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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8/07
    내 몸뚱아리....
    초보좌파
  2. 2006/08/07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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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6/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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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6/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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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6/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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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뚱아리....

1년 전...키 166,  몸무게 76, 가슴둘레 105, 허리둘레 36

 

98년도로 기억한다....내 몸이 너무 왜소하다고 생각했다...'남자'라면 키도 웬만하고 덩치도 있고 근육도 빵빵하고....

그래서 그 해 여름에 몸 키우기를 시작했다...

 

하루에 우유 1리터짜리 2개는 기본...목마르면 물 대신 우유를 마신다...

하루 한 끼는 삼계탕, 한 끼는 고기...살을 찌우고 근육을 만들기 위해서...

하루에 2시간~2시간30분씩 웨이트트레이닝...가슴과 팔뚝에 우람한 근육을 위하야...

결과는 성공....남들은 나를 작은 조폭이라고 불렀다...

갑자기 불어난 몸뚱아리를 감당하지 못해서 무릎과 허리에 무리가 오는 바람에 한의원에서 침을 맞아야 하는 약간(?)의 부작용이 있긴 했지만...ㅋㅋㅋ

 

"몸 좋은데요" "덩치가 좋으세요" "밤거리에서 만나면 기분 안 좋을 것 같은데요" "남자답네요" "팔뚝이 엄청나네요"...ㅎㅎㅎ...그려...이 정도는 되야 어디서도 꿀리지 않지...가슴과 팔뚝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옷을 입기 시작했다...나를 바라보는(사실 나를 보는 것도 아닐 터인데...또 나를 좋게만 바라보지도 않을 터인데...혼자 생각에^^;)  남들의 시선이 만족스러웠다...

 

그런디....키는 워쩔거여? 본시 타고난 것이라 어쩔 수 없는 것인디...키가 작은 것이 결정적 흠이네...'남자'라면 다른 사람들이 요구하는 '키'가 있지 않은가 말이여...하늘 높은 줄 모르고 땅 넓은 줄만 아는 꼴 아닌감?.....음....그려도 워뗘...이만한 덩치면 '남자'답지 않은가 말시.....

 

1년 후 지금...키 166, 몸무게 59, 가슴둘레 95, 허리둘레 28

 

따로 다이어트를 하지는 않았다...남들은 몰라 보게 변해버린 나를 보고 다이어트의 비밀이 무엇이냐고 물어 본다...다이어트?....다이어트가 집단 정신병임에는 틀림없나 보다...갑자기 살빠진 내 걱정은 안해주고 말이야 다이어트부터 물어 보는 거시 말이여...그게 왜 물어보는 사람 잘못이겄냐? 이노무 자본주의 사회가 한편으로는 실컷 먹으라고 식품 광고를 무슨 보약 광고하듯이 떠들어대면서, 한편으로는 다이어트 안 하면 인간도 아니라고 떠드는 바람에 기껏 먹고 나서 쌔빠지게 살빼야만 하는 것 같이 되어 버린 세상 아닌감....

 

개인 사정상 맘고생, 몸고생이 많았다...술과 담배가 엄청 늘었고, 잠은 설쳤으며,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하루가 다르게 살이 빠졌다...

 

갑자기 살이 빠져서 걱정되어 병원 검진까지 받았다...이상 없단다...스트레스로 인한...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운동은 꾸준히 적당히 했다...지금도 틈만 나면 운동하려고 한다....

 

그럼...그동안 찾아 헤맸던 나의 '남자다움'은 어떻게 된거여?...지금 나는 '남자답지' 않은 것이여?...몸뚱아리에서 '남자다움'을 찾으려고 했던 너의 정체성은 어디로 간거여?...이제 너는 무슨 자신감으로 '남자다움'을 말하려고 하는거여? 넌 이제 남자도 아닌거여?

 

다행히 요즘은 근육질의 남자보다는 약간 마른 형의, 깡마르지 않은 약간의 근육을 가진 남자형이 주류인 것 같다....고 스스로 위안하면서 ㅋㅋㅋ

 

음....그럼 이제는 다른 형태의 '남자다움'?을 내가?...흐믓흐믓...^^;

 

뱃굴레가 줄어들어서 허리 근처에 군살이 전혀 없다...

배는 쏙 들어가서 뱃근육이 만들어지고....

가슴 근육은 보기 싫지 않을 만큼 탄탄함을 유지하고...

팔은 적당한 근육으로 '남자'의 힘을 지탱하고 있다...

입어 보지 못했던 쫄티도 입어 보고...

 

근디.......

내 몸뚱아리에 대해 슬그머니 화가 나기 시작했다...

1년 전이든 1년 후든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었다...

'남자다움'과 '몸' 숭배.....에 대한....살이 찌던 살이 빠지던 내 몸뚱아리에서 찾으려 했던 그 '남자다움'의 정체에 대해 조금씩 역겹다는 생각이 들어거던.....몸뚱아리를 몸뚱아리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나에게 강요하고 있는 기준에서 만족을 얻으려고 하는...그 기준에서 '안도'하고 '자신'있어 하는...그래야 하는 것만 같은...그래야 남들 속에서 소외되지 않을 것 같은.....

 

물론, 과도한 식생활을 극복하고 (이것은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텔레비젼을 조금만 들여다보라...온통 웰빙이다...잘먹고 잘살기의 대명사가 맛있는 거 많이많이 먹는 거라고 하지 않나...) 적당한 체중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골골거리다가 어이없이 죽고 싶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생각하기 시작했다....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은 성차별을 통한 성역할 고정을 최전방에서 외쳐대는, 인간에 대한 반역의 단어들이 아니겠는가.....

대가리 속에서는 생각한다...'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인간'이 있을 뿐이라고...그리고 '인간'과 '인간 아닌 것'이 아니라 오직 '존재의 존엄'이 있을 뿐이라고...

근디 몸뚱아리는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에 익숙해져 있던 게 아닐까....머리와 몸이 따로 놀고 있는 또라이였다...

 

'몸'은 남녀 성차별의 가장 좋은 숙주....

더군다나 '남자의 근육'과 '여자의 날씬함'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요구되어졌던 몸뚱아리의 본능이 아니라, 남자의 몸과 여자의 몸을 욕망의 대상으로 상품화시켜온 결과가 아니겠는가....남자의 몸과 여자의 몸으로 남자와 여자의 역할을 고정시켜온 성차별의 도구이자 결과가 아니겠는가...왜 남자는 근육질의 덩치이어야 하고, 여자는 섹시한 날씬함이어야 하는가 말이다...

 

나의 몸을 나에게 되돌려 달라....!!!

 

요즘에 운동하면서 생각한다...난 왜 운동하지?

 

군살없는 몸매와 보기 좋은 근육을 위해?

거울 앞에 서면 군살없는 몸매에 대해 투정부리지는 않는다...사실은 아직도 일종의 흐뭇함까지...이런 제길....하면서도 살찌지 않는 몸뚱아리에 대해 만족해 하고 있는 것은 사실 아닌가?  그러나...적어도 군살없는 몸매를 위해 운동하지는 않겠다고....쩝^^; 왔다갔다 하고 있다....

 

그럼? 건강을 위해서? 그려 건강을 위해서...

그러나...건강마저도 '웰빙'이라는 이름으로 이윤을 뽑아 먹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적어도 '웰빙'을 외치지는 않겠다고...생각하면서...헥헥헥....운동한다....근디...그래도 노동자를 위한 웰빙은 수없이 외쳐야 되는 거 아녀????

 

에구...아직도 내 몸뚱아리의 주인은 내가 아닌갑다....그럼 너는 뚱뚱한 것이 좋다는 거냐?...라고 묻는다면?....아니 싫어, 다만 뚱뚱한 것도 상관없다는 거야...라고 횡설수설 말하려는디....

 

근디, 진짜로 그렇게 생각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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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한겨레신문 독자투고란 "왜냐면"에 실었던 글]

 

   고등학교에서 독서를 가르치는 교사다. 지난달 19일치 〈조선일보〉가 “편향된 가치관을 세뇌교육”했다며 ‘문제 교사’로 몰아간 당사자다. 문제의 기사는 진실을 교묘하고도 철저하게 왜곡했을 뿐 아니라 여전히 ‘빨갱이 이데올로기’에 갇힌 마녀사냥에 지나지 않는다.

 

   교과목의 특성상, 다양한 관점의 글들을 접하게 된다. 기존의 우리 사회의 지배적 가치관과는 다른 관점, 즉 이 사회의 기득권층의 관점과 논리뿐만 아니라 사회의 약자와 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관점도 있음을 접한다. 학생들 역시 다양한 관점들을 접함으로써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교사는 이러한 다양한 관점을 소개할 수 있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이미 청소년들에게 이른바 ‘편향된’ 가치관을 주입시키고 있다.    

   지난 군사독재 시절에 청소년들은 ‘교련’ 과목 등을 통해 군사주의, 국가주의, 폭력, 명령, 복종 등의 가치관을 내면화할 수밖에 없었다.

   상업자본과 남성가부장 문화 속에서 ‘날씬함’이 여성다움의 잣대가 되어버려 자신의 정체성을 날씬함에서 찾으려는, 왜곡된 가치관이 청소년들에게 내면화되어 가고 있다.

   교과서에서는 인권을 이야기하지만, 현실에서는 두발규제, 체벌 등의 폭력 앞에서 힘의 논리가 청소년들에게 내면화되어 가고 있다.

   조폭들의 의리와 폭력이 미화되는 상업영화 속에서 남성가부장 문화와 폭력이 청소년들에게 내면화되어 가고 있다.

   기업의 이윤 추구를 위해 조작된 마구잡이식 ‘월드컵 애국주의’에 청소년들이 그대로 노출되면서 집단주의와 전체주의가 내면화되어 가고 있다.

   남성, 성인, 비장애인, 이성애자, 가진 자 중심의 가부장 문화 속에서 여성, 어린이, 청소년, 빈민 등이 철저히 외면당하는 사회 현실이 청소년들에게 그대로 내면화되어 가고 있다. 이처럼 ‘편향된’ 가치관을 교육하고 주입시키는 것은 바로 우리 사회의 기득권 집단이며, 조선일보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관점을 이야기하는 것이 편향교육이며 세뇌교육인가? 경쟁과 이윤이 인간을 소외시키고 있음에도 그것이 당연한 것인 양 이야기하고, 사회적 약자의 권리에는 무관심하면서도 시혜를 베풀고 도와주는 척하면서 사랑을 이야기하는, 가증스러운 집단적 행태야말로 편향교육이자 세뇌교육이 아닐까?

 

   인간이 지금만큼이라도 자유로워질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관점에 대한 부정과 폭력을 극복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다양함이 인정되고, 또 그것이 교실에서 자유롭게 이야기될 수 있을 때 이 사회는 더욱 풍부해지고 자유로워질 것이다. 교실은 차이에 따른 차별을 부정하고, 다양성이 존중되는 진보의 공간이어야 한다.

 

이용석 /경기 부천시 상동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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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폭력은 있는가?

 

폭력의 합리화


  7살 때쯤으로 기억한다.

  손재주가 남다른 아버지께서 나에게 장난감 칼을 만들어 주셨다. 단단한 형광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그 칼은 친구들 사이에서 부러움이었다. 그 당시 형광 플라스틱을 구하기 힘든 이유도 있었지만, 친구들의 장난감 칼과 나의 장난감 칼이 맞부딪히면 친구들의 칼이 휘어지기 일쑤였고, 나무로 만들어진 칼들은 부러지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동네에서 골목대장을 도맡아 할 수 있었다.

  “나를 따르라”에서 느껴지는 의기양양함은 그렇게 어린 마음 속에 ‘작은 영웅’을 만들고 있었다.


  그 칼은 내 몸의 분신과 같았다. 언제 어디서나 그 칼은 내 허리에 꽂혀 있었다. 친구들과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혹은 어쩌다 친구들과 약속이 어긋나 혼자 놀게 되었을 때 그 칼은 나를 심심하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팔랑거리며 날아 가는 배추흰나비는 ‘적’의 대용이었다. 정확하게 겨누어 내리치면 배추흰나비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한 쪽 날개를 잃고 땅으로 떨어졌다. 배추흰나비가 어떻게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확한 칼놀림에서 느껴지는 만족감과 ‘적’을 쓰러뜨렸다는 성취감이 뿌듯할 뿐이었다. 하루 종일 뙤약볕에 시달린 버드나무 가지가 이제는 힘이 겨워 땅으로 축 늘어져 있다. 그 가지는 나의 앞을 막고 있는 ‘적’일 뿐이다. 버드나무 가지의 중간 부분을 겨누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칼부림을 한다. 가지가 꺾여 허공으로 튕겨져 나간다. 또 하나의 ‘적’을 제거하고 난 후의 걸음걸이는 득의만만이다. 하늘 높이 뻗지 못한 이유 하나만으로 가지가 꺾여 버린 버드나무는 중요하지 않다. 그 칼로 ‘적’을 쓰러뜨렸다는 자체가 어린 소년에게는 만족스러울 뿐이다.

  칼 끝에서 무너지는 ‘적’을 보며 그렇게 어린 마음 속에 ‘폭력의 합리화’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아무렇지도 않았다.

  베트남 전에서 람보가 자신의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적’에게 무차별적 살상을 저질러도....영화 ‘영웅본색’에서 주윤발이 성냥을 입에 물고 쌍권총으로 ‘적’들을 아무런 표정없이 죽여도...역사 드라마에서 이성계가 왕권을 노리며 반대편 ‘적’들을 거침없이 죽이는 장면들에서도...영화에서 깡패가 의리나 사랑을 위해 또 다른 깡패인 ‘적’들을 화려한 칼놀림으로 무차별 죽여도...그들은 영웅이고 그 영웅들의 폭력은 정당한 것이었다.

  이미 ‘우리 편’은 ‘선(善)’이고, ‘우리 아닌 편’은 ‘악(惡)’이 되어 있다. ‘우리 편’의 ‘선(善)’은 폭력조차도 의심해서는 안 되는 정당성을 부여받았고, ‘악(惡)’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폭력’ 그 자체도 이미 정당화되어 있다. ‘우리 아닌 편’은 이미 ‘악(惡)’이기 때문이다. 그 ‘악(惡)’은 이미 ‘적’이기 때문이다.


  주변을 돌아 본다.

  인터넷 게임에서 ‘악(惡)’들은 제거될 대상일 뿐이다. 내 손 끝에서 마우스를 통해 가해지는 것은 폭력이 아니란다. 그저 재미일 뿐이란다. 그 뿐이란다.

  인터넷에서 마음에 안 드는 대상들은 ‘악(惡)’이다. 그들에게 가해지는 악성 댓글은 폭력이 아니란다. 그저 개인의 감정일 뿐이란다. 그 뿐이란다.

  더운 여름 날씨에 여성들의 옷차림은 더욱 얇아지고 짧아진다. 여성들의 다리와 가슴을 훑고 지나가는 시선들이 바쁘다. 이것은 폭력이 아니란다. 그저 한 번 보는 것일 뿐이란다. 그 뿐이란다.

  지하철 안에서 자리다툼이 생긴다. 나이가 더 많아 보이는 중년의 어른이 말한다. “나이도 어린 젊은 사람이...”라고 충고하듯 한 마디 던진다. 이것은 폭력이 아니란다. 그저 장유유서(長幼有序)의 미덕일 뿐이란다. 그 뿐이란다.

  장애인들이 이동권을 주장하며 전철의 선로를 점거한다. 지나가던 시민이 한 마디 던진다. “왜 시민들을 불편하게 만들면서....” 이것은 폭력이 아니란다. 그저 시민들의 편의를 위한 것일 뿐이란다. 그 뿐이란다.

  지하철 노동자들이 파업을 한다. 모 방송국 뉴스 시간에 기자가 말한다. “시민의 발을 볼모로....” 이 것은 폭력이 아니란다. 그저 시민을 위한 것일 뿐이란다. 그 뿐이란다.

  이미 ‘나’는 ‘선(先)’이다. 그렇기에 저쪽은 ‘악(惡)’이 된다. 그래서 저쪽은 ‘적’이 된다. ‘적’에게 가해지는 모든 유형의 ‘폭력’조차 정당성을 부여받는다.


  나는 개별적 존재들에 대해 이런저런 기준으로 이러쿵저러쿵 따지고 싶지 않다. 모든 것은 나와는 별개로 그 자체로서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개별적 대상 자체가 상징적 의미를 가질 때에는 나에게 다르게 다가올 수 있다. 대상이 가진 상징적 의미가 무의식적으로 무언가를 강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강요는 폭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어떤 회사의 맥주를 마시다보면 재미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맥주병이나 맥주캔에 시원한 정도를 알 수 있다는 표식이 그려져 있다. 그 표식이 분명히 드러날 때가 그 맥주를 가장 맛있게 마실 수 있는 온도라는 것이다. 어느 순간엔가 나는 강요받는다. 나의 개인적 취향과는 상관없이 그 표식이 분명히 드러날 때 마시지 않으면 별로 맛없게 맥주를 마시는 꼴이 된 것이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그 표식 덕분에 난 둘 중에 하나를 강요받게 되었다. 그 표식을 충실히 따르면 맥주를 맛있게 먹을 줄 아는 사람이고, 그렇지 않으면 맥주를 맛있게 먹을 줄 모르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에게 이 표식은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다가오는 무언의 폭력일 뿐이다.


  광화문 도로 한가운데에 서 있는 이순신 장군의 경우도 그렇다. 이순신 장군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따지고 싶지 않다. 부족하게나마 내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는 이순신 장군은 적어도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았던 인물이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은 ‘민족의 영웅’으로 추앙받기에 그 자체가 상징적이어서 나에게 다르게 다가온다.

  이순신 장군은 무장(武將)이다. 이순신 장군의 개인적 인품과는 상관없이 이순신 장군은 ‘무(武)’를 상징한다. 우리에게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때 장렬히 전사한 군인으로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무(武)’는 ‘우리 편’의 ‘무(武)’이다. 그래서 그 ‘무(武)’는 ‘선(善)’이다.

  그러나 ‘무(武)’는 기본적으로 (방어적이든 공격적이든) 폭력이다. 그렇다고 ‘무(武)’의 기본 정신이 평화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 속성이 그렇다는 것이다. 더더욱 이순신 장군을 폄하할 생각도 없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은 ‘우리 편의 무(武)’이기에 우리 편의 ‘폭력’을 정당화, 합리화한다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에 대한 숭배(?). 자칫 우리 편의 ‘폭력’을 정당화는 과정을 통해서 폭력의 합리화가 내면화되는 또 다른 과정은 아닐까?

  이순신 장군은 ‘무장(武將)’으로서 이미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기에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은 나의 마음 속에 폭력의 합리화를 내면화한다. 폭력에도 좋은 폭력과 나쁜 폭력이 있다고 말이다. 내가 인터넷 삼국지 게임에서 발휘하는 ‘무(武)’가 폭력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우리 편의 폭력’이기 때문이다. 과연 그런가? 폭력은 어디까지나 폭력일 뿐이지 않은가?

  내 몸 안에 유유히 흐르고 있는 폭력의 합리화.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에게서 그것을 보는 것은 너무 지나친 것인가?


  ‘나(우리 편)’ 아닌 ‘너(우리 아닌 편)’를 배타적으로 배제하고 대상화하는 모든 유형은 폭력이다. 그 곳에는 개별 존재에 대한 인정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나(우리 편)’의 ‘욕망’이 전제될 뿐이다. 본인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여성의 몸을 훑는 남성의 시선은 그 여성을 욕망 충족의 대상으로 보는 폭력이다.

  좋은 폭력은 과연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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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긴 왜 죽어?

[ 고 박*은 학생의 명복을 빕니다 ]

 

어제 동료선생님에게서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잉? 방학 중에 워쩐 일이셔요?"

다소 뜬금없이 걸려온 전화이기에 약간의 퉁명함으로 응수했다.

사실 그 선생님과는 친하다^^

  "오늘 뭔 일 있어?"...오늘 술 한 잔 하자는 말인가?...라고 생각하며..."저녁 때에는 서울 여동생네 가야하는데...왜?"....

  "우리 반에 박*은이라는 얘 알지? 기억나?"

  "알지...그 반은 내가 수업들어가잖아..."

  "죽었어?"

  "응? 뭐라구?"

  "죽었다구....."

  "언제? 어떻게?"

  "어제.....자살......"

  "................."

 

뒤통수를 맞아도 이렇게 맞아 본 적은 없었다...적어도 내 기억 속에서는...한 생명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마감하는....지금까지 내 주변에서, 적어도 내가 아는 학생에 한하여 이러한 죽음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에 말이다..

 

통통 튀는 아이였다.

눈이 크고 맑은 아이였다.

밝게 웃을 줄 아는 아이였다.

 

"죽긴 왜 죽어? 죽을 각오로 하면 무엇을 못할까"...라고 세상은 말한다...

무서운 말이다...죽음을 결심한 사람에 대해서 그 아픔을 공감하려는 맘은 눈꼽의 눈꼽만큼도 찾아 볼 수 없는 말이다...

오죽 했으면 지 손으로 지 목숨을 끊겠는가...오죽했으면...그렇게 되기까지 우리는 무엇을 했단 말인가...도와달라고 살고 싶다고 내미는 그 손을 우리는 여러가지 자신의 핑계를 가지고 외면하지는 않았는가.....온갖 변명으로 그 죽음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고 있지는 않는가.....

 

나는.....아픔을 당한,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어찌어찌 하라고, 무엇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이렇게저렇게 하라고....위하는 척하면서 충고하지는 않았는가...그냥 들어주지 못하면서, 가슴 깊은 곳에서 함께 아파하지 못하면서 이러쿵저러쿵 내 잘난 말만 늘어 놓지는 않았는가.....

 

나에게 필요한 것은 충고가 아니라 공감인데....

나에게 필요한 것은 배려가 아니라 이해인데....

나에게 필요한 것은 듣기가 아니라 말하기인데....

나에게 필요한 것은 도움이 아니라 함께하는 것인데...지금까지 난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했는가?

 

학생의 영정 앞에서 난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저 세상에서 행복하기만을 진심으로 기원하는 거 말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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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짤까요?

[8월 3일]

여전히 도교육청에서 정문에서 1인 시위...중....11시쯤...

학사모가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몰려 오더군요...제가 근무하는 학교 학부모 20여명이랑....

펼침막 요구사항...1. 병역거부 조장하는 전교조는 해체하라  2. 고교평준화 정책 전면 재검토하라. 3. 이용석 교사를 영구 퇴출하라...

기자회견 핵심 사항...1. 전교조 해체  2. 이용석교사 영구퇴출  3. 이용석 교사에 대한 징계가 적절치 않을 경우 단식농성을 실시하겠다....

학사모와의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기 위해 도교육청 중앙 본관 앞으로 이동하여 1인 시위 계속...

학사모 학부모들이 도교육청 진입 시늉을 하다가, 1인 시위하는 나를 발견...

"이용석은 들여보내고 우리는 왜 안 되냐!!!" 도교육청 정문에서 항의 소동...

담당 장학사가 나에게 오더니, 학부모들이 들어오겠다고 난리니 나보고 "오늘은 1인 시위 접으면 안 되겠냐?"고 요구....미쳤나...내가 왜 접어야 하는데...장학사에게 "학부모들을 도교육청에 못 들어 오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학부모들의 1인 시위도 인정해주어야 한다. 학부모들 막지마라"

학사모 학부모 1명이 도교육청으로 들어와서 나와 같이 나란히 1인 시위...

도교육청 관계자 나오더니..."둘 다 정문 밖으로 나가라"...미쳤나...내가 왜 나가야 하는데...나에게 형사가 오더니 "도교육청에서 퇴거요청이 들어왔다. 나가달라"...미쳤나..."이유가 없으니 난 못나간다"...도교육청 관계자 "업무방해다. 이러고 있는 거 불편하다. 나가달라"...미쳤나..."업무방해면 그 근거를 가지고 와라. 너희들이 불편하다고 나보고 나가라는 건 오만불손이다. 못나간다"...도교육청 관계자 왈 “여기가 어딘지 알고 그러느냐?”...미쳤나...어디긴 어디야...도교육청이지...“여기는 공공기관이고 누구나 드나들 수 있다”...도교육청 관계자 왈...“교육청 내에서 1인 시위하는 것은 불법이다. 나가라...미쳤나...”내가 뭘 어쨌는데? 진입을 했나? 농성을 했나? 못나간다“...도교육청 관계자와 형사는 아무 말 못하고 그냥 돌아가버리고...멍청한...

조금 있더니 학사모 학부모들이 점심 먹는다고 나가버리고....조금 있다가...정문 밖에서 약식 집회하더니 그냥 철수...아까는 밤새도록 시위하겠다고 큰 소리 빵빵 치더니....

[8월 4일]

징계위원회 개최.....부당징계에 항의하기 위해 징계위원회 참석 결정...

지역동지들과 광명, 안산, 고양 교찾사 동지들....약 50여명 "부당징계 방침 철회 집회" 시작...12시...

1시30분...징계위원회 참석....부당징계 방침 즉각 철회하라...라고 쓴 투쟁조끼 입고 출석...

3시부터 징계위원회 개최...그 앞에 다른 안건 2개를 처리한다고...그래서 항의...일정 미공지 및 순서를 일방적으로 정한 것에 대해 항의...


징계위원회 시작...

나에게 직과 성명을 이야기하고 징계혐의자 자리에 앉을 것을 요구...“난 징계혐의자도 죄인도 아니다. 잘못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그 자리에 앉을 수 없다. 서서 하겠다”...서서 진행

일단, 2가지 사항 요구...

1. 녹취   2. 중요 정보공개 요구 (학교장과 일부교사의 의견서가 이번 중징계 결정에 결정적이었다는 이야기를 도교육청 관계자로부터 들었기에 민원으로 정보공개 요구했으나 거부...그래서 다시 요구) 3.모두발언 요구...

1,2는 거부당하고 3은 수용됨...1,2를 거부한 것에 대해 계속 항의...징계위원들의 관료적 태도에 대해 강한 항의...1,2 수용되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나가지 않겠다고 항의...징계위원장은 경비실로 연락해서 나를 끌어낼 것을 지시...나를 끌어내면 이 후 문제는 모두 징계위원장에게 있음을 경고...징계위원장 지시 사항 일단 번복....녹취는 법령을 근거로 어쩔 수 없다함...정보공개는 부교육감(징계위원장) 약속으로 협조 약속...다시 요구...개인의 신념과 사상에 관련된 부분은 묻지도 말 것...그 외 사실 관계 확인만 답하겠다...


징계위원 중 1인 왈 “징계혐의자가 징계위원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 징계위원회의 권위가 훼손된다”...이런 정신나간 인간이 있나...“난 징계혐의자가 아니다. 징계위원회에 무슨 권위가 있나? 관료주의적 발상이다. 취소하라” 언쟁이 오고 감...하여간 교육관료들이란...쯧쯧...

모두 발언 시작....

1. 징계절차의 문제점 지적 : 이미 민원처리된 사항이다. 3차례 진술을 거부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당사자의 신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정보가 공개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러므로 이 징계위원회의 절차적으로도 문제가 있다.

2. 이 징계는 부당하다 : 징계 이유가 분명히 “편향된 가치관” 교육으로 되어 있다. 무엇이 편향된 가치관이란 말인가. 그리고 개인의 가치관 즉 신념과 사상을 여기에서 징계 운운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차라리 헌법을 징계하라. 그러므로 이 징계위원회는 부당하다. 징계위원들은 개인의 가치관을 당신들이 판단해서 징계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모두 발언 중 2의 내용에 대해 징계위원들과 설왕설래...


4시 10분....

징계위원들의 질문 시작...질문 자체가 문제가 있을 때 역질문 및 문제제기로 계속 대응...징계위원 중 일부는 징계위원장에게 “지금 징계위원회의 형태는 징계위원회의 권위가 훼손되고 있다”고 문제제기...나는 “그 문제제기에 문제가 있다”고 항의


4시 50분...

징계위원장 정리 발언 “이용석 교사는 이후에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행위를 계속할 것인가?”

나의 마지막 발언 “내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 않았다. 지금의 사회적 논쟁은 마땅히 필요한 것이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난 앞으로도 옳다고 생각되는 것을 말할 것이며 행동할 것이다. 교실은 다양성과 평등이 보장되는 곳이어야 한다. 지금의 교실은 그렇지 않다. 누구의 문제인가? 이 징계위원회는 부당하다.”


나오면서, 징계위원회 관계자에게 질문...“이 후 일정은 어떻게 되나요?”...“징계의결까지는 통상 7일 정도 걸립니다”


[8월 5일]

오전 미디어다음, 경기일보, 동아일보 등에 기사 나옴...

“경기도교육청 징계위원회는 이교사에 대해 정직 3개월의 중징계를 내렸습니다”

개쉐들..................또 한 판 붙어야겠군.....올 여름 휴가는 도교육청 앞 마당이로구나ㅠㅠ


근데요......?.....우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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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침이다. 교문지도를 해야 하니까 서둘러야겠다. 아참! 오늘은 학교 전체 운동장 조회가 있는 날이잖아.

   아침 7시에 학교에 도착했다. 오늘 수업자료가 들어 있는 가방을 내 책상에 내려놓고 교문으로 나간다. 난 학생생활지도 담당 교사이다. 내 손에는 이미 나에게 잘 길들여진 단단한 몽둥이가 들려져 있다. 교문에서부터 학교 건물로 이어지는 진입로 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다. 제대로 봐야 한다. 등교하는 아이들의 머리 모양, 교복 상태, 운동화 종류, 왼쪽 가슴에 부착되어 있어야 하는 이름표, 남학생의 넥타이와 여학생의 리본 착용 여부 등등 이 모든 걸 한 눈에 확인하고, 지나가는 아이들 개개인을 모두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등교하는 아이들이 왼쪽으로 일렬을 지으며 들어온다. “너! 머리”, “너! 운동화”, “너! 야! 너말이야! 왜 못들은 척 하고 지나가!! 엉?”.....색출된 아이들은 진입로 오른쪽에 손들고 서 있게 한다.

   아침 7시 50분. 등교 시간이 끝났다. 이제부터는 모두 지각생이다. 지각생들은 진입로 오른쪽에 일렬로 “엎드려 뻗쳐”를 시킨다. “인문계 고등학생들이 제 정신이냐?” “넌 또 지각이야?” 지각생들은 엉덩이를 맞는다. 잘 부러지지 않게 다듬어 놓은 몽둥이로 초범과 재범 등을 가려내어 엉덩이를 때린다. 어쩔 수 없다. 이건 벌이니까. 지각했으니 정신을 차리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해서라도 아이들을 바로 잡는 것이 결국 아이들을 위한 것이다. 아직 아이들은 성인이 아니기 때문에 때려서라도 가르쳐야 한다. 이건 교사의 역할이자 의무이다.

   아침 9시. 학교 전체 운동장 조회가 시작된다. 국기에 대하여 경례!! 저 뒤에서 히히덕거리는 아이들이 눈에 보인다. 아이들 사이를 가로질러 가서 정강이를 냅다 걷어찬다. “지금 국기에 대한 경례하는 거 몰라?” 교장선생님의 훈화 말씀 중이다. 아이들의 줄이 흐트러지고 여기저기서 잡담이다. 아이들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며 정강이 차기, 뒤통수 치기, 꿀밤주기 등의 온갖 잡기를 동원해서 ‘질서’를 잡는다.

   수업이 시작되었다. “반장, 시작하자” “차렷! 선생님께 대하여 경례!”......

 

   교사 1년차 때 나의 모습이다. 덕분에 나는 1년 내내 1교시 수업이 시작하기 전에 컵라면으로 아침을 때울 수밖에 없었다.


   군대 시절에 많이 맞았다. 군기를 잡기 위해, 부대가 원할히 움직이게 하기 위해, 상명하복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 많이 맞았다. 그 때 난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라고 느꼈다. 인간으로서의 존중이 아니라 오로지 계급에 의해 명령과 복종만이 존재하는 그 곳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가하는 폭력을 보고 치를 떨었다. 난 결코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

   그러나 이미 나에게는 그 폭력이 내면화되어 있었다. 당연히 혹은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 각인시키면서 아이들에게 똑같은 폭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교사가 된 후 1년을 지나며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인간의 모습을 내가 닮아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내 손에서 몽둥이를 놓은 것은 그 1년 후 상당한 시간이 더 흐른 뒤였다. 손에서 몽둥이를 놓은 후에 내가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랐기 때문이다. 단지 ‘내’가 ‘불안’했기 때문이다.


   손에서 몽둥이를 놓은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나에게 하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몽둥이를 들지 않은 손과 입과 마음에서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또 다른 형태의 폭력들이 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나에게 말이다.

 

   여학생들에게 여자다움을, 남학생들에게 남자다움을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에서 남녀의 성별 역할을 고정시킴으로써 성적 차별을 당연하게 여기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많은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있는 교무실에서 꾸중을 듣고 있는 아이의 자존심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잘못을 해서 교무실에 불려와 교사 앞에서 무릎꿇고 이야기 듣는 아이의 수치심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프다는 아이에게 거짓말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되돌아가는 모습에서 신뢰가 무너지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똑같은 머리모양과 똑같은 복장에서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 전체주의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교장선생님께 대하여 경례! 라고 힘있게 말하는 마이크 소리에서 군대식 복종 문화가 자리잡은 학교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만든 것도 아닌 학생두발규정에 의해 머리가 잘려 나가는 아이들의 인권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국기에 대한 경례라는 구호에 모두가 국기만을 바라보는 모습에서 무조건적 충성을 요구하는 국가주의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한 폭력은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왜냐면 지금의 학교는 ‘이 사회’를 ‘그대로’ 가르치는 곳이기 때문이다. 가진 자, 남성, 성인, 이성애자, 비장애인 중심의 획일화된 가치관과 그 가치관이 반영된 제도가 ‘상식이고 정상’이라고 말하는, 단지 차이일 뿐인 것을 차별하는 이 사회를 그대로 가르치고 있다. 소외되어 있는 약자(없는 자, 여성, 청소년, 성적소수자, 장애인)의 권리는 사회 전체를 위해 희생될 수 있다는, 전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이 ‘미덕’이고 ‘우선’이라고 말하는 이 사회를 그대로 가르치고 있다. 그렇기에 말로는 다양성을 말하지만 사실은 ‘획일화된 상식’이 교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몽둥이만 들지 않았을 뿐, 획일화된 상식의 폭력이 이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했던가. 아마 눈에 보이지 않았다면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학교장의 말 한마디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지금 학교 구조 속에서 일개 교사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몇 명의 학생이 남았는지가 교사의 학생지도 능력으로 이해되는, 입시지옥 학교 현실에서 일개 교사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아이들에게 인권은 사치가 되어버린, 학교의 몰인권적 문화 속에서 일개 교사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스스로에 대한 좌절과 무기력함이 부끄러운 시간들이었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내가 ‘그렇게 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출발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나는 무엇으로 아이들과 함께 할 것인가? 학교가 단순히 지식을 주입시키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하기에 나는 삶으로 아이들과 함께 해야 한다고 믿는다. 나의 삶에서 차이를 차별하지 않고, 나의 삶이 획일적 상식이 아니라 다양성 그 자체를 인정하고, 나의 말과 행동이 그 어떤 대상에게도 폭력적이지 않도록 하는 것으로부터 말이다.

 

   그래서 나는 하나만을 강요하는 모든 경향성을 반대한다. 그 경향성은 ‘전체주의’로 귀결될 것이다. 그 전체주의는 결국 모두에게 개인의 삶의 부정하는 억압과 폭력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 경향성은 ‘인간’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획일화된 문화와 규범에 반대한다.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개인과 존재의 다양성을 말살하기 때문이다. 또한 학교장의 지시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학교 구조에 반대한다. 그것은 일방적 복종만을 통해 이 사회를 그대로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또한 국기에 대한 경례(맹세)를 하지 않는다. 그것은 힘들 것 없는 동작과 몇 마디밖에 안되는 문장이 무조건적 충성만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다르다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이 사람에게 폭력을 가할 수 있는 권리와 정당성은 과연 누구에게서 부여받은 것인가? 지금 이 획일화된 사회에서 내가 ‘인간’으로 존중받기 위해서 나는 내 삶에서 작은 것이라도 ‘획일화된 상식’을 거부하고 싶다.


   국기에 대한 경례(맹세)를 하지 않는다 등의 이유로 일부 학부모들은 나에 대해 경기도교육청에 민원을 접수시켰고, 학사모(학교를사랑하는학부모모임)는 나를 교단에서 영구퇴출할 것을 경기도교육청에 요구하고 있고, 조선일보는 나를 ‘편향된 가치관 교육’의 문제교사로 낙인찍었으며, 경기도교육청으로부터 중징계 의결 예정을 통보받은 상황이다.

   ‘획일화된 상식’의 벽이 아직 매우 높다는 생각에 마음이 우울하다. 앞으로 어찌 될 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상황이 나 스스로에 대한 시험장이 될 것 같다.

 

   과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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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없다....

오늘까지해서 도교육청 1인 시위 3일째...부천에서 수원까지 출퇴근하는 느낌...도교육청 직원도 아닌디 참 엿같은 느낌만 드는 것이...어째, 영~~~~ㅠㅠ

 

전에는 잘 몰랐다. 도교육청에 뻔질나게 드나들다보니 곳곳이 재수없음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라고 해도 이노무 행정관청이라는데는 어쩔 수 없나보다...소위 '교육'청이라는 곳마저도 반인간적, 반교육적 덩어리니 말이다....

 

[재수없어1]

도교육청 정문 옆에 민원봉사실이라는 곳이 있는디. 언제나 정확성이 떨어지는 내 기억으로는 그 건물이 3년 전쯤에 생긴 것같은데...그 전에는 없었지...틀린든 말든....우쨌거나 경기도교육청 앞에 집회하러 심심찮게 갔었기 때문에 기억한다...좀 시원찮은 기억력을 잠시 원망하고^^;

 

도교육청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기 때문에 그 민원봉사실 화장실을 자주 사용한다. 새 건물이라 화장실도 참 깨끗하기 때문에...ㅋㅋㅋ...

 

처음 화장실을 사용하려고 민원봉사실에 들어가는데...왠지 좀 쭈뼛해진다....국가기구에 대해서는 거북살스러운 나의 알레르기 반응 때문이기도 하고....모르는 집에 들어가서 남의 화장실을 쓰는 것같아서 어색하기도 하고....사실 '민원봉사'실 아닌가? 나의 생리적 급함을 해결하는 것도 '민원봉사'실의 역할이 아니것는감...문을 열고 들어설 때 느껴지는, '누구지? 뭔 일이지'라고 말하는 눈동자들의 시선을 마빡으로 받아 내면서, 화장실이 어디냐고 물어 보고는 당당하게(?) 화장실을 찾아 갔다...

 

여긴가보다...근데 뭔가 쪼매 어색한디....여자 화장실 문보다 남자 화장실 문이 훨 크다...우찌된 일인가 싶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눈에 확 들어오는게 있다...여자 화장실을 알리는 픽토그램(그림) 옆에 남자 화장실을 알리는 픽토그램이 나란히 있는데 그 픽토그램에 '장애인 화장실'을 알리는 픽토그램이 함께 그려져 있다. 분명 여자 화장실 픽토그램에는 없는데 남자 화장실 픽토그램에는 함께 그려져 있다. 왜 여자 화장실에는 장애인 화장실 픽토그램이 없는게지?

슬그머니 드는 의구심을 확인하기 위해 남자 화장실을 열고 들어가보니....장애인용 화장실이 함께 딸려 있다....

 

그럼.............? 장애인은 남녀 구분도 없나? 이게 뭐하는 짓이여? 남자 화장실에서 여자 장애인도 함께 일을 보라고라? 도대체 장애인은 인간도 아녀? 장애인은 남자도 여자도 없는거여? 확~~~울화가 치밀어 오른다....도대체 이런 발상을 하는 인간이 인간이여?

재수없다....

 

[재수없어2]

그 민원봉사실 옆에 정문을 지키는(?) 수위실이 있다. 수위실의 높이가 장난이 아니다. 마치 대문 옆에 그 대문만한 개집을 연상시킨다...아아!!! 일년삼백육십오일을 고생하시는 도교육청노동자분들을 개에 비유할 마음은 전혀 없다...참고해주시라....크기도 크기지만 마치 까만 페인트로 칠해놓은 것처럼 수위실 창문이 까맣게 선팅되어있다. 도교육청 바깥 쪽을 향하고 있는 그 창문은 크기도 건물만하다...꼭 음흉한 속을 숨기려는 것인 듯 안에서는 바깥이 잘 보이지만 바깥에서는 안이 전혀 들여다 보이지 않는다...공공기관을 찾아 오는 사람들을 일일이 탐색이라도 할라치는 것인지는 몰라도 정문에서부터 위압적이고 관료적인 냄새가 똥냄새 못지 않다...

재수없다....

 

[재수없어3]

도교육청 정문에서 본 건물까지는 족히 100m는 넘어 보인다...요즘같이 더운 날은 걸어가다가 머리벗겨지기 딱 좋다...어떤 초등학교에서는 커가는 아이들의 덩치를 맞추지 못한 책걸상땜에 아이들이 힘들어 한다는디...뭐땀시 이따구로 커다랗게 돈들여 만드는 거여? 영 못마땅하다...들어서면 중앙도로길 옆으로 그럴싸하게 꾸며 놓은 정원(?)이 보인다....작은 공원같다....그 공원을 만든 배경을 써 놓은 작은 돌덩어리가 있길래 들여다 본다..."어쩌구저쩌구 쾌적한 근무 환경 조성을 위해 어쩌구저쩌구"...

 

또 확~~울화가 치민다....이 공간을 민중들을 위한 쉼터의 공간으로 조성하고 개방하지는 않고 도교육청 울타리 안에다가 곱게 모셔놓고 교육관료들의 "쾌적함"을 위해 깎고 다듬고 있는 것이다...도교육청에 근무하는 노동자분들의 쾌적한 근무환경은 당근 확실히 보장되어야 한다...그걸 뭐하는 게 아니다...우라질....정문을 100m 안쪽으로 후퇴시켜서 본관 앞에 "이 곳이 정문입니다"정도만 알 수 있게 만들어 놓으면 될 것 아닌가말이다...그리고 그 곳을 지역 주민의 쉼터로 깎고 다듬으라는 말이다...참고로 그 주변에는 지역 주민을 위한 쉼터는 찾아 볼 수도 없다....

재수없다....

 

[재수없어4]

그 공원 한 쪽면에는 소위 '기념식수'라는 것이 쭈욱 늘어져 있다...뭔 기념?...자세히 들여다 보니...죄다 한자로 적혀 있어서 과거의 웬만한 기억들을 쭉 뽑아 내야지만 읽을 수 있었다ㅠㅠ...교육부총리 000, 몇회 경기도교육감000...죄다 이 교육청을 한 번 쯤 밟고 간 관료들의 이름들이다....

 

근디 뭘 기념혀? 즈그들이 왔다갔다는 것을? 사람을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되도 않는 글귀에 충실하기 위해서? 꼭 개들이 영역 표시하기 위해 싸질러놓은 오줌빨마냥 그렇게 자신들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하는구만....애꿎은 개들에게 심심한 사죄를 드리며...

자신의 권위를 되새기며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는 남성중심생각의 꼭대기에 올라있는 관료적 행태....재수없어....

 

[재수없어5]

점심시간과 저녁 퇴근시간에는 도교육청 본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한다...그 잘난 도교육감과 부교육감에게 내가 뭔 얘기를 하는지 가까이에서 들려주고 싶어서리...

 

엥? 근디 이것이 뭐여?

본관 로비에 유니폼을 입은 안내도우미 여직원이 2명 있다...드나드는 사람들에게 도교육청을 안내하기 위한 것인가? 사람들은 눈이 없나 발이 없나...청사 안내도 보면서 찾아가면 되잖나...글구 본관을 지키는(?) 수위아자씨들도 계시니 궁금한 거이 있으믄 물어 보면 되제...

근데 꼭 안내만을 위한 것은 아닌 것같다...

 

점심 시간과 퇴근 시간을 위해서 고용한 '여성'비정규직인 것같다...

교육감과 부교육감이 밥 먹으러 나갈 때, 들어 올 때와 퇴근할 때 정문 앞에 나란히 서서 깎듯이 인사한다...코맹맹이 소리로...."안녕하십니까아아~~" "안녕히 다녀오십시오오오~~"

퇴근 시간에는 본관 정문에 서서 퇴근하는 도교육청 직원들에게 90도로 허리 굽히며 인사한다..."안녕히 가십시오오오~~~~"

본관 수위아자씨에게 물어봤다...이 여성분들은 왜 고용되었는지...고객만족서비스를 위해 얼마 전에 고용된...이란다...

 

이런 제길....내가 보기엔 남성교육관료들이 즈그놈들이 서비스 받고 싶으니까 여성비정규직노동자를 고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왜 즈그놈들이 출퇴근할 때 여성비정규직이 나란히 서서 문안인사를 드린단 말인가....즈그놈들이 퇴근할 때까지 퇴근 시간인 6시가 넘어서도 계속 근무를 할 수밖에 없이 만들어놓고는 말이다....

오늘은 교육감은 휴가가고 부교육감은 점심 먹으로 나갔다가 들어오지 않았다. 그 여성비정규직 분들은 개성있는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6시에 환한 웃음을 머금으며 즐겁게 퇴근했다...퇴근하는 누구에게도 "안녕히 가십시오오오~~~"라고 허리굽혀 인사하지 않았다...그냥 남들처럼 근무하고 남들처럼 퇴근했다....

남성교육관료 쓰레기같은 놈들이 즈그들 만족을 위해 여성비정규직을 고용하고 혹사시키고 있는 것일뿐이다....재수없다....

 

[재수없어6,7,8.....]

그만 쓸란다...쓰면서도 울화통이 터져서 더 이상 못쓰겠다...

1인 시위도 화나고 힘들지만, 그 꼬라지들을 계속 봐야 한다는 것이 더 화난다....

정말 재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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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캉스를 꾸짖지 마라!!

그저께 을왕리해수욕장에 갔다왔다.

 

용유도에 발을 얹는 순간, 비릿한 바다냄새가 나의 후각을 치고 들어 온다. 장마가 끝났다지만, 아직 물기를 머금고 있는 대기는 내 피부에 끈적하게 달라붙는다.

 

내 머릿속 바다와 실제 바다는 다르다. 머릿속 바다는 파란색이지만 실제 바다는 파란색이 아니다. 바다는 어떤 하나의 색만을 가진 적이 없다. 머릿속 바다는 시원한 바람을 머금고 있지만 실제 바다는 시원한 바람을 머금은 적이 없다. 시원한 바람은 바다를 스쳐지나갈 뿐이다. 머릿속 바다는 일탈의 공간이지만 실제 바다는 삶의 공간이다. 그곳엔 일탈은 없다. 그저 사람들이 "하고 싶은" 또 다른 삶이 존재할 뿐이다.

 

저녁 때 출발했기 때문에 도착할 즈음에는 나의 오장육부가 시위를 하고 있다.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말씀^^; 모래사장이 바로 코 앞에 있는 식당에서 소주를 곁들인 만찬을 즐긴다.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고 한다. 오장육부를 만족시키고 나니 모래사장 건너편의 어스름한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같이 간 친구가 말한다. "지금 시간의 바다 색깔이 제일 이쁘다" 그러고보니 바다는 시시각각 자신의 색깔을 바꾸어가고 있었다. 나의 옹졸한 두 눈만이 바다는 늘 푸르다고 억지부리고 있을 뿐이었다. 푸르지 않은 바다 색깔이 정말 이뻤다.

 

내 두 눈과 바다 사이에 밀회를 무언가로부터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자꾸 눈에 스쳐지나가는 것들이 있다. 사.람.들.

나처럼 바다를 보러, 바다에서 무언가를 하려고 온 사.람.들.

지금이 휴가철이구나. 소위 말하는 휴가철말이다. 여름 한 철, 아니 여름 며칠을 산과 바다를 찾아 떠나는 휴가철.

 

바다를 찾는다는 기분에 나의 복장도 한껏 가벼워졌다. 찢어진 반청바지에 노란색 런닝티셔츠를 입고 쪼리를 신었다. 9mm짧은 머리를 노랗게 염색하고 말이다. 사실 특별히 여름 휴가 복장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바다를 찾는 것 아닌가...여름 바다...

비우지만 말고 채울 줄도 알라는 통장의 준엄한 '저축'정신을 외면한 채 지갑도 두둑히 배부르게 하고...

 

달라야 한다. 봄의 바다는 생기를 머금고, 가을 바다는 하늘이 높아야 하고, 겨울 바다는 외로워야 한다. 그러나 여름의 바다는 미쳐 날 뛸 줄 알아야 한다. 1년 365일 허리짝 휘게 노동의 현장에서 지치고 지친 몸을 달래기 위한 해방구가 아니겠는가.

혹자는 말한다. 왜 그 사람 많은 곳으로 가려고 하냐고... 난 생각한다. 이 땅에서 뻔한 지갑가지고 달리 갈 곳도 없지 않은가?

혹자는 말한다. 조용하게 책도 읽으며 지내는 것이 좋지 않냐고... 난 생각한다. 1년에 고작 4~5일 휴가인데 꼭 그 때 책을 읽어야 하나?

혹자는 말한다. 과소비하지 말고 아껴 쓰는 휴가를 보내야 한다고...난 생각한다. 1년 내내 그노무 "절약"이 신물나지 않나? 내 허리띠를 조르고 졸라 이제는 마지막 구멍 하나밖에 남기지 않고 모조리 뺏어가는 자본주의. 그 괴물이 앞장 서서 외치는 '절약'은 누구를 위한 절약? 절약하라고 목쉬도록 외쳐대지 않아도 쓸 돈도 없다. 돈이나 주고 절약하라고 이야기하란 말이다.

 

휴가철만 되면 근엄하게 설교하는 저 주둥아리들을 청테이프로 꽁꽁 묶어버리고, 나만의 휴가를 즐기련다. 어쩌다 징검다리 휴일에 하루라도 더 쉬자고 이야기하면, 경제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같이 호들갑을 떠는 이 땅덩어리에서 이 정도면 그래도 미덕이 아닌가?

 

바캉스를 꾸짖지 마라!!

 

그리고 나는 어제부터 경기도교육청 앞에서 하루 종일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았다고 경기도교육청이 나를 중징계한단다...*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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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3번의 괴로운 즐거움

가스불이든 숯불이든 개의치 않는다. 후라이팬이든 솥뚜껑이든 거부하지 않는다. 동쪽으로는 버섯과 함께, 서쪽으로는 양파와 더불어, 남쪽으로는 마늘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북쪽으로는 신김치를 허락한다. 물기를 머금은 새파란 상추에 싸여서, 쓴 맛이 더욱 매력적인 소주와 함께 나의 오감을 만족시키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그 향기는 천 리 밖 멍멍이를 혼미하게 만들고, 그 맛은 이 땅의 사천만 민중의 혀를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그.이.름.영.원.하.라.삼! 겹! 살!!

 

나에게 하루 3끼를 먹어도 질리지 않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난 "소주와 삼겹살"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아니 말할 수 있.었.다.

난 삽겹살 마니아라고 스스로 자부한다. 아니 자부했.었.다.

느닷없이 이 문장을 접하기 전에는 말이다.

 

"채식은 저항할 수 없는 존재들에 대한 억압과 폭력을 거부하는 것의 실천이다"

 

무진장 고민되었다....

난 채식은 건강에 좋다는 웰빙 문화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었고, 좀 더 생각해 보았다고 치자면 죽임을 당하는 동물들에 대한 측은지심의 동정에서 나온 마지못한 선택 정도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나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것은 "내가 안 먹는다고 어차피 달라질 것도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렇잖은가?

정육점 진열대 위에 빨간색의 조명을 맘껏 받으며 놓여져 있는 고깃덩어리...그저 고깃덩어리일뿐 그것의 과거를 굳이 내가 알아야 할 이유도 없을 뿐더러 또 알아서 무엇하겠는가 말이다. 고기도 하나의 음식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고럼~~~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고 말하니 참 난감할 수밖에....

단지 인간의 식욕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태어나고 사육되어 도살되는 것이 운명인 존재들...

존재의 존엄함을 단 한 순간도 인정받지 못하고, 삶 자체가 죽음인 존재들...

자신의 삶, 생존권을 위해 단 한 번의 저항조차 허락되지 않는 망각의 존재들....

 

사실 그러한 존재가 동물들만의 이야기겠는가....존재를 억압하는 폭력, 그 앞에 노출되어 있는 또 다른 존재들.......

 

그 존재를 모른 척하면서 나의 식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참으로 애쓰는 나의 혓바닥과 이빨들 사이의 공조.......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머릿 속으로는 수없이 되뇌이면서....망각된 존재의 덩어리를 반복해서 잘게 으깨어 씹고 있는 식욕....이 모순은 무엇일까....

 

에라....그래....알고 있는 만큼만 실천하는 것도 얼마나 어려운 일이냐....모르면 모를까 알아 버린 이상 모른 척 할 수는 없잖아.....저항할 수 없는 존재들에 대한 억압과 폭력을 거부하는 것을 하루 3번만 실천하면 된다잖아......에구.....쉽진 않을텐데....ㅠㅠ

잘가거라...삼겹살아ㅠㅠ 이별의 아픔은 눈물이 되어 온 세상을 적시고, 찢어지는 마음은 공허함으로 바람이 숭숭 휘젓고 다니지만....어쩌랴....이것이 이 세상에서 너와의 운명인 것을...나를 탓하거라....나를 용서하거라....잘가라....삼겹살아...엉엉엉ㅠㅠㅠㅠ

 

어느덧 그를 잊은 지 3개월....매 끼니마다 하루 3번...그를 생각해 본다....나와 헤어져 다른 사람 만나서 자신을 불태우는 삼.겹.살.

지나가다 스치는 수많은 광고판의 그를 바라보며, 오늘도 하루 3번...괴로운 즐거움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덕분에 수많은 채소 친구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특히, 두부 친구와 청국장 친구와 더욱 두터워진 정을 새삼 고맙게 생각한다.....이별은 또 다른 만남을 위한 것이라던가....

 

후기) 아직 생선 친구들과 해산물 친구들과 이별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에궁...여기까지가 나의 한계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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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죽이기

모기할아버지가 산책을 나가려고 한다.

모기아들이 말한다.

"아버지, 너무 늦지 않게 오세요."

그러자 모기할아버지 왈 

"모진 놈 만나면 얻어터져 저 세상 사람이 될 거이고, 그렇지 않으면 한 상 푸짐히 받고 일찍 오것제"

 

그저께 밤에 내 방에서 잠들려고 하는데, 모기 한 마리가 귓가에서 자꾸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이미 닫혀버린 눈꺼풀이 너무 무거워서 한 손으로 휙휙 내저어 보았다. 잠시 잠잠해지는 듯 하더만은, 영락없이 모기는 다시 나의 오만가지 신경을 건드린다. 단지 한 마리일 뿐인데 이다지 날 괴롭게 한단 말인가.

피곤에 푹 빠진 몸뚱아리의 마지막 저항이었다! 닫혀버린 눈꺼풀의 마지막 소망이었다! 벌떡 일어나서 형광등을 켜고는 뿌리는 모기약을 집어 들고 사정없이 허공을 향해 무차별 살포를 시작했다. 혹 요리조리 빠져나갔을까봐 방 구석구석, 형광등 주변, 심지어 커텐 뒤에까지 철저히 색출하여 살포했다.

이제 난 이 세상 최고의 잠자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흐뭇하기 그지 없었다. 적과의 전쟁을 한바탕 치르고 난 후, 승자의 갈증을 풀기 위해서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 속의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들이 마시고서는 내 방으로 돌아왔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서 이부자리에 들어가면서 확인해 보았다...방바닥에 추락하여 생을 마감한 모기 한 마리...결국 내가 해냈구나 ㅎㅎㅎ....라는 자부심은 잠깐뿐....

방바닥에는 좁쌀만한 까만 것들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는 것이 아닌가. 가만히 가까이 들여다보니, 아까 나의 무차별 살포 속에서 희생당한 하루살이들이었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내 방에 하루살이가 이렇게 있었나라는 생각은 잠깐 스쳐지나갈 뿐,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했는가하는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모기 한 마리 잡자고 아무 피해도 끼치지 않는 하루살이까지 내가 몰살을 시킨 것이 아닌가...이 세상에 하나의 생명으로 태어나 스스로 열심히 살아가는 곤충계의 민중들을 아무 이유없이 죽여 버린 것이다....

오직 모기에게 한 방 물리지 않기 위하여....

더더욱 모기를 죽이려는 나의 행동은 무엇인가? 모기를 내쫓는 것이 아니라 모기를 굳이 '죽여'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에궁....인간 이외에 모든 것을 '하등'으로 취급하는 발상이 스스럼없이 '인간'인 나를 위해 저들을 죽이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도록 한 것은 아닌지...

인간중심의 사고 방식....또 다른 종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내 방에 있다가 억압의 폭력 속에 비명횡사한 "고 곤충계의 민중"들을 진심으로 애도하며, 그네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 위하여 내 손가락 끝의 폭력까지 털어버리겠다라고...생각한다....

올 여름은 그래서 쉽지 않게 넘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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