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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시스턴스 없는 저항없고, 저항없는 서브시스턴스 없다

  • 등록일
    2005/03/12 12:36
  • 수정일
    2005/03/12 12:36
다음은 '나락한알'에 홍철님이 올린 글입니다.
http://cafe.daum.net/narakhanal


"서브시스턴스 없는 저항 없고, 저항 없는 서브시스턴스 없다"  

'서브시스턴스'라는 개념은, 우리 땅과 자유 학교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고 계신 동지들은 이미 귀에 익은 개념일 것입니다.

지난번 '서브시스턴스의 관점으로'라는 주제로 <힐러리에게 암소를> 등의 글을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아래 글은 이번 <녹색평론> 7-8월호에 실릴 마리아 미스와 일본 사람들의 대담 <서브시스턴스 회복의 가능성>의 일부입니다.

글 속에 나오는 '서브시스턴스 퍼스펙티브'라는 말은, 우리 말로 무리해서 번역하자면 '자율, 자급, 자치의 관점' 정도가 될까요. 아무튼 일부러 외국말 쓰자고 쓴 것이 아니고 도무지 아직 우리말로 적절히 옮길 수 있는 번역어가 없다고 김종철 선생님도 고심을 하시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일본사람들도 그냥 일본말로 '사부시스탄스'라고 쓴다네요.

아무튼 아래의 소제목

"서브시스턴스 없는 저항 없고, 저항 없는 서브시스턴스 없다"라는 독일 사람들의 말은, 아주 명쾌하고도 옳은 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노동운동'과 서브시스턴스 관점에 관해 언급한 대목은 우리의 '연대의 방향'과 관련하여 매우 시사적인 대목이다 싶습니다.

마리아 미스와 반다나 시바가 함께 쓴 <에코페미니즘> 같은 책을 보면 이러한 사상과 관점의 전모가 좀더 뚜렷이 드러나겠지만, 아쉬운 대로 곧 나올 <녹색평론> 7-8월호를 통해 세계화에 저항하는 투쟁의 길에 나선 우리가 과연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지 고민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고 봅니다.

(우리 '땅과자유' 제2, 3신과 이 서브시스턴스의 개념을 연관지어 깊이 사색해 보실 것을 동지들께 권합니다.)
오늘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핵심적인 한 대목을 여기에 소개합니다.

(마리아 미스와 대담 출처 소개 등은 맨 아래에 붙입니다. 번역은 이 목 씨가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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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시스턴스 없는 저항 없고, 저항 없는 서브시스턴스 없다"

  후루타 : 그리고 한가지 더 중요한 점은 '서브시스턴스 퍼스펙티브'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새로운 사회관계를 구축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세번째 질문이 되겠는데요. 이를 위해선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미스 씨께서는 서브시스턴스 퍼스펙티브는 모델이 아니라고, 그것은 '퍼스펙티브'라고 말씀하시는데, 이 문제에 관해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미스 : 한가지 얘기가 더 있어요. 케냐정부가 세계은행에서 차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세계은행의 구조조정 프로그램 정책 하에서 원래 케냐에 있던 농업을 갈아엎고 커피 생산을 확대시키라는 정책을 부과했습니다. 케냐라는 나라에서는 토지는 남성들의 소유물이지만, 그러나 실제로 그 땅에서 일하는 사람은 여성들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니까 케냐 여성들은 커피농장에서 열매를 수확하거나 커피나무를 재배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에 커피가격이 하락했을 때, 남성들은 농장에서 나오는 수입이 없어져 돈이 바닥나고 말았지요. 그리고 농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에게 임금을 지불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여성들 입장에서는 임금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커피를 수확해야 할 이유를 잃게 되었고, 그래서 결국 농장 일을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되자 남성들은 정부에, 커피를 수확할 수 없다느니 생산된 커피열매가 팔리지 않는다고 호소하며 절망에 빠졌습니다. 절망적이기는 케냐정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세계은행에서 빌린 융자금의 이자를 지불할 자원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세계은행도 커피생산에서 이익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상당히 화가 나있었습니다. 그래서 세계은행에서 여성들에게 압력을 넣어 대부금을 주는 대신에 커피생산을 확실하게 하도록 주문했습니다. 그리고 케냐정부는 남성들에게 아내를 소중하게 생각하라고, 가족은 조화를 유지해야 화평해진다는 등등의 말로 권고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전과 변함없이 여성들은 꿈쩍도 않고 케냐의 커피농원에서 일하기를 거부하고 말았습니다.

  또, 정부는 주부의 모델이라는 것을 케냐의 가족들에게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다시 말해, 여성 한사람이 남성 한사람에 대해 임금을 받지 않고 노동으로 봉사한다는 모델입니다. 이러한 모델을 억지로 강요했던 것인데, 전통적으로 케냐의 여성들은 집단을 이루어 일하는 일종의 '팀워크' 같은 것이 있어서 이러한 모델을 강요하는 정부의 시도 역시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케냐에서는 커피나무를 베어버리면 7년형에 처한다는 법률이 있었습니다. 여성들의 머리가 아주 비상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만, 커피나무를 잘라내는 대신에 커피나무 사이사이에 콩이나 토마토 따위를 심었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커피나무를 그대로 방치해둔 채 물도 주지 않았기 때문에 거의 시들어 죽고 말았습니다. 마지막에 가서 커피나무는 베어내게 되었지요. 케냐정부는 대단히 불안정했고, 또 세계은행 역시 능숙하게 대처하지 못했으며, 게다가 시민들 사이에서도 정부에 대한 반대운동이 일어나 나라가 안정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여성들은 커피나무를 잘라내고 그곳을 야채밭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야채를 재배하게 되었고, 자기가 먹을 것과 가족들이 먹을 식량을 얻고, 그리고 먹고 남은 야채를 시장에 내다팔 수 있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들은 스스로 마을에서 생명유지를 가능케 하는 서브시스턴스적인 시장을 형성했습니다.

지금까지 아프리카의 남부와 동해안, 중부까지 운동이 확산되었습니다. 이 운동은 점점더 크게 확산되었고 사람들은 환금작물 재배를 거부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여성들이 시작한 운동이며, 여성들은 글로벌한 자본주의를 위한 일, 곧 대가 없는 일을 거부했습니다.

이 이야기 속에는 세가지 교훈이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여성들은 세가지 차원에서 여성들을 억압하는 요소에 대항했습니다. 첫번째 차원은 자기 남편, 두번째는 국가, 세번째는 세계은행으로, 다시 말해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도에 대항했습니다.

둘째, 여성들은 돈을 원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녀들은 프롤레타리아 노동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옛날부터 내려온 서브시스턴스적인 생활로 돌아가 그것을 부활시켰던 것입니다. 쓰고 나면 사라져버리는 돈을 요구했던 것이 아니라, 그 대신 자신의 생활보장을 쟁취하려 했다는, 보통 노동조합이 소망하는 것 같은 보장이 아닌 별개의 보장, 자신의 생활을 위한 안전보장을 쟁취했던 것입니다. 그녀들은 진정 프롤레타리아가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셋째, 그녀들이 자신의 생산수단을 그대로 사용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녀들은 특별히 자신의 토지나 자산의 권리를 자기 명의로 할 것을 호소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저 있는 것을 쓰는 데서 시작했지요. 토지나 자산의 권리를 위한 투쟁을 벌였던 것이 아니고 단순히 자신들이 처한 입장에서 행동을 시작했을 뿐입니다. 그곳에 있던 수단은 서브시스턴스적인 생활을 구축하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독일에서 나온 슬로건을 가지고 한마디로 정리하면, "서브시스턴스 없이 저항 없다" 즉 서브시스턴스가 없다면 저항을 하더라도 그 투쟁을 오래 지속하지 못한다는 얘깁니다. 노동자나 노동조합에서 지금까지 벌여온 것과 같은 운동을 펼친다 하더라도, 글로벌 경제 속에서는 그들의 운동이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어딘가에서 해결을 본다고 하더라도 다시 또다른 곳으로 문제가 이전될 뿐이며, "임금을 인상하라"거나 "직업의 안정을 보장하라"고 부르짖더라도 지금의 경제체제 안에서는 제대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두번째 슬로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저항하지 않으면 서브시스턴스는 없다"입니다. 서브시스턴스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싸워 쟁취하고 지켜내는 것입니다. 세계를, 또 글로벌 경제를 응시하면서 싸워나가지 않는다면 서브시스턴스적인 생활마저 지켜낼 수 없다는 얘기지요. 케냐의 여성들의 행동은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서브시스턴스 없이는 저항도 없습니다. 저항하지 않고서는 서브시스턴스란 없는 것이지요.

후루타 : 무엇에 대한 저항이냐 하는 문제입니다만,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에 대한 저항이고, 지금 같아서는 제2단계로 들어선 세계화에 대한 저항이라 해도 좋겠군요.

케냐 여성들이 가능한 일부터 했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이는 자신을 위해서 자신을 사랑하는 일에서 시작됐습니다. 힐러리처럼 지위상승을 애써 목표로 삼았던 것이 아니었고, 달리 변신하려 했던 것도 아니었지요. 그저 자신을 사랑해서, 자신의 가치관대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했다는 그런 얘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은 여성해방사상과 똑같다고, 예상대로 미스 씨는 "일관된 페미니스트로구나" 하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서브시스턴스 퍼스펙티브'라는 것이 역시 모델이 아니라 '퍼스펙티브'라는 사실에 생각이 이르게 되었습니다. 서브시스턴스가 모델이라고 가정한다면, "무엇 무엇을 하지 않으면 그것은 서브시스턴스가 아니다" 하는 얘기가 되겠는데, 그것이 '퍼스펙티브'이기 때문에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그러한 방향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 일이 가능하다, 저는 이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만 그렇게 이해해도 괜찮을까요?

미스 : 그렇습니다. 지금 있는 곳에서 언제든 시작할 수 있지요. 외부로부터의 혁명이니 뭐니 하는 그런 것들을 기다릴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전세계에 여러 다양한 장소가 있는데, 각 토지마다 다르다는 얘기지요. 일본이나 독일에서도 제각기 서로 다른 형태의 서브시스턴스 퍼스펙티브, 그 이상적인 존재형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는, 케냐의 여성들에게서 기본적인 교훈은 얻을 수 있습니다. 혹 시간이 좀더 마련된다면 더 많은 독일의 사례를 나눌 수 있겠습니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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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의 말
현재 독일 쾰른대학의 교수로 재직중인 마리아 미스(Maria Mies, 1931-)는, 이미 본지에 몇차례 소개된 저명한 여성 사회학자로서, 오래 전부터 여성, 환경, 제3세계 운동을 펼쳐왔으며, 현재 독일을 중심으로 국제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대표적인 페미니스트이다. 특히, 근년에 그녀는 몇몇 동료들과 함께, '서브시스턴스 퍼스펙티브(subsistence perspective)'라는 개념을 구축하여, 지금 인간과 자연을 근원적으로 파괴하고 있는 '세계화' 경제에 맞서는 저항운동으로서 새로운 방책을 제시해왔다. 여기에 소개하는 것은 2001년 12월 7일 일본을 방문한 마리아 미스가 후지와라(藤原) 출판사의 주선으로 행한 대담기록이다. 출전은 일본 잡지《環》2003년 겨울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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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월경, 우리가 관리한다!

  • 등록일
    2005/03/12 12:32
  • 수정일
    2005/03/12 12:32
우리의 월경, 우리가 관리한다!

- 대안월경대운동에 대한 작은 보고서


매닉(피자매연대)

http://bloodsisters.or.kr


    처음 대안월경대와 월경컵(각주1 대안월경대는 면으로 만들어 빨아 쓰는 생리대를 말한다. 월경컵은 질에 삽입하여 월경혈을 받아내는 도구이다. 자세한 이미지와 설명은 피자매연대 홈페이지 bloodsisters.gg.gg를 참조하길...)을 알게 된 것은 몇 년 전 캐나다 친구를 통해서였다. 그것을 계기로 대안월경용품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이것저것 직접 사용해 보기도 하고 여기 저기 사람들에게 알리기도 하면서 2003년 가을쯤에 피자매연대(각주2󰡐피자매󰡑라는 이름은 캐나다의 대안월경대 공동체인 Bloodsisters(bloodsisters.org)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를 꾸려나가게 되었다. 월경페스티발 거리축제 때 탐폰 판촉 부스 앞에서 캐나다 친구와 함께 󰡐탐폰은 독이다!󰡑를 외치기도 하고, 면월경대와 월경컵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목이 쉬도록 설명을 하기도 했다. 그 후로 수 차례의 대안월경대 만들기 워크샵이 있었고 현재는 그러한 작업들이 감자뿌리처럼 또 다른 워크샵들로 퍼져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활동 중에 사람들이 던지는 여러 질문에 이런 저런 궁색한 대답들을 늘어놓으면서 발전시키게 된 몇 가지 주제가 있는데, 한마디로 대안월경대는 무엇에 대한 대안이냐 하는 것이다.

    일차적으로 간단하게 탐폰과 일회용 생리대에 대한 대안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탐폰과 일회용생리대를 쓰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답은 탐폰과 일회용생리대는 여성의 몸에 해롭다는 것이다. 1980년 미국에서 공식적으로 36명의 여성이 독성쇼크증후군(Toxic Shock Syndrome, 일명 TSS)이라는 희귀한 병에 걸려 사망하고, 1000명 이상의 환자가 발생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신형 탐폰을 사용했다는 것이었다. 과학자들은 그 탐폰에 들어가 있는 흡수력이 높은 합성섬유가 독성쇼크증후군을 일으키는 포도상 구균의 감염을 높인다는 것을 밝혔다. 그러나 그 후 미국 FDA는󰡐흡수력이 낮은 탐폰을 이용하라󰡑라고 권고하는데 그침으로써 탐폰의 안전성에 관한 책임을 사용 여성들에게 떠넘겨버린다.

    독성쇼크증후군과 함께 다이옥신 또한 여성의 건강을 위협하는 요소이다. 대부분의 탐폰에는 레이온이 포함되어 있고 레이온은 나무 펄프로 만들어지는데, 이 나무 펄프를 염소 표백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산물이 바로 가장 강력한 발암물질이자 환경호르몬으로 알려져 있는 다이옥신이다. 다이옥신은 자궁경부암, 자궁내막증, 불임증, 난소암, 유방암, 면역체계결함, 골반내염증질환 등 각종 여성 생식기 질환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이다. 그 외에도 탐폰과 일회용생리대에는 인체에 해로운 여러 가지 첨가물들이 들어있다. 생리대를 사용하는 많은 여성들이 고질적인 국부 염증, 가려움, 질염 등을 호소하고 있고, 대안월경대로 바꾼 여성들은 그 증세가 많이 완화되었거나 없어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탐폰과 일회용생리대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는 거의 탐폰과 생리대회사 자체에 떠넘겨지고 미국이나 한국이나 객관성 있는 독립연구기관이 전무한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각주3󰡒Pulling the Plug on the Tampon Industry", Karen Houppert, Village Voice, February 7, 1995. 이 글은 미국 여성위생산업계와 FDA가 어떻게 탐폰의 위험성을 무시하고 은폐해왔는지에 대해 검증된 자료를 바탕으로 실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또 각종 탐폰, 생리대 광고를 통해 여성위생산업이 조장하는 여성 억압적 가치의 확대 재생산에 대해서도 논하고 있다. http://www.spotsite.org/에 들어가면 이 글을 읽을 수 있다.)

    여성의 건강에 직접적인 위험을 초래하는 것 이외에도 일회용 생리대와 탐폰은 엄청난 생태 환경 파괴를 초래한다. 생리대와 탐폰의 주성분인 펄프를 얻기 위한 벌목으로 제3세계 여성들의 삶의 기반인 숲이 황폐화된다. 또 펄프를 만드는 과정에서 엄청난 물의 낭비와 오염이 초래된다. 또 인구의 절반이 매달 내놓는 엄청난 양의 생리대 쓰레기는 소각할 때 발생하는 유독가스와 매립했을 경우 지속적으로 흘러나오는 각종 환경호르몬과 유해물질을 통해 공기, 땅, 물을 오염시키게 된다.

    마지막으로 일회용생리대와 탐폰은 여성의 몸과 환경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일회용생리대가 여성의 자유를 가져다준다는 일반적 통념과는 다르게, 오히려 여성억압적 가치를 더욱 확산시킨다. 대부분의 일회용생리대 판촉광고는 월경을 자연스러운 몸의 현상이 아니라 여성이 감추고 극복하고 “처리”해야 할 대상으로 설정한다. 그래서 여성들이 스스로 월경이라는 󰡐열등함󰡑을 극복하고 남성처럼 월경이 없는 듯이 일해야지만 남녀평등의 문제가 해결되고 자유를 쟁취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사회가 원천적으로 남성중심적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교묘하게 가린다. 뿐만 아니라 이처럼 감쪽같이 월경을 처리하는 비용은 전적으로 여성에게 부과된다. 나날이 비싸지는 생리대에 드는 비용뿐만이 아니라 건강을 해치는 데서 오는 비용, 환경에 대한 비용들도 포함된다. 일회용생리대가 강조하는 “깨끗함”과 “안전함”은 표백약품과 초강력 흡수를 위한 각종 첨가물, 땅 속에 버려도 분해되지 않는 화학물질들로 만들어진다.

    이러한 대안의 의미를 짚어가다 보면 결국 여성의 몸과 그들의 삶의 근간인 환경을 착취하고 파괴하는 세력의 중심에 여성위생산업, 펄프산업, 다국적기업들이 떠오른다. 이들은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세계 민중들의 자급력과 재생력을 박탈하고, 약자에 대한 사회의 보호망들을 제거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생산해낸 󰡒잉여󰡓가 자신들의 자본력과 기술력 때문에 이루어진 가치생산이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여성, 환경, 이주민, 제3세계를 식민화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다층적 맥락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대안월경대운동은󰡐웰빙󰡑이라는 상업화의 물결에 휩쓸려 묻혀버리기 마련이다. 이것이 바로 대안월경대운동이 자본주의의 상품화에 반대하는 자급적, 재생적 관점에서 다양하게 맥락화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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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망증

  • 등록일
    2005/03/12 12:27
  • 수정일
    2005/03/12 12:27

난 건망증이 너무 심해서

아주 중요한 사실들을 곧잘 까먹곤 한다.

때론 이 망할놈의 건망증 때문에

내 인상이 송두리째 이 놈에게 뺏긴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놈에게서 내 삶을 탈환하기 위해서

대안은 기록을 남기는 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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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하며

  • 등록일
    2005/03/12 12:24
  • 수정일
    2005/03/12 12:24

네이버 블로그를 웹하드처럼 쓰다가

진보넷 블로그로 오늘 이사했다.

거기 있는 글들을 죄다 이쪽으로 옮기고

그곳은 폐쇠할 예정.

좀 지속적으로 글을 써야지 잡글이든, 뭐든

쓰지 않으면 사고의 발전도 없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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