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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궁에 농사를 지으십시오 [복상2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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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타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

김정일 국방위원장님께.


최근 뉴스에서 종종 김정일 위원장님의 건강이상설을 접했습니다. 지금은 어떠신지 모르겠습니다. 건강하실 때에 어서어서 남한에 한 번 오셔서 남북정상회담도 하시고, 한반도의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시켜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다행히 남한에선 한나라당까지도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내 놓고 있습니다. 요 일이년간이 남북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때를 놓치면 또 얼마나 남한과 북조선의 인민들이 분단이 주는 부담을 안고 살아가야 할지 모릅니다. 부디 활발하게 평화를 위해 활동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사회주의와 반미의 동지, 쿠바
하지만 오늘 제가 이 편지를 드리는 건 평화와 통일의 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함은 아닙니다. 좀 뜬금없이 들리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북조선과 ‘사회주의와 반미의 동지’라 할 수 있는 쿠바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위원장님께 이 편지를 드립니다. 쿠바의 이야기를 지금 꺼내는 건 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 이후로 다시 찾아온 북조선의 식량난 때문입니다. 지금은 사정이 그나마 호전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안정적인 식량생산보다는 홍수와 가뭄 없는 날씨에 많은 것을 기대하는 불안정한 상태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북조선 정부가 발표하는 신년 사설에서도 요 몇 년간 계속 농업생산력을 재고하자는 이야기가 실려 있더군요.


그러나 북조선의 정치?사회체제에 대한 부족한 인식에도 불구하고 감히 말씀드리자면, 북조선은 여전히 인민의 삶의 질과 인권의 향상보다는 서구사회와 남한과의 정치적, 군사적 경쟁에 더욱 치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그리고 그 때문에 정작 중요한 인민의 삶의 질을 내팽겨 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북조선과 같은 식량 위기를 겪었으면서도 정부와 인민들이 상호 소통하면서 창조적 역량을 발휘하여 식량난 극복을 넘어 하나의 생태적 국가의 모범을 만들고 있는 쿠바의 사례 때문입니다.


미증유의 식량난에 봉착하다.
제가 소개할 이 책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은 위기를 위대한 창조의 발판으로 삼은 쿠바 인민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80년대까지 남미에서 가장 공업화되고, 안정적인 복지체제를 갖추었던 ‘사회주의 천국’ 쿠바는 90년대 초 사회주의권이 대대적으로 몰락하자 무역과 산업의 끈을 잃고 심각한 경제난에 부딪혔습니다. 게다가 쿠바의 코앞에 있는 거대한 제국, 미국은 “이 때야말로 카스트로를 몰아내고 다시 쿠바를 속국화 할 때다.”라는 기대를 감추지 않고 혹독한 경제봉쇄를 단행했습니다. 이 경제봉쇄가 얼마나 가혹했던지 UN이 제제를 가할 정도였습니다. GNP는 89년에서 93년 사이 48%가 하락했고, 경제 봉쇄로 식량과 의약품이 거의 들어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1993년에는 20세기 최악의 태풍으로 기록될 거대한 허리케인이 급습하여 주택과 농지, 호텔 등이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공장은 80%가 문을 닫았고, 석유가 수입되지 않아 수도인 아바나에서도 정전 사태가 12~16시간씩 지속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경제 위기의 타격을 가장 크게 받은 것은 식료품 공급이었습니다. “쌀은 이미 바닥났고 콩은 50퍼센트, 식물성 기름은 16퍼센트, 라드 7퍼센트, 연유 11퍼센트, 버터는 47퍼센트, 분유는 22퍼센트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쿠바의 카스트로 의장은 91년의 당 대회에서 이런 안타까운 고백을 해야 했습니다. 특히 식량문제에서 큰 위기가 닥친 것은 그간의 쿠바 농업이 사탕수수와 커피 등의 단작 농업 중심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고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사탕수수와 커피를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각국에 수출하고, 정작 자신들이 먹을 것은 60% 정도를 수입했던 것이지요. 때문에 사회주의권이 붕괴되고 경제봉쇄가 시작되자 대량의 영양실조와 기아가 닥쳤던 것입니다. ‘사회주의 천국’ 쿠바의 몰락은 이제 시간문제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쿠바는 식량을 거의 완전히 자급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화학비료와 농약을 거의 치지 않는 유기농 채소 위주의 식단으로 ‘웰빙’을 구가하고 있지요. 자동차가 줄어든 아바나의 도로를 자전거와 대중교통이 신나게 달리고 있고, 도시 곳곳에 농지가 펼쳐진 이색적인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위기 가운데서도 국방비까지 줄여가면서도(미국이 노골적으로 ‘침공’까지 운운하며 위협했는데도 말입니다!) 보존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던 병원과 학교는 오히려 더욱 늘어났고, 석유 의존도를 줄이고 친환경적인 에너지 생산을 늘려가는 등 ‘지속가능한 사회’를 쿠바의 인민들은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게다가 수천개의 NPO(NGO)들이 생겨나고 분권화와 지역민주주의가 진행되는 등 민주주의와 인권 역시 상당한 수준으로 신장되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도시인, 농사꾼들이 되다!
“한 발짝이라도 잘못 내딛으면 수많은 아사자가 속출할 위기의 순간에 아바나 시민이 선택한 비상수단은 도시를 경작하는 것이었다.” 쿠바의 인민들은 먹을 것이 없어진 순간에 자발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수도 아바나에선 수천 명의 주민들이 발코니와 안마당, 옥상과 빈 땅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카스트로 의장도 이런 움직임에 고무되어 “식량 문제가 최우선”이라는 비상선언을 하고 스스로 채식주의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소련식 과다소비형 근대농업에서 지역의 재활용 자원에 입각한 유기농업과 도시의 자급농업 정책을 관과 민이 함께 만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도시 농업(그들은 이 도시농업을 urbana란 이름으로 불렀지요^^)은 이내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부는 도시농업을 장려하기 위해 가장 먼저 시민들에게 국유지를 빌려주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쓰레기장, 놀고 있는 땅, 심지어 아스팔트 위에도 흙을 깔아 농지로 무상공급했습니다. 농약도 종자도, 비료도 없었지만 인민들은 땅을 빌려 농사짓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산적해 있었습니다. 유기농업 기술개발, 농업용수 확보, 종자와 비료, 바이오 농약, 농기구 제공, 일반인들을 위한 농업지식 보급 등 여러 난제들 앞에서 쿠바의 인민들은 “도시농업 동호회”등의 각종 NPO그룹들을 만들어 국가지원과 함께 문제들을 하나하나씩 해결해 나갔습니다. 정부는 또한 도시농업 보급원이라는 도우미 제도를 만들어서 직접 도시농업인들을 교육하고 훈련했습니다. 훈련을 받은 이들은 또 다른 사람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하기도 했지요. 그 결과 10여년이 지난 지금은 인구 220만명의 대도시에서 채소를 자급하는 일이 가능해졌습니다. 이제 굶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뿐더러 양질의 유기농 채소위주의 웰빙(?) 식단을 즐기게 된 것입니다.


사회주의 국가, 생태와 분권화를 만나다.
이 책은 단지 도시농업의 사례만을 다루고 있지는 않습니다. 도시농업을 중심으로 하여 위기에 처한 쿠바가 의료와 교육, 분권화와 시장의 도입,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환경보호 등 여러 정책을 어떤 식으로 진행하여 왔는지를 다각도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와 별반 다를 것 없는 근대화와 생산력주의에 빠져 있던 사회주의 국가체제가 어떤 식으로 ‘생태’와 만나 진화할 수 있는 지에 대한 한 사례를 이 책은 잘 보여줍니다.


쿠바도 북조선이나 소련 등과 같은 여타의 사회주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60~80년대에 이르는 기간 동안 근대화와 생산력 강화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소련의 지원과 게바라주의(도덕주의적 사회주의)에 입각한 성실한 인민들의 노력 덕분에 쿠바는 남미에서 가장 생산력이 높은 복지형 공업국가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서구와의 근대화 경쟁 속에 육식이 장려되고, 농업은 고부가 가치를 낳는 사탕수수와 커피 농업 외에는 천대받기도 했습니다. 또한 공업화로 인한 환경오염 역시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쿠바는 사회주의 국가답게 높은 수준의 교육과 의료, 복지체제를 이룩하였습니다. 유아 사망률은 미국보다도 낮았고, 평균수명도 73세에 이르렀습니다. 체제도 일당 독재의 스탈린주의 체제로서는 드물게 부패가 없고 사명감이 높은 관료들이 안정되게 이끌었습니다. 체 게바라나 호세 마르띠(19세기에 쿠바의 독립운동을 이끈 사상가)의 영향으로 카스트로 의장을 비롯하여 모든 관료들이 일반인들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는 것이 쿠바 지도자들의 특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일당지배와 생산력중심의 정책을 유지하기 위해서 권력은 중심화되고, 관료주의가 나타나는 경향도 있었습니다.


소련이 붕괴하고 경제위기가 닥치자 쿠바는 위기에 대쳐하기 위해 이제까지의 장점은 그대로 살리면서도, 과감하게 근대화와 생산력중심의 정책을 생태적이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정책으로 전환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카스트로 의장은 대대적으로 권력을 지방과 인민에게 이양하는 분권화를 추진하였습니다. 인민이 자발적으로 커뮤니티 운동을 조직하고, 스스로의 삶을 직적 꾸릴 능력을 갖지 못하면 위기 극복을 위한 새로운 정책은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쿠바 곳곳에서 작은 단위의 주민자치위원회가 생겨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각종의 아이디어들이 공동체 단위로 실험되고 또 실행되었습니다. 정부는 이러한 인민의 노력을 뒷받침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지요. 또한 쿠바는 대담하게 시장을 도입하여 농민들이 생산한 농산물들을 직접 사고 팔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 사유재산과 빈부격차가 조금씩 생겨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도덕주의에 입각한 사회주의 정책과, 또 교육과 의료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쿠바의 전통은 여전히 높은 수준의 평등을 유지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주석궁에 농사를 지으십시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북조선의 인민들과 김 위원장님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북조선의 지도층들은 쿠바의 지도층에 비하면 너무나 많은 특권을 누리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근대화를 이루어 자본주의 남한을 이겨야 된다는 강박 속에서 지식인과 관료 계층은 우대하고, 정작 삶의 가장 기본적인 것을 만드는 농민들과 노동자들, 그리고 ‘땅’을 멀리하지는 않았습니까?


저는 북조선에서 늘 하는 말 대로 북조선의 식량위기는 미국의 간악한 경제 봉쇄가 가장 큰 원인이라는데 많이 동감합니다. 그러나 그것뿐일까요. 어쩌면 북조선 스스로도 경제 봉쇄를 넘어서 사회를 재구축하고, 인민의 삶의 질을 보호할 노력을 제대로 기울이지 못한 것은 아닐까요? 북조선이 엄청난 돈을 쏟아 부어 미국에 대항할 핵시설을 만들 때, 쿠바는 국방비를 줄여가며 병원을 짓고, 아이들을 교육하고, 식량자급을 위한 농업에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분노를 조직하는 것만이 과연 북조선의 살길이었을까요. 행복과 삶을 조직할 수는 없었을까요.


김 위원장님. 과감히 말씀드립니다. 북조선의 살길은 남한과의 경제성장 대결이 아닙니다. 그 싸움은 이제 끝났습니다. 그러나 북조선이 ‘사회주의’이기 때문에 남한보다 먼저 할 수 있는 게 있을 것입니다. 쿠바는 그 길을 먼저 보여주었습니다. 사회주의적인 평등의 가치가 생태와 만났을 때 어떻게 자본주의와는 다른 삶을 창조할 수 있는지를 쿠바의 인민들과 정부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평양 시민들이 퇴근 후에 텃밭을 가꿀 수 있도록 땅을 제공하십시오. 105층 짜리 유경호텔 그까이 꺼 그냥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논을 만드십시다. “자기혁명은 자기가 해야 한다는 것, 남으로부터 원조를 받지 않고 자기갱생을 해야 한다”는 주체사상을 북조선의 인민들은 뼈 속까지 익히고 있지 않습니까? 그 힘을 굳이 남한의 자본주의와 생산력 대결, 군비경쟁에 쏟아붓지 말고 삶을 위해 쏟아 부으면 안 됩니까? 미제에 군사적 힘으로 이기려들지 말고 더 높은 삶의 질로 이기려들면 안 됩니까? 힘으로, 돈으로 경쟁에서 이기려 든다면, 그래서 그것 때문에 소외되는 사람들과 파괴되는 자연이 생겨난다면 그게 자본주의와 다를 게 무엇입니까?


남한은 요즘 북조선에 투자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북조선과의 경제 협력을 통해서 남한 경제도 살리고, 북조선도 자본주의화 하여 통일과 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뤄보자는 게 김대중 정부 이후의 대북정책입니다. 이른바 진보적인 민족주의 지식인들조차도 여기에 대해서 별다른 비판 없이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식한 제가 추측하기로도 이 방향으로 가면 북조선은 분명 비참해집니다.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서 통일되면 남한의 미친 부동산 자본, 건설자본이 북조선 땅을 완전히 들쑤셔 놓을 것입니다. 토지보상도 얼마 안 해도 될 테니 이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게다가 지금 남한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나 이주노동자들 대하는 꼴을 보면 결코 북조선의 노동자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리라는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 길은 북조선이 가야 할 길이 아닙니다. 중국을 한 번 보십시오. 심각한 빈부격차와 도농격차가 인민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위기입니다. 저는 핵무기를 개발하고, 서구와 남한과 경쟁하는 것 말고도 이 위기를 극복하는 길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쿠바는 그러한 길의 한 예를 보여주었습니다. 선군정치를 생태정치로 방향을 한 번 돌려보십시오. 도시마다 먹거리를 직접 생산하도록 장려하십시오. 북조선이 가지고 있는 그 천혜의 자연을 활용하여 생태관광 코스를 계발해보십시오. 인민들에게 자신의 삶을 직접 결정할 권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적 환경을 주십시오. 과감하게 특권계급을 청산하고 인민들 속으로 들어가십시오. 이렇게 살아가는 데는 군비를 증강하고 자본주의와 생산력 경쟁을 벌이는 것보다 훨씬 더 적은 돈이 들어갈 것입니다. 잃을 것은 지난날의 식량난이요, 얻을 것은 새로운 생태적, 사회주의적 삶입니다. 김정일 위원장님, 위원장님부터 주석궁에서 농사를 지어보십시오.


위원장님의 평화와 건강을 기원하며, 당신의 책 읽어주는 친구 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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