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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신학 방법론>을 준비하자.

7월인지, 8월인지. 카이로스에서 콜로키엄 발표도 해야 하고.

마침 학교 수업에 "신학방법론" 수업도 있으니.

 

올 한 학기 페이퍼 과제로 <민중신학 방법론>을 써 봐야겠다. 

 

던지는 질문은 대충 이런 것들이다. 

 

"민중신학의 정체"란 "민중신학사" 서술로서만 드러나는 것일까?

-민중신학의 담론사를 통해 민중신학의 성격을 찾는 연구들에 대한 비판

-순차적이고 단선적인 '역사'가 아니라 기존의 신학사의 '중단' 속에서 민중신학의 성격을 읽어내는 방식이 필요: 민중신학이 중단시킨 것은 무엇인가?

 

"민중신학은 '기독교 신학'인가?"

-'신학'은 기독교만의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것은 '유대교 신학', '힌두교 신학', '이슬람 신학'도 있다는 이야기를 넘어선다. 

-그 넘어서는 지점은 신학이 근본적으로 '하나의 이야기'로 닫힐 수 없는 오염물임을 나타내는 것.(ex: 데리다, <환대에 대하여> 등..)

-민중신학은 '기독교 신학'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독교 신학이 아닌 것'도 아니고 '민중종교'의 신학도 아닌 '신학'. -이것을 어떻게 해명할 수 있을까. 

-타자성 속에서 민중신학의 '신학함'을 정의하는 것.

 

"'민중'은 누구인가?"

-안병무, 서남동, 강원돈이 내놓은 질문과 대답에 대한 분석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질문하게 하고, 그렇게 대답하게 한 이유들을 찾아보자. 

-전태일 사건, 그리고 이어지는 소위 70-80년대의 투쟁하는(고난받는) 민중은 어떻게 신학을 몰락시키고 구원시켰는가?

-민중은 레비나스의 타자인가. 데리다의 타자인가. 가라타니의 타자인가. (타자성에 대한 이론들 검토)

-발터 벤야민의 <신적 폭력>에 대한 검토. 

 

"이제 '민중'을 몰락시키고 또 구원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은가?"

-여전히 '민중'이라는 이름으로 살며 투쟁하는 것이 유효한가? 민중은 그 '타자성'을 여전히 간직하는/새롭게 표현하는 유효한 명칭인가? 아니면 완전히 하나의 회고적이고 대항주권적 담론 속으로 완전히 포섭되어 버렸는가?

-'민중'이 아니라면 우리는 어떤 다른 '이름'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 사회학으로부터가 아니라 '민중신학'의 논리로부터 새로운 '이름'에 대한 가능성을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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