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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 "유물론, 예수, 폭력"에 달린 베땅이 님의 질문:
"글 잘읽었습니다. 한가지 여쭙고 싶은 것은 여기서 말하는 폭력과 비폭력적 저항주의에서 말하는 저항은 어떻게 다른 것인지요? 또 폭력의 개념을 사용할 때 일반적인 사용례는 부정적 의미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여기서 사용하시는 폭력의 개념이 후대에 재해석된 폭력의 개념을 예수에게 덧씌우고 있다는 느낌입니다만... 이 부분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시면 감솨^^"
제가 이 질문에 대해 적절하게 잘 대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여하간 댓글로는 너무 길어질 듯 하여(저는 화면이 7.6인치밖에 안 되는 넷북으로 주로 글을 씁니다.ㅜㅜ) 새로 글을 열어보았습니다.
이 글에 나오는 '폭력'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제가 '유물론'과 '관념론'이라고 지칭한 것들을 조금 더 설명해야 할 듯 합니다. 이 글에서 제가 상대하려 했던 입장은 일차적으로 "예수님은 이러저러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의 그 가르침과 삶을 따라야 합니다."라는, 통상 '제자도'라고 불리는 입장입니다. 좀 더 특정하자면, 그 제자도의 핵심에 예수가 선포했다는 '비폭력주의'를 두는 요더 類의 주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그리고 이차적으로는 현재 한국의 '진보개혁세력'입니다.)
제가 이러한 입장을 반대하는 것은 그것이 예수로 하여금 그러한 말과 행동을 하게 만들었던 예수의 오클로스(무리)를 삭제하는 이론이기 때문이며, 예수의 급진성을 단지 그의 '말' 혹은 '주의' 속에서 발견하는 파리한 이론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파리한 이론은 '파리한 실천'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관념론'이란 것을 여러 가지 의미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저는 아주 범속한 의미에서, 즉 '말' 혹은 '개념'으로 어떤 실재가 온전히 재현될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을 관념론이라고 지칭했습니다. 이를테면 70-80년대 한국의 역사를 '민주화'라고 개념화할 때 그 개념은 마치 70-80년대가 실제로 어떤 '진보하는 모종의 힘'에 의해 변해온 것처럼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나 기실 그런 '진보'나 '민주화'는 개념일 뿐, 실상은 무수한 투쟁과 싸움이 있었을 테지요. 그러나 그것을 '민주화'라는 진보의 도정으로 정리함으로써, 그 민주화를 대표하는 누군가가 그 역사에 대한 소유권을 갖게 되고, 그들은 오늘도 벌어지고 있는 무수한 싸움과 투쟁에 대해 "분신으로 투쟁하는 시대는 지났다.(왜? 민주화가 되었으니까.)"라는 식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폭력적으로 삭제할 수 있게 되지요.(아, 이 이야기는 노무현 대통령이 FTA에 반대하며 분신한 허세욱 열사에게 퍼부었던 독설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유물론이란 그러한 말, 혹은 개념의 외부와 마주하는 삶의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물론자들은 관념론이 삭제한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길에 서서 삶의 전투를 이어갑니다. 그들은 진보해가는 역사라는 개념을 중단시킵니다. 그들의 투쟁 속에서 말과 개념으로 닫힐 수 없는 어떤 실재가 드러나게 됩니다. 물론 유물론자들도 '말'을 합니다. 저도 여기서 '말'로 이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말 없이는 인간은 대부분의 행동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유물론적 '말'은 언제나 관념론에 대항하는 하나의 전투로서, '불화'의 언어로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즉 말 자체의 '내용'이 무언가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불화'가 어떤 실재를 나타나게 하는 것이지요.
저는 예수의 삶과 말을 이렇게 바라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통상 교회에서 익숙한 예수에 대한 재현방식은 예수의 말에서 오늘을 위한 어떤 가르침을 해석해내고, 그것을 통해 어떤 실천을 하자는 식입니다.(관찰-해석-적용) 그러나 예수를 이렇게 바라볼 때 예수는 당시의 모든 물적 관계로부터 벗어난 어떤 존재가 되고 맙니다. 심지어 '역사의 예수'를 말할 때조차도, 그 역사의 예수를 예수의 '주장의 차원'에서만 바라보거나, 당시의 역사를 단지 '배경'으로 취급한다면 '신앙의 그리스도'를 좇는 것이나 별반 다를 바 없는 실천을 낳게 될 것입니다.(그게 앞선 글의 서두에 썼던 진보꼰대/보수꼰대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예수의 주장조차 왜곡하고 맙니다. 예수가 여러 맥락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 특히 비유로! - 전한 이야기를 어떤 이론과 관념으로 정리해버리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말합니다. "예수는 비폭력'주의'를 주장한 위대한 성인이었다."는 식으로요. 하느님 예수 대신에 그와 지극히도 닮은 '지도부 예수'의 등장입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예수는 그런 식으로 말한 적이 없는데 말입니다. 오히려 예수의 '실상'은 그로 하여금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든 예수의 무리들, 당대의 사회적 관계들의 차원과 함께 바라볼 때 보여지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의 여러 이야기가 수행한 그 '불화'의 차원에서 바라볼 때 나타나는 게 아니겠습니까.(물론 그 '실상'이란 객관적인 사실관계가 아닙니다. 누가 '사실자체'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그것을 알기 위한 방법은 끊임없이 과거의 삭제된 목소리를 오늘의 우리의 과제와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 '실상'은 다채로운 모습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저는 마태복음 11장은 예수 자신이 당대의 세례 요한과 자신, 그리고 무수한 해방투쟁들을 보는 이러한 유물론적 시각을 잘 드러내주는 하나의 전거(reference)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시각에서 저는 '폭력' 이야기를 꺼냈던 것입니다. '비폭력주의'나 '폭력주의'는 이미 매우 높은 수준에서 개념화된 언어입니다. 그런데 가만 보면 이런 순수한 개념으로서의 폭력이나 비폭력은 기실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는 폭력이고 어디까지는 비폭력이다라는 것은 법학 용어로서 규준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그런 게 어디 있겠습니까? 자본가는 노동자가 구호만 외쳐도 "폭력이다!"라고 하지 않습니까. 청계광장에서 단지 촛불을 들고 걷기만 해도 저들은 "불법폭력시위"라고 하지 않습니까. 혹은 지진이 나고 폭풍이 불어 우리의 삶이 파괴될 때 그 누구도 폭력을 행사한 바 없지만 우리는 거기에서 자연으로부터, 혹은 '신으로부터' 폭행당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런 점에서 저는 후대의 폭력의 개념을 예수에게 적용한 게 아니라 후대의 '비폭력'의 개념으로 채색된 예수를 벗겨내려 한 것입니다.
물론 예수는 '방법론'에 있어 분명히 비폭력적이었던듯 합니다. 그에게는 어떤 폭력의 수단도 없었습니다. 예수의 무리 중에는 무장투쟁가들과 급진분자들도 섞여 있을 수 있지만 상당수는 여성과 어린아이들이었다는 것을 성서는 이야기해줍니다. 게다가 예수가 활동할 당시는 예수가 태어났을 무렵이나, 예수 이후 60-70년 경의 상황에 비하면 매우 평온한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는 비폭력적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예수는 개념화된 '비폭력주의' 따위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예수에게 분명한 것은 자신들의 행동이 '저들의 하느님 나라'에 대한 폭행이라는 것입니다. 저들이 꿈꾸는 '하느님의 율법 아래 정결한 모든 사람들이 질서와 평화를 누리는' 그런 하느님 나라에서 배제된 이들의 운동은 저들에게는 언제나 폭력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저들로 하여금 예수를 십자가에 못밖에 했던 것이겠지요.
'비폭력주의'에 대해 제가 경계하는 것은 그것이 하나의 개념으로 제출되거나, 혹은 하나의 '규범'이나 '지도이념'으로 제출되어 민중의 자기해방을 가로막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굳이 저도 '개념화'를 시도하자면, 하나의 주권적 체제를 만들거나 유지하려는 '폭력'과 그 주권적 체제를 무너뜨리고, 다른 주권적 체제가 성립되는 것을 막는 '폭력'은 저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 심지어 그것이 아주 비슷한 모습을 하고 나타날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 생각합니다. 발터 벤야민이라는 나치 시기 유대인 비평가는 전자를 '법정립적 폭력'과 '법 유지적 폭력'으로, 후자의 폭력을 '하느님의 폭력'(통상 '신적 폭력'이라고 불리는 이것을 다르게 번역해 보았습니다.)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지요. 이것에 대해서는 이미 저의 또 다른 글(
'신적폭력[벤야민]'에 대하여)에서 자세히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저는 사회선교를 강조하는 복음주의 선교단체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있을 당시 이 단체는 사회선교를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격렬한 사회적 갈등이 벌어졌을 때 약자들의 편에 서서 시위나 직접행동에 참가하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한결같았습니다. "폭력적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웃긴 이유입니까? 우리들은 사실 '하느님'을 '비폭력주의'라는 규범 속에 가두어 놓고 그분을 제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지금 민중의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단지 방법 때문에 참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국 권력자들을 인정해주는 것과 다를 것이 없지 않겠습니까?
때문에 물어야 할 것은 '폭력이냐 아니냐'라는 왜소한 질문이 아니라 그것이 어떤 방식이든 저들만의 '하느님 나라', 혹은 저들만의 '대한민국'을 침노하고 균열내고 있는가가 아닐까요. 아주 힘 없는 폭력도 있고, 아주 강력한 비폭력도 있습니다. 물론 그 반대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언제나 우리의 폭력이 주권적 폭력으로 변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성찰은 반드시 필요할 겁니다. 그러나 비폭력을 하나의 '주의'로 만들어 놓고, 그래서 그것이 모든 것을 지나치게 결정하게 되는 것을 저는 반대합니다. "자연은 언제나 관념을 초과하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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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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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글까지 따로 남겨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쓰신 글의 의도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공감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제가 물었던 부분은 '폭력'이라는 것이 일반적 사용되는 부정적인 의미를 넘어 말씀하신 것처럼 해석될 수 있다면 더군다나 예수의 방법론이 비폭력적이었다면 월터윙크등이 사용하고 있는 '비폭력적 저항'에서 말하는 '저항'의 개념과 구분되는 의미로서 '폭력'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계신 것인지, 만약 서로 다르다면 어떻게 다른 것인지였습니다.또한 예수가 개념화된 '비폭력주의'에 관심이 없었듯이 김강님이 쓰고계시는 '폭력'의 개념역시 예수가 모르던 어떤 것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민중신학에 대해서는 워낙 보수적인 환경에서 배워온지라 아직 배우려 노력 중입니다. 모르는 부분이 많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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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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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땅이/ 흑흑. 그 이야기를 길~게 한 것인데 다시 물어보시니 당황스럽습니다.ㅜㅜ 제가 역시 글을 잘 쓰지 못한 것 같습니다.윗글도, 아랫글도 다시 보시면 알겠지만 저는 '폭력'을 어떤 고착된 개념으로 정의하지 않으려 했답니다. 마지막에 유일하게 개념적으로 제시한 "신적 폭력"이라는 개념도 사실은 '폭력'이든 '비폭력'이든 그게 그렇게 개념화되기 쉽지 않다는 걸 드러내고자 이야기한 것이지, 그것이 어떤 분명한 개념이라고 이야기한 게 아닙니다. 게다 저는 '비폭력'에 대응되는 의미의 '폭력'을 주장한 것도 아닙니다!^^;; 저들의 측면에서 보면 어떤 저항이든 '폭력'으로 보인다는 이야기지요.
(굳이 좀 더 철학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세상에 폭력 아닌 게 없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물들은 서로를 어떤 식으로든 한정하면서 실존하는 법일테니까요. 니체는 그것을 '힘에의 의지'라는 표현으로 부릅니다. 이 개념은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닌 객관적인 표현입니다. 이 이야기는 아주 철학적인 차원을 갖고 있습니다. 근데 이 논의에선 별로 중요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폭력 비폭력이 그렇게 깔끔한 개념일 수 없다는 정도로 받아들이시면 될 듯 하구요.)
마 11장의 예수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폭력'에 대해서는 주석적으로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서학 전공자도 아니라서 얕은 수준의 헬라어이지만, "세례 요한의 때로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는 폭행당하고 있다."는 번역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구약의 예언자들로부터, 세례요한, 예수로 이어지는 흐름은 분명히 시대시대마다 이스라엘 주류의 하느님 나라 상(혹은 때론 외세)에 대한 저항을 형성했지 않습니까?(복음서의 여러 곳에서 예수 자신이 그것을 인식하고 있다고 나오지요.) 그 저항의 형태나 방법은 사실 그때그때마다 또 달랐구요.(예수 당시에도 예수 말고도 많은 메시아 저항운동들이 있었을테고 저는 본문에 그 정황도 반영되어 있다고 봅니다.)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예수와 예수의 민중의 행동은 윙크나 요더 등이 개념화하는 '비폭력주의'라는 말로는 다 해명될 수 없는 더 날것의 차원을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물으신다면 말씀하신 '저항'이 제가 이 글에서 사용하는 '폭력'이라는 용례와 가장 비슷하겠습니다. 하지만 성서가 굳이 대놓고 '폭력'(혹은 '공격')이라는 단어를 쓰는 데 '저항'이라는 현대적인 개념으로 순치시킬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비폭력주의로부터 확~ 환기되는 효과도 있구요^^ 게다 저항은 방어적이고 수동적인 뉘앙스가 강한 단어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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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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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임꺽정이가 높은 양반님들 곳간 터는 건 양반님들 입장에선 도둑질일 수 밖에 없지만 백성들 입장에선 좋은 일이라는 거네요 그런데 임꺽정이가 군사 모아서 지가 임금되려하면 그건 나쁜 일인거고요그런 뜻 맞지요? 맞나? 아닌가? 완전 엉뚱한 소린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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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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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뭐... 그.. 그렇죠...ㅋ부가 정보
베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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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 제가 철학적인 사유에는 워낙에 약해놔서... 제가 이해를 못하는거지요.그런데 마11장에서 하늘나라를 이스라엘 주류의 하늘나라로 상정하시는 것인가요? 하늘 나라 혹은 하나님 나라가 예수가 제시하는 상 이외의 것으로 표현되는 용례가 있나요? 오히려 침노를 당하는 것은 예수가 제시하는 하나님 나라가 아닌지요? 물론 여기에 제가 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헬라어 용법상 βιαζεται라는 단어가 신약에 단 두번밖에 안나오고 그것도 마태와 누가의 동일 문맥가운데만 나오기 때문에 신약에서의 용례를 폭력으로 확정하기가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구약에선 주로 '강권하다' '부탁하다'등의 용법으로 등장하면서 무엇을 위해 '노력하는'행위를 나타냅니다. 하늘 나라를 주어로 바로 수동태가 따라오기 때문에 노력하는 행위를 당한다는 의미로 침노를 당한다고 번역하지만 누가의 문맥은 전혀 다르지요.
무엇보다 세상에 폭력아닌 것이 없다고 하시면서 폭력이라는 단어의 사용에 대해서 설명해주셨는데 예수가 폭력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그 의미를 알았겠느냐하는 것이 저의 의문입니다. 예수도 그렇고 지금의 우리도 그렇고 그 단어는 재해석하여 오랜시간 설명하지 않으면 결코 김강님이 말씀하신 그 의미를 포함한다고 보기 힘들고 무력을 통한 공격적 의미만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에게 현대적 개념을 덧씌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질문을 드린 것입니다. 정성스레 달아주신 답변에 괜한 딴지를 거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네요..^^;;
써놓고 나니 어떤 개념을 말씀하신게 아니라는데 저는 자꾸 개념을 묻고 있는 기분이네요... -_-;; 그냥 저에게 폭력이라는 단어가 꽤나 걸리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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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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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님의 폭력론에 반색했던 이로서 좀 끼어들자면...ㅎ; 제가 밥벌이 관계루다 배철현 선생이라고, 목사 겸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란 분이 "생각들의 탄생"이란 이름으로 진행하는 강좌를 듣는데요.. 그 분이 이러시더군요. 이젠 구약을 '성서주의 이전'의 성서로 다시 읽어야 한다. 그러자면 구약을 위시한 성서의 전면 재번역이 시급하다구요. 성서란 텍스트 자체의 역사적 계보가 성서주의자들의 (유럽중심주의적) 관념관 달리 '오리엔트 문명권'에 있음을 강조하면서요. 근까, 번역이란 게 단순히 문헌학적 엄밀성 여하를 떠나, 어떤 텍스트의 컨텍스트를 읽어내는 일이란 얘기기도 하겠져. 여기서 말하는 전면 재번역의 시급함이 그저 기독교계통에 종사하시는 목사 겸 연구자의 교세 약화(내지 믿음의 질적 악화)에 대한 우려로만 읽히진 않았던 것이, 만약 폭행한다, 즉 폭력을 행사한다는 말을 '강권하다'나 심지어 '부탁하다'라고 영미권에서 이미 번역한 걸, 다시 우리말로 중역한 게 지금의 성경이라면, 직관적으로도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지 않겠어요?(그런 단어들이 배 선생에 따르면 한두 개가 아니더군요. 예컨대 '아담'이 남자가 아니라 흙으로 읽혀야 한다는 얘기부터 해서, 말씀이 그저 말씀이 아니라 '사건'으로 읽혀야 한다는 얘기, 무에서 유를 창조햇다는 구절도 무는 그냥 없음이 아니라 혼돈/카오스로 다시 읽어야 한다든가 하는 얘기까지) 더군다나 성경 텍스트가 가지고 있던 오리엔트적인 컨텍스트는 '오리엔탈리즘' 탓에 번역 과정에서 아예 누락돼버렸다면 뭐, 더 말할 것도 없겠죠. (그렇다고 이 분의 정치적 지향이 대단히 근본적이냐면, 그것도 아녜요. 김연아를 보며 '대한민국 국민'인 게 자랑스럽다고도 하고, 심지어 요즘 전교조 두들기기에 다망하시다는, 참으로 한가한 국회의원 정*언 씨하고의 친분을 은연중 과시하는 분이니 뭐..ㅋ;)폭력이 그렇게 부대끼신다면, 이른바 경제경영/자기계발서에서 빈도수 상위에 들 '창조적 파괴' 같은 표현이 왜 시장경제의 지속을 위해서만 쓰여야 하는지 스스로 반문해 보심 어떨까요. 가히 세속화되고 가상화된 성령의 신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에 대한 창조적 파괴 그 자체, 혹은 사건적인 계기로서의 폭력이 과연 나쁠 게 뭐냐.. 시장경제의 구조화된 폭력에 만성적, 일상적으로 시달리고 노출돼 있는 '몫없는 자'들로서야, 그런 폭력이 봉인당해 있어서 문제지 있다면(혹은 '생긴다'면) 문제될 게 무에 있냘 수도 있겠다는 거죠.
이 얘길 접하며 새삼 떠오른 건데, 김영사 자회사인 포이에마출판사서 간행된 번역서 <예수충격> 원고를 교열 본 적이 있거든요. 이 책 저자 같은 경운, (전 개신교도였던) '정통가톨릭교'도의 입장에서 예수 다시 보기를 시도하더라구요. '리버럴한 개신교계통'의 말랑말랑한(혹은 근대주의적) 예수 읽기를 비판하면서 하는 얘기가, 예수가 얼마나 폭력적으로 우리에게 (물론 저자가 취한 종교적 지향에서 봤을 때 긍정적인) 충격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인지 모르면 예수를 안다는 건 말짱 껍데기라고 하더만요.ㅋ 아마 '타락한' 미국사회에 대해 정통기독교적이고 (극)우파적인 성경 독해 속에서 '폭력'의 유효성을 되살리려는 시도였다고 보는데, 그 지향엔 전혀 동의하지 않지만 예수란 존재의 '폭력성'을 환기시켰다는 건 꽤 의미심장해 보이더라구요. 이런 상황에서 그저 예수가 그랬을 리 없어요, 내지 '폭력은 웬지 거북하고 언짢아요'라고만 대응하고 마는 게 과연 온당할까 싶은 것이.. (극)우파 계통이 성경 같은 고전들을 이미 저렇게 전유하고 있는 마당에 말예요. 제가 김강님의 성경 읽기에 대해 반가워하기부터 하고, 일단 지지를 보내는 이유도 이 때문이랄 수 있죠. 물론 충분히 그렇게 밀고 나갈 만하다고도 보지만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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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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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땅이/ 전 오히려 고대의 개념에서 '무력항쟁'과 '비폭력직접행동'이 그렇게 구분되어서 인식되었을까? 하는 의문에서 이 글을 시작했습니다. 더욱이 예수 당시의 사회사적 정황을 살피자면, 그당시에 이미 다양한 하느님 나라 운동들, 혹은 메시야 운동/예언 운동이 있었고, 그것은 무장운동으로부터 비무장 저항운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었습니다. 예수는 자신의 운동 역시 그런 운동의 하나로 위치지었다고 생각합니다. (잘 아시겠지만 리차드 호슬리의 책이 당시 메시야운동에 대해 꽤나 대중적으로 읽히는 많은 자료를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오히려 예수에게 분명히 구분되는 것은 폭력이냐 비폭력이냐가 아니라 지배냐 탈지배냐인 듯 합니다. 사실 예루살렘 입성 후 예수와 예수를 따르는 이들의 행태는 어떤 면에서 분명히 폭력적입니다. 제사장무리들 뿐만 아니라 성전 경비대가 무서워서 예수를 잡지 못했을만큼 말입니다.("무리가 두려워.. 잡지 못했더라.") 게다가 예수의 담화 중 심판과 종말의 예언들은 아주 폭력적인 예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를테면 율법학자들을 비판하기 위해 마가복음 12장에 나오는 포도원 농부를 무력으로 짓밟아 버리는 지주 이야기를 꺼내는 식이지요. 이런 것을 굳이 무장한 군사행동은 아니니까 "비폭력 저항운동"이라는 현대적 카테고리로 집어넣어야 할지 의문입니다. 탱크에다가 돌을 던지는 팔레스타인 청년들이 폭력적인 것처럼 예수와 예수의 민중도 그랬지 않았을까요? 게다가 예수 운동이 다른 운동과 완전히 독립적인 것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예수의 무리 중에 급진분자들도 언제나 섞여 있었음을 감안한다면, 다른 운동들과 예수 운동의 차이만을 '폭력'과 '비폭력'으로 강조하는 것은 지나치게 당대의 사회적 맥락을 감안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예수 이외의 사람들이 어떻게 이해했는지는 사실 성서에서는 간접적으로 알 수 있고(주로 구약의 용례를 통해), 성서 이외의 팔레스타인 문헌들을 보아야 할 것입니다. 제가 이 분야에 대해 아주 확신할만큼(그러니까 바리새들이나 율법학자들도 자기들 나름의 '하느님 나라' 개념을 확고히 가지고 있었다.)은 잘 모르지만, 적어도 본문의 하느님 나라, 하늘나라의 경우 그것이 어떤 갈등 속에 놓여 있는 개념이라는 것은 문맥상 분명해 보입니다. 게다가 "비아제타이"를 폭행 행위/폭행하는 자로, "하르파주신"을 강탈로 해석하는 것도 단어의 의미상 무리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구약 인용이 아닌데다가 아마도 아람어가 아니었을까 싶은 본문임으로 70인역의 용례를 참고하는 것이 오히려 무리가 아닐랑가 싶어요..) 오히려 그것을 단지 "노력" 정도로 번역하는 것이 본문이 담고 있는 급진성을 무리하게 완화시키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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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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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댓글엔 다시 댓글을 달 수 없군요. 이렇게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 블로그 주인이신 김강님께 실례가 아닐까 걱정되네요. 들사람님의 조언에 감사드립니다. 참고로 제 글을 김강님의 의견의 글이라고 보기보다는 긍정적으로 수용하며 배워나가려는 입장에서 드리는 질문이라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폭력이라는 단어가 걸린다는 것은 그러니 반대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김강님의 개념이 긍정적으로 이해되는 것이 제 안에 어려움이 있다는 양해의 말을 드리고 싶었던 것입니다.배철현 교수님은 잘 알고 있습니다. 상당히 정치적(?)인 분이시지요.^^ 그분의 구약성서 해석에 상당히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저도 성경의 전적인 재번역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과도하게 서구화 되었으며 기득권층에 의해서 독점되어 왔던 것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무엇으로 번역하느냐의 문제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어떤 구절에 재번역이 필요한다고 할 때 현 성경이 기득권에 의해 독점되어 있다고 하여 그것이 비기득권층의 언어로의 번역을 지지해주지는 않습니다. 비기득권층의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에는 그에 따른 증명과 동의를 얻는 학문적 과정이 동반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폭력'이라는 단어 사용이 합당한가에 대한 의견을 물어본 것입니다. 저도 창조적 파괴와 같은 용례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것은 20세기 이후의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해석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당시의 언어나 역사를 재구성하는데 적용되어지는 것은 안된다기 보다는 무리가 있다는 의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모르는 부분이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에 대한 의견을 구한 것이구요.
그리고 제가 말씀드린 βιαζεται의 용례는 서양학자들의 번역을 중역하는 용례가 아니라 그 단어가 구약 70인역에서 사용되어지는 문맥에서의 의미를 말씀드린 것입니다. 아무리 성서가 기득권에 독점되어 있다고 해도 요즘 학자중에 서양학자의 개념을 중역해서 사용하시는 경우는 없습니다. 다들 헬라어, 히브리어 하실 줄 아니까요. 다만 그것이 문맥과 일반적인 용례에 합당한 것인지는 사상적 문제가 아니라 학문적 증명의 문제입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폭력이 나쁘다는 의미에서 질문을 드린 것이 아닙니다. 마르크스 이전에 그 단어가 긍정적인 의미에서 사용된 적이 없는 것 같다는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가 그랬을리 없다는 말이 아니라 김강님도 말씀하셨듯이 예수의 방법론은 분명히 비폭력적이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폭력당하는자의 자리에 있었다고 해야지 옳지 않을지요. 예수의 폭력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이것을 단순히 후대 교회가 덧씌운 것이라고 설명하기엔 학문적 근거가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최근 역사적 예수 연구에서 예수를 혁명가로 인식하는 크로산 같은 경우도 예수의 방법론은 비폭력적이었다라고 말합니다. 물론 김강님 말대로 예수의 비폭력적인 방법의 새로운 하나님 나라가 기득권층에게 폭력으로 다가왔다는 부분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물리적 의미에서 폭력은 다른 의미입니다.
예수 충격이라는 책은 아직 안읽어봤습니다. 서점에서 살펴봤는데 조금 식상한 얘기 같아서 접어놓았습니다.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다시한번 블로그 주인인 김강님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_-;;; 제 의견에 반론이 있으신 분들은 여기 글 어지럽히지 마시고 제 블로그에 남겨주시면 성실히 답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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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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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관련 댓글이 오가는 게, 여길 글로 어지럽히는 거였군요.ㅎ; 뭐, 저 스스로 섣불리 나댈 주제가 아녔단 자책이 들긴 하지만, 블로그상에서 유지돼야 할 '질서'란 과연 뭘까 그럼,, 하는 의문만큼은 피하기 힘들어보이는데요. 물리적 의미의 폭력은 상징적 폭력과는 다른 의미라셨는데, 제가 궁금한 건 이거예요. 예컨대 지난 광우병 촛불집회 당시 경찰이 조직적 강경집압 기조를 취하던 시기에, 아주 작심하고 달려드는 전투경찰의 곤봉을 뺏고 여럿이서 안 패주면 거꾸로 그 곤봉과 방패에 여럿이 아작나버릴 상황에 있었단 말이죠. 그건 용납 못 하겠다 싶어, 전 제 쪽으로 달려들던 전경을 주변 사람들과 함께 아작을 냈고요.그럼 이랬단 이유로, 전투경찰대가 억압적 통치권력의 아바타로서나 실제 진압 과정에서 보여준 폭력성은 상쇄돼 사라지고, 이제부턴 저 같은 이들이 집회의 당초 취지를 변질시킨 나쁜 놈 내지 폭도가 돼야 할까요? 시위대의 존재가 당연히 지배권력을 압박하는 '상징폭력'으로 다가갔던 만큼이나, 시위 당사자들로선 물리적 폭력 행사 없이는 그 상징폭력조차 유지할 수 없었던 정황 또한 분명했는데도요. 이때 물리적 폭력과 상징폭력을 가르는 건, 결국 공익광고협의회류의 관리된 데모, 지배권력이 보기에 부담 없는 시위만 하란 얘기가 되는데.. 그 순간 데모가, 과연 구조화된 폭력을 중지시킬 사건적 개입으로서의 데모일 수 있겠냐는 거죠.
요컨대 상징폭력의 의의를 아무리 인정한들, 이를 물리적 폭력과 분리하는 한, 아무리 좋게 봐도 그건 실제로 데모가 벌어지는 현장과는 동떨어진 관념적인 갈라치기 아니냔 겁니다. 외려 이럴 땐 비폭력을 새삼 환기하며 피장파장 논리로 빠질 게 아니라, 진정 자행되는 폭력의 소재를 거듭 명확히 해주는 게 중요하겠다는 겁니다. 시위대가 일단 방패나 곤봉 피하려 완력 좀 썼다고, 모두가 죄진 자들이라며 상황맥락에 대한 가치판단을 전면 중지시킬 게 아니라요. 근데 보통, 특히 종교계에선 이런 식의 판단중지가 빈번한 게 사실임다.
궁금한 건, 이런 식의 접근이 과연 근본적인 상황 호전에 도움이 되며, '기독교적 가치판단' 차원에서도 바람직한 일이겠냔 거겠죠. 성서가 이런 사태에 어떻게 개입할 수 있겠는지, 저로선 김강님이 뭔가 다른 개입의 단초를 열어 주시는 것 같아 반가웠던 건데요.. 문헌학적으로든 지적으로든 토론과 논의를 거쳐야 하는 거야 불가피하겠지만여. 맑스가 폭력의 긍정성을 정교하게 이론화하는 데 기여했지만, 그렇다고 그런 긍정을 한 게 맑스가 첨은 아니지 싶고.
제가 감히 넘겨짚기론, 이렇게 댓글 달았대서 김강님이 여길 어지럽히고 있다고 여기진 않으리라 봅니다만..(그렇죠 김강님? 부디 그렇다고 해주셔야는데..ㅋ;) 뭐, 님 블로그에 딱히 따로 글 달 데도 마땅찮다 싶어 여기다 다시 댓글 달았으니, 해달란 대로 안 해드렸다고 해도 부디 혜량하옵길 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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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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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 성실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폭력 개념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이해가 된 것도 같고 안 간 것도 같고 그렇습니다.^^마지막 단락에 답변해주신 하나님 나라에 관한 것은 예수가 하나님 나라라는 말을 사용할 때 '너희'의 하나님 나라로 의미되는 구절이 존재하는지의 문제였습니다. 제가 보기에 예수가 하나님 나라를 언급할 때 언제나 '자신이' 이해한 하나님나라, 자기를 통해 혹은 하나님이 가지고 오는 새로운 나라에 대한 측면으로 이해되었던 것 같은데 김강님은 폭력을 당하는 하나님 나라를 '그들'의 하나님 나라로 해석하셨길래 드린 말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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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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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사람/ 제가 들사람님의 댓글에 대해서 말씀드린 것은 민중신학류에 관심을 가지고 질문을 드리고 있는 입장을 논쟁의 방향으로 끌고가시는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지금 이 글에 답글을 달고 있는 것도 죄송스러울 따름... 분명 밝혀두는 것은 이 글은 제가 처음 드린 질문으로부터 나오는 내용이나 입장과는 무관합니다.광우병 집회가 나와서 말인데... 그 때 사람들 사이에 각목들고 계시던 분들이 몇분계셨습니다. 그런데 경찰과 한참 대치중이던 분들이 그 사람을 보고선 그러시더군요. "저 새끼 경창 끄나풀이다." 그리곤 다들 그 사람을 둘러싸고 '비폭력'이라고 외쳤습니다.
물론 얻어맞는 사람의 폭력이 휘두르는 자의 폭력과 같은 류로 취급받아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뭔가 착각하시고 계시는 것 같아서... 지배하는 자 입장에서 당시 YMCA처럼 정경들 앞에 누워서 군화발에 짓밟히는 사람들이 다루기 쉬울까요? 아니면 복수하겠다고 각목들고 뛰어드는 사람이 더 쉬울까요? 저희 아버지가 전경대장 출신이라서 들은 이야기도 많고 접했던 사건들도 많습니다. 덕분에 이 부분은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후자가 지배권력에겐 훨씬 다루기 쉽습니다. 또한 권력으로써의 폭력(공권력)을 사용하기도 훨씬 쉽구요. 각목들고 뛰어드는 사람은 앞에 있는 전경나부랭이는 두렵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정작 그 힘을 휘두르는 자들은 두렵게 하지 못합니다.
제가 비폭력적 저항을 100% 옹호하는 입장은 아닙니다만 뭔가 비폭력 저항주의에 대해서 오해하고 계신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다시한번 처음 질문과 무관한 글을 자꾸 올리게 된 점 김강님께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필요하시면 제 아이디 누르면 제 블로그로 연결됩니다. 오셔서 방명록에라도 남겨주시면 성실히 답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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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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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땅이/ 아고. 전 별로 상관없습니다. 원래 논쟁을 즐기는 걍퍅한 성품이라^^;;;; 들사람님이나 저같은 사람이 비폭력직접행동의 의도나 효과를 모르진 않을 겁니다. 운동권으로 살다보면 고민 안 할 수 없고, 관련된 글들도 안 읽을 수 없지요.사실 고백하자면. 저도 촛불집회 전에는 요더와 윙크, 크로산 등의 글을 탐독하고, 루터 킹과 간디, 달라이 라마가 가장 최고의 사회운동가라고 생각했던 비폭력주의자였어요.
그런데 오히려 전 촛불집회를 지내면서 그 노선을 폐기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무수한 집회에 나가 데모질도 하고 패악질도 부려보았지만, 장기간 이어진 촛불집회를 경험하면서, 그것도 한 두번 참가한 것이 아니라 거의 매일 나가서 시위대로, 인권감시단으로, 또 대책위 회의자리에도 나가고, 순간순간 글로 개입하는 등 매우 긴밀하게 결합하게 되면서 제가 가지고 있던 "비폭력저항주의"란 게 얼마나 관념뿐인 것이었는지를 절실히 느꼈지요. (그 때 제가 쓴 글들은 이 블로그에 오롯이 다 남아 있습니다.)
말씀하신 YMCA의 경우, 그 날이 6월 28일, 혹은 29일로 기억되는되요, 저는 그분들의 비폭력이 아무런 힘(무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상황을 변화시키는 사건적 능력, 의제설정적 능력을 말합니다.)도 발휘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날은 아마 촛불집회 기간 중 가장 경찰이 폭력적으로 난동을 부린 날이었는데요, 뭐, 그냥 밟고 갔죠. 게다가 그 다음 날 YMCA분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 시민들이 별로 폭력적이지도 않게 경찰 차벽을 향해 나아가는데 띠두르고 막아서고는 "비폭력" 하시더라구요. 순진한 비폭력저항주의가 어떻게 결국 '무저항주의'로 쉽게 전도될 수 있는지 목도했던 순간입니다.
저는 의제를 '폭력'과 '비폭력'이 아니라 아까 말했던 "사건화하는 능력"이 있는가 없는가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라면 분명히 무력한 폭력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예로 드셨던, 사람들을 조직화하지도 못하고 개별적으로 각목들어봤자 그건 별 의미도 없을 뿐더러 말씀하신대로 저쪽의 담론투쟁에 이용당하기도 쉽죠. 마찬가지로 무력한 비폭력도 있구요.
이 반대에는 사건적 능력으로 충만한 비폭력과, 또 사건적 능력으로 충만한 폭력이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건 어떤 저항 행동이 의제화 되고, 사람들로 하여금 더 연대하게 만들고, 그리고 결국 억압적 상황을 돌파하는가에 있지 그 방법이 폭력이냐 비폭력이냐는 이차적인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건 정세에 따라서, 혹은 저항자들의 스펙(?)에 따라 다르게 고려되겠지요.
그런 점에서 촛불집회는 언제부터 실패했느냐면, 바로 그 '사건적 힘'을 잃어버린 지점부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중요한 요인 중에 하나는 앞에서 이야기한 '순진한 비폭력주의'가 큰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과연 비폭력은 권력이 다루기 어려울까요? 저는 그렇게 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비폭력이든, 폭력이든, 사건화하는 힘을 잃을 때 권력은 쉽게 요리할 수 있지요.
그러나 어느 순간, 정말 폭력적이지 않으면 안 되는 때가 분명히 있습니다. 저는요, 80년 광주에 예수가 있었다면, 당연히 예수도 총을 든 시민군이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예수는 자신의 '사상'으로 대중을 지도했다기보단, 예수 주위의 민중의 행동과 욕망에 반응하고 그 안에서 말하고 행동했던 이니까요.(광주 이야기는 제 상상일 뿐이지만, 후자는 민중신학적 성서학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입니다. 민중신학은 복음서신학을 전개하면서 '예수'을 외따로 연구하지 않고 언제나 '오클로스'와 함께 연구했거든요.)
저는 크로산이나 윙크가 과도하게 오늘날의 비폭력저항주의를 예수에게 덧씌우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서의 세계, 즉 고대인의 세계에서 과연 그렇게 '비폭력'이 명시적인 어떤 사상이나 (의식적 차원의) 운동이었을런지요. 예수 역시도 윙크나 크로산이 보는 것처럼 "의식적으로" 비폭력 노선이었던 걸까요. 저는 아닌 것 같아요. (게다 지난 번에 썼지만, 실제로 '폭력'으로 해석될 수 있는 행동도 없지 않다고 봅니다. 저는 예수가 상당히 공격적이었다고 봅니다.) 그게 오히려 현대의 시각을 과거에 과도하게 투영하는 것은 혹 아닐런지, 비폭력에 대한 '현대적' 선호 때문에 성서에서 만날 수 있는 '폭력적' 예수를 못보고 있는 건 아닐런지(물론 예수가 무슨 레닌주의자나 테러리스트 같다는 건 아닙니다ㅋㅋ)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아, 글고 이 블로그는 워낙 댓글이 없는 썰렁한 블로그라서요, 저는 이렇게 댓글달리고 하는 게 나쁘지 않아요. 악플도 아닌데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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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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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해해주시니 감솨...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서 조심스러웠습니다.^^ 들사람님은 덕분에 제 블로그에 와서 방명록을 남기셨네요. 쫌 있다 가서 답변을 마무리 해야할 듯 싶습니다. 퇴근시간이랑 겹쳐서 글을 쓰다말고 나왔습니다. ㅋㅋ말씀하신 촛불집회의 양상에 대해서는 제가 경험했던 상황이랑 조금은 다르지만 대부분 인정하게 되는 부분들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비폭력 직접행동이 다루기 어렵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이 부분에선 김강님의 말씀에 전적동의합니다. 하지만 폭력적 행동은 그것이 조직화 한 것이든 조직화 하지 않은 것이든 물리적으로는 더 힘들어질지 몰라도 결국 명분은 언론과 힘을 독점한 자들에게 넘어가는 상황을 만들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들에겐 결국 더 쉬운 싸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힘으로 총칼든 군인들을 이길 생각이 아니라면 최악의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비폭력 직접행동을 해야한다는 말은 아니구요. 저의 고민입니다.^^
그리고 비폭력 직접행동이 현대의 너울을 예수에게 씌우고 있다는 김강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 반대 역시 같은 과정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저는 예수가 사람들의 욕망과는 다르게 살았던 사람이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그가 제시하는 하나님 나라가 과연 오클로스의 필요에 반응하는 나라였을지는 의문입니다. 그들이 원하던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다윗의 나라였고 예수는 그들의 왕이 되지 않으려 자리를 피했습니다. 또한 죽음에 대한 언급이 예수의 입에서 나왔을 때 그들은 예수를 떠나갔습니다. 예수가 말했던 하나님 나라가 사람들이 기대했던 것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만...
제가 이전 글 마지막에 드렸던 하나님나라에 대한 대답을 안해주신 것 같아서 다시 졸라봅니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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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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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땅이/ 오늘날의 민중의 욕망이 매우 복합적이듯이, 즉 그들이 어느 때는 한나라당을 찍다가도 어떤 때는 놀랍도록 권력과 맞서싸우는 힘을 발휘하듯이, 예수 당시의 민중도 그랬을 겁니다. 민중신학은 통념과는 달리 민중을 미화하지 않습니다. 안병무는 종종 "있는 그대로 민중을 본다."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그 "있는 그대로"는 어떤 찬탄이나 비난이든 화석화된 단면적 시각이 아니라 민중의 복잡한 면을 다 보려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평소에는 힘 없고, 죄의 체제 속에서 그 체제의 피해자인 동시에 그 체제를 생산해내는 민중이 그런데 놀랍게도 자기를 초월하는 면모를 보이는 것을 보자는 것이었지요.안병무는 특히 마가복음을 연구하면서 거기에서 예수의 제자들과 바리새인, 율법학자, 헤롯당, 사두개 등이 일관되게 비난받는 반면, '오클로스' - 무리들, 때로 여성, 아이, 병자 등등.. - 에 대해서는 결코 어떤 비난도 없다는 것에 주목했습니다. 마가복음은 '제자도'가 아니라 오클로스와 예수의 복합적인 결합이 그 핵심이라는 것이지요. 유일하게 걸리는 부분이 수난사화 부분입니다. 군중이 예수를 내어주지요. 그런데 이것 또한 민중이란 존재의 그 복잡한 면을 바라보면 어렵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뭔가 커다란 전복이 일어날 줄 알았는데, 그만 예수는 붙잡혀 버리고.. 그의 무능에 실망한 이들이 등을 돌리고... 그리고 무엇보다 예수 이야기를 전승한 오클로스들이 그 이야기를 그대로 두었다는 것은 예수 사후에도 예수운동이 활발발했던, 즉 '부활'했던 근거가 되지 않을까요. "우리가 예수를 넘겨 주었다. 우리와 함께 하던 예수를. 그런데 그는 그렇게 죽은 게 아니라 부활했다"라는 그들의 고백...
오클로스들이 원하던 게 '다윗의 나라'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똑같은 '하느님 나라'라는 개념어를 쓰면서도 그 내용은 굉장히 다를 수 있거든요. 뒤에 열심당으로 이어지는 급진 분자들, 엣세네, 바리새, 그리고 예수 주위에 있는 그 오클로스들까지, 모두 '하느님 나라'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 내용은 완전히 다르지 않나요. 예수의 오클로스에게 하느님 나라는 기본적으로는 차별과 압제가 없고, 율법에 따른 배제가, 예루살렘 넘들이나 로마의 지배가 없는 그런 나라였을테고, 그러한 오클로스가 예수로 하여금 예수되게 한 게 아닐까요. 예수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면 말입니다. 물론 예수가 일방적으로 오클로스의 대변인은 아니겠죠. 오늘날의 운동가들도 마찬가지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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