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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신학, 긍정신학, 스피노자의 신학

 마이클 하트, <들뢰즈 사상의 진화>, 192~199


들뢰즈는 스피노자의 표현적 속성 이론을 가늠하기 위해서 신학적 패러다임들을 간단하게 전개한다. 부정 신학들은 일반적으로 신이 세계의 원인이라는 것을 긍정하지만 세계의 본질이 신의 본질이라는 것은 부인한다. 다시 말해서 비록 세계는 신의 표현이지만 신의 본질은 언제나 표현의 본질을 능가하고 초월한다. "감추는 것은 또한 표현한다. 하지만 표현하는 것은 여전히 감춘다." 그러므로 본질이나 실체로서의 신은 부정적으로만, 표현의 우월하고 초재적이며 감추어진 원천으로서만 정의될 수 있다. 부정신학의 신은 표현적이다. 하지만 어떤 유보를 가지고서 그러하다.


반대로 긍정신학들은 신을 원인이자 세계의 본질이라고 긍정한다. 하지만 이러한 이론들 사이에는 이 이론들이 신의 긍정성을 긍정하는 방식에서 중요한 구별들이 있다. 들뢰즈는 표현적 신학과 유비적 신학을 구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예를 들어 토마스 아퀴나스적 전통의 경우 신에게 귀속된 질들은 신과 세계의 피조물들 사이의 유비적 관계를 함축하고 있다. 이러한 개념화는 신을 우월한 위치에 올려놓는 동시에 존재의 표현을 다의적으로 만든다. 신과 피조물은 형태에 있어 다르며 그렇기 때문에 동일한 의미에서 이야기되어질 수 없다. 하지만 유비는 정확히 이러한 틈새를 연결하기 위해 이용된다. 유비는 신과 사물들 사이의 본질적 동일성과 형식적 차이를 화해시키고자 한다.


스피노자의 속성 이론은 이러한 공식을 뒤엎어 버린다. "속성들은 신 - 속성들은 신의 본질을 구성한다 - 과 양태 또는 피조물들 - 이것들은 속성들을 본질적으로 함축한다 - 사이에 공통되는 형식(형상)들이다." 유비의 이론과 달리 스피노자의 속성은 형식의 공통성과 본질들의 구별을 제시한다. "스피노자의 방법은 추상적인 것도 유비적인 것도 아니다. 그것은 공통성(community)에 기초한 형식적(형상적) 방법이다." 하지만 본질에 대한 이러한 스피노자적 구별은 부정신학의 개념화를 다시 가리키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속성들(표현들)을 통해, 실체(표현자)는 양태들(표현되어지는 것들)의 세계에 절대적으로 내재한다. 표현자(신)의 본질과 표현되어지는 것(양태)의 본질의 구별은 전자가 후자 속에 내재하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신적인 것은 절대적으로 표현되어진다. 어떤 것도 감추어져 있지 않다. 유보도 초과도 없다. 존재의 단속성에 대한 스피노자의 개념화는 이러한 부정 신학의 패러다임에 대해 스피노자가 대립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내재성은 우월함에 대립된다. 범신론은 초재에 대립된다. 스피노자의 신은 아무런 유보 없이, 세계 속에 완전히 표현된다. 스피노자적 일원론은 부정적이고 유비적인 일체의 이원론에 반대된다. 이러한 절대적 표현을 허용하는 중심적 요소는 속성들 속에 포함된 형식들의 공통성(commonality)이다.


표현과 유비의 구별은 들뢰즈가 속성과 고유성들을 구별할 때 더욱 분명해진다. "고유성은 정확히 말해서 속성들이 아니다. 이는 고유성들이 표현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신의 고유성들(전능, 전지, 완전 등등)은 신의 본성 가운데 어떤 것도 표현하지 않는다. 고유성들은 침묵한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기호들(signs)로서, 계시로서, 계명으로서 나타난다. 고유성들은 공통 형식을 우리에게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본성에 대해 어떤 것도 이해할 수 없게 하는, 우리에게 각인된 개념들이다. 그러므로 들뢰즈는 '신이라는 단어'의 두 가지 의미를 구별한다. 하나는 표현으로서의 속성을 가리키며, 다른 하나는 기호로서의 고유성을 가리킨다. "기호는 언제나 하나의 고유성에 결부된다. 그것은 하나의 계명을 기호화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복종을 근거 짓는다. 표현은 언제나 하나의 속성과 관련된다. 그것은 하나의 본질, 즉 하나의 본성을 부정법으로 표현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그것을 인식시킨다."


다시 한 번 속성들의 표현은 존재의 공통 형식들을 통해서만 발생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개념화를 두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한편으로 속성들에 의해 신은 양태들의 세계 안에서 절대적으로 내재적이다(완전히 표현된다). 다른 한편 속성들의 공통 형식들을 통해 양태들은 신적인 실체에 완전히 분유한다. 내재성과 분유는 속성들의 표현이 갖는 두 가지 측면이다. 표현적 속성들에 의해 주어지는 이해유비적 고유성들에 의해 부과되어지는 복종을 구별해주는 것은 이러한 분유이다. 기호들의 체계는 우리에게 존재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침묵하는 기호들과 기호학의 계명들은 존재론을 폐장(閉場)시킨다. 오직 표현만이 존재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열어놓을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속성들의 표현이라는 기초 위에서, 존재의 공통 형식들을 통해 부정신학과 유비적인 긍정 신학을 비판해왔다. 어느 정도까지 공통 형식들에 대한 개념화는 실재적 구별에 의해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존재의 단독성은 세계 속에서 신의 절대적 내재성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만일 신이 절대적으로 내재적이지 않다면 우리는 두 가지 실체를 구별할 필요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절대적 내재성은 일의성에 대한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속성들은 (내재성으로부터 뒤따르는) 내부적인 공통 형식에 의해 특성화될 뿐 아니라 외부적 복수성에 의해서도 성격이 규정된다. 다시 말해서 표현적인 긍정 신학이라는 이러한 이론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무한한 속성 속에 구현된 형식적(형상적) 공통성을 상이한 속성들 사이의 형상적 구별에 의해 보충할 필요가 있다. 신의 본질은 하나의 속성 안에서 표현될 뿐 아니라 무한한 수의 형상적으로 구별되는 속성들 안에서도 표현된다.


그러므로 이 긍정 신학의 작업틀을 더 좋게 손질하기 위해서 들뢰즈는 스피노자의 속성 이론으로부터 둔스 스코투스에게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둔스 스코투스는 아마도 긍정 신학의 기획을 가장 멀리까지 가져간 사람일 것이다. 그는 신플라톤주의자들의 부정적 우월성과 토마스주의자들의 의사-긍정을 동시에 고발한다." 둔스 스코투스의 긍정 신학은 형상적 구별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이 개념은 그가 속성들 사이의 차이들 및 각각의 속성 내부에 있는 공통성 둘 다를 유지시킬 수 있는 논리적 메커니즘을 제공해준다. 속성들은 형상적으로는 구별되고 존재론적으로는 동일하다. "여기에는 이를테면 두 개의 질서, 한 편의 다원성이 다른 한편의 단순성과 완전하게 서로 일치하는 형상 이유의 질서와 존재가 있다." 형상적으로 구별되는 속성들의 긍정적 표현은 둔스 스코투스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스피노자에 대해서도 존재의 일의성 개념화를 구성한다. 일의성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존재가 언제 어디서나 동일한 목소리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속성들은 각각 상이한 형상으로, 그러나 동일한 의미로 존재를 표현한다. 그러므로 일의성은 속성들 사이의 형상적 차이를, 그러나 속성들 사이의 실재적이고 절대적인 존재론적 공통성을 함축한다


그러나 들뢰즈는 스피노자의 일의적 존재 이론이 둔스 스코투스의 그것보다 훨씬 월등한데, 그 이유는 속성들의 표현성에 대한 스피노자적 개념 때문이라고 조심스럽게 지적하고 있다. 둔스 스코투스에게 있어서 속성들이라고 불리는 것들, 예를 들어 정의, 선, 지혜 등등은 실제로 단순한 고유성들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둔스 스코투스는 지나치게 한 명의 신학자로 남아있기 때문에 신적인 것의 어떤 우월함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학적인, 다시 말해 '창조론적인' 관점이 그로 하여금 일의적 '존재'를 중립적이고 아무런 차이가 없는 개념으로 생각하도록 강제했기 때문이다." 둔스 스코투스에게 있어서 창조주인 신은 그것이 자신의 원인이라는 것과 동일한 의미에서 모든 사물들의 원인인 것이 아니다. 둔스 스코투스의 일의적 존재는 절대적으로 단독적이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다소 아무런 차이가 없는, 다소 비표현적인 채로 남아 있다. 그러나 스피노자의 실재적 구별은 일의성을 긍정의 층위까지 올려놓는다. 스피노자적 속성에서, 존재의 표현은 존재의 긍정이다. "속성들은 긍정들이다. 그러나 긍정은 그 본질상 언제나 형상적, 현실적, 일의적이다. 거기에 속성의 표현성이 놓여있다. 스피노자의 철학은 순수 긍정의 철학이다. 긍정은 <에티카> 전체가 의존하고 있는 사변적 원리이다." 스피노자적 맥락에서 들뢰즈는 긍정에 대해 기원적이고 엄밀한 정의를 부여한다. 긍정은 절대적인 단독성 및 존재의 일의성, 또는 다시 말해서 존재의 완전한 표현성에 기초하고 있는 하나의 사변적 원리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다시 한 번 스피노자에 대한 전형적인 베르그송적 평가를 이해할 수 있다. "스피노자는 우리로 하여금 사변에 있어서 영웅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가리켜 준다." 긍정은 순수 철학의 정점, 사변 철학의 정점을, 영웅적인 계기를 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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