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 변비 얘기를 했었는데, 내친 김에 이번에는 똥구멍 얘기를 좀 해볼까합니다. 조금 고상하게는 항문이라고도 하고, 조금 귀엽게는 똥꼬라고도 부르지요.

곰곰 생각해보면 우리 몸 중에서 항문만큼 괄시받는 곳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한번은 '똥구멍이 아프네'하고 혼잣말을 했더니 사람들이 키들키들 웃더군요. 정말 이상합니다. 머리 아프다고 하면 감기 걸린 건 아니냐, 두통약은 먹었냐 물어봐주면서, 똥구멍이 아프다는데 왜 웃기만 하느냐구요. 심지어 어떤 사람은 '창피하지도 않냐'고 타박을 주기도 하더군요. 머리나 똥구멍이나 다 내 몸의 일부인데, 왜 똥구멍은 다들 더럽게 여기고, 심지어 그 이름조차 입에 올리기 부끄러워하는 걸까요.



항문이 하는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똥을 내보내는 일입니다. 집안에 쓰레기를 쌓아놓고 살 수 없듯이 우리가 먹은 것들 중에 쓸모없는 것들과 우리 몸 곳곳에서 생겨난 노폐물들이 한데 모여서 똥을 이루는데, 그걸 내보내지 못한다면 큰일나겠지요.

그렇다고 항문을 단순히 '똥이 나가는 구멍'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해입니다. 똥을 잘 누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결정적인 순간이 올 때까지 똥이 함부로 나가지 않도록 막아주는 일이거든요. 만일 항문이 단단히 막지 못하면 똥이 만들어질 때마다 몸밖으로 질질 흘러나와서 참으로 곤란해질겁니다.

뿐만 아닙니다. 항문은 단순히 열림-닫힘 두가지 기능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방귀 뀔 때를 생각해보세요. 똥은 하나도 안나오고 방귀만 절묘하게 내보내는 기술! 항문이 이런 고도의 기술을 구사하지 못한다면, 우린 방귀 뀔 때마다 화장실에 달려가야만 하겠지요.

이렇게 오묘하고도 중요한 일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바로 항문의 괄약근입니다. 항문에는 두 개의 괄약근이 있고, 그 주변에는 이 근육들이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많은 핏줄들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런데 항문 주위로 혈액 순환이 잘 되지 않으면 이 핏줄들 속에 피가 고이면서 핏줄이 부어오르게 되고, 그게 바로 흔히 치질이라고 부르는 '치핵'이라는 병입니다. 치핵이 있으면 똥을 누다가 자칫 부어오른 핏줄에서 피가 나기도 하고, 아주 심해지면 핏줄이 축 늘어져서 항문 밖으로 튀어나오기도 하지요.

'치열'은 치핵과 아주 비슷한 병입니다. 이건 마치 입술이 터서 갈라지듯이 항문 속 점막이 찢어지는 병이지요. 종종 치열 아래쪽으로 피부 주름이 밀려서 항문 밖으로 튀어나오기도 하기 때문에 치핵이랑 혼동하기 쉽습니다. 치핵처럼 똥을 누다가 피가 나올 수도 있구요. 하지만 치열이 훨씬 더 아프다고 합니다.

우리 옛말에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표현이 있지요. 그게 아마 치열을 뜻하는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뼈빠지게 일해도 가진 자들의 곳간을 채워줄 뿐 정작 자신의 주린 배는 채우지 못하던 가난한 민중들은 허기를 달래기 위해 풀뿌리를 캐고 나무 껍질을 벗겨 먹었다고 하잖아요. 초근목피(草根木皮)라는 말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식물의 뿌리나 줄기에는 사람이 소화시킬 수 없는 성분이 많이 들어있습니다. 소화되지 못한 성분들은 모두 똥으로 나오게 되므로, 이들의 똥은 무척 단단하고 거칠었을 겁니다. 평생을 그렇게 거칠고 단단한 똥을 누다가 보면, 고운 쌀밥과 고기반찬을 먹던 양반님네들에 비해서 아무래도 치열이 더 잘 생겼을 테지요. 그야말로 무얼 먹기도 쉽지 않고 싸기도 힘겨운 고달픈 가난이 '똥구멍 찢어질' 만큼의 가난이었을 겁니다.

요즘도 치핵과 치열은 무척 골치 아픈 병입니다. 쉽게 낫지도 않고, 수술로 치료를 해도 재발하기 십상입니다. 게다가 변비까지 함께 있으면 그야말로 설상가상이지요. 변비로 인해서 똥이 너무 단단하게 뭉치면 항문 주변 혈액순환이 더 나빠져서 치핵이 악화되고, 딱딱한 덩어리가 항문 속을 꽉 누르면서 지나가기 때문에 점막이 더 심하게 상처를 받게 되거든요. 뿐만 아니라 항문에 통증이 심하면 똥을 누는 일이 너무 괴롭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똥을 참게 되고, 그 결과 변비가 생기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치핵·치열과 변비의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이지요.

이렇게 항문이 아파서 괴로울 때는 좌욕을 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따뜻한 물에 담그는 것만으로도 통증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상처 부위의 회복도 빨라지거든요. 그래서 병원에서는 항문 주변에 수술을 받은 환자들이나 아이를 낳은 산모들에게도 매일 좌욕을 하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좌욕을 하는 방법을 간단히 살펴볼까요.

좌욕은 한마디로 따끈한 물에 엉덩이를 자주 담그어 주는 것입니다. 목욕을 하듯이 따뜻한 물 속에 몸을 담그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지만 날마다 그럴 수 없으니까 엉덩이만이라도 목욕을 시켜주는 것이지요.

좌욕에 쓰는 물은 손으로 만져서 따뜻할 정도의 온도면 딱 좋습니다. 물이 너무 차면 혈액순환에 오히려 방해가 되고 물이 너무 뜨거우면 엉덩이를 델 수도 있거든요.

물은 그냥 수돗물을 쓰면 충분합니다. 가끔 물에 소금 따위를 풀어서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렇게 해서 소독이 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상처를 자극할 수 있으니까 그냥 깨끗한 수돗물을 쓰는 것이 좋겠습니다.

따뜻한 물이 준비되었다면 그 다음엔 엉덩이를 담글 만한 그릇을 준비하세요. 그릇의 크기는 엉덩이를 푹 담그고 편하게 앉을 수 있는 정도가 좋습니다. 혹시 집에 의자식 양변기가 있다면 변기 위에 얹어서 쓸 수 있는 좌욕기를 하나 사도 좋겠지만 집에 있던 대야를 써도 상관없습니다. 엉덩이를 담근 채 편하게 앉아있을 수만 있다면 말이지요.

자, 따뜻한 물과 적당한 그릇이 준비되었다면 그 다음에는 흐르는 물로 사타구니와 항문을 깨끗이 닦은 뒤 엉덩이를 담그어 주기만 하면 됩니다. 좌욕 시간은 너무 길 필요도 없이 한번에 10분 정도면 적당하구요. 어쩌다 한번 오래 앉아있는 것보다는 짧더라도 자주, 가능하면 하루에도 여러 차례 하는 것이 더 좋거든요. 특히 똥을 누고 난 직후에 좌욕을 하면 위생에도 아주 좋고 항문의 통증도 훨씬 줄일 수 있습니다.

좌욕의 효과가 하루 아침에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증상이 아주 심할 때는 좌욕을 한 뒤에 항문에 연고를 발라서 치료효과를 보완해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몇 주일간 꾸준히 좌욕을 하다보면 항문의 위생상태와 혈액순환이 좋아지면서 치열이나 치핵이 서서히 좋아지게 되지요. 그야말로 똥구멍에 볕드는 날이 오는 겁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5/01/19 09:49 2005/01/19 09: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