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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대신 하느님이란 단어를 선호한다. 이유는 '낯섦' 때문이다. 익숙한 하나님 대신 하느님을 발음할 때마다 한번 더 그이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많은 신앙인들이 익숙한 언어세계 속에 있음으로 인해 오히려 그 언어가 지시하는 삶과 유리되어 있음에도 알아차리지 못 하는 상황 속에서 살아간다. 장례식에서 유창한듯한 하지만 내용 없고 성찰 없는 목사들 기도와 설교를 듣고 있자니 한 숨이 났다.
신앙함이란 우리를 불편함 속으로 밀어 넣는 것이다. 이것이 1세기의 유대적인 것과 예수적인 것 간의 차이다. 유대인들은 민족공동체 안에 성공적으로 귀속됨으로써 은혜를 누렸다. 그러나 예수는 그 경계를 끊임없이 교란함으로써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사실 그 불편함이야 말로 내가 강제적으로 열어젖혀지는 '구원'이 아닌가. 그 경험 속에서야 우리는 변화되지 않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를 안락하게 만드는 신앙언어로부터 탈출해야지 않겠는가. 고대와 현대, 그리고 앞으로 올 모든 불편한 것들과 벗되어.
교회가 말하는 구원은 사실 끊임없이, 사후세계와 종말에 이르기까지 지연됨으로써 지금 힘을 발휘한다. 이 마법으로부터 풀려나야, 즉 욥의 고통을 마주함으로써 우리는 구원 없음이란 진실을 발견하고 거기서 구원을 받는다. 물론 이것도 구원을 중 하나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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