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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보니, 이 말 한번 거창하네. '비독점적 다자연애'
다른 말로 표현하면 뭐지, 폴리? 자유연애?
아무튼 저 유식한 표현은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본건데
그냥 '비독점적'에 꽂혀서 쓰는것 뿐이다.
아무튼.
내 애인이, 그는 남자이고 우리는 연애한지 2년 다 되어간다,
며칠전 '비독점적 다자연애' 에 '동의'했다.
동의라는 말이 막 내가 심하게 요구해서 그런 응답을 이끌어낸것 같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그러니까 최초에 "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에 대한 물음을 내가 던진 건 맞다.
자세하게 표현하면, "내가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고 하면 우린 어떻게 되는거냐" 뭐 이런 얘기들?
콜론타이를 보면서, <아내가 결혼했다>를 보면서, 우린 배타적 연애관계에 대한 얘기를 많이 나누었다.
그러던 중, 내가 "xx이 참 괜찮은 거 같아. 넘 예쁜 거 같애. 막 보고 싶다니까."
나는 사람에게 '관심'과 '호감'을 잘 갖는편인데, 그게 오래가지는 않지만,
암튼 나는 내 애인에게 내가 가진 관심들을 잘 말하는 편이라서, 그런 말을 했다.
며칠 뒤에 애인이 나에게 말했다.
"생각해보니 역시 독점적인 감정은 이성애주의, 혹은 일부일처제와 관련이 있는 거 같다"
내가 말한 그 xx은 여자였는데,
만약 '남자'였다면 자신이 속상하고 질투하고 그랬을 것 같은데
xx이 여자라는 사실 때문인지 그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는거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보니,
이성애주의/일부일처제가 배타적 연애, 혹은 독점적 감정과 엄청나게 연결되어 있고,
(다른 '남자'만을 경쟁상대로 느끼도록)
결국 독점적 감정, 사랑이라는 건
태초에 인간 모두에게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이 아니라는 걸 새삼 느꼈다는거다.
내가 보기에 애인은 이런 단계를 거쳐거쳐, (머릿 속에 더 많은 생각이 있었겠지만)
"니가 다른 사람을 사귀더라도 괜찮을 것 같아. 그 사람 역시 연애관계를 독점하려 하지 않는다면"
라고 말했던 것이다.
물론 현재 나에게 연애할만큼의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 '또' 있는 건 아니지만
지금 당장 '비독점적 다자연애'를 실행할 수 있는것도 아니지만
그냥 기분이 좀 신나서, 주변인들에게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사람들의 반응이 아주 가지각색이었다. 진짜 재미있다.
-차라리 바람을 피우지 그래. 왜 꼭 넌 '연애'를 하려는거니? 힘들지도 않아?
-육체적 관계가 필요하면 원나잇스탠드를 해라.
-걔(내 애인)가 널 너무 좋아해서 마지 못해 해준 거 아냐? 걔도 참 (너같은 여자 만나서) 안됐다.
-걔가 동의해준건, 걔한테 다른 사람이 생겼다는 의미일 수도 있어. 보통 남자들이 자기 바람나면 부인한테 관대하잖아. 의심해봐.
-너 지금은 그렇게 말해도 일단 '다른 사람' 나타나면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절대 못해.
-하면 나한테 꼭 말해줘, 너무너무 궁금해.
-여자? 남자?
-걔가 동의해준건, 걔가 남자라서 그래. 자기가 그래도 first라는 거지. 다음 사람은 second고.
-걔 이제 군대가지? 위기감 아닐까?
-셋, 혹은 넷이서도 만날꺼니, 그건 정말 비추다.
-넌 진정한 폴리가 아니야.
하하하하하하~
늦은 밤이었다. '그 사람'에게서 온 전화였다.
그 시간에 그 사람이, 게다가 군대에서 며칠 안되는 휴가나온 사람이,
술을 먹고 전화했을때, 난 직감할 수 있었다.
그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지를.
빙빙 돌려 한시간 동안 얘기했지만, 처음부터 알수가 있었다.
오랫동안 정말 진지하게고민해왔다.
"난 왜 그 사람을 싫어하는가"
이유는 정말이지 여러가지가 있었다.
'그 일'에 얽혀있다는 것, 그 때 그의 입장의 문제?
그것만으로는 절대 설명할 수 없는 거였다.
그 사람은 너무나 똑똑하다.
요즘따라 '똑똑'을 남발하는 경향이 있지만,
정말 사전적 의미에서 그 사람은 머리가 잘났다.
그런데 왜 그 사람은 여성주의에 그렇게 관심이 없을까.
왜 그 사람에게 여성주의는 늘 이차적인걸까.
내 주변에 다른 남성들은 그래도 '노력'하는 남성들인데,
왜 그 사람은 그 노력조차 안하는 걸까? (못본건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사람이 말할때 난 마치 레닌전집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언제나 당당하고 자기 확신에 차있으며 논리적이면서도 거칠고 배타적이다.
내가 그 사람에게 정말 제대로 '논박'할 수 없다는 걸 몇차례 느꼈을때
내가 언어가 없기 때문인건지, 논리가 없기 때문인건지, 아니면 내 생각자체가 틀린건지
불쾌한 감정을 설명할 수 없는 그 상실감이 나에게로 오지 않고,
그 사람에게로 가서 '싫어한다'가 되었을런지도 모른다.
누구말대로 '말해도 변하지 않을 걸' 아니까, 더 이상 말하지 않게 되었을런지도.
사실 그 사람은 '전형적인 운동권 마초' 스타일은 아닌데도
자꾸 그 사람에게 그런 원망과 분노들을 투사시켰던 것 같기도 하다.
그 사람은 나에게 "넌 정말 똑똑하다"고 아주, 자주 얘기했는데.
생각해보니 한편으로 난 누구보다도 그 사람이 날 인정해주는게 좋았던 것 같다.
그 사람은 "내가 다시 운동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
자신 역시 나에게 '두 가지 감정'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에게 불만스러운 지점은
"내가 지나친 '인정욕구'를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운동을 할때 어떤 측면에서 필요한 "'희생적인 태도'가 나에게는 없었다는 것"이다.
역시, 그 사람은 머리가 너무 좋아 사람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또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줄 안다.
그래서 난 그 사람이 싫으면서도, 그 사람이 좋았던거다.
난 너무나 '인정욕구'가 강하다. 모든 사람들에게 있는거지만, '유난히' 강하다.
그게 나를 지금까지 이렇게 성장시켜온 동력이기도 했다. 한 측면에서는.
하지만 때때로 보다 자주, 그게 나를 너무 힘들게 한다는 걸 나도 잘 알고 있다.
나처럼 자의식이 강해보이는 사람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건 다들 잘 모르지만.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나를 거꾸로 지배할때,의 그 기분 말이다.
난 끊임없이 망상을 만들어낸다.
내 스스로 만들어낸 언어, (저 사람들은 나를 이렇게 생각할까?)
언어가 실재를 만들어낸다. (저 사람들은 나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 때 또 다시 발동되는 인정욕구, (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다)
그런 악순환.
정말이지 단순한 진리지만, "모든 사람에게 인정 받을 수는 없잖아?"
근데 왜 나는 편하게 마음을 먹지 못할까.
웃긴건 그렇게 '인정'받고 싶어하면서도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희생적' 태도가 나한텐 없었단거다.
(쓰다보니 '희생'이라는 말이 굉장히 거슬려서 설명하고 싶은데 잘 못하겠고
난 그 사람이 무슨 뜻에서 그런 얘기를 하는지 알겠다.)
아니다, 또 생각해보면 그런 노력을 안해본건 아니네, 결국 실패했지만.
아무튼 그 사람과 통화하고 또 다시 우울해졌다.
맞다, 그 사람이 싫은 이유 중의 또 하나에는 그 사람과 만나면 우울해진다는 게 있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보통들 하지 않는 말들,
당신의 단점, 당신에게 부족한 점들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까발려서
'나의 현재상태'와 직대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분석은 하나하나 틀린 것이 없어서
그 사람에게 기분이 나빠지는게 아니라, 내가 우울해졌던 것 같다.
이번에도 며칠, 보다 오래 가겠구나.
오늘 내가 아는 한 선배가 군대를 간다.
지금쯤 논산으로 향하고 있겠다.
어제 마지막으로 그를 만났는데 우연히 머리 깎는데까지 따라갔다.
참으로 기분이 묘했다.
그는 초조하고 불안해보였다.
스물여덟의 나이, 때문은 아닌 것 같다.
그는 군대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모든 것을.
어제 한 언니랑
정말 내가, 언니가, 남자로 태어났다면
진지하게 병역거부를 고민하지 않았을까
그런 얘기를 나누었는데.
'그'라고 해서, 그가 '남자'라고 해서
난 괜찮을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그러면서 후회가 되었다.
군대가는 그에게 <대한민국은 군대다>와 같은 책을 권한 게 과연 잘한 일인걸까.
남자친구가 "군대가기 싫다"고 말했을때 그저 어리광 정도로 받아들인 것도
후회가, 되었다.
그래도 오랜기간 운동을 하고 여성주의를 접한
'그' 남자들에게
그 남자들이 군대를 갈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박노해의 '썩으러 가는 길' 같은 시가 더 싫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그런 구절 때문만은 아니다.
누군가의 인격을 파멸시킬 수도 있는 그 공간에서
운동적 관점에서 인내하고 노동의 의미를 배우라는
그 말이 더 싫다. 싫다. 싫다.
도대체, 난, 무슨 말을 할 수 있었던 걸까.
이번 주 일요일엔 대청소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어쩌면 토요일에 술을 거나하게 먹고 일요일 하루종일
방바닥에 붙어있을지도 모르겠단 불안감이 엄습 중...-_-;
자취를 한지는 올해로 5년이 다 되어가지만
혼자 산지는 8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룸메가 없이 혼자 사는 건 여러모로 편하기도 하고
내가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난다 등등
그래서 '자기만의 방'이 있다는 안도감이 있지만.
가사노동에 한해서는 같이사는 사람 때문에라도
치워야'만'하는 일이 없다는게 문제다.
내가 나갈 때 어질러놓은 방 꼬라지를
집에 들어와서 불을 '탁' 켜는 순간 보면 한숨이 휴-나온다.
지금도 대략 그런 상태다.
문제가 뭘까? 며칠전에도 대충 치웠는데.
그러고보니 '책상'이 문제 같기도 하다.
일본가서 가져온 자료집이 아직까지 무진장 쌓여있으며
벌금으로 걷어놓은 100원짜리 동전들이 널부러져 있고
아무튼 더러움의 근원은 책상이라고 비난하려는 순간
돌아보니 침대도 엉망이긴 마찬가지다.
화장품이랑 디카가 왜 침대위에 있는건데 내가 못살아 아아-
게다가 베란다에 방치해둔 식물들이
무지하게 초췌한 꼴을 하고 있는 걸 보니
진짜 문제는 나다 싶다.
일주일 전인가 그와 전화통화를 하다가
"집에서 어머니에게 가사노동을 전담시키는건
파출부를 고용하는 것보다 더 나쁜 짓이야
왜냐하면 어머니에겐 최소한의 비용조차 지불하지 않으니까
(완벽한 부불노동이다)"
라고 그의 가사노동 그리고 출가를 '종용'했는데(출가를 하면 어쩔 수 없이라도 하게 된다)
(근데, 파출부라는 말 쓰면서도 찝찝해서 찾아봤더니
보수를 받고 출퇴근을 하며 집안일을 하여 주는 '여자'로 되어 있다)
생각해보니
어쩌면 내가 가사노동을 하기 싫어서 (나도 하는데 너도 해라)
혹은 누가-어머니 같은 존재가 대신해줬으면 좋겠다는 (난 엄마가 없단 말이야)
마음을 그렇게 표현한 건지도 모르겠다고 반성했다.
어쨌거나 가사노동은 정말 끝도 없어서
방을 치우고 나면 화장실이 더럽고, 화장실을 치우고 나면 베란다가 더럽고,
베란다를 치우고 나면 부엌이 더럽고, 부엌을 치우고 나면 현관이 더럽고,
이 좁은 집 현관을 치울 때쯤이면 다시 방이 더러워지는 악순환의 구조이다.
아무튼 반성의 마음을 진취적인 계획으로 변신시켜서
이번주 일요일엔 기어이 대청소를 하고 말겠다. 빠이팅~
요즘따라 내가 자주 입에 올리는 말 중의 하나는 '정서적 지지'다.
운동이든 조직이든 2명 이상은 되야되기도 하지만,
이 사회에서 비주류(어감이 안좋지만-) 혹은 아웃사이더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정서적 지지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같다.
이렇게 세상을 보고 듣고 느끼는 사람이 나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
누군가는 나와 같은 감수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또 필요한가를.
거창하게 '동지애' 같은 방식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그저 '토닥토닥' 해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아마 공간의 이동을 겪으면서 이런 부분을 절실하게 느낀 것 같다.
어디에도 제대로 속하지 못한다는 느낌 때문일까-
어쩌면 누군가의 말대로 '속해야 한다'는 것조차 강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너무 구식이고 고루한 인간이라 그럴런지는 몰라도
여전히 나에겐 그런 문제들이 너무 중요하다.
어제 대우건설 집회에 갔다가 노학연의 '활동가' 2호를 받았다. 받고서 읽다가 어머니에 대한 호칭 문제에 대한 단락을 보고 전에 했던 고민(트랙백-[왜 꼭 "어머님" 일까?] 에 관련된 글)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 싶어, 게시판에도 남기고 블로그에도 남기고.
활동가 2호 잘 받았습니다. 여러가지 이야기할 것이 많겠지만, 저는 대우건설 투쟁글에서 '왜 대우건설 여성노동자들은 어머니가 아닌 동지인가'라는 단락에 대한 생각을 올려보고자 합니다.
이 단락의 내용을 제가 요약해보자면 "나이 많은 여성노동자를 어머니로만 인식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데, 이는 보호해주어야할 대상으로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 같습니다. (제 독해가 잘못된 것이라면 지적해주세요.) 그런데 이 논리에는 상당한 비약이 있고, 사실 정확하게 어머니와 보호라는 개념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여성이라서 보호를 해야한다는 것인지, 나이가 많기 때문에 보호를 해야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어머니라는 정의 자체에 보호해주어야된다는 관념이 있는건지....말이죠.
제 생각으론 '어머니'라는 호칭은 여성을 남성과의 관계, 특히 남성을 중심으로 한 가족관계 속에서만 사고하는 방식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여성은 개인 그 자체로 독립적이고 주체적이며 활동적인 것이 아니라, 남성과의 관계(가족관계)속에서만 의미를 획득합니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들은 독립적인 개인으로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어릴 때는 아버지로부터, 커서는 남편으로부터, 나이가 들어서는 아들로부터 보호받아야 하죠. 그렇지 않은 여성들-결혼을 하지 않거나, 자식을 낳지 않거나, 돌봄 노동을 하지 않으면- '가족을 내팽겨치는 비정한' 혹은 '사회성이 결여되었거나 심한 경우 정신세계에 이상이 있다'고 비난을 받게 되고요. 어느 책에선가 '어머니'는 곧 아버지의 '아내'이기 때문에 어머니 개념과 아내 개념은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의 글을 본적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나이가 든 여성들은 누군가의 '아내'이거나 '엄마'일꺼라고 당연하게 간주됩니다. 그녀가 실제로 결혼을 했는지 아이를 낳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거죠. 나이가 든 여성들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아줌마' '어머니'라고 뭉뚱그려부르는 걸 보면, 나이 든 여자가 '아이를 낳지 않고' '남자와 함께 하지 않은 채' 혼자 살아간다는 것을, 또 그것을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걸 상상조차 하기 힘든 것일런지도 모르죠.
만약 결혼을 통해 가족관계를 꾸린 여성들이 다른 식의 정체성을 갖고(예를 들어 노동자) 활동하더라도, 사람들은 가족과 가족과의 관계는 그녀에게 가장 우선적인 과제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반드시 병행해야만 하는 '의무'로 생각합니다.예전에 이런 얘기를 들은 경우가 있습니다. 결혼한/아이를 가진 여성활동가들은 회의를 할때마다(회의는 보통 저녁시간 시작해서 밤 늦게까지 하죠) 곤욕스럽다고 하더군요. 가사노동과 양육을 위해 집으로 일찍 돌아가면 "활동가로서의 자세가 투철하지 않다"고 비난받고, 밤샘회의를 하면 "집과 아이를 내팽겨쳐두는 여자"로 비난받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같은 연령대의 남성노동자들에게는 최우선적인 것이 '활동'이고 그가 가사노동이나 양육을 병행하지 않더라도 비난 받을 일은 결코 없죠. 그래서 저는 '어머니'라는 호칭 뿐만이 아니라 '아줌마', '아가씨'(아가씨의 대립항은 아줌마죠)라는 호칭들, 유독 여성노동자들에게만 붙는 '아줌마' 조합원, '어머니들'...을 문제삼아야 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식의 사고는 글쓴 동지가 서술해놓은 것처럼 당사자 여성들을 대상화함으로써 여성들 스스로가 주체화되는 것을 막습니다. 그녀들의 노동을 '생계에 절박한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그녀들의 투쟁'만'이 조합주의적이고, 미숙한 것처럼 말이죠. 특히 (나이와 관계없이)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에서 남성 간부(혹은 지도부)들의 태도가 대리주의적인 경향을 띄는 건 이런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덧붙여, 왜 대우건설 여성 노동자들은 '어머니'가 아닌 '동지'인가
대우건설 조합원 가운데 나이가 많으신 여성 동지들이 많으십니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여성조합원 동지들을 보고 "우리 어머니 같은 분"이라고 얘기합니다. 실제로 어머니와 비슷한 연령의 여성 동지들이기는 하지만, 나이 많은 여성 노동자들을 단순히 '어머니'로만 인식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여성 조합원 동지들을 투쟁에 함께 하는 동등한 동지가 아닌 보호해주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여성 조합원들을 투쟁의 주체가 아닌 보조적인 역할로 한정짓게 됩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여성 노동자들의 문제를 고민한다면 '여성 동지들을 보호해주는 것이 아닌, 여성 동지들이 주체적으로 함께 활동하고 투쟁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오래된 이들과의 만남은 많은 것들을 떠올리게 한다.
한때는 전부인 것만 같았던 무엇보다도 소중했던 것들,
그것들이 없어도 잘 살고 있는 지금의 나.
상실감과 쓸쓸함을 곱씹어보기도 하고
지나간 시간들을 돌이켜보며 이제는 같이 늙어가, 이러면서 청승도 떨어보고.
낯선이들과의 만남은 온통 긴장 투성이다.
누가봐도 어색하고 긴장된 웃음과 대화 속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온몸이 피곤하고 팔다리가 저려온다.
얼마전부터 팔다리가 저린 증세가 계속, 그렇네.
어쨌건 관계를 유지시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감정 소비다.
이틀간 집에 처박혀있다가 드디어 오늘은 외출을 감행했다.
이 게으른 인간.....
날씨가 춥다춥다던데 넘 오래 갇혀있다 나와서 그런가 바깥 공기가 선선하니 좋기만 하더라.
하긴, 올 겨울이 덜 춥게 느껴지는 것도 내가 올해 실내에 주로 있어서 그럴런지도 모른다.
작년 이맘때쯤은 성진 농성장에서, 집회판에서 덜덜 떨면서 웅크리고있었던걸 떠올려보면....그렇네.....
꽤 늦은 시간이었지만 청계천에도 사람이 많았다...
오랜만에 걸으면서 바람도 쐬고 바깥 풍경도 보고...
늘 느끼는 거지만 서울엔 참 높은 빌딩이 많다.
내 고향이 시골인 것도 아닌데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있으면 왠지 주눅드는 느낌이 드는것 같다.
루체비스타 오늘이 마지막 날인데, '조선일보' 'SK'이런거 광고 제발 좀 안할 수 없을까? 또 자동으로 툴툴댄다...
폰으로 찍은거지만 아무튼...사진 몇 장...
좀 걷다가 교보문고로 향했다....
새로 나온 책들을 보니 사고 싶은 욕구가 막 생겼지만, (게다가 요즘 책들은 예쁘기까지 해서 소장욕구가 더욱 생긴다는거 -_-) 주머니사정을 감안해서 참고 다음주쯤 시간내서 서점에 한번 다시 와야지 하고 생각했다.
좋은 책, 글, 글쓰기...
글쓰기를 잘하기 위해서는 분야를 넘나드는 박식함(물론 많이 알아도 난독증 만드는 학자들도 많지만)과 글재주(이건 어느정도는 타고나는 거 같다)가 있어야하겠지만...요즘 들어 생각하는건 창조적인 사유방식, 발상이야말로 새로운 글쓰기를 만들어낼수 있을 것 같다.
완전히 새로운 감수성이 필요하다.
우주와 이야기하다가 '최후의 만찬은 누가 차렸을까?' 책 얘기가 나왔다. 책 내용과 관계없이 난 책 제목을 보고 또 문득 생각이 들었다. 전혀 다른 물음을 던질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꼭 필요한 것이라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만큼 내가 가진 온갖 고정관념과 편견들을 벗어던져야한다. 내가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곳곳에 습관처럼 배여있는..부르주아적이고, 이성애중심적이고, 남성중심적이며, 비장애인중심적이며, 엘리트적인..기타 열거할수 없는...모든 것들을.
편두통이 다시 시작됐다. 학원에서부터 조금씩 지끈거리더니 집에 오자마자 서랍을 뒤져 아스피린을 먹었는데도 머리는 여전히 아프다. 집에 오는 길에 소름끼치는 일이 또 있었다. (중요한 건, '또'라는 거다. 또, 또, 또! [낯선 남자에 대한 두려움])
퇴근하는 길이었다. 지하철 통로를 걷고 있었다. 이어폰을 꽂고 멍하니 걷고 있어서 지나칠뻔 했지만 분명히 어떤 젊은 여자가 핸드폰을 들고 서성이고 있었다. 그녀는 나와 반대편 방향으로 가려는 듯 했지만 무슨 일인지 선뜻 가지 않고 그 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그녀의 불안한 표정을 보고 뒤를 보니 어떤 술취한 아저씨가 비틀거리며 그녀의 뒤를 계속 따라걷고 있었다. 흠칫했지만 내 마음도 불안해서 갑자기 어떤 용기가 생긴 것처럼 그 자리에 서서 그들을 보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 남자를 보았다. 내 시선을 의식한 것인지 그 아저씨가 다른 쪽을 보고 있는 사이, 그녀는 빠져나갔다. 휴- 나도 이제 그 자리를 떠나도 되겠구나 하며 교통카드를 찍고 나왔다. 술취한 아저씨는 지하철 통로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따라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몇번이나 돌아봤지만 따라오지 않았다. 그리고 5분쯤 기다렸을까, 버스정류장에서 환승할 버스를 타려고 몸을 움직이는 순간 누군가 내 뒤에서 말을 하는 것이 들렸다. 돌아보니 그 남자였다. 미친듯이 소름끼치는 그 순간에 내가 어떻게 버스를 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버스문이 닫히고 버스 정류장에서 여전히 나를 쳐다보며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는 그 남자의 얼굴만은 기억이 난다. 마치 영화속의 한장면처럼, 그 때가...
이런 소름끼치는 일들을 얼마나 더 겪어야 '대담'해질 수 있는 것일까. 언제쯤 그녀도 나도 그런 공포들을 겪지 않을 수 있을까. 영원히 불가능할 것만 같다.
며칠전 티비 틀어놓고 설거지하다가 놀란 사건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생떼 쓰고 난동 피우는 애들 버릇 잡는 프로그램인줄 알았더니
드디어 성정체성 개조까지 할텐가..분개했다.
염색체, 호르몬 검사까지 하더니만 이것도 결국은 부모의 탓이다.
아이에게 남성성을 가르친다더니 인형놀이 대신 화살쏘기를 하고 노는 모습을 보여주더라.
군모를 쓰고 총을 들고 있는 아이의 모습 밑에 "여장보이에서 터프가이로 대변신"이라는 글귀가 씁쓸하기만 하다. 도대체 왜 이렇게 폭력적인 걸까, 정말.
여자가 되고 싶은 남자 아이는 어떻게 '치료' 해야할까라니,
치료 운운 하는 너네들의 병적인 사고야말로 어떻게 치료 좀 할 수 없을까.
제6회 7살 여장보이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수건으로 만든 긴~ 머리! 가냘픈 허리에 휘감긴 분홍치마!
게다가 현란한 댄스에 머리를 매만지는 화려한 테크닉까지!
그런데, 이 모든 행동을 하는 아이가, 남자아이라고?
과연, 이런 아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요!
오늘의 주인공! 7살. 여장보이, 서 원
무려 4년 이상 남모르게 속 끓여온 엄마의 제보!!
유치원에서는 패션쇼와 재즈댄스 수업에만 관심갖는 아이.
미술 시간에도 언제나 긴~머리 화려한 장신구를 한 여자그림만 그리는 아이.
집으로 오면 수건으로 만든 긴~머리에 반짝반짝 머리띠까지 골라 끼고
여자물건에만 집착하는 남자아이.
남자친구들과는 멀리하고 여자친구들과만 노는 아이.
정말 여자가 되고 싶어하는 남자아이.
이런 아이, 도대체 어떻게 고쳐야하는 걸까!!!
그래서, 심리! 아동! 성! 육아!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다각적 솔루션 위원회가 꾸려졌다!
전문가들이 보는 원이의 문제는 과연 얼마나 심각한 것일까?
염색체, 호르몬 검사에서 심리검사까지~ 종합적인 모든 검사 결과!!
웃음. 심리. 치료 전문가 투입 결정!!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가정에서 가장 필요한 현장코치 전문가 투입!!
하루아침에 고쳐지지 않을 여장 퍼레이드.
문제 행동에 대해 부모님은 그때그때 어떻게 반응해야할까?
현장에서 잘못된 육아를 즉각적으로 수정해준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서 들려주는 명쾌한 육아해법의 시간.
놓치지 마세요!
댓글 목록
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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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흣. 저도 애인이랑 그런이야기 해봤는데. 합의도 대충본거 같은데...실제 그런 상황이 되면 실행에 옮길 수 있을지는 미지수.부가 정보
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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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행에 옮겨봤는데, 뼈아팠음. 다자간 연애중에 한명을 끝내려고 하니 상대가 괴물로 변신-_-부가 정보
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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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하하하하하....기분 좀 우울했는데 글 끝에 달린 반응들을 보니 너무 재밌네요.다양한 반응들이 너무 눈앞에 선하거든요.
전 복합적 연애관계의 경험이 있습니다. 의도한 것은 아닌데 살다보니까 그런 관계에 돌입하게 되더라구요.
두 번? (두번 다 여자를 사이에 두고 그랬어요. 아 흑~)
근데 샤님 말대로 정말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자기가 어느 입장에 놓여있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지라 머리칼이 다 뽑혀져나가는 경험이었으니까요.
그럼에도 은수님에게 그런 기회가 찾아와 붙잡으려 한다면 전 박수를 쳐드리는 쪽에 서고 싶습니다.
근데 남자의 입장에서(제가 남자들 속을 다 볼 수는 없지만)볼 때 은수님이 말한 사람들의 반응 중 3,4,8,9번은 그냥 흘려들을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됨.
(여자입장은 정확히 모르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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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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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군// 미지수..^^샤♡// 괴물로 변신한다는게 전 뭔지 알기 땜에 무섭네요.
케산// 답글보니 계속해서 OTL...역시 그냥 흘려들을 얘긴 아니죠? 저도 그렇게 생각은 했어요. 4번 얘기 해준 언니가 상담활동을 하고 있는데,"외도의 고충을 토로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만히 듣다보니 내 직업병일 수도 있지만.." 이랬는데 순간 뜨끔! 하더라고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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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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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백 나중에 풀께요..덧글쓰다가 걍 트랙백으로 바꿨는데, 마무리할 시간이 없어서;; 근데 별 내용은 아님.ㅋ부가 정보
구렛나루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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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이라고 하면 웃길까요? 연애도 한번 제대로 못해본 인간인데, 그럼에도 독점, 소유의 감정은 본연의 감정은 아닌 것 같아요. 그렇더라도 내가 그 상황이 되면? 장담할 수 없음.ㅋ부가 정보
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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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독점적 다자연애'라는 단어는 제가 만든 말이에요. 이 말을 제가 처음 사용한 것은 2000년 11월에 컬티즌이라는 웹진에 '떼사랑'을 주제로 글을 하나 쓰면서인데요, 나중에 이 말이 유명해져서 한겨레21에서 특집으로 다루기도 하고, 그랬더군요. 그런데 그 단어가 영화 대사에도 쓰였군요.저도 유식한 표현보다는 '떼사랑'이라는 표현이 더 좋고요, '폴리' 같은 멋대로 잘라낸 영어 표현은 좀 밥맛입니다.
컬티즌에 실린 원문은 http://cultizen.co.kr/content/?cid=82 에 있으니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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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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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비슷한 글 쓴 적 있는데...폴리아모리를 돕처럼 번역하더군요.부가 정보
ca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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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개방형 결혼이란 말도 많이 쓰던데...이건 지나치게 결혼만 강조해서 그다지 맘에 안들어요.부가 정보
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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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부익부 빈익빈이야 이건.. -_-부가 정보
붉은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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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타인을 소유한다는 것을 원래 불가능하죠. 그런데 그걸 강제하는 과정에서 억압과 갈등이 일어납니다. 그나저나 '비독점'은 좋은 것 같은데, '다자'는 바빠서 가능할까요? 시간과 정신적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일. 저의 경운 구찮아서, 다 쫑내버리는 사단이 나죠. ㅋㅋ 참고로, 저는 질투의 화신입니다. 쩝거한,,연애에도 가끔 '쏠림현상'이 나타나는 듯~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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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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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문제를 스무살 때 쯤 고민했었는데, 그 후로 지금 껏 만난 연인들은 잘 동의해주지 않더라구요. 사실 그렇게 될 일도 없었고...(연애결핍 ㅠㅠ 한명도 힘든데, 둘이나 >.<)부가 정보
나침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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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가능한가요? 또, 내가 가능하다고 해도 상대방에게 동의를 구하고, 또 동의하는 과정이 깔끔할 것 같지는 않아요.가끔씩 개인의 의지에 따라 일부일처제의 성격은 바뀔 수 있다고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이건 제가 남성이라서 그런건가.. 하기도 하고. 최근에 저도 "내가 질투란 걸 할 줄이야.."라는 생각이 들어서 "비독점적"이란 것이 가능할까 싶어요. "비독점적"이 되는 순간, 연애는 끝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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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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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가 뭘까... 고걸 재정의할 수 있다면 배타/독점 어찌고에 대해 쪼매 더 구체적으로 파고들어가볼 수 있을 거 같은디요? 연애를 혹시 사랑의 1대1 소유관계 쯤으로 가정하고 들어간다면 (디따리 재섭는 비유이긴 하지만... 자본이 생산수단을 배타/독점 소유하듯) 배타/독점 욕망의 일렁임(단연 질투를 포함)은 필연이 아닐까... 한다는.... 요런 씨잘데기 없는 골타분+먼지나는 생각을 한 수십년 동안 하고 있심다~ (저 재섭는 비유는 작년에사 겨우겨우 해볼 수 있었다는...요기서요=> http://blog.jinbo.net/leeus/?pid=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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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oP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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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연애를 주제로 한 인문서적은 없을까요? 이걸로 파고든 학자나, 있을법도 한데.부가 정보
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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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군// 네^^구렛나루저// 장담할 수 없다는게 큰 걱정이죠 하하하
돕// 아, 그렇군요! 글 잘 읽었어요^^ '폴리'는 일종의 은어같은 성격이 있는듯..'떼사랑'은 예쁜 말인데, 전 '비독점적'이란 말이 참 좋은 것 같아요.
canna// 성개방형 결혼은...뭔가 성=sex만 의미하는 거 같다는; (역시 전 고지식해요-_-)
거한// 으음?
붉은사랑// '다자'가 바빠서 가능하지 않을거란 의견도 있었죠. ㅋ 근데 전 현재 연애스타일이 워낙 바쁘지 않은터라....^^
고래고래// 역시 '동의'과정이 어렵다고 생각해요
나침반// '동의' 얘기가 계속 나오네요. "동의하는 과정이 깔끔할 것 같지 않다."는 말이 무슨뜻인지 알 것 같아요. 특히 연애관계도 권력관계의 하나라 본다면, 동의와 강제가 종이한장 차이일 수도 있겠죠. 그래서 어려워. 근데, "개인의 의지에 따라 일부일처제의 성격은 바뀔 수 있다"는 생각에 전 그닥 동의하진 않아요. 일부일처제가 연애와 결혼과 가족의 '한' 방법일 뿐이라면 몰라도요. 그리고 왜 친구관계에선 '비독점적'이더라도 유지될까요?? 친구와 연애의 경계는 또 뭘까.
리우스// 그러게요, 연애는 뭘까? 친구와 연애의 경계 얘기도 했지만, 정의가 사람들에게 의미화되는 방식이 중요한 것 같네요.
NeoPool// ㅎㅎㅎ 틀림없이 있을텐데요-찾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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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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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연애관계를 독점/비독점을 중요한 기준으로 나누는 것조차 현실을 전부 반영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에 '복합적'연애관계라는 말을 사용해요.(한편으로 연애를 독점/비독점이라는 구분으로 협소화시키는 것 같기도하고)훨씬 다양한 관계망들을 포함할 수 있다는 장점때문이지요.
그리고 사견이지만, 연애와 친구(이성애의 경우엔 상대 성, 동성애의 경우에는 같은 성)사이의 경계에는 성적 접촉의 유지여부가 무시못할 요인이 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이성애의 경우, 친구로 지내던 상대 성과 우연히 성적 접촉을 하게되면 관계가 이상해지기 시작하지 않습니까?
저는 단순히 친구관계이면서 성적 접촉을 그와는 독립적으로 유지하는 관계는 거의 보지를 못했습니다. 대부분은 그러다가 연애관계로 발전하거나 그런 관계가 부담스러워서 '쫑'나는 경우(그런 육체적 관계까지 할 정도로 서로를 사랑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하든 뭐든)가 더 많죠.
즉, 연애관계는 사람들이 제 아무리 액면상으로는 부정할지 몰라도 이렇든 저렇든 '잠자리의 공유'라는 특수한 열망과 특이한 존재방식으로 존재합니다.
이것이 서로간에 친구관계보다도 훨씬 더 격렬한 소유감정을 자아내게한다고 생각합니다.
리우스님이 찾고 싶다는 연애에 대한 책은 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 오히려 문제라고 생각.ㅋㅋㅋ
그러다보니 진짜 좋은 책을 구하기가 쉽지 않죠.
전 얼마 전에 알렝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책을 뒤늦게 재미나게 봤어요.
연애에 빠진 남자의 심리상태를 시작부터 헤어짐까지 아주 세밀하고 솔직하게 묘사한 책이죠.
이 책이 다른 책들보다 더 특별히 우수하지도, 덧글이 달리고 있는 이 블로그의 원글의 문제의식을 전부 담지는 않고 있지만 한번쯤 재미삼아 읽어보면 나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연애에 대해 학술적으로 너무 딱딱하게 쓴 책들보다는 더 낳은 것 같음)
단, 이 책의 약점은 저자가 매우 젊었을 시절(20대 중반?)에 쓴 것이라 아무래도 다소 추상적인 면이 있다는 것과 더러는 작가 개인의 특성으로도 볼 수 있는 현학적인 면이 좀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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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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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산/ 저는 연애에 대한 책 안찾고 있는디요...^^부가 정보
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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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리우스님이 아니라 네오폴님이었군요. 실수!부가 정보
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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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산// '복합적' 연애관계라. 그런 단계가 되면 참 좋을텐데, 워낙에 지금 연애들이 '독점적'이라 '비독점적'이라는 말을 강조하고 있는 것 같아요. 친구와 애인의 경계를 케산님처럼 성적접촉으로 두는 사람도 있던데, 제 주변엔 그렇지 않은 인간들도 있는지라 그건 다소 애매모호한것 같네요.^^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한번 읽어봐야겠어요.부가 정보
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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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적 연애관계란 사람수를 의미하는게 아니라 각자의 감정의 폭과 다양한 모습에 촛점을 맞추는 것이랍니다. 거기에 딸린 것이 이른바 독점/비독점 구분이겠구요. (자칫 독점/비독점 구분으로만 연애관계를 구분하려들다보면 그 구분자체가 생명력을 상실한 매우 성마르고 형해화된 구분으로 전락할 위험이 높다고 생각해서)심지어는 두쌍의 커플들이 있는데, 각각의 커플들 사이에 나타나는 감정의 폭과 형태도 매우 다양할 수 있죠.
과연 커플들은 죄다 모두 동일한 감정상태와 애정관계를 보여주는 것일까요?
그리고 연애와 친구사이의 경계선으로 '성적 접촉'에 개의치 않는 사람들 간혹 가다 있습니다.
제 주위에도 '한 때' 그런 사람들이 있었구요. (솔직히 말하면 저도 한 때 이런 시기가 있었구요)
사람 살다보면 여러가지 예상치 못한 일들을 겪을 수 있으니 이해할 수 있죠.
그런데 은수님 주위의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들의 관계라는게 연애관계처럼 지속적이고 안정적이냐하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제가 들었던 두가지 방향(연인관계가 되던가 헤어지던가)말고도 그냥 육체적 접촉 없는 친구관계로 돌아가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봤거든요.
그럼에도 육체적 관계를 계속하면서 친구관계를 아주 오랫동안(짧은 단기가 아니라 보통 5~6년이상) 지속하는 사이라면 아마 자본주의적 연애관계를 초탈한(?) 사람들-이런 경우라면 프리섹스주의자에 가깝지 않을까요?-이겠죠. 물론 그 사람들이 특정한 관계내에서만 그러는지 아니면 다른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도 차별을 두지 않고 그러는지, 주도하는게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좀 따져봐야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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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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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산// 커플들은 당연히 동일한 감정상태와 애정관계에 있지 않죠. '독점적'이라는 말을 붙인다고 해서 무조건 나쁜 것도 아니고요...육체적 관계와 감정이 분리될 수있다기 보다는,케산님 말대로 워낙 다양한 커플들이 존재하다보니, 친구-애인의 경계는 개개인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는 또 sex 여부이겠지만...그렇게 치면 또 어디까지가 sex란 말이냐..뭐 그런 생각들이 꼬리를 무네요. ㅋ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