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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가실 분~~~

중구난방 3월 모임...은,

 

"소.풍.갑.니.다!!! 같.이.가.요~~~"

 

@언제? 3월 24일 - 25일(1박2일)

 

@어디로? 강화도 - 24일 오전 11시까지 마니산 주차장으로 모이기

 

@누가? 중구난방에 관심 있으신, 수다떨고 싶으신 분....누구나 함께^^

 

@어떻게? 참가희망 하시는 분들이 개별적으로 중구난방 참가자들에게 연락주시거나, 덧글을 달아 놓으시면 차량 등의 문제를 조정하려고 합니다. 중구난방 소풍....2명만 확실히 가면 간다....ㅋㅋㅋ

 

@먹거리? 안주와 술을 각자 자신이 먹을 것을 먹을 만큼 준비해오기..그리고 다같이 나눠 먹기

 

@뭐해요? 우선 마니산을 올라갔다 와서, 점심을 사먹구요, 이동 중에 갯벌에서 놀다가, 숙소로 들어가서, 가다 산나물있음 캐구요, 저녁해서 먹구요, 또 놀다가, 안주랑 술먹구요, 담 날 아침까지 푹 자구요, 돌아오면서 아점으로 맛난 거 사먹구요 ㅋㅋㅋ......놀거리는 보드게임으로 스캔이 준비하구요, 놀기싫음 수다 많이 떨구요....저녁거리는 수제비로 똘망샘이 준비하구요, 김치는 리우스가 준비하구요, 숙소는 초보좌파가 알아보구요, 다른 분들은 그냥 얼릉 오셔요^^....회비는 숙박비 갹출, 교통비는 알아서 해결 정도구요.......

 

@빠진건? 혹 빠진 거 있으면 리우스,스캔,똘망샘이 보충해주삼.....

 

@주의 사항 : 많이 많이 같이 가요~~~~~^^  참참참!!! 애기 있으면 데리고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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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

같은 시간을 함께 한다는 것이...참 행복하다...

 

숨결만으로도 눈물나게 행복하다는 것....그걸 안다는 게 인간으로 존재하는 행복이지 않을까....

 

난 참 많은 이들에게 빚지고 산다는 생각이 든다...

빚진다는 느낌...나쁘지만은 않다...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열심히...

삐딱하게....

도발적으로....

아님, 말구...ㅋㅋㅋ

 

오늘...숨결만으로도 행복을 알게 해 준 사람에게...고맙다고, 행복하다고....말해주고 싶다...

 

ps...그래서 다가올 시간들이 두렵지 않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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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아야지...

설 전날...장우-아들이랑 놀러 갔다가 밤 늦게 들어오는데...

우리 보금자리에 와보니, 3층 단독주택이 불빛 하나 없다.

앞 집도, 옆 집도, 뒷 집도...

모두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으로 먼 길을 찾아 간 것일까?

이 동네에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많다. 그들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낯선 땅에서의 '설날'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장우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가로등 불빛에 의지한 골목길을 장우의 자그마한 손을 잡고 걸어 들어 오는 때에, 내 가슴 속엔 예전의 기분이 강하게 느껴졌다.

친척들과 교류한 지는 내 기억 속에 거의 남아 있지 않는 만큼 오래되었던, 과거의 명절들은 참 외롭고 심심했다. 집을 떠나 자취할 때, 불꺼진 자취방에 들어 가기 싫었었다. 혼자 있다는 사실이 피부로 느껴지는 것이 너무 싫었기 때문이다.

그 날, 보금자리로 들어서는 골목길은 꼭 예전의 그 느낌이었다.

달라진 것은, 내 옆에 장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들에게 내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이 장우나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앞으로 장우랑 살아갈 수많은 날들을 생각하며 내가 더 단단해져야 할 것이다. 내 마음 속의 감정을 제대로 드려다보고 제대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연휴가 좀 쓸쓸하지만, 날 사랑하는 사람에게 감사하기에 외롭지 않고...

연휴 기간 동안 좀 우울한 느낌도 들었지만, 밝은 장우가 고마워서 힘들지 않다.

 

설을 몇 시간 앞두고 체 게바라의 글을 읽었다...

 

아름다움과 혁명은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얼마든지,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것을

아무렇게나 만드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아름다움과 혁명은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의 손 끝에 있는 것이다. [체 게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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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성희롱

어제 지역 모임이 있었다.

모임 후, 뒷풀이...

술먹다가, 한 남성동지가 여성동지에게 이렇게 말했다.

"000동지, 얼굴에 살이 빠지니까 더 이쁘네"

난 이 말은 성희롱이라고 느꼈다....그 다음...

 

옆에 있던 다른 동지들이 거든다...

"우리 지역(모임이라고 했던가?)에 이쁜 동지(여성)가 몇 명 있는데, 그 중 000동지가 제일 이쁘고, 000동지가 그 다음이고 어쩌고 저쩌고...."

난 이 말도 맘에 들지 않는다.  무의식적, 무대상적 성희롱이랄까...

 

흔히, 여성에게는 "이쁘다"고 표현한다. 남성에게는 "멋있다"고 표현한다. 남녀성차별에 따른 표현이다. 그러면서, 여자다움과 남자다움이 이야기되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더 이쁘네"라는 표현은 남녀성차별에 따른 표현에 기반을 둔, 여성을 이쁨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성희롱적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학교에서 더 이상 "이쁘다"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보기 좋다"라거나, 여남학생 모두에게 그냥 "멋있다"고 한다.

 

"이쁘다"는 느낌을 표현하고 싶다면, 그 대용 언어를 생각해 볼 일이다. 더군다나 "살이 빠지니까"라는 건 여성의 신체(혹은 남성의 신체)에 대해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미의 기준에 입각한 부분이다. "살이 찌고 안 찌고"가 어떤 사람의 외모에 대해 "나아지고 안 나아지고"의 기준이 될 수 있는 지가 의문이다. 과도한 비만에 따른 건강의 문제를 제외하고 말이다.

 

성희롱이라는 말로 느껴졌을 때, 난 어떻게 했어야 할까...듣고 불쾌하기만 했지 아무 말은 못했다. 공격적이고 직선적인 말하기보다는 다른 적절한 말하기 방식을 내가 순간 몰랐기 때문이다.

 

성희롱과 관련하여, 난 적어도 원칙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원칙적이라 함은 그 자리에서 바로 문제제기를 해야한다는 것. 그러나 말하기 방식에서 난 적어도 덜 공격적인 말하기를 고민하기 때문에 이왕이면 공감할 수 있는 말하기 방식을 선택하려 한다. 그리고 철저히 피해자중심적이어야 한다는 것. 그런 것인 줄 몰랐다는, 기억나지 않는다는 소위 무지의 이유로 이해되어질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불쾌함과 동시에 원칙적이지 못한 나에 대해서도 실망스러웠다.

다음부터는 - 다른, 차별에 따른 폭력에 대해서도 - 나중에 나 자신에게 실망하지 않게 하리라.....고민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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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에서 이름표를 떼라

교복....

난 교복을 왜 입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무슨 군복도 아니고....집단무의식을 강제주입시키는...꼭 "학교의 명예를 위해...", "국가의 명예를 위해...." 따위의 전체주의적, 국가주의적 이데올로기를 학생들에게 한 벌씩 입혀 놓은 것 같다...

교복....은 그렇다치자..

 

교복에 명찰을 달아야 하나?

난 학교에서 학생들의 명찰(가슴패용 명찰)에 민감하다...

명찰을 달아야 하나? 교사들은 그렇다고 말한다. 이유는 한 가지이다. 교사들이 학생들 이름 외우기 쉽게 하기 위해서...때로는 아이들을 "야", "너"라고 부를 수 없으니 "명찰이 있으면 이름을 부르지 않겠냐"는 것인데...이름을 모르면 이름이 무어냐고 물어 보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는 교사에게 아이들의 생각은 관심이 없다. 교사 자신의 생각으로만 그렇다는 것이다.

이름도 개인의 인권이다. 탈부착이 가능한 명찰이든 실로 꿰매어 놓은 고정형 명찰이든 관계없다. 명찰을 달고 안 달고의 문제는 순전히 아이들의 권리인 것이다. 굳이 구분한다면, 여기서 고정형 명찰은 거의 무차별 폭력이다. 학생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온 세상에 내 이름을 커밍아웃 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탈부착형 명찰은 그나마 개인의 선택이 가능하다는 게 다행이면 다행인가?

 

이 학교에서 신입생 학생들의 교복에 고정형 명찰을 부착한단다...그게 언제 정해졌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해 왔단다...일단, 교내 메신저로 문제제기는 했는데 어떨지 모르겠다...복장 관련한 것은 일단 교내 학생생활규정의 문제로 귀결된다....올 해 교내 학생생활규정 개정에 관심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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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급 반환 유감

전교조 본부 홈피와 경기지부 홈피에 올린 글....

법적 연가권의 사용을 이유로 "연가투쟁"에 대해 부당징계를 내린 교육부에 대해 아무 맥도 못추는 전교조 본부...그리고 교원평가와 교원구조조정의 시발인 "차등성과급 반납 투쟁" 에 참여한 성과급을 스리슬쩍 조합원들에게 아무런 성과없이 '그냥, 조용히' 돌려주려는 전교조 본부....화나고 성질나고 짜증나지만...착하게(?) 내 의견을 올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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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급 반환이 유감스럽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경기 시흥 정왕중학교 조합원 이용석입니다. 저는 성과급 반환을 수령하지 않고자 합니다. 저의 계좌로 성과급을 반환해 주지 말기를 요청합니다.

   “성과급은 독이 묻은 사과”라는 건 이미 다 아는 사실입니다.

   계량화 ․ 수치화될 수 없는, 교육 활동의 결과에 등급을 매긴 후 그것을 돈으로 환산하여 교사를 “평가”하겠다는 발상이 성과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필연적으로 교사들의 무한 경쟁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차등지급의 형태는 이후 교원평가와 연결되면서 교원구조조정의 칼날이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과급은 교원평가를 통해 교사들을 무한 경쟁으로 내몰고 그 결과로 교원구조조정을 통해 교사들의 입과 손을 묶으려고 하는 통제 수단일 뿐입니다. 성과급 반납 투쟁은 이를 거부하려는, 현장 교사들의 강한 의지였습니다. 현장의 조합원 선생님뿐만 아니라, 비조합원 선생님조차 성과급 반납에 참여하셨다는 것은 이미 현장에서는 성과급의 본질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하기에 수 십 만원에 이르는 적지 않은 돈을 반납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현재 성과급 반납 투쟁에서 반납된 성과급을 조합원들에게 반환하고자 하는 전교조 본부의 결정이 고육지책일 것이라고도 생각합니다. 투쟁의 경향과 결과는 현재 정세 속에서의 힘의 역학 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현 사회의 보수적 흐름이 강화되고 있는 마당에,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인 “경쟁”과 “효율”이 미덕이 되어 버린 사회 흐름 속에서 전교조는 그나마 악전고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납된 성과급을 어떻게 전술상으로 활용할 것인가의 문제에 있어서, 최근 교육부의 고자세는 그런 사회의 흐름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반납된 성과급은 전교조 본부에게도 뜨거운 감자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본부의 성과급 반환에 대해 수령을 거부하고자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연가투쟁에 대한 징계가 버젓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재, 교육부를 향한 현장 조합원들의 강한 투쟁의 의지였던 성과급이 ‘그냥’ 반환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과급 반납 투쟁과 지난 해 11월 연가 투쟁은 교원평가 저지라는 분명한 목표를 위한 투쟁으로 본질적으로 동일한 투쟁입니다.

   현재 연가투쟁으로 인해 징계받는 전교조 조합원의 현황은 징계 430여명, 행정처분 1,500여명 이상 등 총 2,000여명 이상으로 지난 89년 전교조 결성 과정에서의 대량 해직 만행 이후 최대 규모 징계입니다. 더군다나 “교육공무원의 당연한 권리인 연가를 불법으로 규정한 징계”이며, “이번 징계는 이미 2004년 1월에 한 차례 징계한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행되는 이중징계”이며, “진술권 박탈 등의 폭력적이고 불법적이며, 최근 ‘3분 이내에 진술하도록 하라’는 교육청 내부 문서가 폭로되기도 하는 등의 징계과정에서의 불법 징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앞장서서 이 징계를 진두지휘하고 있으며,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교육부는 1월 29일 ‘엄정한 징계가 끝났으니, 이제부터 잘 해보자. 앞으로도 집단행동을 할 경우 가만있지 않겠다’라는 취지의 부총리 서한을 발표했습니다. 기고만장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잘못한 것이 없는데 ‘징계’는 뭔 말이며, 이후 집단행동을 “허가”하지 않겠다고 하는데 누가 누구의 허가를 받아야 한단 말입니까. 분명 노동조합 길들이기일 따름입니다.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을 막기 위해 “교원평가 저지를 위한 연가투쟁”과 “성과급반납투쟁”을 했습니다. 징계는 징계대로 무기력하게 받고, 성과급은 성과없이 조용히 반환되는 이 상황은 저에게 개인적으로 암울하고 분노할 뿐입니다.

    그러하기에 최소한, 연가투쟁 부당징계 저지의 성과 혹은 성과급제도 개선의 성과만이라도 쟁취하기 위한 우리의 무기로서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둘째, 부득이 하게 반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① 왜 반환하려고 하는지, ② 성과급 반납 투쟁의 의미(승리적 관점의 의미)와 향후 성과급 투쟁의 전망 등을 조합원들에게 제시하면서 반환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한 과정이 없다면 ‘해도 안되더라’,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등의 패배심리와 현장에서의 위축, 지도부에 대한 불신 등으로 인하여, 이후 성과급 투쟁이나 교원평가 저지 투쟁 등에서 전혀 힘을 얻을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전술은 실패했지만 조합원들을 조직할 수 있고, 조합원들에게 전망을 제시할 수 있는, 일의 결과 처리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성과급 반환의 수령을 거부하려는 것은 성과급은 동료교사를 경쟁자로, 동료교사를 내 삶의 ‘적’으로 만들게 하려는 의도를 가진 칼날이기에, 반납한 것을 돌려 준다한들 받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반환되는 성과급은 - 성과급 반납 투쟁의 의미와 한계 등의 논의를 떠나 - 현장 교사들을 무기력함에 빠져들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지역별로 성과급 반환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지금 반환 수령을 거부하고자 하는 이유는 지금이라도 성과급 반환의 의미를 조합원들이 승리적 관점에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전교조 내의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 노력을 전교조 본부가 먼저 해 주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교육부의 불법부당한 징계와 관련하여 이 징계가 현실화되지 않도록 전교조 본부는 최선을 다해 주시길 바랍니다. 더불어 생존권 투쟁으로까지 볼 수 있는, 성과급 반납 투쟁의 의미를, 그리고 성과급 반환의 이유와 이후 성과급 투쟁의 전망을 조합원들에게 분명하게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부당한 징계를 맥없이 받아들이게 되면서, 성과급은 의미를 찾지 못한 채 반환받게 되면, 현장 교사들은 전교조 본부에 대한 불신과 조합 활동 의미의 상실로 인해 큰 혼란과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성과급 반환은 그 후에라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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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 설치했다^^

이사하고 드뎌 오늘 컴을 설치했다....

 

쓸 말이 많았는데....천천히 할련다....

 

내일 개학한다....맘에 부담되는 부분이 많지만, 함 잘 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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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것

내가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는 쉽다.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기도 쉽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는 어렵다. 그리고 그것을 제대로 표현하기는 더 어렵다.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는 더 어렵다. 다른 사람의 느낌과 욕망을 이해하기보다 나의 느낌과 욕망이 다른 사람에게 투영되기 때문이다.

 

계획하는 사람이 무섭단다.

공부하는 사람이 더 무섭단다.

행동하는 사람이 더더 무섭단다.

더더더 무서운 사람은 고민하는 사람이란다.

 

생각하고 또 생각할 일이다. 나의 내면을 끊임없이 들여다 보고,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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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밤이 깊어질수록 바람이 잦아 드네요.

친구 집 앞 가로등이 유일하게 조용히 밤을 밝히고 있는데, 지나가던 바람이 그 옆에 가만 앉아 있답니다. 가로등 옆 잠들어 있는 목련 잎사귀가 행여 깨어날까봐 바람은 더 이상 바람이기를 포기한 것 같네요. 그 맘이 아련하네요. 내 숨소리마저 잦아 들었답니다.

 

대인공포증, 광장공포증....학창시절...

대낮에 운동장 한가운데를 걸어가 본 적이 없었습니다. 나를 쳐다보는 남들의 시선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내 이야기를 아무와도 나누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다락방에서 비오는 밖을 쳐다볼 때가 제일 행복했었습니다...

누가 나를 싫어했던 것도 아니었고, 누가 나를 미워했던 것도 아니었지만...난 늘 외로웠답니다...

 

그게 너무나 싫어서, 다락방에서 혼자 있는 내가 너무 싫어서, 가족을 떠나 먼 곳에서 혼자 공부한다고 나와 있을 때....난 그저 사람이 좋았습니다.

잠시라도, 내 주변에 사람이 없을 땐, 혼자 떨어진 들꽃마냥, 소리죽인 텔레비젼 소리에 의지하곤 했답니다...나는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할 지 몰랐답니다...나에게 필요한 건 명분과 의지가 아니라 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었지요...슬픈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게지요...사람들의 관심은 끌었지만, 제가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나의 운동, 나의 표현, 나의 개성...이 모든 건 사람들 속에서 외로운 섬이 되고 싶지 않았던 나의 몸부림이었던 것 같아요...

 

사회에 나와서....난 사람들의 관심이 아니라 내 스스로 분명해지고 싶었어요...사람들의 관심에 내 관심이 집중되다보니....이런 사람에게도 '응', 저런 사람에게도 '응'....내가 위로받고 내가 관심받고 싶어서 내 입장이 분명한 것이 아니라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되어 버리더라구요...그래서 저는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었습니다...누구에게나....

관심이 아니라, 나의 입장을 분명히 가지고 싶다고 생각해서....전 저의 선명성을 분명히 하고 싶었어요....옳고 그름, 맞고 틀림....나에게도, 사람들에게도 그걸 분명히 요구하기 시작했고...그 선에서 나를 판단하고 사람들을 판단하고...그러면서 경계를 짓고.....

인간 해방을 이야기하는 제가 다른 형태로 사람들을 나누고 억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내 활동 영역에서든,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오로지 내가 세상의 중심이었을 뿐입니다...

 

그러다가, 당신을 알게 되었지요....

당신에게 다가가는 그 과정 역시 세상의 중심은 나라고 생각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당신에게 다가갈수록 나를 중심으로 주류와 비주류로 나누었던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배려와 공감이 시혜가 아니라 삶의 조건이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함으로써 받은 징계는, 당신에게 다가감으로써 내가 알게 된 것에 비하면 그저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어야 한다고 늘 생각했었습니다...그러나 그 생각조차 머리에 있었더군요...가슴으로 느끼는 배려와 공감...그것을 스스로의 삶과 운동을 바꾸려는 계기로써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당신의 모습이 제겐 저에 대한 부끄러움이었습니다...

 

그래요....많이 외롭고 힘들었습니다....그래서 무얼 어찌해야 할 지 몰랐습니다...그저 사람들이 나를 모른 척 하지만 않기를 바랬습니다...그럴까봐, 그것이 두려워서, 어찌하든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했습니다...그리고 그 속에서 난 만족했고, 그것이 깨질까봐 전전긍긍했답니다...

 

나에게 현실은 현실이 아니었습니다...그건 잊고 싶은 사실이었을 뿐, 내 머리는 상상과 관념 속에서 현실을 재편하고 있었습니다...지금도 아마 그런 면이 있을 것입니다...그리고 이런 내 모습이, 좋은 말로는 나를 감성적으로 만들었지만, 좋지 않은 말로는 나를 감정적으로 만들었지 않나 싶네요....좋은 말로는 이상주의적이지만 좋지 않은 말로는 관념적인.....

 

당신에게 가까이 다가가면서, 제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곁에 있어서는 안될 사람으로, 이 사회에서 소외되는 과정을 경험했습니다...그럴수록 세상에 대해 더 외치고 싶더군요....왜 안되는데? 왜 내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데? 너희들이 나에게 그럴 권리가 있는가? 왜 너희들의 기준에 나를 맞추려 하는가?....그러면서 세상의 관심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관심이 부당하게 느껴지더군요...이 과정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하는 걸 커밍아웃하게 된 근본적 힘이었을 겁니다....

 

이제 내일이면, 아니 오늘이겠군요...오늘이면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이랑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외로움과 공포 속에 보냈던 때가 있었는가 하면,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위해 몸부림치던 때가 있었는가 하면,

관심에 대한 부정이 이분법적 선명성으로-남성중심의 모순으로 가득찬-주몽이 되고자 했던 때가 있었는가 하면,

지금은....

이 모든 걸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모습으로 인정하면서, 나에 대한 배려와 존중, 남에 대한 배려와 공감, 당신에 대한 배려와 공감....이것으로서 내 삶을 만들어 가기 위한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아기마냥 보채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살얼음을 걷듯 마냥 불안한 마음도 있습니다...

처음 혼자 여행할 때마냥 두려운 마음도 있습니다...

 

돈이 없어서 막막하기도 합니다...

여섯 살 난 아이와 무엇부터 해야 할 지 잘 모르기도 합니다...

내가 움직일 수 있는 폭이 좁아진 것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방 한 칸의 공간과 세상을 어떻게 연결해야 할 지도 걱정입니다....

당신이랑 둘이 나눌 술 잔의 기회가 당분간 쉽지 않음이 맘 아프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켠엔 또 다른 희망과 기대를 갖습니다...

온전한 생활인으로-그전까지는 여성이나 여성의 대리인을 희생시키며 남성의 권력을 맛보았다면-살다 보면, 관념이나 이론이 아니라, 일상에서 좀 더 달라지지 않을까....

그러면, 당신에게 그만큼 좀 더 가까이 가는 것이 아닐까....당신이라는 한 사람과의 관계를 제대로 만드는 것, 말로만 소중한 것이 아니라 관계에서 소중함을 만드는 것에 더 가까이 가는 것이 아닐까...내 아이에게도 좀 더 나은 관계와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내 운동이 그만큼 인간의 얼굴을 하지 않을까....

 

밖에 초생달이 있네요....숱한 밤을 지나면서 보름달이 되겠지요....

분명....아직 전 왔다갔다 한답니다....말이든 행동이든 경계를 넘나들고 있어요...변한 듯 했다가 도로 제자리인 것 같기도 하고, 제자리인 것 같다가도 좀 다른 것 같기도 하고...

 

서툴긴 하지만, 사람들이 좋아지고 있어요...내가 사람들을 좋아하기 시작했어요...

서툴긴 하지만, 사람들의 느낌과 욕망을 이해하고 있어요...그래서 어찌해야 하는 지는 아직 제 욕심이 많지만요....

서툴긴 하지만, 배려와 공감을 조금씩 이해하고 있어요...말이 아니라 침묵으로 이해하는 방법을요...

 

40을 바라보는 나이에 걸음마를 배우는 심정이랍니다....그게 온전히 당신 덕분이라면 부담되시려나요?

 

내일 이사합니다...아이와의 공간만으로, 나만의 공간만으로, 자궁같은 공간 속으로....

예전에 밤이 두려웠지만, 지금은 밤이 밤일 뿐이네요....

 

옆에서 잠든 아이의 숨소리가 고즈넉하네요.....밤이 깊어가는 만큼 사랑을 배웁니다....삶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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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뚫었다ㅋ

귀뚫었다....귀걸이가 하고 싶었다...

 

대학 다닐 때 뚫었다가, 이번에 다시 뚫었다....

뭔가 작지만 재밌는, 내 몸의 변화....그것이 또 내 일상의 활력이 될 것 같기에...

 

어떤 귀걸이로 할까...고르는 재미

아프지 않을까....소심하게 겁먹는 재미

뚫고 나면 어떨까....은근히 시선을 받을 상상의 재미

ㅋㅋㅋ

 

악세사리를 좋아하는 심리 중에,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해서, 그 자신감을 채우기 위한 방편으로...자신에 대한 대리 만족...악세사리를 좋아한다고도 한다.....

 

그렇다치더라도 난 악세사리가 좋다...또 다른 나의 표현이자 나의 만족이기 때문에...가능하다면 내 몸뚱아리가 악세사리면 좋겠다...

 

삼사일언...세 번 생각하고 한 번 말한다....

공감과 배려라기보다는 이기적이고 관념적이고 공격적인, 내 말하기 방식과 내 쓰기 방식을 바꾸고...내 듣기 방식과 내 읽기 방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지만, 38년 동안 남성으로 살아온 경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서 혼자 헷갈리곤 한다...이렇게 하는 게 맞나? 계속되는 과정이 힘든 것이 아니라 어쩔 땐 쫌 귀찮기도 하다...기냥 살아온 대로 살아가면 편할낀대, 하면서....하지만, 그건 나 하나만 편할 뿐 나를 포함해 그 누구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기에 포기하지 않는다...'말'이나 '글'이 아니라 묵언의 몸뚱아리로 말할 수 있다면 그게 더 진정성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지...

 

물론, 몸뚱아리 언어도 - '말'이나 '글'처럼 - 정치적이지만 말이다....

내 안의 여성성이 나를 지배하기를 바란다....그 과정이 나를 해방시키는 과정이려니...

 

귀뚫으며 별 생각 다 해봤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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