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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은 타워크레인 위에서-크레인 동지들의 호소

" 결국 이렇게 마지막 밤을 보낸다.
하지만 잃은 것이 얻은 것이 된다.
상처가 새로운 결의가 되고 아픔이 다시 원동력이 된다.
아흔 아홉 번의 패배를 겪으며 살아 남으라.
단, 그저 살아 남지만은 말라.
아흔 아홉번의 패배가 주는 패배감과 배신감과 모든 상처와 아픔을
심장에 새겨라.
절대 잊지 말라."

                                                             - 김주익 동지의 글 중에서

 

일주일간의 고공농성을 마무리하기 위해 짐을 쌌던 동지들의 심정이 어땠을까...

50m 꼭대기에서 한걸음 계단을 내딪을 때마다 저려오는 가슴을 어찌 달랬을까...

그 분노를 어찌 주체했을까...

동지들의 투쟁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투쟁하는 노동자 가슴에 올곧이 아로 새겨 남을 것이다.

투쟁이다! 투쟁!

 

 

 

<현대자동차아산사내하청지회 김기식 조합원의 글>

사랑하는 하청지회 조합원 및 원하청 노동자여러분,
무엇보다 먼저 이번 농성투쟁에 들어가면서 많은 걱정을 끼쳐드린 점
죄송하게 생각하고 또 감사합니다.
이곳 국회 안 타워크레인에 오르게 된 이유야 여러 동지들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오랜만에 찾은 현장이 비록 정문 앞이지만
너무 참담할 뿐이었습니다.
노동자가 현장에서 쫓겨나 아침마다 출퇴근하는 동지들을 보며 힘없이
피켓하나 들고 절규해야 하는 현실, 노동현장이 마치 무슨 군대와도 같이
아니 그보다 더한 감시와 사찰에 통제되어 가는 모습이, 겨울바람을
맞으며 새파랗게 어린 구사대 경비가 두려워 정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
피다만 담배꽁초를 씹으며 눈치를 보는 나이 많으신 공장의 주인이신
형님들의 비참한 모습들, 참으로 절망의 모습들뿐이었습니다.
동지들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동지들 그래서 국회 안으로 50M 상공의 타워크레인 위로 아산동지들의
얼굴들 하나 하나를 눈물로 되삼키며 크레인 계단을 한 걸음씩
올랐습니다. 그리고 우리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의 피묻은 눈물과 땀의 철의 노동자 깃발을 국회 의사당을
향해 단단히 조여 맨 후에야 비로소 떨리던 마음을 진정시켰습니다.
만약 적들이 침탈을 해올 경우를 생각해 크레인 가장 끝에 깃발과 함께
동지들의 피와 땀을 가슴에 품고 뛰어내릴 결심으로 최후의 지점에
깃발을 올렸습니다. 동지들, 이제 이러한 투쟁의 결의를 두 주먹 가득
채워 지상으로 내려가려 합니다.
비록 비정규직 개악안 폐기와 비정규보호 입법안을 쟁취하지는
못하였지만 이 땅의 비정규 노동자들의 절규를 담아내는 그리고
주춤거리고 있는 민주노총과 각 연맹 및 단위 사업장 노동자들의 피를
다시 한번 투쟁의 결의로 타오르게 하는 시발점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사내하청지회 신흥기업 동지들의 가열 찬 투쟁에 다시 한번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동지들, 투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세상의 모든 차별에 저항하라.
끝으로 사랑하는 우리 여보 뚱땡이에게 너무나 미안하다. 하지만 아무리
어렵고 긴 싸움이 된다해도 평생을 차별 받으며 살아갈 자신은 없다.
선희야, 앞으로 조금만 더 이해해 주라. 사랑한다.

2004. 12. 2. 국회 고공농성장에서
아산노동자들과 사랑하는 우리 여보에게....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김주익동지의 글>

그들은 경험이라 부르고
우리는 타협이라 말한다.
그들은 현실이 그렇다고 하고
우리는 현실을 바꾸내자고 한다.
그들은 성과를 논하고
우리는 정신을 얘기한다.
그들이 세 치의 혀로 운동을 얘기할 때
우리는 목숨을 건다.
노사협조주의 분쇄!
사회적 합의주의 박살!
노동해방 쟁취하자!
- 총파업승리 11.27 타워 -

한강은 유유히 흐른다.
우리는 언제쯤 이 패배감에서 벗어날까
적들에게 느끼는 분노보다 '이중의 적'으로부터 느끼는 분노가 더 크다.

배신과 타협이 동지들의 심장을 짓누른다.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겠지만
지금의 고통은 충분히 느껴야 한다.
그래서 이 고통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입으로 주저리는 것들이 언제는 그렇지 않았더냐
다 모두다 나의 짐이다.
참 고통스러운 시간이지만 같이 고통을 느끼는 동지들이 있어서 좋다.
동지들이 희망이다. 같이 웃을 수 있는 동지들이 같이 아파하고 있다니!
그래도 한강은 유유히 지랄 맞게 흐른다.
- 버림받은 타워크레인 위에서 12월 첫날 -

결국 이렇게 마지막 밤을 보낸다.
하지만 잃은 것이 얻은 것이 된다.
상처가 새로운 결의가 되고 아픔이 다시 원동력이 된다.
아흔 아홉 번의 패배를 겪으며 살아 남으라.
단, 그저 살아 남지만은 말라.
아흔 아홉번의 패배가 주는 패배감과 배신감과 모든 상처와 아픔을
심장에 새겨라.
절대 잊지 말라.
오늘 밤 역시, 이 밤과 촛불과 지랄같은 서울의 야경과 동지의 아픔과
나의 분노를 심장에 아로새긴다.
- 12. 1 타워의 마지막 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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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인 동지들, 그리고 나

# 1

 

잘렸다.

좀 개겼더니 가차없이 자르더라.

파견노동자였던 나는 파견인력업체에서 해고통보를 받은 게 아니었다.

심하게 관리자들과 싸운 그 날, 원청 관리자들로부터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죽도록 부려먹었다.

그래서 생산량좀 줄이라고, 휴게/점심/석식시간에는 밥도 먹고 쉴 수 있게 라인을 중단하라고, 수도 없이 개겨댔다.

정말 12시간을 꼬박 일하고도 모자라 맞교대를 강요하는 관리자들과 허구헌날 부딪혔다.

특근 안할라치면 압박과 강제를 일삼는 그놈의 회사덕분에 퇴사한 녀석들도 더러 있다.

같이 일하는 우리들, 우리 모두는 정말 열이 받아 있다.  

그러나 우리들, 너무 길들여진 탓일까. 쉽게 일어서지 못한다.  

 

일주일에 서너번은 잡힌 교육과 조회시간에는 그러한 불만들을 "달래려는" 건지, 조금만 더 열심히 일해줄 것을 주문한다.

회사가 살아야 여러분이 살지 않겠냐는 자본가 개들의 멍멍소리는 지겹도록 듣는다.

조금 더 많이 생산할 것을 주문하고, 조금 더 불량을 내지 말고, 조금 더 불량을 잡아내라고 짖어댄다.

회사가 살아야 여러분이 살 수 있다는 말로 시작해서 그것으로 끝나는 교육/조회시간.

80~100명의 작업자들 곳곳에서는 끄덕이는 머리통들이 보인다. 조금 암울하다. ㅡ.ㅡ*

 

아따. 답답한지고. 그래, 어디 깨야 할 것이 한 두개이겠냐. 시작이 반이라 했다.

틈틈이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화제도 정말 다양하다. -_-;;

그런데 몇몇이 모여앉아 이야기좀 할라치면 관리자 놈들 어느새 달려와 훼방을 놓는다.

화장실에서 애들이랑 수다좀 떨라고 하면(우리는 대부분 화장실에서 회사나 관리자들을 씹어댔다. 담배한대 물고..) 다른 동료들에게 우리의 뒤를 캐묻는다. 정말 지랄도 가지가지다.

 

그런데 각 파트별로 라인별로 관리자들과의 충돌이 끊이지 않는다.

그 들썩거림, 그 날카로운 신경들, 그 조용한 소란스러움.

난 거기서 희망을 발견했다.

 

그러나 완전히 찍힌 내가 하루아침에 해고통보를 받자, 동료들이 그새 움츠러든다.

어쨌든 먹고 살기 바쁜 그들, 너무나 젊지만 부양해야 할 가족들이 있고, 한 달 생활도 벌어먹는 이 월급으로는 빠듯한 그들.

순간, 나에게 "해고되어서 안되었다"는 동정의 눈빛을 날리지만, 그것은 나와 한편이 되었을 때 닥칠 두려움의 눈빛이기도 했다.

 

아르바이트 삼아 한 일이라지만,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했던 몇 달.

 

 

# 2

 

잘린지 이제 일주일이 조금 넘어간다.

덕분에 시간적 여유(-_-;;)가 생겨 여기저기 집회도 다녀보고, 한동안 못봤던 지인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리고 여의도도 다녀왔고, 명성에도 다녀왔다.

정말 죽을 각오로 타워크레인을 점거한 네 명의 동지들의 투쟁소식을 접했고, 반대로

보기 싫은 민주노총 관료들의 작태를 어김없이 보기도 했다.

이에, 어떻게든 총파업을 사수해야 한다는 이들의 처절하지만 또렷한 호소를 듣기도 했다.

해단한지 얼마 되지 않은 이주동지들 중 한 동지가 끌려갔다는 소식도 들었다.

 

얼마되지 않은 현장 경험이지만, 현장속에서 무엇을 해야 하고 할 수 있는지가 너무나 많이도 고민된다.

현장의 요구와 불만들이 무엇인지 주의깊게 살피고, 나아가 그것을 행동으로 조직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말이 쉽지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다.

곳곳에 널려 있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도 문제이거니와, 가장 중요한 것은 투쟁 자체가 전망이 될 수 있어야 한다.

투쟁이 머뭇거려지는 것, 투쟁이 소모적인 것, 결정적으로 투쟁이 두려운 것이 되었을 떄는 그약말로 작살난다.

그래서 가장 소소한 불만이라도 그것은 집단적 행동으로 조직되어야 하고 조직될 수 있어야 한다. 조직하고 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

더불어 투쟁 속에서 반드시 나타날 적들의 이데올로기적/조직적 공격들을 방어하고 외려 그러한 악선동과 침탈을 공세적으로 뚫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교육과 선전도 필요하다.

 

현장 곳곳의 사정을 모두 알지는 못하지만, 아마 총파업 사수에 대한 확신이 현장안에는 그다지 많지 않을 것 같다.

민주노총의 수도 없는 거짓말과 입바른 소리에 질려 더 이상 상급의 지침을 믿지 못하는 것도 문제겠지만, 투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패배감과 무력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수도 없는 패배 속에서 다시 일어서지만 되돌아오는 건 동지라 믿었던 자들에게 배신을 당한다면, 나 같아도 다시 투쟁으로 떨쳐 일어서기 힘들 것 같다.

 

바닥난 운동적 신뢰, 산산이 부서진 동지적 애정, 점점 부르주아 관료체제로 물들여진 운동판, 이 모든 것을 갈아엎기 위한 행동이 필요하다.

모든 것이 제로로 떨어졌다.

다시 일구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운동의 전투적 부위가 살아 있다면, 여전히 살아 꿈틀대고 있다면, 자신의 주위로 동료를 조직해야 한다.

 

선도투가 힘을 얻기 위해서는 대중적 지원이 필수가 되어야 한다.

모든 것이 어려운 상황에서 크레인 위의 동지들의 결의는 정말 소중하다.

사수되어야 한다. 기필코.

네 동지의 결의가 자기희생으로 마감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총동원해야 한다.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사실 막막하기만 해도...

 

 

# 3

 

이제 새로운 곳에서 일을 하려고 한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_-;;

 

지금까지 해왔던 생각들, 고민들이 부끄럽지 않게 잘 살아야겠다.

여의도 투사들 앞에 부끄럽지 않게.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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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공무원 노동자

언론에서는 공무원 노조의 파업이 사실상 무산되었다고 떠들석하다.

이제는 낯설지도 않은 저들의 호들갑, 왜곡, 그리고 탄압...

그러나 행동하는 이들이 있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이들이 있다.
다시 일어서는 이들이 있기에 우리, 한걸음 내딛을 수 있다.
그렇게 승리를 향한 진군은 시작한다.

"가장 무서운 적은 주저하는 것이다.
모든 싸움은 자기 자신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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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공무원 노동자


11월 14일...
공직생활 10여 년 동안 오늘같이 출근길이 고통스러운 적이 없었다.
아파트 단지 입구까지 따라 나서며 안스러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는 아내의 눈길마저 부담스럽다.
평소 월요일 아침 출근시간이면 술렁거렸던 구청 앞도 왠지 낯설게만 느껴진다.
“참 멀리로 달려왔지”
순간 그동안 공직생활을 뒤돌아보며 한숨 같은 독백이 흘러 나왔다.

공무원노조의 총파업 D-1.
나는 오늘도 예전처럼 처자식이 있다는 변명을 내세워 책상 앞에 앉았다.
“처자식 있는 것이 벼슬도 아닌데”
우두커니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담배를 물었다.
동료들도 삼삼오오 모여 총파업투쟁을 위해 서울로 상경한 노조원들과 노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평소 나와 친하게 지냈던 동료도 총파업 투쟁을 위해 서울로 올라가고 빈 책상만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난 그 친구의 용기가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론 나서지 않은 내 자신이 다행이라며 위안하고 있었다.
구청 분위기가 술렁여서 인지 아니면 내 자신이 심난해서 인지 오전 내내 좌불안석 이었다.

“김 선배 안 올라 가셨어요”
깔깔한 입을 달래며 점심을 먹으려는 찰라 맞은편 테이블에 앉은 감사과 직원이 정색을 하며 물어 본다.
“왜?”
순간 그의 질문에 불쾌감을 느낀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총파업에 참가한 OOO선배와 언제나 함께 다녀서 김선배도 함께 올라 간줄 알았죠”
“올라가면 안되나?”
가뜩이나 불편 나의 심기를 건드려 더 이상 밥을 먹으면 체 할 것만 같았다.
“왜 벌써 식사 다하셨어요. 김선배 나는 그런 뜻으로 말한게 아닌데...”
변명을 늘어놓는 그를 뒤로 한 채 휑하니 식당을 나와 버렸다.

거리의 차가운 바람은 어느새 속옷까지 파고들고 있었다.
“추울텐데...”
서울로 올라간 친구가 걱정이 됐다.
“정부에선 벌써부터 총파업 참가자 전원을 중징계 한다며 야단들인데...”
그러나 어제 밤부터 내 마음 한편엔 죄책감이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내가 이곳으로 발령을 받은 이후 7년 동안 형제처럼 동고동락하던 친구가 총파업에 동참해야 한다며 자리를 비웠다는 사실 앞에 순간순간 나의 추한 모습이 투영되었다.

책상을 지키고 앉아있던 오후 내내 나는 그저께 밤일을 생각했다.
“니가 나선다고 말단 공무원이 하루 아침에 기피고 살겄나”
동네 맥주 집에서 설전은 나의 질문에서부터 시작 되었다.
“쓰잘떼 없는 일에 마음 두지 말고 적당히 몇일만 참으면 되는데 뭐할라꼬 니가 나서나”
“니 집사람이 얼마나 걱정하는지 아나. 어제 밤에 애 엄마한테 전화해서 너 짤리면 어떻게 하냐고 울더란다”
“이 문둥이 자슥아 쬐만 참으면 된다. 니가 독립투사도 아니고...”

술이 건하하게 취했을까. 나의 거침없는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던 그 친구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자슥아 니가 공무원이가. 니가 진짜 국민을 위해서 봉사한다고 생각든 적 있나. 공무원생활 15년 동안 니가 한게 뭔데...”
술잔을 비우는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엔 오히려 나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했다.
“나는 처자식 걱정 안 되는 줄 아나. 난 니같은 인간이 제일 경멸 스럽데이. 동료들 눈치 때문에 공무원노조에 이름만 걸어 놓고 적당히 윗사람들 눈치나 살피는 너같은 공무원 때문에 공직개혁도 안되고 국민들로부터 공무원하면 비리의 온상인양 손가락질 당하는 것 아니가”

소주를 어지간히 마셨는데도 그의 눈은 오히려 반짝이고 있었다.
“난 내일 올라 간데이. 처자식을 위해서라도 올라 간데이. 썩어빠진 공직사회 바꾸는데 조그만 힘이라도 보태기 위해서 올라 간데이. 너 같이 비겁한 공무원들을 양산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올라 간데이”

내 자신이 창피해 나는 탁자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소주잔을 들고 있던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의 떨림은 공무원노조 총파업을 앞둔 그의 열정과 정부와 싸워야 한다는 두려움이 교차된 심정을 그대로 말해 주고 있다.

“아이고 피곤하다. 이제 퇴근 합시다”
과장의 목소리가 나의 생각을 깨웠다.
난 7년만에 처음으로 열심히 일하는 과장의 모습을 처음 보았다.
공무원노조의 총파업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최근 일주일 동안 불철주야 뛰어다니는 과장의 모습을 볼 때 마다 헛구역질이 날 지경이다.
“기회주의자...”
사무실을 빠져 나가는 과장의 뒷통수를 보며 입속으로 그를 비난해 본다.

순간 또 다시 내 마음 한편에 또아리를 틀고 있던 죄책감이 꿈틀거렸다.
“과장만 기회주의자 인가. 나도 기회주의자 아닌가. 친구가 어떻게 되던, 공무원노조가 파업을 하던 하루 종일 책상을 지키고 있었던 나야 말로 기회주의자 아닌가. 눈치 살피며 공무원노조 조끼를 입고 책상을 지켰던 나야말로 기회주의자이다”
갑자기 목이 탔다. 냉수라도 벌컥벌컥 들이 키고 싶었다.

“식사안하면 과일 깎아 드려요”
아내의 물음이 귓전에서 윙윙거렸다.
“전국공무원노조가 사상 첫 불법 파업을 공식 선언했습니다. 정부는 파업 참가자를 대상으로 곧바로 직위해제 절차를 밟은 뒤 3~4일 내에 지방자치단체별로 징계위원회를 열어 중징계를 요청할 방침입니다...”
9시 뉴스를 보는 순간 화면 속에서 친구의 얼굴이 보였다.
연세대 앞을 달려가고 있는 그 친구의 모습을 보았다. 그 친구는 무엇을 위해 낯선 서울의 밤길을 내달리고 있었을까. 어깨에 조그만 가방을 들러 매고 조합원들과 함께 연세대학교를 내닫는 모습을 보며 따뜻한 안방에서 텔fp비전을 보고 있는 내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잠깐이지만 친구의 얼굴엔 근심보다 확신에 찬 의지로 빛이 났다. 아니 마치 연세대학교가 해방구인 듯이 기쁨으로 가득한 얼굴 이었다.

“여보 나도 밤 열차타고 서울에 가야겠어”
나의 말에 아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왜요. 당신이 왜요”
아내는 애써 내말의 의미를 피하려 했다.
“아니. 나같은 사람들 때문에 서울에서 투쟁하고 있는 동료들이 십자가를 매고 있어. 이 추운날 서울에선 동료들이 상경투쟁을 하며 길거리를 헤메고 있어. 똑같이 월급을 받고 똑같은 일을 하는데 내 약한 의지 때문에 그들의 가슴에 한과 불신이라는 대못을 박아 버릴 순 없어... 두툼한 점퍼랑 모자 좀 챙겨 줘”
아내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녀올께”
나는 아내의 눈물을 애써 못 본 채 하며 역전으로 향했다.

“어! 김선배님”
노조 지부에서 나를 따르던 후배도 대합실에 나와 있었다.
“자네는 웬일이야”
“아버님이 어제 대장암 수술을 하셔서 상경 투쟁을 못했어요. 뒤 늦게라도 동참하려고 부랴부랴 나왔는데 선배님은 웬일 이세여. 이 야심한 밤중에”
“나... 공직생활이 이제 지겨워서 한번 짤려 보려구”

열차가 깊은 어둠을 가르며 힘차게 서울을 향해 내 닫고 있었다.
나는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어둠을 가르며 내닫는 열차와 같이 14만 공무원노동자가 하나 되어 권력의 하수인이라는 어둠을 뚫고 전진해 나간다면 반드시 승리하리라”
가장 무서운 적은 주저하는 것이다. 모든 싸움은 자기 자신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뒤로 물러나며 핑게를 대는 것은 영원히 패자가 되는 것이자 굴종의 길에 자신을 던지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결단과 행동을 기다리고 있다.
“서울에서 찬바람을 뚫고 정부의 억압에 맞서 가열찬 투쟁을 하고 있는 동지들이여 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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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대회

# 1

 

노동자대회 날이다.
회사에는 "친구와의 약속때문에 특근을 할 수 없다"고 말해 놓았다.

급하게 주문이 들어왔는지 생산계획이 다시 빡빡하게 짜여져 있다.
야간 2주가 끝나는 이번주 금요일께에 관리자들이 야간 2주 연장이라고 공지한다.
특근도 계속 잡혀 있다.
한편에서는 빡센 생산계획으로 인한 노동강도 강화, 높아만 가는 스트레스, 불규칙적인 근무계획과 이로 인한 개인적인 일정 차질로 불만을 토로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한달동안 야간에 특근일정이 잡혀 있어 돈 많이 벌겠다며 좋아라한다.
특근 못 나온다는 나의 말에 동료 작업자들은 "야간특근 안하면 돈 많이 못 벌텐데.."라며 이상야릇한(!) 눈빛을 날린다.

사실 노동자대회를 기다렸다.
아니 기다렸다기보다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단 한번의 위력적인 투쟁이 그야말로 단 한번으로 끝나면 문제이지만, 지금같이 정권의 공세적인 탄압에서는 그것조차 너무나 소중한 투쟁이기 때문이다.
작년 중하반기부터 흘러나오던 '로드맵'이 점점 구체화되고 있다.
정권의 로드맵 구상이 사실상 노동계급의 분절화 전략이 성공하면서 얻은 자신감의 표현이자 자기 위기의 생존전략(!)임은 이미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자본과 노동은 절대 화해할 수 없는 시점에 놓여 있다.
자본주의의 위기가 심화될수록 자본가들은 노동자의 목줄을 죄는 정책과 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다.
이미 파견법 개악은 입법절차만을 남겨두고 있으며 그것은 비정규직의 대량양산과 정규직 고용을 노리는, 사실상의 전체 비정규직화에 다름아닌 공격이다.
내년 상반기에 처리될 '로드맵'은 남한 자본주의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 무엇을 공격해야 생존(자본가정권의)이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결정판이다.
그것을 위한 수순과 일정을 저들, 자본가 정권이 차근차근 처리하고 있다.
당근과 채찍을 같이 들었다가, 당근이 제대로 먹히지 않는지 요즘엔 채찍만 열라 휘두른다.

그런데 계급대중의 상태는 어떠한가.
그리고 이러한 공격에 우리는 어떤 행동과 실천을 조직하고 있는가.
무엇을 선동하며, 무엇을 선전하고 있는가.
사실, 너무나 암담하다.
무엇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무엇으로 사방으로 막혀있는 장벽에 파열구를 낼 수 있을까, 어떻게 들고 일어설 수 있을까.
이것은 비단 현장의 모든 활동가들이 고민하고 있는 부분일게다.
하지만 작지만 소중한 실천들을 하나하나 만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오랜만에 나설 거리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리지만, 그 많은 동료 작업자들이 뼈빠지게 일하고 있을 시간에 혼자 거리의 흥분을 느끼자니 뒤가 조금 구리다.
그래도 뭐,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일단은 오늘과 그 이후만 생각하기로 하자.

 

# 2-1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법이던가.
아니 어쩌면 나는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그 기대마저 없다면 애초부터 힘이 빠져 담배나 물고 터벅터벅 걷기만 하는 것이 싫어서 나는 "무언가 있겠지"라는 최면을 스스로 걸고 있었는지 모른다.

격전이 예상되던 곳의 투쟁도 이렇다할 충돌이 없었다.
물론, 공무원 동지들의 총파업 결의는 충분히 소중하다.
그러나 그 결의를 이어갈 수 있는 물리력과 응집력, 그것의 성과를 정치/조직적으로 어떻게 축적할 것인지의 계획이 뚜렷하게 잡히지 않는다.
허탈하게(?) 마무리된 산개투쟁의 계획이 최소한 발전투쟁때만큼 이어갈 수 있을지, 사실 조금 미더운 것도 사실이다.
정권의 탄압이 광폭한데 반해 공무원 노조의 조직력-물론 공무원노조에 대해 내가 아는 바는 일천하다. 그러나 오늘 보아온 바에 따라 판단해 보면 조합의 정치적 요구사안과는 별도로 조직력이 그다지 탄탄치 않음은 분명한 것 같다. 14만 조합원중, 4800명 상경에 노대회와 공무원 총파업전야제 집결인원이 1000명이라니.. 거기다 나머지 3800명의 행방을 알 수 없다는 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역별 독자 총파업도 한 군데라니 총파업 준비에 대한 부분이 얼마나 치밀했는지 잘 모르겠다-과 총연맹, 단위노조의 연대가 그에 미치지 못하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하니 말이다.

그러나 현실을 이유로 눈앞의 투쟁을 버려둘 수는 없다.
진보넷의 속보기사중 어느 동지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사업장은 달라도 같은 노동자로서 함께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싸울 것이다."

그래, 그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그 누군들 모를까.
다만 하지 못하는 것의 '변명'은 지겨운 현장상황이다. 동력이다. 조직력이다.
현장조직력을 핑계로 총파업을 총력투쟁으로 뒤바꿔 투쟁을 선언해 왔던 민노 지도부를 그렇게도 신랄하게 비판했던 그 전투적 부위마저, 자신이 날렸던 비판의 내용을 고스란히 반복하며 '선도투'를 회피하였다고 한다.

"현장동력이 되지 않는다. 조직력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 현실은 인정하자.
일단 현장 조직화, 잘 안된다.
싸우자, 골백번 이야기해도 하나 먹힐까말까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단 한번의 선도투로 조직력을 무너뜨리는 것보다 어쩌면 현장에서의 작은 실천하나가 더욱 중요할 수도 있다.
그래,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예년처럼 마무리된 노대회에 나는 다시 한번 허탈한 웃음만 날린다.
오늘 투쟁이 마무리되고 걸친 한잔 술에 어느 동지가 이런 말을 한다.
"y앞에 있던 선봉대 동지들의 면면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희끗해지는 머릿발 날리며 아직까지 선봉대를 서야 하는 그 동지들이, 한편으로는 대단하다고도 생각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안쓰럽기 그지없다"고 말이다.
서른줄에 들어선 동지들이 선봉대의 막내격이었다니.. 하는 말을 덧붙이며.

우리는 어쩌면 주변을 조직하지 못하고 윗대가리만 씹는데에 익숙했는지 모르겠다.
정작 주변을 조직해야 할 그 때, 그러지 못하는 우리 상황이 계속 반복되고는 있지 않은지 반성해 본다.
하지만 작지만 소중한 실천을 벼리고 있는 동지들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낸다.
그리고 그 실천이 지금은 작을지라도 거대한 파도가 되어 언젠가 하나된 우리로 거리에서 마주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끊임없이 대중을 설득하고 대중과 '내'가 한 몸이 되는 작업들, 그러나 '자신'이 대중의 이해수준으로 하락하지 않는 작업, 대중의 정치적 의식을 끈질기게 끌어올리는 작업, 이 모든 것이 한 몸이 되게 하는 그러한 작업, 활동.
그것이 필요하다.

자, 어디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
과거를 뒤돌아보고 현재를 보자. 그리고 내일을 계획하자.
희망은 아직까지 함께, 그렇게 끈질기게 투쟁하는 동지들이 있다는 데 있다.
할 수 있다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해보자고, 이길 수 있다고 어깨걸기하는 동지들이 있기에 희망은 있다.
더 이상 자본주의에 희망은 없다고 선언하는 동지들이 있기에, 희망은 있다.
더이상 "노동해방 쟁취"의 구호가 낡아빠지고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현실의 절절한 구호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기에, 그리고 그것을 위해 당장은 성과가 보이지 않을지라도 하루하루 뜨겁게 사는 우리가 있기에 희망은 있다.

노동해방 쟁취!
그래 그거다.
이제 남은 것은 끈질기게 대중과 한몸이 되며 노동해방에 한걸음씩 전진하는 것밖에는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노동자 목에 칼이 들어와 있는 파견법 철폐를 위해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자본가정권이 쳐놓은 노동자 분절 그물망을 과감히 뜯어버리고 공무원노조 투쟁에 헌신적으로 연대해야 한다.
자기사업장의 현안과 타사업장의 투쟁에 연결의 다리를 놓아야 한다.
노동자는 하나라는 구호를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재구성해야 한다.
파견법 철폐와 투쟁사업장의 요구를 하나의 노동자 요구로 받아 안아 사업장에서 정규직/비정규직 가릴 것 없이 똘똘 뭉쳐야 한다.

그래, 그래야 한다.
적들의 자신감에 찬물을 끼얹자.
적들의 더러운 미소에 침을 뱉자.
적들의 개같은 도발에 맞장을 뜨자.
잊지 말자.
작년, 우리가 몇명의 동지를 저 세상으로 보내야 했는지를.
이제 적들은 우리 모두를 죽이려 한다.
목에 칼이 들어오는데 가만히 있으면 바보가 아니고 무어란 말인가!

당장 내일부터 공무원노조 총파업에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투쟁을 지원하자. 연대하자.
파견법 입법상정시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당장 총파업을 조직할 수 있도록 현장에서 분투하자.
이제 패배감에서 헤어날 떄이지 않은가.
쏘주 한잔 빨며 그렇게 이빨까는 것이 지겨울 때도 되지 않았는가.

투쟁이다.
다시 벼른다.
투쟁이다.


노/동/해/방/쟁/취/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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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노대회를 앞두고 이런저런 생각

...

 

메이데이가 엊그제 같건만 벌써 노대회란다.

하긴, 메이데이든 노대회든 근 몇 년동안 똑같은 풍경에 질리기도 하다.

가끔씩! 잡히곤 하는 대규모 집회의 걷기대회에 긴장감이라곤 하나도 없다.

 

 

우리?

 

요즘 일하는 곳에서 무척이나 많은 생각들이 오고간다.

꽤 오래(?) 운동해 왔다고 생각했건만 올해는 유독 그 시간들이 무색할만치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뒤덮고 있다.

노동자계급을 부르짖었건만 정작 계급속에 내가 있었던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하게 한다.

혁명을 부르짖었건만 스스로 발딛고 있는 그 자리에서부터 혁명을 실천했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가장 작은 것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한숨부터 내쉬었던 내 자신을 뒤돌아본다.

마음만 멀찍이 앞서 있어 정작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것에 손을 놓고 있던 내 자신을 뒤돌아본다.

그렇게 '우리'를 소망했건만 정작 나 혼자 '고뇌'하는 나를 발견한다.

그로부터 밀려오는 외로움에 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썰을 푸는 것에 자족하는 나를 본다.

정작 외로움을 해소해야 할 대상을 뒤로 하고 말이다.

어렵다며, 힘들다며, 너무 멀다며, 그런저런 핑계를 둘러대고 말이다.

 

 

우리!

 

이빨만 까는데에 능숙해 있었다.

대화하며 호흡하며 부대끼며 그렇게 주위를 나와 함께 하는 동지로 만들어가는데 미숙했다.

아니, 무능했다. 신경쓰려 하지 않았다.

들썩거리는 불만들, 그 날카로운 신경들, 그것들이 나를 새롭게 만들고 있다.

노동자들은 노예이지만 노예가 아니다. 자본주의의 천박한 굴레에 언제까지나 엮여있을 그런 존재가 아니다.

그래,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무엇을 가지고 어디에서부터 계급으로 우뚝 서느냐가 중요하다.

그것에 너무 무신경했다.

그저 전체정세와 동향에만, 그래서 전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만 골몰하는데 익숙했다.

이제 사람들 속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 안에서 그들과 함께 그 방향을 어떻게 만들것인지를 고민할 줄 알게 되었다.

시작은 소소하지만 방향은 그리 가야 한다.

뒤엎기 위해서. 노예의 족쇄를 깨부수기 위해서.

 

 

...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함께 하고 있는 동지들을 바라보며 할 수 있는 말이 되어서는 안된다.

더욱더 계급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그것을 계급대중 안에서 확인해야 한다. 확인받아야 한다.

지치는 현실 앞에서 함께 하는 이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겠지만, 그럴 때일수록 자신의 편을 만들어야 한다.

바로 지금, 내가 발딛고 있는 이 공간에서.

이곳에서 말이다.

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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썼다 지웠다...

 

 

. 오늘도 썼다 지워버릴건가? 그럴지도...

 

간간히 둘러보는 이 곳..

여러 블로거님들의 이러저러한 고민, 사는 이야기들을 진지하게, 그리고 재미나게 보고 있다.

나 또한 함께 소통하고픈 마음에 자판을 두드리기를 몇 번 시도했지만 금새 지워버리곤 했었는데...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 보니, 이 곳에 들르는 것 자체가 소원해 지더라.

관심이 없어지더라. 그것이 익숙해지더라.

 

 

 

. 망설임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무엇을 가지고 화두를 던져야 할지 모르겠다.

은근슬쩍 몇 마디 던져보지만 동료들의 시큰둥한 반응에 나는 금새 힘이 빠져 버린다.

그러면서 문제를 외부로 돌려 버린다.

 

아직은 신생사업장이잖아.

회사 관리체계가 너무 정교해.

작업자들이 회사가 설파하는 이데올로기에 너무 감염되어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어.

돈만 벌면 되잖아?

 

쭉쭉 빠져나가는 기운을 주체할 수 없다.

하루에도 몇 번씩 무엇이 문제일까, 되뇌이고 또 되뇌여도 답은 보이지 않고 물음표만 내 머리속을 휘젓고 다닌다.

이래도 되는걸까? 이래저래 답을 내려보지만 마음 한 구석 찝찝한 것은 씻겨날 줄 모른다.

 

 

. 아직 연필도 쥐지 않았는걸...

 

그림을 그려보자.

무수히도 지껄였던 그 말이 얼마나 공허한지 모르겠다.

언제나 그림만 그렸던 것 같다.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아! 이 그림이 좋겠구나.

그런데 뜻대로, 그리고자 한 대로 그림이 현실에 옮겨진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단 한번도.

 

너무 안이하게 살아왔나 싶다.

너무 무책임하게 살아왔나 싶다.

이빨만 까는데 능숙하지 않았나 싶다.

호흡하자 했지만 정작 내 몸을 뒤로 숨기지 않았나 싶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함께 숨쉬는 것, 내가 너를 믿고 네가 나를 믿고, 그래서 언제든 함께 어깨 걸 수 있게 만드는 그 길에 나는 지금 단 한 걸음이라도 내딛고 있나...  

그런 생각들이 나를 뒤흔들고 있다.

 

 

 

. ...

 

껍데기를 무수히도 벗겨 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나에게는 벗겨내야할 찌꺼기들이 너무나도 많다.

새로운 외투가 필요하다고 투덜거렸지만, 오물로 뒤덮인 것들을 먼저 씻겨내야 한다.

가장 낮은 곳에서 함께 할 것이라 했지만, 아무도 가지 않으려 하는 그 곳에 나를 던지자고 했건만, 나는 여전히 머리로만 생각하고 있었던게다.

새로운 나, 지금부터일지 모르겠다.

언제나 그런 생각을 가졌다 생각하지만.

 

썼다 지워버리면 누군들 썼다 지운줄 알겠는고.

생각이 그러하면 일단 쓰자고.

기운차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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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그리고 지금

 

 

# 1

 

양 옆의 그림... 싸이로 치면 스킨이라고 해야 하나.

우찌 되얐든 배경화면은 98년 메이데이를 메웠던 종로의 풍경이다.

아직까지도 선명한 기억.

430의 기억은 가물하지만 유독 종로의 풍경은 뚜렷하다.

 

이제 막 선배랍시고 이것저것 후배들에게 이야기하던 시기, 그러나 제 운동의 입문길에서는 망설이던 시기, 과감히 한발 내딪지 못하던 시기, 그러나 처절하게 투쟁하고 있던 철거민 투쟁으로 충격을 받고 있던 시기, 다시 그러나 나의 안위를 돌아보던 시기, 아직은 너무나 철없고 어리기만 했던 그 때..

나는 간간히 접해왔던 학생들의 투쟁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각목과 하이바를 보았다. 쇠파이프를 보았다.

메이데이 집회를 뒤로 하고 종로 바닥에 드러누운 금속 동지들의 깡따구를 보았다.

하나같이 눈에는 불을 켜고 위풍당당히 종로 거리를, 충무로 바닥을 누비는 노동자 투사들을 보았다.

바둑모양 종로바닥 저 한켠에서 대오를 지키기 위해 처절하게 싸우는 동지들이 하나둘씩 실려 나오는 모습을 보았다.

어릴적 기억, 투쟁의 기억들은 여전히 단편이다.

 

 

# 2

 

이제 시간이 꽤 흘렀다.

많은 투쟁이 있었고 많은 경험이 있었다.

그것은 나에게 너무나 소중한 거름이었다. 내가 한발, 다시 한발 내딪을 수 있게 했던 자양분이었다.

한 때는 책속에서 모든 것을 이해하려 했었다.

노동계급의 이해를 온전히 습득하기 위한 노력이 그것뿐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사회주의자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맑스와 엥겔스, 그리고 레닌은 나의 우상이었다.

그러나 맑스, 엥겔스, 그리고 레닌은 그런 나에게 질책을 가하고 있었다.

어줍잖은 인텔리겐챠의 습성이 너무나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 3

이제껏 운동의 삶을 거치면서 새삼스레,

"과연 내가 운동이란 것을 하고 있었는가"

라는 의문이 덮쳐온다

최소한 자기 주변을 바꾸는 것이 운동이라 한다면,

그렇다면 나는 말이다.

과연 그러했는지 말이다.

나는 입으로만 떠들고 있었는지.

나는 주변에만 머물고 있었는지.

나는... 말이다.

 

 

# 4

 

짜증이 밀려오는 시기가 언제부터인지 생겨버렸다.

시야가 불투명해서 일지 모른다.

그저 그렇게 내성이 생겨버리는 이 생활에 그야말로 짜증이 생겨서일지 모른다.

솔직히, 해야할 것은 명확함에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답답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 5

 

그럴 때일수록 마음을 다잡아야 하는데..

그 계기나 방법은 각자의 것이 다 있게 마련일 수도 있겠지만.

단지 그렇게 개인의 영역으로 남겨질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어찌 해야 할꺼나...

오늘도 이래저래 한숨 푹푹 내 쉬어가며 잠자리에 든다.

 

 

가장 답답한 것이, 길이 보이지만 길이 안보이는 것.......

그것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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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썰렁하구만... ㅠ.ㅠ

* 이 글은 mush님의 [에에~]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가끔 들어올 적마다,

"우씨.. 글을 어케 남겨야 하는겨~~~! 우어어어어~~"

좌절하곤 했다.

그리고는 내가 테스트 글을 어케 남겼는지 머리를 쥐어짰다는...

 

그런데 오늘 이것저것 눌러보니 트랙백인지 몬지 클릭하니 글쓰기가 되삐네.

아. 정말 컴맹의 비애가 아닐 수 없다.

이제 글쓰는 방법을 알았으니 이것저것 많이 퍼 나르기도 하고 일기도 많이 써야쥐~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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