방송사비정규지부 위원장. 주 위원장은 파견법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알려내기 위해 머리에까지 ‘파견철폐’ 글자를 새겨 ‘유명’해지기도 했다. 그런 그가 지난 1일 만 4년 30일만에 다시 KBS 자회사로 복귀했다.

“복직을 축하한다”는 인사에 주 위원장은 극구 ‘복직’이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KBS에서 일은 하고 있지만 KBS에 직접고용된 것이 아니라 도급회사로 원직복귀한 것이므로 ‘복직’은 아니라는게 주 위원장의 생각이다. 주 위원장의 아쉬움은 “파견 철폐를 위해 지난 4년여 동안 싸워왔지만 여전히 직접고용이 이뤄지지 않아 복귀한 것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말에서도 그대로 묻어난다. 주 위원장은 “파견제에 의한 간접고용의 상황에서 노동자는 언제나 고용 불안에 처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주 위원장은 KBS에서 방송차량을 운전하는 운전직 노동자다. 방송사 운전직 노동자들은 애초에 인력회사인 자회사에 고용되어 모회사인 KBS와 관계를 맺고 있었다. 하지만 96년 ‘개악 노동법 날치기 통과’ 이후 렌트카 회사에서 직접 인력을 파견받을 수 있게 되면서 KBS와 렌트카 회사, 렌트카 회사와 인력회사, 인력회사와 노동자, 이렇게 삼중의 계약이 맺어졌다. 그러면서 노동자들은 이중의 착취 구조 속에 갇히게 되었다. 모회사인 KBS가 파견업체에게 준 돈에서 부가세 10%를 기본으로 관리비, 세금, 보험료, 수수료 등을 각종 명목으로 떼고 나면 노동자는 어느새 저임금의 구조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그마저도 1998년 7월 1일부터 시행돼 올해로 6년에 접어든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아래 파견법)’ 제6조 3항에 의해 노동자들이 2년마다 반복적으로 해고되면서 상황은 악화되었다. 파견법은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목적에 따라 2년 이상 간접고용된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게 했으나, 현실에서는 2년이 되기 전날 반복해서 합법적으로 해고당하는 결과만을 낳았을 뿐이다. 주 위원장도 파견법이 시행된 2년 후, 2000년 6월 30일 해고당했다.

주 위원장은 “10년, 15년 동안 일하던 직장에서 쫓겨났을 때 누구도 책임지고자 하는 사람이 없어 ‘딱 3개월만’ 투쟁할 거라 생각하며 파견철폐 투쟁을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번 시작한 투쟁은 쉽게 끝나지 않았고, 2001년 6월부터 KBS가 렌트카 회사, 인력회사와 각각 계약을 맺으면서 이중 착취구조가 없어지고 “함께 싸웠던 동지들이 다른 현장으로 취업해 떠나면서 2002년에는 정말 그만 둘 생각까지 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민주노총 서울본부에서 ‘주봉희 후원회’를 꾸려 올해 6월까지 계속 후원해 준 것이 큰 힘이 되었다”며 “가슴을 쥐어뜯고 괴로워할 때 어둠의 길목에 선 못난 비정규노동자에게 반딧불 희망을 새겨준 동지들이 고맙다”고 전했다.

현재 260여 명의 KBS 운전직 노동자들은 ‘방송차량 서비스’라는 KBS 자회사에 모두 정규직으로 채용됐다. 따라서 2년마다 반복됐던 해고는 면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KBS가 58세까지 정년을 약속한 것이 성과라면 성과”라고 주 위원장은 전했다.

“지난 4년여 동안 파견철폐 투쟁이 있어왔지만, 투쟁을 통해 수십 개의 비정규직 노조가 만들어져도 외롭고 소외된 싸움을 넘어서지 못했다”고 주 위원장은 토로했다. 이어 “비정규직 문제는 전사회적인 문제이지만 조직된 노동자 중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은 2%도 채 되지 않는 게 현실”이라며 “간접고용, 특수고용 등으로 나뉘어 있는 비정규직이 모두 뭉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사회단체들이 비정규직 투쟁을 끝까지 책임지지 못하는게 안타깝다”고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주 위원장은 “아직 적응이 잘 안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면서도 “조합원들과 함께 다음 비정규직 투쟁을 준비하겠다”며 파견 철폐의 끝나지 않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기사등록일자:2004-07-07  조회수: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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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전국노동자 대회-서울시청앞

2005/08/16 14:54
올린이 : 총무 제목 : 11/9전국노동자대회-서울시청앞8 조회수 : 247   


방송사 비정규직 노동조합 주봉희 위원장을 볼때마다 대단하다


는 생각이든다.


지난 광주인권영화제에서 파견법에 따른 해고에 항의하며 3년간


싸워온 주봉희씨의 궤적을 담은 다큐멘터리 <필승(必勝) ersion


1.0 주봉희>를 보고난 후에는 더더욱 대단하다는 생각이듭니다


SK인사이트코리아 노동자들의 복직소식을 듣고 '라면 먹다 엉


엉 울었다'는 주봉희 위원장.


머리에 '파견 철폐'라고 새기는 거하며,


동료 노동자들이 다 포기할 때 혼자 꿋꿋이 투쟁하시는 것 보면


정말 존경스럽지 않습니까?








작사 : 주봉희




노란봉투






1.늦은 밤 집에 돌아 와보니


야윈 아내 거칠은 손으로


편지가 왔노라고 내미는


노란 봉투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지


등줄기에선 식은 땀이 흘러


조심히 뜯어본 노란 봉투


" 귀하는 파견법에 의거


해고되었음을 통보합니다."




*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니


창백한 형광등불빛


눈물이 흘러


가슴에 흘러


주먹이 불끈 떨리네




** 세상아 이 썩어빠진 세상아


맘놓고 일할 권리마저없는


세상아 이 미쳐버린 세상아


뒤집어 엎을 세상아




2. 병들어 누워계신 어머니


무슨 일이냐 물어오시네


한구석 겁에질린 딸아이


얼굴이 샛노래지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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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7월 13일 (수요일) 14 : 52  연합뉴스
"비정규직 투쟁은 정규직과 연대가 중요 과제"
(서울=연합뉴스) 홍제성 기자 =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투쟁에서 정규직 노동자와 어떻게 사회적 연대를 펼쳐나가는 지가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김성희 소장은 13일 오후 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노동센터 창립 5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김 소장은 `비정규 운동 지난 5년의 성과와 과제'에 관한 주제발표에서 "비정규 노동자의 투쟁은 정규직 노동자와의 연대가 중요한 향후 과제"라며 "창조적이고 다양한 투쟁을 감당할 수 있는 조직력을 어떻게 확보하는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4년 기준으로 비정규직 노조의 조직률은 정규직 조직률 24.3%에 비해 매우 낮은 3.1%에 그치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미약한 수준이지만 현재 비정규 노조의 조직화와 투쟁은 노동시장의 극심한 차별, 노동권 행사에 대한 제도적.행정적 제약과 자본의 탄압을 뚫고 이뤄낸 결과"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비정규 노동자는 2004년 기준으로 전체 노동자의 55.7%에 이르지만 정규직 노동자의 51.7%의 임금밖에 못 받는다"면서 "특히 고용 불안정 문제는 비정규 노동자가 겪는 생활 불안정과 사회적 차별의 원천"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노중기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박원석 참여연대 정책국장, 이재영 민주노동당 정책실장, 이용범 한국노총 기조본부장, 신승철 민주노총 부위원장 등의 토론이 이어졌다.
한편 심포지엄에 이어 언론노조 방송사 비정규지부장을 맡고 있는 주봉희씨가 펴낸 시집 `어느 파견 노동자의 편지'의 출판 기념회도 열렸다.
이 시집에는 파견노동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의 부당성과 파견직 노동자로서 겪은 설움 등이 담긴 70여편의 시가 담겨 있다.
jsa@yna.co.kr
(끝)


<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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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7월 10일 (일요일) 09 : 02  연합뉴스
詩로 노래한 파견노동자의 `설움'
"비정규직 파견노동자는 `두해살이 풀'"

(서울=연합뉴스) 조성미 기자 = "나는야 파견 나온 비정규 나물인가베/그래도 나는 질기고 질긴/질경이인 것을"(`밟히고 밟히어도 나는 질긴 질경이')

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파견노동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의 `부당함'을 고발하는 시집을 발간해 심금(心琴)을 울리고 있다.
모 방송사에서 방송차량을 운전하며 언론노조 방송사 비정규지부장을 맡고 있는 주봉희(53)씨는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발간하는 월간 `비정규노동'에 지난 5년 간 발표해왔던 시들을 모아 `어느 파견 노동자의 편지'(한국비정규노동센터)를 펴냈다.
주씨는 1998년 모 방송사에 파견직 방송차량 운전기사로 입사했다가 입사 2년이 되기 하루 전날 해고당했다.
파견법에 따르면 파견노동자를 2년 이상 고용하면 실질사업주인 방송국이 직접 고용을 해야하므로 이를 피하기 위한 방송사가 그를 포함한 파견직 노동자들을 대량으로 해고한 것.
이후 그는 방송사비정규노조를 결성해 5년 간 파견법 폐지와 복직을 요구한 끝에 지난해 7월 같은 방송사 자회사에 재입사, 지금은 언론노조 방송사비정규지부장 역할을 맡고 있다.
주봉희씨는 "파견 노동자들은 2년마다 해고되는 `두해살이 풀'이기 때문에 노조를 만들어서 계속적으로 회사와 싸우기에도 힘든 점이 많았다"며 지난 5년을 회고했다.
그는 "한계에 부딪힐 때 마다 느낀 어려움을 시로 풀어낸 것이 바로 이 시집"이라며 "5년전이나 지금이나 비정규직 형편이 크게 나아진 게 없다. 이 시집을 읽고 우리의 어려움에 정규직을 비롯한 국민들이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주씨의 시집 발간에 대해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은 추천사에서 "아마도 이 시집은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800만 노동자들의 한편의 `투쟁의 역사'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씨는 시집 판매 수익금 전액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 확보를 위한 기금으로 쓸 예정이라고 밝혔다.
helloplum@yna.co.kr
(끝)


<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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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승~주봉희

2005/08/16 14:31
詩人, 주봉희
- 시인이 된 비정규직 노동자, 주봉희
    
제작: 참세상

어쩌다 찾아오는 할멈 손이 그리워
태양이 내리쬐는 한 귀퉁이에
꽃을 피우면 왜 이리 못 생겼냐
지나는 길손 차 버리고
미안타 사과하면 아가리 찢어지나
나는야 파견 나온 비정규 나물인가베
그래도 나는 질기고 질긴
질경이인 것을

<밟히어도 나는 질긴 질경이 中>
시인이 된 비정규직 노동자, 주봉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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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 소식

2005/08/16 14:26

파견대상 업무 확대 우려…차별시정 업무 실효성 부재

 

국가인권위 '비정규 관련 법안' 청문회 지상 중계(하)

국회에 계류중인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아래 파견법안)'에서 파견업무의 대상, 사용 사업주의 직접고용 의무조항도 이번 청문회에서 주요 쟁점으로 다뤄졌다.

현행 파견법은 상시적 파견대상 업무를 26개 "전문지식·기술 또는 경험 등을 필요로 하는 업무"로 제한하고 있는 반면, 노동부가 제출한 파견법안은 파견을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규정함으로써 그 나머지 업무에 대해서는 사실상 파견을 전면 허용했다. 민주노총 주진우 비정규사업실장은 "파견법은 시행된 지 7년이 지났지만 △불법파견 △중간착취 △파견노동자 노동3권의 형해화 등 많은 문제를 양산하고 있다"며 폐지해야할 제도라고 평가했다. 한양대 법학과 강성태 교수도 "파견제는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합법적인 해고가 가능한) 기간제의 문제점에 더해 사용자가 분리되는 또 다른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간제보다 엄격하게 대상을 제한해야 하고, 한 나라의 국가경제에 근본이 되는 부분까지 파견을 확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강 교수의 주장.


고용의무 조항 있으나 마나

노동부의 파견법안에서는 사용 사업주가 3년 이상 파견노동자를 사용하거나 파견금지업무에 파견노동자를 사용한 경우 직접 고용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현행 파견법은 사용 사업주가 2년을 초과하여 파견 노동자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2년의 기간이 만료된 다음 날부터 파견노동자를 고용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 최금숙 청문위원이 현행 파견법에서 사용주가 고용의무를 회피한 사례에 대해 질문하자 불안전노동철폐연대 김철희 법률위원장은 "파견을 진행하고 있으면서 도급으로 위장"해 놓으면 가능하다고 답했다. 또 "일부 방송사 같은 경우 해당노동자를 파견받고 있는데, 한 노동자를 2년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내부적으로 정해놓고 2년이 되기 전에 해당 노동자를 해고하도록 파견업체에게 요구하면 파견 사업주는 어쩔 수 없이 2년이 되기 전에 그 해당노동자를 해고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파견노동자, 교섭의 당사자를 잘못 잡았다고?

한편 김만흠 청문위원은 파견 노동자가 사용 사업주에게 단체교섭을 요구한 사례가 있는지에 대해 묻자, 불안정노동철폐연대 김철희 법률위원장은 "비정규직이 노동조합을 결성해서 교섭을 요청한 사례가 있으나 거의 대부분 교섭을 거부당했다"며, "해당 교섭에 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각종 소송을 제기해도 노동계약자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해당 법률로 의결할 수 없다는 결정들이 대다수"라고 답했다. 이에 정인섭 청문위원은 파견 노동자가 사용 사업주로부터 단체교섭권을 실질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한 의견을 묻자, 한국경총 최재황 정책본부장은 "노동계에서 비정규직 노동3권이 제약받고 있다고 하는데, 사실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노동3권을 사업주가 제한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교섭의 당사자를 (파견 사업주가 아니라 사용 사업주로) 잘못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오히려 노동계를 탓했다. 단체교섭에 대한 파견 사업주의 형식적인 책임만을 강조하며, 사용 사업주의 실질적인 책임은 회피한 것.


차별금지 및 시정 조치 실효성 있을까?

기간제법안과 파견법안은 차별적 처우를 임금 기타 노동조건 등에 있어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불리하게 처우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기간제 또는 단시간 노동자 및 파견 노동자가 차별적 처우를 받은 경우 노동위원회에 시정을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비정규노동자의 차별을 시정하기 위해 노동계에서 요구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명시하는 대신 들어간 규정이다.

차별적 처우에 대한 판단 기준을 묻는 정강자 청문위원의 질문에 노동부 장화익 비정규대책과장은 "노동위원회에서 차별담당 전문가들이 참여를 해서 사례를 쌓아 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민주노총 주진우 비정규사업실장은 "차별시정기구의 판례 축적만으로는 차별에 대한 판단 기준을 세울 수 없다"고 반박했다.

한편, 이날 청문회에는 주봉희 방송사 비정규직노조 위원장과 권혜영 금융노조 비정규직 지부 위원장이 증인으로 참석해 현실에서 겪고 있는 비정규직의 인권침해를 진술했고, 두 법안이 시행될 경우 예상되는 문제를 지적했다.


인권의 관점이 녹아들지 못한 청문회

청문회를 지켜본 안산노동인권센터 김현희 활동가는 "인권의 관점에서 청문내용의 논점이 만들어지지 못한 채 두 법안을 둘러싼 관련자의 이해관계를 측정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소감을 밝혔다. 증인으로 참석한 권혜영 금융노조 비정규직 지부위원장도 "청문회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듣는 기회가 부족했다"라고 아쉬움을 표현했다.

국가인권위의 청문회는 국회 등 다른 국가기관에서 진행하는 청문회와는 분명 달라야 한다. 인권의 관점에서 질문을 선택하고 증언을 유도하면서, 무엇보다 인권의 문제를 드러내도록 청문을 진행하는 것이 핵심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청문회는 비정규직 관련 법안들을 다루면서 비정규직 문제를 인권적으로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파견 대상이 확대돼 비정규직이 대폭 양산됐을 때 어떤 인권의 범주가 얼마만큼 침해될 것인지에 대해 효과적으로 드러내지 못했다.

이에 대해 인권운동사랑방 범용 활동가는 "1기 국가인권위가 비정규직 테스크포스팀까지 꾸려가며 3년 동안 비정규직 문제를 다뤘으면서도 아무런 결론을 내리지 못한 후과"라며,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명확한 관점이 없는 상태에서 국가인권위가 비정규직 법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더라도 타협적이거나 절충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것 아니냐"라고 우려했다.

인권위는 28일 전원위원회를 열어 두 법안에 대해 논의한 후 국회에 '의견제시'나 '정책권고'를 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인권위 내부의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없거나 의견을 조율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로 의견표명이나 정책권고가 무작정 미뤄질 수 있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출범부터 사회권을 강조해 온 2기 국가인권위가 비정규직 관련 법안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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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노동자의 내면을 알고 싶다면…"
[프레시안 2005-07-16 11:03]
[프레시안 김경락/기자]800만 비정규직 시대. '한 집 건너 비정규직'이라는 말은 더 이상 빈말이 아니다. 불가피한 이유가 있을 때 예외적으로 허용되던 비정규직은 불과 수년 만에 일상적인 근무형태로 변모한 것이다.
  
  '절반의 임금', '4대보험 미적용' 등은 비정규직 차별의 한 예에 불과하다. 비정규직이란 이유로 신분적 차별, 문화적 차별 현상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지난해 말 민주노총에서 제작한 한 포스터 제목은 "정규직 되면 결혼하자"였다.
  
  정부도 나섰다. 지난해 비정규 관련 법안을 내놓았다. 당시 정부는 "세계 최고 수준의 법률안"이라고 주장했다. 입법예고 8개월 만에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아 정부를 쑥스럽게 한 이 법안은 이유야 어떻든 비정규직 문제가 노동계만의 고민거리가 아님을 보여줬다.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적 쟁점이 된 데에는 비정규직 노동자 당사자들의 투쟁이 큰 몫을 담당했다. '투쟁'마저도 차별받았다. 노조 설립 자체가 쉽지 않았다. 자기 권리를 찾아보겠다는 순간 징계·해고는 물론 구속 수감생활을 각오해야 했다. 이 모든 사항은 현재진행형이다.
  
  당사자가 아니면 그 사람의 고민과 고통을 알기 쉽지 않다. 단편적으로 나오는 언론 보도나 연구보고서는 일면만 드러낸다. 더구나 건조한 문체 속에 '인간' 비정규직의 모습을 짐작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인간적 고뇌를 엿볼 수 있는 시집 한 권이 최근 출판됐다. <어느 파견노동자의 편지>(출판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지은이 주봉희씨는 해고 노동자다.
  
  주씨는 1998년 6월30일 KBS에 파견직 방송차량 운전기사로 입사했다가 2000년 7월1일 해고됐다. 98년 도입된 파견법이 파견근로를 2년 이상 제공받은 사용자는 해당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뒤 주씨는 방송사 비정규노조를 결성해 5년간 전국 비정규투쟁 사업장을 돌아다니는 고난의 행군을 시작했다. 현재 주씨는 노동계에서 '비정규 노동운동의 산 증인'으로 꼽히고 있다.
  
  그가 5년간 투쟁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복직투쟁 과정에서 겪은 말 못할 인간적 고뇌, 투쟁 속에서 깨달은 희망의 존재를 이번 시집에 고스란히 담았다. 비정규관련 각종 통계 그래프, 보도기사, 연구보고서에서 찾아볼 수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실상을 알고 싶은 독자라면 일독을 권한다. 특히 비정규 근로를 '정상'적 근로형태로 규정한 법률안을 제출한 정부 당국자에게도 추천한다.
  
  동지들의 함성이, 외침이 없었다면
  십수년 이중파견, 이중착취를 방조하고 방관한 방송사들이 양심의 가책조차 느끼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대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KBS, MBC, SBS, YTN …
  주 60시간이 넘는 강제노동, 24시간 야간 맞교대에
  월차가 있었는지,
  연차가 있었는지,
  산재라니 무슨 화산재인 줄만 알았던
  지난 세월과 지금도 다를 바 없었을 것입니다.
  
  3년 전쯤 한 동지가 운행 중 사고를 당했던 기억이 납니다.
  차량 기사실로 들어온 그 동지는 그래도 먹물 좀 먹었다고 항상 으스대던 옆 동료에게 물었습니다.
  "형님, 근무 중에 다치면 산재 된다는데 좀 알아봐 주시겠습니까?"
  "야! 너, 산재 안돼! 임마, 산재는 말야, 집에 불이 나든지, 불에 데어야 산재가 되능겨, 너 집에 불났냐? 책임보험은 되겠다."
  그 선배는 웃지 못할 엉터리 해답을, 시원시원 내놓았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것이 우리가 가진 정답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 <파견노동자의 편지> 중에서
  
  파견 노동자는 6월 30일생
  신자유 광풍이 춤을 춘다
  시퍼런 칼날이 날을 세우고
  여의도 광장에 춤을 춘다
  두 번의 겨울을 지나 여름이 오면
  축 늘어진 버들가지 하늘거리고
  살랑대는 바람결에 나를 묻는다
  동쪽에서 울음소린 MBC라네
  서쪽에서 통곡소리는 SBS
  북쪽에서 우는 소리 KBS라네
  방송사 파견노동자 피울음소리
  파견노동자 보호한다더니
  이중착취
  중간착취
  오늘이 이 년이니 나가달란다
  누구를 보호했나
  말 좀 하거라
  반팔 입고 왔다가 반팔 입고 쫒겨가는 나
  유월 노동자
  30일이 생일이라네
   - <파견 노동자는 앵벌이> 중에서
  
  그 옛날 그 사랑은 온데 간데 없고
  아스팔트 덩어리에 묻혀버리고
  육중한 도너츠가 나를 갈기고 가도
  시골 아낙네의 싸리바구니 한웅큼 담겨 있지요
  어쩌다 찾아오는 할멈 손이 그리워
  태양이 내리쬐는 한 귀퉁이에
  꽃을 피우면 왜 이리 못 생겼냐
  지나는 길손 차 버리고
  미안타 사과하면 아가리 찢어지나
  나는야 파견 나온 비정규 나물인가베
  그래도 나는 질기고 질긴
  질경이인 것을
   -<밟히고 밟히어도 나는 질긴 질경이> 중에서

김경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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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된 비정규직 노동자, 주봉희

2005/08/12 20:08
시인이 된 비정규직 노동자, 주봉희

 

[인터뷰] '어느 파견노동자의 편지' 시집 낸 주봉희 방송사비정규지부 위원장
이꽃맘 기자 iliberty@jinbo.net
무언가 채우고 싶은 욕망은
속 깊은 곳에서 꿈틀대지만
후들거리며 저려오는 종아리 싸매 쥐고
여의도 한 모퉁이 싸잡아 안고 나뒹굴다가
하늘을 보면 숨바꼭질
참새란 놈이
여기가 뉘땅인데 누워 있냐고
찍 갈긴 참새똥에 일어나보니
아이고야 내 나이 오십이구나
<인생은 숨바꼭질 中>

'파견직 노동자의 상징' 주봉희 방송사비정규지부 위원장이 시집을 냈다. 그의 시집은 사람들에게 보내는 '어느 파견노동자의 편지'이다. 98년부터 시행된 '파견직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에 의해 KBS 입사 후 정확하게 2년 만인 2000년 7월 1일 해고 된 그는 2004년 7월 1일 복직될 때 까지 5년 동안의 투쟁과 삶을 담아 편지를 썼다.

그의 시집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아픔과 슬픔, 그리고 기쁨이 그대로 담겨 있으며, 5년 동안의 투쟁 속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다. 투쟁하다 힘들어서 보내야 했던, 끝까지 버틸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워 보내야 했던, 투쟁하다 죽어서 보내야 했던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한 편의 시가 되었고, 소주 한잔 하며 함께 불렀던 노동가요가 한 편의 시가 되었고, 지칠 때 옆에서 힘이 되어 주었던 동지들의 이야기가 한 편의 시가 되었다. 주봉희 위원장의 투쟁, 삶, 시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가 일하고 있는 KBS 배차실을 찾아갔다. 그는 사무실 한 켠에 앉아서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한가닥 미련마저 울컥 삼키며
쓸모없는 이 몸뚱아리 허공 위로 뒹구는
너 가엾은 낙엽과 같은 비정규 노동자
<비정규 노동자, 낙엽과 같은거야 中>

그가 해고되기 까지 KBS에서의 삶은 이 땅을 살고 있는 파견직 노동자가 느꼈을 모든 차별을 온몸으로 느껴야만 한 시간들이었다. 주봉희 위원장은 그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나는 이중으로 파견된 노동자로 KBS에 고용되었었는데, 렌터카 회사에서 차랑 운전사를 묶어서 입찰을 했죠. 용역에서 렌터카로 파견되고, 또 KBS로 파견되고.." 그는 이렇게 KBS에 입사한다.

"지금은 방송차량 쪽에 정규직이 거의 없지만 그때는 정규직이 많았어요. 정규직은 마치 하나님처럼 움직이고, 우리가 모두 이름이 있음에도 우리를 부를 때 야! 용역!, 야! 렌터카! 이렇게 불렀어요. 95년도에 박찬호가 메이저리그 처음 가서 잘했을 때 있잖아. 비정규직들이 모여 있는 방에는 17인치 로타리식 흑백TV가 있었고, 정규직 방에는 29인치 칼라TV가 있었거든. 우리 방에는 채널이 없어서 박찬호 경기를 보려고 정규직 방에 갔다가 혼났지. 니네들 방에 가서 보라고 하데요(웃음)" 어떻게 보면 뭐 저런 식으로 유치하게 구는가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주 사소한 것에서 인간대접을 받지 못해 파견직 노동자들은 더욱 힘들었다.


그는 2000년에 해고되면서 자신이 왜 해고되었는지 이유를 알고 싶었다. "2000년 7월 1일 해고가 되었는데 짧게는 5년에서 길게는 10년 이상 근무한 사람들을 어떻게 그렇게 쉽게 해고할 수 있는 지 이해할 수가 없더라구요. 파견법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때는 파견법이 뭔지 전혀 몰랐거든. 그래서 교보문고에 가서 파견법에 대한 책을 한 권 샀지.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인데 왜 우리가 보호받지 못하는가 알고 싶었어요. 책을 보니까 근무일수가 하루라도 넘어가면 직접고용한 것으로 본다라는 조항이 었더라구요. 아 이것 때문에 해고를 시키는구나. 그때부터 파견법은 파견직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률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법을 달달 외우고 다녔어요" 그는 파견법을 알리기 위해 제일 앞에서 투쟁하는 것은 물론이며, 머리에 '파견철폐'라는 글씨를 새기기도 하고, 얼굴에 색칠을 하고 퍼포먼스를 하기도 하였다.

그의 노동조합 활동은 인간으로서의 대우를 받기 위한 절박함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파견직이라는 신분으로 노조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것 처럼 보였다. "2000년에 노조를 만들었는데 계약기간이 되니까 조합원들이 하나도 없더라구요. 근데 언제부터 인가 파견법을 이용해서 방송국에서 교차사용을 하더라구요. KBS에서 2년이 된 사람은 SBS에 가 있고, SBS에 있던 사람은 MBC에 가있고. 그래서 다시 시작했어요. 사람들이 다시 조직하면 뭐하냐 조합비만 아깝다. 또 다 해고 될텐데 뭐하러 하냐라는 소리를 들으며 사람을 만나고 조직하는 일은 너무 힘든 일이었어요" 이런 과정을 거처서 방송사비정규운전직노조가 2002년 처음 건설된다. 이때 비정규직이라는 말이 노동운동에서 처음 제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주봉희 위원장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을 온 몸에 안고 싸움을 시작했다.

"조합원들을 만나러 현장에 가면 청경들이 잡고 때리고 해서 만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한번은 온몸에 고추장을 바른 적이 있었어요. 그럼 못 만지니까요. 나중에 씻으러 갔는데 손톱 밑에 고추장이 가득 들어가 있더라구요(웃음)"

향기 없는 사람들
축 늘어진 어깻죽지 너울거려
살랑거리는 바람에도 춤을 추지
흐느적거리며
걸려 넘어질 듯 앙상한
종아리뼈에 사무쳐
이렇게 살다간
비정규노동자
희망조차 꿈 속에서나 찾아 헤메누나
<개 같은 세상에서라도 살고 싶다 中>

그는 2000년에 해고된 이후 그리고 파견법의 실체를 알게된 후, 5년 동안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이 땅에서 희망을 찾기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과 함께 했다. "노조원이 많을 때는 700명까지 있었어요. 근데 사실 다들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사람들이잖아요. 생활을 어떻게 할 수 없으니까 다들 떨어져 나가더라구요. 아침에 가보면 30명 줄어있고, 그 이튿날 가보니까 또 줄어있고, 결국에는 총무국장이랑 둘이 남았더라구요. 서울역에서 비가 엄청 쏟아지는데 총무국장이 깃발을 들고 둘이서 비를 쫄딱 맞으면서 투쟁한 날이 있었어요. 그날 총무국장이 들고 있던 깃발을 뺏고 그만 들어가라고 했어요. 나도 12월 까지만 하겠다고... 근데 그때 대상식품 비정규직 노동자 4명이 힘차게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내가 저 사람들을 두고 그만두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일 년만 더 일 년만 더 하다가 5년이 지나간거죠"

그는 이런 투쟁의 과정을 시로 옮기기 시작했다. "2000년에 해고되고 나서 처음 시를 쓰기 시작했어요. 혼자 살다 보니까 저녁 집회 끝나고 나면 동지들은 다 흩어지고 나 혼자만 덩그러니 여의도에 남았어요. 뭔가로 메우고자 하는 충동이 들어서 가방에 항상 가지고 다녔던 노트를 꺼내서 벤치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의 시는 세상을 지켜보고 감상하는 눈이 아니었다. 그의 시는 투쟁의 한 가운데에 있었다. "나는 대공장 노동자들 처럼 큰 조직이 있는 것도 아니여서 응어리 진 것들을 풀 곳이 많지 않았어요. 꾸역꾸역 밥을 먹어도 배만 부르고 가슴 속은 여전히 허한 것이 채울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죠. 내가 본 현실은 비정규직이 불에 타야 정규직이 되는 세상이었고, 비정규직이 목을 메달아야 복직이 되는 세상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시는 감상에 젖어서 쓴 것이 아니라 현장을 목격했던 5년 동안의 나의 삶을 쓴 것이라 생각해요"

초원의 푸르름이 넘실대는데
너는 아직도 어딜 헤매고 있는가
쥐어 뜯으며 살아가면 인생역전 될까
하고 많은 직업 중에 데모질이냐고
오늘도 터벅터벅 향하는 길목에
어느새 사쿠라꽃 휘휘 감은
여의도라네
<출근연습 中>

주봉희 위원장은 KBS방송차량서비스에 2004년 7월 복직했다
그는 5년 만이 2004년 7월 1일부로 KBS 자회사인 KBS방송차량서비스에 복직하였다. 그는 현재 '방송국 차량 배차 반장'으로 일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파견직 노동자이다. "출근하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적응도 안되고... 출근 첫 날 여의도 공원에 앉아서 술을 먹고 엉엉 울었어요. 그리고 집으로 가버렸죠. 5년 동안 나도 참 많이 변했었나봐요. 복직할 때 해고됐던 동지들을 복직시켜 줄 것을 요구했어요. 결국 12명의 동지가 복직되었죠. 하지만 안타까운 건 12명을 복직시키기 위해 또 다른 12명의 노동자가 해고되었다는 거예요. 내가 일자리를 늘려달라는 요구를 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황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는 파견직을 없애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지만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왔다. 하기에 복직한 주봉희 위원장의 앞에는 더 많은 일이 놓여 있었다. "5년 동안 동지들로부터 받은 거 그대로 다 돌려줘야죠. 나는 얼마 있으면 정년이지만 아직 젊은 친구들이 많이 있었잖아요. 그 친구들과 함께, 그 친구들을 위해 싸워야죠. KBS가 방송차 운전직을 직접 고용하라는 요구를 하고 싶어요. 예전에 그러했듯이 안정된 직장에서 안정된 삶을 살수 있도록 싸워야 하는 거죠. 그리고 노동자들 투쟁이라면 내일처럼 달려갈 거예요. 그곳이 어느 곳이 되는 간에 말이죠" 그는 그의 시가 그러하듯이 항상 투쟁의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어쩌다 찾아오는 할멈 손이 그리워
태양이 내리쬐는 한 귀퉁이에
꽃을 피우면 왜 이리 못 생겼냐
지나는 길손 차 버리고
미안타 사과하면 아가리 찢어지나
나는야 파견 나온 비정규 나물인가베
그래도 나는 질기고 질긴
질경이인 것을
<밟히어도 나는 질긴 질경이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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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노동자 설움 엮어 시집 펴낸 한국방송 주봉희씨
[한겨레 2005-07-13 23:21]

[한겨레] ‘재직 2년’ 하루 남겨두고 2000년 한국방송서 해고
5년 투쟁 끝에 지난해 복직 2년마다 잘리는 파견노동자
두해 살이 풀과 뭐가 다른가
‘죽어서야 정규직이 되는 세상, 목을 매달아야 손배가압류 풀어주는 세상’이라고 울분을 토해낸다. ‘차별을 낳고, 빈곤을 낳고, 갈등을 낳는 파견법’에 ‘퉤’하고 침을 뱉는다.

한국방송 파견노동자인 주봉희(53)씨가 파견노동자의 설움을 읊조린 시 69편을 <어느 파견 노동자의 편지>라는 이름으로 엮어냈다. 주씨는 그의 시에서 파견노동자를 ‘두해살이 풀’이라고 했다.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때문에 2년마다 해고가 되는 파견노동자의 삶이 두해살이 풀과 꼭 닮았다는 얘기다.

주씨의 처지가 딱 그랬다. 그는 98년 한국방송에 운전기사로 입사한 뒤 입사 2년을 채우기 하루 전날 해고됐다.

파견법에 따라 파견노동자를 2년 이상 고용하려면 파견업체를 통하지 않고 방송사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 이를 피하려고 방송사는 그를 비롯해 파견노동자들을 무더기로 해고했다. ‘6월30일생(파견법 발효 날) 파견노동자’들은 이름도 낯선 파견법에 떠밀려 거리로 내몰렸다.

“파견노동자를 보호한다던 파견법이 내 일자리를 빼앗아 갔어요. 일자리를 되찾으려면 스스로 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복직투쟁은 자연스럽게 해고의 원인이 된 파견법 폐지투쟁으로 옮아갔다. 그는 운전직, 작가, 사무보조 등 방송국의 비정규직을 모아 비정규노조를 만들면서 첫 싸움을 시작했다. 짝수 해마다 어김없이 무더기 해고가 거듭되니 노조를 끌어가기가 쉽지 않았고, 월급을 받지 못하니 끼니조차 해결하기 힘겨웠다. 주씨는 “한 끼라도 밥을 먹는 날에는 ‘아, 오늘은 그래도 밥을 먹었구나’하고 스스로 위안을 삼을 만큼 혹독한 날들이었다”고 말했다.

다른 회사의 비정규직 동료들이 돈을 걷어 한 달에 20~30만원을 주는 게 수입의 전부였다. 끼니를 걱정하면서도 비정규직 차별철폐집회나 노동자집회 때마다 독특한 퍼포먼스를 준비하는 열성으로 투쟁에 나섰다. 주씨는 언론노조 방송사 비정규지부장을 맡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이끌었다.

지난해 7월 그는 한국방송 자회사에 운전기사로 복직했다. 혹독한 투쟁 끝에 현장으로 돌아와 운전대를 다시 잡았다. 주씨는 일자리를 되찾기 위한 5년을, ‘세상사 하고 많은 일 중에 데모 질이냐고, 한번 데모 질에 일당이 얼마냐고, 비아냥 소리도 그저 흘러가는 시냇물 소리쯤으로 지나쳐왔던 세월 5년’이라고 읊조렸다.

“파견법이 개악돼 파견 업종이 늘어나면, 더 많은 파견노동자가 생기고 갈수록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된다”며 한숨을 내쉬던 그는 “파견노동자라는 서러운 이름이 없어지는 날까지 우리의 처지를 시로 달래며 싸우겠다”고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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