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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북체제 보장->핵포기'가 우선 (박명림)

<평화철학강좌-10>
‘北체제 보장→핵포기’가 순서다
박명림교수의 ‘정전50년-한반도 평화100년의구상’
한반도 전쟁위기, 그리고 미국-이라크전쟁을 목도하며 우리는 평화의 ‘이상’과 전쟁의 ‘현실’ 사이에 놓인 거리를 확인합니다.

평화를 예견했던 1991년 냉전종식 이래 9·11이전까지 전쟁과 전쟁상태로 인해 360만명의 인류가 죽었다는 점은 인간의 평화노력이 얼마나 더 커야만 전쟁과 죽음을 막을 수 있을지 절망케 합니다. 평화를 내면적 평화, 사회적 평화, 국제적 평화로 나눌 때 이 셋은 연결된 채 함께 우리들 삶의 안녕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현대세계사상 6위의 대전쟁을 겪고도 평화의 조건을 창출하지 못한 우리의 몽매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끄럽습니다. 인류의 위대한 평화정신과 철학은 전부 전쟁, 곧 인간의 인간에 대한 집단죽임의 소산이라는 역설을 보여 주었습니다.

1876년 이래 100년간 동아시아 전란의 한 복판을 지나왔음에도 우리가 평화정신과 철학의 어떤 도달을 보여주지 못함은 물론 현실대안조차 제시하지 못하고 있음은 실로 놀랍습니다. 과거를 지혜의 수원(水源)으로 삼지 못하는 개인과 집단에게 미래가 과거보다 낫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21세기의 평화건설과제는, 전쟁의 부재라는 소극적 평화로부터 생명·번영·공존이라는 적극적 평화로 평화이해를 전복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그러할 때 평화는 ‘창조’ ‘유지’ ‘강화’의 속성을 갖습니다. 평화강화(peace-solidifying)는 안보강화보다 더 중요합니다.

국가안보는 그 목표가 국민안보이자 인간안보를 위한 수단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체제안보가 그 자체 목적일 수는 없습니다. 인간안보와 생명안보가 미래 평화사상의 핵심요체가 돼야 합니다. 이제 ‘평화권’은 19세기의 자유권과 참정권, 20세기의 복지권과 환경권처럼 21세기 인류의 보편적 권리조항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한반도 갈등의 고리를 평화의 고리로 바꿔내기 위해서는 국제적·국가적·사회적 수준에서의 접근, 즉 평화보장체제, 평화협정, 평화문화 구축이 필요합니다.

먼저 국가적 수준에서 남북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대북지원과 더불어 북의 핵포기가 전제돼야 합니다. 그런데 북이 핵을 포기하는 것은 체제유지의 가장 중요한 수단을 포기하는 것이므로, 북의 체제를 보장해주는 것은 가장 중요하고도 쉬운 접근법입니다.

북은 핵을 포기하고, 남북은 평화협정을 맺고, 국제사회는 경제지원과 체제보장, 국교정상화를 위해 협력함으로써 우리 스스로는 평화의 주체가 되고, 국제사회는 이를 보장하는 ‘이중 평화보장’이 필요합니다.

한반도 평화창조와 강화가 멀었던 이유는 평화의 정신과 질서에 대한 비전의 깊이의 부재에 연결된 것인지 모릅니다. 무기체계와 안보질서에 대한 많은 고안들이 결국은 전부 더 많은 무기를 사들이고 더 큰 전쟁수단을 갖추는 등 전부 인간 ‘죽임’의 전략에 대한 노력의 산물이라는 점은 ‘생명’을 추구하는 평화의 지독한 역설입니다.

이제 발본적인 의식전복이 필요합니다. 근대이래 한국민들의 삶은 철저히 세계적이었습니다. 중화체제, 동아시아세력균형체제, 일본제국주의체제, 냉전체제 동안 한국은 차례대로 중국의 속방국가, 불안정한 독립국가, 일본 식민국가, 분단국가로서 존재, 동아시아 국제질서와 한국위상이 조응하여왔습니다.

지금 우리는 탈냉전이라는 다섯번째 동아시아질서를 맞고 있습니다. ‘긴 20세기 동안’ 한국은 청일전쟁, 러일전쟁, 중일전쟁, 2차세계대전, 중국내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등 동아시아의 주요 지역·세계전쟁에 직접 참여하거나 연루돼왔습니다.

독일문제가 민족문제가 아니라 유럽문제였듯 ‘한국문제’ 역시 지역문제이자 국제문제였으며, 결국 한국과 세계의 대면방식이 한국민들 삶의 존재양식을 결정하였던 것입니다. 시민사회가 평화건설의 주체일 때 한국의 시민사회는 그간 4·19, 부마 및 광주항쟁, 6월항쟁 등 밑으로부터의 저항을 통해 내부사회를 변혁시킨 질서주형자의 하나였습니다.

국가와 시민사회의 길항 속에 한국은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를 빠른 시간에 성취하는 위업을 보여주었습니다. 첫째 국제문제로서의 한국문제의 기본성격과, 둘째 한국민들의 적응노력 및 변화열망은 함께 우리 삶의 조건과 외양을 격변시켜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한국문제의 한축인 북한문제까지 시야를 넓힐 때 남북 전체 한국민들의 삶과 영혼은 결코 평안하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는, 산업화·민주화·정보화에서의 혁명적 변화를 승화시켜 남북 전체와 동아시아의 삶을 평화롭게 할 네 번째 변혁, 곧 ‘평화연쇄고리’구축과 ‘평화를 위한 혁명’이 절실한 때입니다. 100년 갈등의 중심이었던 한국을 100년 ‘평화의 중심’(hub of peace)으로 바꾸려면 국제적, 국가적, 사회적 수준에서 각각 평화보장, 평화협정, 평화문화 구축이 필요합니다.

먼저 국가 수준에서 남북은 평화건설을 위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시켜야 합니다.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해 상쟁수단의 포기, 즉 군축과 비핵화는 상생과 상화(相和)의 출발조건이 됩니다. 국제사회는 남북평화협정을 보장해주는 평화보장조치에 착수해야하며, 거기에는 한미관계와 북미관계의 정상화가 포함됩니다.

오늘날 국가평화와 국제평화는 분리될 수 없습니다. 시민사회의 수준에서는 전쟁문화, 폭력문화에서 평화문화로의 전변이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민주주의를 통해 발전할 평화문화는 군사주의와 전쟁준비를 제어하고 평화의 장기토대를 놓을 것입니다. 평화건설은 평화문화건설과 직결되어있는 것입니다.

위기가 클수록 위기 이후 구축될 평화의 크기도 큽니다. 평화를 안출할 집합적 사회지혜와 민족지혜를 빚어낼 때 우리는 ‘100년 전란’의 역사를 상큼하게 뒤집어 우리자신이 평화의 진앙이 됨은 물론 동아시아와 세계평화의 발신지가 되어 인류에 기여하는 평화혁명을 이룰 것입니다.

/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교수

11강은 12월11일(목) 박노해시인의 ‘바그다드의 긴눈물’입니다. 문의 나눔문화. 02-734-1977, www.nanum.com

기사 게재 일자 : 2003년 12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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