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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콩님의 [조직..구성원....] 에 관련된 글.
조지콩 님의 글과 연관성이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냥 느낀대로 주절거려 보고자 한다.
조직이란 사실 그 조직 구성원들의 생각과 느낌, 영혼, 감성 등을
총체적으로 표현해 줄 수 있는 등가형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물론 그 조직의 구성원들은 상대적 가치형태라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해서 조직과 조직 구성원들은 등가의 관계를 유지시킬 수 있다.
그런데 내가 겪고 옆에서 지켜본 조직과 그 구성원들의 등가관계는 대단히
형식적이다. 자본주의의 평등이 대단히 형식적인 것처럼!
그리고 그 조직의 대리자( agent)가 또 있게 마련이다.
마치 자본의 대리자가 자본가인 것처럼...
시간이 지나면 조직은 '보이지 않는 손'이 되고,
그 대리인은 보이지 않는 손이 가지고 있는 권력의 담지자가 된다.
이제 그 대리인은 등가형태의 자리를 늘 꿰차고 있게 된다.
반면에 그 구성원들의 대부분은 상대적 가치형태의 자리에 있게 된다.
이 구성원 대부분들이 자신의 영혼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이 대리자를 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대리자를 통하지 않는 구성원들의 영혼은 있으나마나 한 것이 된다.
기껏해야 동원의 대상이 될 뿐이다. 즉 쪽수를 채워 그 조직의 권위와 위엄을
나타내는 장식품이 될 뿐이라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아주 저임금으로 자신의 노동력을 팔 수밖에 없는 산업예비군일 뿐이다.
그렇다고 자신의 영혼을 그 대리자를 통해서 표현하고 싶다고 해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대리자에게 간택당해야 한다.
이런 점 때문에 조직은 관료적이고 가부장적으로 변하게 된다.
조직의 대리자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다른 대리자들을 재생산하게 된다.
마치 자본이 자신을 양적으로 늘리는 것처럼, 가부장제 사회에서 그 사회조직의 후계자를
양성하는 것처럼...
이 대리자의 대리자들은 철저하게 가부장이 될 능력과 자질을 시험받게 되고,
그 시험에 통과할 경우 그는 그에 따르는 약간의 권력을 가지게 되며, 가부장이 되는 훈련을
지속적으로 받게 된다. 또한 이 대리자들의 대리자들은 조직의 원칙이나 규칙들에 대해서
일정 정도의 면책권을 알게 모르게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 대리자의 대리자에 발탁되지 못할 경우,
대부분의 구성원들은 자신의 영혼을 표현하기가 녹록하지 않다.
이 구성원들은 능력과 자질이 떨어지는 자들로 간주된다.
이 자들은 다른 시험에 들게 된다.
그들은 그 조직의 내부의 허드렛 일을 담당할, 즉 엄마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요구받게 된다.
헌신적인 희생과 무조건적인 사랑을 요구받는다.
조직에서 엄마 역할을 담당하는 구성원들은
남편이나 자식들에게 무시당하는 것처럼, 조직의 대리자와 그 대리자의 대리자들,
그리고 그 대리자를 꿈꾸는 구성원들의 생각으로 자신의 영혼을 표현하기를 강요당함으로써
언제나 무시당한다.
이 엄마 역할을 하는 사람 이외의 다른 구성원들, 또는 그 역할을 거부하고자 하는 구성원들은
불평분자 또는 능력 없는 자들, 비활동자들로서 평소에 관심의 대상에서 제외된 자라고 할 수 있다.
이 사람들은 조직에서 철저하게 '따' 당한다.
그들은 조직의 어떤 모임에서건 주목받지 못하는 찬밥 신세일 뿐이다.
이들은 조직에서 암묵적으로 늘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할 것을 요구 당한다.
즉 수모와 비난을 받으면서 조직을 떠날 것이냐(물론 이렇게 조직을 떠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암묵적으로 조직을 떠난 이후에 당할 불이익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든다)
아니면 이렇게 '따' 당하면서 계속 조직원으로 남을 것이냐(물론 조직비를 내서 조직의 재정을 떠받치는 중요한 자로서 또한 조직의 세를 불리는 수단으로서 말이다) 말이다.
사람들이 모여서 조직을 만들었는데,
얼마 안 가서 조직이 사람을 통제하기 시작한다.
과연 이러한 조직에 남아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마도 거의 할 일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절을 용감하게 떠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허허롭고 자유로운 간이역으로 사는 것은 어떨까?
물론 외롭겠지만...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하지 않을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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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탱이님, 여전히 학생들과 소통을 하기 위해 노력하시는 모습을 또 뵙는군요. 20대의 문제...라기 보다는 앞으로도 더 폐쇄적이 될 듯한 장래세대의 인식구조는, 글쎄요... 그들의 주장처럼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맑스할배 주장대로 "존재가 인식을 규정"하기 때문이 아닌지, 그리고 그 "존재"의 배경을 만들어주는 데에 우리들의 책임 역시 있지 않았는지 고민이 됩니다. 쩝...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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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 우리들의 책임이 아주 크다고 생각됩니다.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라는 것을 학생들은 모든 논의에 있어서 절대적인 전제로 사용한다는 것이고요,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그들을 둘러싼 자본주의 환경, 그리고 그 환경에 엄청난 영향을 받는 개별적인 존재인 개인으로서 사회를 어찌해 볼 수 없다는 패배감과 자괴감과 더불어 이런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삶을 합리화시키는 데서 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이 둘의 관계는 동전의 양면이랄까, 뭐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이런 문제와 관련해 블로거들의 토론회를 조직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문득 나네요^^.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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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그제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영국에서 유학하고 있는 한 대학생(올해 3학년)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매우 친한 친구입니다), 그 친구는 늘 불만에 가득차 있죠. 왜냐?! 바로 자기 또래의 젊은 친구들이 하나같이 다 멍청하고 생각없어 보여서랍니다. 대체 "디워"에 열광하는 게 정상적이냐, 대체 "유승준" 문제에는 그렇게 게거품을 물면서 왜 선거에는 관심이 없냐... 뭐 이런 건데요.한편으론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게 갸륵하기도 했는데, 다른 한편으론 무지 답답하기도 하더군요. 더 충격적이고도 절망적인(?) 현실은, 그 친구의 그런 나름 투철한 비판적 의식이 형성되는 배경인데요... 제가, 넌 그런데 어쩌다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됐냐, 그런 이야기를 일상적으로 진지하게 나눌 상대는 있냐.. 이렇게 물었더니, 그 친구는 없어요, 그냥 다음이나 네이버 같은 거 보면서 생각하는 거예요.. 이러더군요.
어떠세요? 보수화(?)하는 친구들도 많은데, 또 그런 물결에서 비껴나 있는 친구들은 그들 나름대로 외로움을 많이 타는 것 같네요. (근데 솔직히 저는 굳이 말한다면, 이명박 지지하는 꼴통 20대보단 위 이야기에 나온 제 친구가 더 걱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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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 제 곁에도 그런 친구들 몇 있습니다^^. 혼자 책 보고 혼자 생각을 키워온 친구들... 그들은 참으로 외로워하는 것 같아요. 뭔가 사는 얘기를 진지하게 나눌 사람이 필요로 한데, 주위에는 그런 사람들이 거의 없는 것 같더군요. 이엠 님 말씀대로 이런 친구들 보면 마음이 싸~해 오더군요.생각을 나눌 수 있는 소통 공간이 거의 없다는 것이 문제겠지요. 누구나가 생각에 고프거나 마시고 싶을 때 찾을 수 있는 밥집이나 술집처럼 자유롭게 와서 채우고 마실 수 있는 곳이 늘 필요한데 말이죠.
진보 진영에 이런 밥집이나 술집을 진보 진영의 특유한 공교육 또는 사교육(자본 측에서 보면 사교육이겠죠^^)의 공간으로 조직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얘들아! 밥집이나 술집 가서 놀자!> 참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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