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웰빙’ 바람 덕분에 마라톤을 새로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굳이 거창하게 마라톤까지는 아니더라도 달리기 운동은 운동화와 뛸 수 있는 공간만 있으면 아무데서나 혼자서라도 할 수 있는 운동이니까 참 좋은 것 같습니다. 규칙적인 달리기 운동은 심장과 폐를 튼튼하게 하고 온몸의 근육을 강화시켜 주기도 하구요. 하지만 관절이 약하거나 체중이 너무 많이 나간다면 섣불리 달리기를 시작하지 말아야 합니다. 달리기를 하면 발목, 무릎, 허리 관절에 몸의 하중이 크게 걸려서 자칫하면 관절을 망가뜨릴 위험이 있으니까요. 이런 분들은 달리기처럼 관절에 부담을 주는 운동보다는 수영이나 자전거타기 등 관절에 체중을 싣지 않아도 되는 운동이 좋습니다. 일반적으로 심장이 약하거나 폐기능이 좋지 않은 분들에게 달리기는 심폐기능을 강화하는 좋은 운동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큰 욕심을 내면 안됩니다. 몸이 견딜 수 없는 정도로 무리를 하다가는 쓰러지기 십상이지요. 걷기 운동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운동의 세기와 시간을 늘려가야 심폐기능도 차근차근 튼튼해지는 겁니다. 특히 협심증이나 심근경색을 앓았던 분들은 달리기나 그밖의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꼭 의사와 상의를 하셔야 안전합니다. 달리기 운동 중에 대표선수를 꼽으라면 단연 마라톤일겁니다. 마라톤은 길고 험난한 고난의 스포츠라서 올림픽의 꽃이라고도 부르지요. 저는 한번도 해본 적이 없지만, 두시간 여를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는 일이란, 상상만 해도 힘겨운 자기와의 싸움일 테지요. 어디 힘만 드나요. 단조롭게 그저 달린다는 게 또 얼마나 지루할까 싶습니다. 하지만 정작 마라톤을 해본 사람들 얘기는 전혀 다르더군요. 달리면서 느끼는 바람, 햇살, 그리고 주변에 펼쳐지는 풍경들, 흠뻑 땀에 젖는 기쁨, 그리고 달리는 그 자체가 즐겁고 재미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라톤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중독자’라고도 합니다. 이들은 날씨가 화창하면 달리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리고, 날이 흐리면 달릴 수 없어서 기운이 빠진다더군요. 차를 타고 가다가 쭉 뻗은 길만 봐도 달리고 싶고, 남이 신고 있는 운동화만 보아도 달리고 싶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실제로 장거리 달리기를 하면 몸 속에서 엔돌핀이 나와서 기분이 좋아지고, 심하면 달리기를 하지 못하는 날 금단 증상을 느낄 정도로 중독이 될 수도 있답니다.


얘기인즉슨 아테네가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가던 무렵, 마라톤 평야에서 페르시아 대군을 물리치고 승리를 거두게 되었는데, 이때 뜀박질 잘하는 전령사가 마라톤 평야부터 아테네 시까지 쉬지 않고 달려와 승전보를 전하고 죽었다는 것이지요. 그걸 기념하기 위해 마라톤 평야의 이름을 따서 달리기 경기를 하게 되었답니다. 마라톤 전투에서 아테네에 패배한 페르시아는 오늘날의 이란입니다. 마라톤 경기가 아테네의 승리를, 즉 페르시아의 패배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만큼 이란에서는 마라톤 경기를 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그런데 좀 엉뚱한 생각 하나 해볼까요? 그 전령사가 도대체 왜 죽었을까요? 죽을만큼 달리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정말 죽을 각오를 하지 않는 한 본능적으로 조금씩 쉬어가면서 죽지 않을만큼 달리게 마련입니다. 한시바삐 응원군을 보내달라거나 군량이 떨어졌으니 지원을 해달라는 급박한 요청도 아니고 승전보를 전하는 일이었는데 왜 그는 죽도록 달려야 했을까요? 일개 졸병에 불과했을 그 전령사가 정말로 목숨을 걸 만큼 승리의 기쁨에 넘쳤던 것일까요? 알고보니 그 전령사는 최대한 빨리 승전보를 전하라는 명령을 받았던 것입니다. 당시 페르시아의 병력은 아테네보다 월등히 강력했기 때문에, 누구도 아테네가 승리할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아테네 시민들 사이에서조차 전쟁에서 패배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였고, 이 때문에 시민들의 폭동이 일촉즉발의 위험에 있었다고 하네요. 전쟁에서의 패배, 그리고 그 이후에 이어질 핍박과 수탈이 뻔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아테네 시민들은 얼마나 괴롭고 혼란스러웠을까요. 그러니 전쟁을 이끌었던 지배계급으로서는 조금이라도 빨리 승전보를 전하여 시민들의 저항을 무마시키고 사회를 안정화시켜야 했을 테지요. 기왕 전쟁 이야기가 나왔으니, 전쟁과 스포츠 이야기를 하나만 더 해볼까요. 장애인 올림픽 얘기인데요. 장애인의 고난과 이를 극복한 투지, 그 결과로서의 승리 등 그저 보고만 있어도 감동을 주는 장면들로 기억되기 쉽습니다만, 사실 장애인 올림픽은 대규모 전쟁 희생자들의 문제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장애인 올림픽은 영어로 패럴림픽(Paralympics)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신체 마비를 뜻하는 파라플레지아(paraplegia)와 올림픽(olympics)을 합친 말입니다. 말 그대로 해석하면 "신체 마비자의 올림픽"이라는 뜻이지요. 마라톤이 마라톤 전투를 기념하면서 시작되었다면, 장애인 올림픽은 2차 세계대전의 부상자들 문제 때문에 시작된 겁니다. 6년간 이어진 2차 세계대전에서 전 세계 젊은이들 중 1억 명 이상이 전쟁에 동원되었고, 민간인과 병사를 합쳐서 약 5천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으니 부상자는 오죽이나 많았을까요. 장애인 올림픽은 바로 이 2차 세계대전에서 척추를 다쳐 하반신이 마비되었던 이들의 운동 치료를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전쟁은 권력과 자본을 쥔 이들의 탐욕 때문에 시작되고 끝나지만, 정작 그 전쟁 때문에 생명과 건강,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모두 희생해야 하는 것은 언제나 민중입니다. 그 희생에 대한 민중의 분노가 마라톤과 장애인 올림픽의 감동으로 왜곡되고 마는 건 아닐까요. 더욱 안타까운 일은 이런 야만적인 일들이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라크 침략전쟁만 하더라도 이미 십만 명이 넘는 이라크 민중과 천오백여 명의 연합군 병사들의 목숨을 빼앗았지만, 미국을 필두로 한국을 비롯한 점령군들은 아직도 평화재건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이라크 민중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지난 1월 말 브라질에서 열린 제5차 세계사회포럼에서는 돌아오는 3월 19-20일에 전세계 동시다발 반전 행동을 결의했습니다. 세계사회포럼은 자본의 세계화를 위해 1999년부터 시작된 세계경제포럼에 맞서는 자리인데, 권력과 자본을 손에 쥔 이들의 세계화가 민중들에게는 폭력과 야만의 세계화일 뿐이라는 점에서 전세계 민중의 반전 행동을 제안하는 것이지요. 우리의 3월이면 봄바람이 참 좋을 때입니다. 봄볕을 온몸에 받으며 달리기나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이 제법 늘어나겠지요. 그렇게 달리면서 기원전 마라톤 평야에서 피흘리며 쓰러져갔던 아테네와 페르시아의 병사들과 밀레니엄 시대에도 총알과 폭탄, 미사일로 속절없이 살해당하거나 전쟁의 상처를 온몸에 안고 살아야 하는 이라크 민중들을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최근 ‘말아톤’이라는 영화가 유명하던데요. 달리기를 너무도 좋아하는 소년이 있는데 자폐증이라는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으면서 마라톤을 해나간다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영화를 아직 보지 못해서 왜 제목이 ‘말아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전 세계 곳곳에서 다 함께 ‘이라크 점령군 철수! 전쟁 중단!’을 외치기로 한 날인 3월 19일과 20일에, ‘전쟁하지 말아톤’을 하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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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24 14:17 2005/02/24 1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