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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정부였습니까? [복상2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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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혁명 연구모임 엮음, 시대의창, 2006

노무현 대통령님께.

 

요즘 기분이 어떠십니까? 광범위한 국민적 반대를 무릅쓰고 한미FTA를 체결한 뒤 지지율도 오르고, 정치권에 대한 입김도 세 지신 듯하던데 요즘 기분이 어떠신지 참 궁금합니다. 그냥 멀리서 이렇게 보고 있으면 당신께서 꽤나 자신감이 넘친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자들 전체를 적으로 돌리시기도 하고, 잘 나가는 대선주자 몇 명을 낙마시키거나 활동에 커다란 타격을 입히시기도 하는 걸 보면, 당신의 그 자신감과 정치적 스킬(?)이 참 대단하구나 싶습니다.


‘참여’ 정부였습니까?
그러나 저는 묻고 싶습니다. 혹시 ‘참여정부’ 5년 동안 노무현 대통령님 당신만 참여하고, 당신만 살아남고, 당신만 자신감 넘치는 정치를 펼쳐 오신 건 아니었는지요. 이 5년 동안 저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지 못하고, 살아남지 못하고, 자신감을 잃어버리는 모습을 보아 왔습니다. 이라크 파병으로 인해 김선일 씨가 죽고, 새 비정규직 법안으로 인해 수백만의 노동자들이 공포에 떨고, 이주노동자들이 단속을 피해 도망 다니다가 추방당하고, 새만금에서, 부안에서, 광화문에서 수많은 이들이 경찰의 차벽에 가로막히고, 군홧발에 짓밟혀 다치는 모습을 5년 내내 보아야 했습니다. 죽거나 다치거나, 자신감을 잃은 이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삶을 결정하는 일, 즉 ‘정치’에 ‘참여’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5년 전에 우리는 당신에게 열광했습니다. 정치를 정치인들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고, 나도 정치를 할 수 있고, 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당신은 그런 꿈을 꾸게 해 주었었지요. 그러나 그 꿈은 5년 내내 우리를 배반하기만 했습니다. 지금 남한의 민중들을 사로잡고 있는 건 정치에 대한 냉소와 무관심과, 환멸입니다. 그래도 ‘참여’해보겠다 달려들었던 사람들은 당신과의 싸움에 지쳐서 쓰러지기 일보직전이고, 한걸음 뒤에서 ‘참여’가 가능할지 재고 있던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 안 되는구나. 역시 정치는 엘리트가 해야지’라고 생각하며 옛 독재자의 후예들에게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참여 없는 참여정부 아래에서 민중의 정치적 역량 또한 무능력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참여민주주의
오늘 소개해드릴 이 책,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에는 당신과 같이 “참여민주주의”를 내걸고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는 또 한사람이 나옵니다. 바로 베네수엘라의 대통령 차베스입니다. 차베스 쪽이 훨씬 드라마틱하긴 하지만 두 분은 비슷한 면이 많이 있습니다. 모두 구체제 하에서 치열하게 사회운동을 벌였고, 대통령 당선 이후에는 보수언론으로 대표되는 수구세력과 격렬하게 싸웠지요. 게다가 대통령직에서 중도에 물러날 뻔한 것 까지도 비슷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차이점도 존재합니다. 당신의 싸움이 갈수록 국민이 없는, 당신만의 싸움으로 흘러갔던 반면에 차베스의 싸움은 언제나 민중을 위한, 민중과 함께 하는 싸움이었지요. 그리고 이 차이점으로 인해 베네수엘라의 민중은 무엇보다도 ‘능력’을 가진 존재로, 적극적인 ‘정치인’으로 성장해가고 있습니다.


쿠데타, 개혁, 혁명의 베네수엘라
차베스와 당신이 비슷한 것처럼 베네수엘라 민중의 역사도 우리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20세기 초반과 중반에 각각 한 번씩 독재를 겪었고, 여러 차례의 쿠데타를 겪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마다 민중의 힘으로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정부를 수립했지만, 민주정부는 곧잘 민중의 이해와 요구를 배반하고 ‘그들만의 개혁’을 진행시켰습니다.

 

베네수엘라의 정치 엘리트들은 1958년, 사법부, 군부, 선관위 등을 포괄하는 공직을 선거의 승패와 상관없이 정당들이 나눠 갖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푼토 피호 협정”을 맺게 됩니다. 차베스가 대통령이 되는 1998년까지 그 명맥을 유지한 이 푼토 피호 체제로 인해 베네수엘라는 신진정치세력이나 민중진영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보수 양당이 번갈아가면서 집권하며 국가를 이끌게 됩니다.

 

물론 이 푼토 피호 체제가 ‘반민주주의’적인 건 아니었습니다. 한 정당의 독주를 막음으로써 의회중심의 민주주의를 이룬 베네수엘라의 정치엘리트들은 58년으로부터 1970년대 말까지 지속적인 경제성장이라는 열매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이 당시의 경제 성장은 성장이 어느 정도 복지로 연결되는 선순환적 성장이었습니다. 노동자들은 푼토 피호 체제의 유력 정당인 민주행동당의 지도 아래 있는 노총의 보호 아래에서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 있었고, 지속적으로 실업률이 하락하여 극빈층의 비율이 2% 미만으로까지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안정과 성장의 시대는 80년대에 들어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세계를 휩쓸면서 그 종말을 고하게 됩니다. 베네수엘라는 70년대 말 유가가 하락하자 위기를 극복하고자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양극화를 심화시킴으로써 하위계층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고정자본투자와 공공지출이 붕괴되어 1983년에는 실업률이 두 배로 증가했고, 빈곤층이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베네수엘라 노총은 대다수의 노동자들과 분리되어 소수의 중산층 정규직 노동자들만을 대변하였습니다. 80년대 중반에는 빈곤층이 전 인구의 40%를 차지하게 되면서 교육과 의료체제가 무너지게 되고, 폭력조직들이 성행하게 됩니다.


카라카소 봉기와 차베스의 등장
이러한 모순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이 89년의 카라카소 봉기였습니다. 당시 페레스 정부가 그나마 민중의 삶을 유지시키고 있던 가격통제정책을 폐지하자 버스 요금이 두 배로 올랐고, 이것에 분개한 민중들이 일제히 거리에서 봉기를 일으켰던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봉기를 사전에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페레스정권은 군대를 동원하여 무자비하게 봉기를 진압합니다. 수도에서만도 무려 2000명 이상이 죽거나 실종되었고, 부상자도 수천을 헤아렸습니다. 그러나 이 카라카소 봉기는 봉기를 통해 일어났던 민중들에게, 그리고 그 봉기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시민들을 학살한 죄책감을 가슴에 품은 군인들에게 엘리트들만의 민주주의를 전복시켜야 한다는 마음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92년 당시 장교였던 차베스의 쿠데타로 이어집니다. 비록 쿠데타는 실패하고 말았지만 그 실패를 인정하며 “모든 책임은 나 홀로 지겠다”고 선언한 차베스의 방송 연설은 민중들의 가슴에 깊이 박히게 됩니다. 그 결과 차베스를 옹호하는 중도 좌파 성향의 칼데라 대통령이 당선되게 되고, 94년 차베스와 쿠데타 주모 세력은 석방되어 합법적인 정치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민중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은 차베스는 마침내 98년 대통령에 당선되어 소위 ‘볼리바리안 혁명’을 시작하게 됩니다.


민중에게 권력을!
대통령에 당선된 차베스는 2002년과 2004년에 혁명을 반대한 구 엘리트세력과 중산층 중심의 노총에 의해 권좌에서 물러날 위기에 처합니다. 한편의 영화와 같이 드라마틱한 이 사건들을 지면상의 문제로 자세히 이야기드릴 수 없다는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그를 구출한 것은 베네수엘라의 민중이었다는 것을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당신을 탄핵의 위기에서 구출한 것도 바로 광범위한 민중들의 촛불시위 때문이었지요. 그러나 그 이후 한국의 민중들은 당신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지만, 베네수엘라의 민중들은 오히려 강력하게 차베스를 지지하고 그와 정치적 생사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낳았을까요? 

 

차베스가 대통령이 된 이후 가장 고심했던 일은 엘리트 중심의 의회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일이었습니다. 그가 선택한 전략은 바로 ‘제헌의회’였습니다. 베네수엘라 헌정을 처음부터 새롭게 다시 시작하겠다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이 과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민중에게 의견을 묻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헌법의 내용 역시 권력을 민중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그 핵심이었습니다. 차베스는 제헌의회에 그의 ‘볼리바리안 헌법안’을 제출하면서 자신의 참여 민주주의 이론이 대의 민주주의 논리와는 대립되는 것임을 지적하고, 민중의 주인 됨을 그 핵심으로 주장합니다. 국가의 중요 정책은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되어야 하며, 선출직 공무원들을 소환할 권리 역시 국민들의 손에 주었습니다. 또 다양한 형태의 주민자치위원회나 시민의회가 헌법에 의해 보장되었고, ‘시민불복종’ 역시 헌법에 의해 법적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민중의 직접적인 정치 참여를 보장한 볼리바리안 헌법은 차베스를 중남미에 흔한 포퓰리즘 정치인과 구분시켜줍니다. 아시다시피 포퓰리즘이란 대중을 선동하고 대중에게 시혜적인 정책을 펼치면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정치행태를 말합니다. 차베스 역시 대중들, 특히 40%가 넘는 빈곤층을 위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펼쳐왔습니다. 이 책은 토지제도를 개혁하고,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를 지원하고, 문맹자들을 위한 학교를 개설하는 등 차베스 정부의 복지정책을 개략적으로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단순한 시혜적 정책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과정에서 베네수엘라 민중은 헌법에 의거하여 직접적으로 참여하고, 토론하고, 정책을 입안할 수 있었습니다. 민중과의 직접적인 협력, 민중의 정치적 능력의 증대야 말로 차베스의 ‘포퓰리즘’이었습니다. 차베스가 자신의 반대파들을 무력으로 억압하거나 자유를 빼앗지 않았다는 점도 그를 다른 남미의 포퓰리즘 정치인과 구분하여 줍니다.

 

이러한 차베스의 개혁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이들이 “볼리바리안 서클”과 주민자치조직 등을 비롯한 풀뿌리 운동조직들이었습니다. 특히 볼리바리안 서클은 자발적인 차베스의 지지자들로써 여러 차례에 걸친 반혁명에 맞서 헌법과 차베스 정권을 수호하는 일을 주도적으로 벌인 그룹입니다. 이들이 ‘노사모’와 같은 정치인 팬클럽과 구분되는 것은 단순히 정치인에 대한 지지수준을 넘어서서 사회운동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이들은 베네수엘라 민중들에게 헌법을 가르치고, 주민조직들을 건설하고, 때로는 차베스 정부에서도 존재하는 부패한 관료들과도 맞서 싸우기도 합니다. 이들은 이들의 목적이 차베스 지지에 있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심지어 차베스가 혁명을 배신하면 누구보다 앞장서서 차베스 정권에 대한 저항을 조직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합니다. 이들에게 소중한 것은 인간 차베스가 아니라 차베스를 통해 민중이 직접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사회를 개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참여정부’였었다면…
여러 명의 저자들이 공동으로 집필한 이 책은 철저히 일반인들을 위해 쓴 쉬운 책입니다. 대통령님께서는 매우 똑똑하신 분이니 이런 책은 아마 앉아서 한 시간이면 다 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차베스의 외교정책이나 석유정책, 복지정책 등의 세세한 내용이나 그의 인간적 면모에 대한 것들은 직접 책을 읽으시면서 확인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이 책을 읽으시면서 당신께선 “우리와 상황이 다르다”는 한마디로 일축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네. 베네수엘라와 우리는 분명 다르지요. 당연히 베네수엘라의 상황에서 이루어진 처방이 우리에게도 약이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제가 이 글을 통해서 대통령님께 말씀드리고 싶었던 것은 차베스의 정책적 내용이 아니라 그가 생각하는 ‘민주주의’, 그리고 그가 민중들과 맺는 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차베스에게 민주주의란 민중의 능력이 확장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민중에게 권력을 주고, 그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삶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이 그의 참여민주주의 관이었습니다. 그 때만이 민중을 위한 여러 정책들이 진정 민중을 위한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대통령께서도 선거운동기간이나 대통령인수위 시절에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자주 하시곤 하셨던 것을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당신께서 집권한 이후 이런 이야기들은 쑥 들어가고 그 자리를 민중을 곤봉으로 때려죽이는 경찰이, 미국에서 유학한 엘리트 경제 관료들이 차지하고 말았습니다. 왜 그렇게 당신께서 갑자기 입장을 선회하신 건지 저는 잘 알 수 없습니다. 처음부터 당신의 공약 속에는 정당정치에 대한 강조와 참여민주주의에 대한 언급이 혼재되어 있었고, 결국 탄핵 중에 치러진 총선에서 당신이 만든 열린우리당이 크게 승리하자 후자를 삭제시켰던 것은 아닌지 추측해볼 뿐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정부가 정말로 “참여정부”였었다면…’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150석이 넘는 의석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국가보안법 하나 폐기하지 못하는 정당을 끝끝내 붙들기보다는, 광범위한 사회운동 세력과 연대하고, 주민자치조직들을 아래에서부터 건설․ 지원하고, 그들의 말을 경청하는 정치를 펼쳤다면 아마 지금쯤은 당신께서 처음에 구상하고 희망했던 한국사회의 모습이 지금보다는 더욱 가까웠을 것이고, 김선일 씨의 죽음이나 새만금 갯벌의 황폐화 같은 비극도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르겠습니다.

 

아, 그러나 역사에서 가정은 무의미한 행위이겠지요. 이미 노무현 정부의 5년은 거의 다 지나갔고, 곧 대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대선에서 분명한 한 가지 기준을 세워 투표할 생각입니다. ‘국민이 직접적으로 정치에 참여하여 삶을 결정할 권리를 지지하는 후보’가 그것입니다. ‘경제 성장’을 외치며 국민의 허리띠를 졸라매게 만들어놓고, 소수의 권력자와 가진 자들만 ‘성장’시킬 정치인이나, ‘국민 참여’를 말하면서도 그 참여의 범위를 자신에 대한 지지 이상으로는 생각하지 않는 정치인에게는 결코 투표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나의 삶을 직접 결정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만이 아니라 나와 더불어 사는 수많은 이들과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내가 꿈꾸는 세상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당신은 적어도 내겐 ‘실패한 대통령’입니다.

 

대통령님의 남은 임기 중의 평화를 기원하며, 당신의 책 읽어주는 친구 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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