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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박명림의 <1950 전쟁과 평화>

진실, 화해, 평화를 위하여

-서평: 박명림 지음, {1950 전쟁과 평화} (나남, 2003)

권혁범

1.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청탁 받았을 때 잠시 망설였다. 다른 무엇보다도 연구자로서의 내 전공이 이 책 내용과 잘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한국전쟁 전문가도 아니고 좁은 의미의 학문적 '북한정치' 공부에서 떠난 지도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저자와의 개인적 인연도 부담이 되었다. 하지만 결국 서평을 쓰기로 한 것은 이 책이 드러내는 강렬한 문제 의식이 평화와 인권에 대한 보편적인 틀을 갖고 있고 또한 내 관심사에 깊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최근의 한반도를 둘러싼 복잡한 위기 상황에 대해 좀 더 거시적이면서도 세세하게 사고할 수 있는 훌륭한 참고서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더구나 이 지면은 좁은 의미의 '전문가'가 학술적 전문 서평을 하는 자리도 아니지 않은가?

2.

한마디로 800면이 넘는 이 책은 양으로나 질적인 분석 수준으로나 독자를 압도한다. 이제 박명림 교수는 한국전쟁에 대한 소장 학자가 더 이상 아니다. 이미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1, 2권을 통해 한국현대정치사 연구를 세계적인 수준에 도약시킨 저자는 다시 한번 그의 방대한 지식과 거시적 이론 틀을 결합한 연구성과를 내 놓았다. 전작에서 1945년에 출발한 그의 학문적 현미경과 망원경은 이제서야 1950년에 진입했다. 육이오 전야부터 중국군 개입까지를 세밀하게 검토한 그가 앞으로 도대체 몇 권의 한국전쟁 연구서를 더 내놓을지 가늠할 수가 없다. 개인 연구실과 세계 곳곳의 도서관 및 자료실에서 묵묵히 고군분투하는 학자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대우에 인색한 한국지식인사회, 감성적인 문체와 선동적이고 자아 도취적인 글귀에 의존하는 논객들이 공론을 주도하는 이 사회 뒤편에서 묵묵히 진행된 저자의 엄정한 작업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저자는 방대한 1차 자료를 수집, 분류, 분석하며 1950년 한반도에서 벌어진 일을 재구성하며 그것의 정치 사회적 '진실'을 드러낸다. 그는 그 동안의 연구가 지나치게 이데올로기적 프리즘을 통하여 추출된 여과물임을 보여주며 검증된 '사실'에 기초하여 1950년의 온전한 모습을 복원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미국, 북한(북조선), 남한 모두에 대하여 당파성 없는 객관적 비판을 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에 대한 비판이 남한 반공주의가 도구가 되고 남한정부 및 미국정부에 대한 비판이 북조선에 대한 동조가 되는 냉전주의적 이분법은 여기서 용납되지 않는다. 그는 최대한 균형감각을 갖고 사실을 찾아내고 사실들간의 인과관계를 치밀하게 따져봄으로써 1950년의 진실을 캐내려는 자세를 끝가지 견지한다. 북조선의 정책을 비판하다보면 남한에 대한 매서운 비판이 어느새 자리잡고 미국의 인종주의적 정책을 비판하다가도 북조선의 반민중적 행태에 대해서도 주저 없이 매스를 들이댄다. 물론 그것은 연구자 자신의 균형감각뿐만 아니라 1980년대 후반 이후 한국사회가 이뤄낸 민주화와 남북한간의 화해 지향적 관계의 발전에 기초에 한 것이다.

3.

전작에서와 마찬가지로 박명림교수는 한국전쟁을 국제, 국가, 사회 세 가지 수준에서 조명한다. 제 1부에서는 전쟁발발 당일 및 그 직후 남북한 양측의 행동, 인식, 사건들을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듯 치밀하게 재구성하여 보여준다. 무려 120면이 여기에 바쳐진다. 제2부에서는 전쟁시 북한의 남한통치의 실상을, 좌우 어느 한쪽 이데올로기로 쏠림 없이, 세세하게 검토한다. 그 결과 그 통치가 단순히 '혁명주의 대 반동'의 이분법적 구도로 이해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특히 전쟁시 남한에서의 북한식 토지개혁이 이미 1949-1950년 사이에 이루어진 자유주의적 토지개혁에 비해 근본적으로 더 혁명적인 성격을 갖지 못했음을 주장한다. 그것이 인민정부에 대한 농민들의 지지를 단기간에 올리는데는 도움이 되었지만 다수의 농민들이 그것의 '숨막히는 철저성과 비인간성'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제2부는 정반대로 남한의 북한통치를 처음으로 검토한 제5부의 문제의식에 그대로 연결된다. 여기서 저자가 논쟁적인 방식으로 주장하는 것은 '1950년'은 '1945년'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전쟁 시도를 혁명적 급진주의 대 일제 식민주의의 대립 구도로 보는 '수정주의' 이론에 대한 도전이다. 저자는 한국전쟁이 "북한을 남한에다가 폭력적으로 부과하는 것"이었다는 전작에서의 입장을 여기서 일관되게 유지한다. 제4부와 제6부는 주로 1950년 후반부의 인천 상륙작전과 그 이후의 사태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숨막히는 국제적 행위자들의 역학과 연관관계를 파헤친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제 3부 '전쟁과 인민'이다. 그것은 저자의 구체적인 생명에 대한 관심이 전쟁연구의 중심 축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이다. 거기서 독자들은 '민족 내 학살' 그리고 전쟁과 정치적 정당성 경쟁이 어떻게 해서 일반 인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는가에 대한 답을 얻는다. 남북한 국가 수준에서의 참혹한 학살, 미군의 인종주의적 폭력 행위 등이 한치의 편견 없이 제시되고 비판된다. 그 동안 한국 사회과학의 기본적 토대가 되었던 '국민'과 '국가'의 성역은 여기서 근본적인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저자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민족내 상호학살의 기억을 화해와 통일의 미래 지향적 실천으로 연결하기 위해서 구체적인 제안, 예를 들어 '남과 북 공동으로 진실 규명, 화해, 보상을 위한 합동기구' 안까지 내놓는다

그의 한국전쟁에 대한 세 번째 연구는 수많은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고 여러 가지 기존의 통설과 신화에 도전한다. 이 대작 그러나 치밀한 미시적 수준의 자료 찾기와 분석이 뒷받침되어 있는 연구에서 저자는 '제한전쟁론,' 북한의 혁명성과 민중성, '기습'으로서의 인천 상륙작전 등이 한마디로 신화임을 보여준다. 이 짧은 서평에서 그것들은 모두 논의할 수는 없다. 다만 그의 연구 방법론은 별도로 논의 공간이 필요하다.

그는 이 저서에서 기존의 거시적 논의, 단순한 국제정치학적 조명이 놓치거나 억압하고 있는 '구체적 개인' 수준의 문제 제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시, 에세이, 개인 일기, 자서전, 증언 등 개개인의 생생한 목소리는 책 어디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국가담당자, 군 지휘관, 정치엘리트 중심의 전쟁 연구에서 소외된 '주변부'의 개별적이고 다양한 목소리가 살아난다. 그것을 통해서 국제적 수준, 국가적 수준, 사회적 수준에서의 분석만 가지고서는 들여다 볼 수 없는 개인의 고통과 존엄성의 파괴를 보여준다. 다른 사회과학 서적에서 느낄 수 없는 당사자들의 슬픔, 절망, 고통이 책 곳곳에 깔려있다. 추상적 숫자나 이론적 개념들 속에서 개인은 사라져버리는 기존 연구의 '차가운 객관성'은 여기에 없다. 하지만 그의 분석은 단순한 르뽀에 그치지는 않는다. 그것을 거시적 역사적 맥락에 연결시키고 또다시 거기서 생겨난 이론적 틀을 갖고 개개의 파편적인 사실을 재검토하는 방법론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1950}은 객관적 실증주의에 매몰되지는 않는다. 그는 그저 그 당시에 벌어진 사건을 재현하려는 게 아니라 그러한 사실, 사실들간의 관계가 오늘날의 관점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왜 우리가 50여년 전의 사건에 주목해야 하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바로 이런 이유로 박명림의 연구는 기존의 연구와 구별된다. 왜냐 하면 그는 평화, 인권, 통일이라는 미래지향적 보편적 가치의 기준에서 한국전쟁을 조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단순히 어떤 특정한 가치를 위한 과거사의 자의적 재구성이라고 비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여전히 한국전쟁의 유산으로부터 한반도 주민은 자유롭지 못하며 동시에 그 유산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과 한국전쟁에 대한 관점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전쟁을 평화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은 평화의 시각에서 전쟁을 비판한다는 도덕적 의미를 넘어 전쟁의 원인과 과정을 탐구하여 적극적 평화로 나아가기 위한 주객관적 조건을 탐색하려는 문제 의식을 의미한다. (40면).

한국전쟁의 유산을 넘지 않고는 남과 북은 궁극적 화해와 평화, 그리고 통일을 향해 나아갈 수 없다. 평화, 인권, 통일의 미래는 '이 과거'를 '현재에' 어떻게 이해하고 수용하느냐는 문제에 직결되어 있다.(41면).

그래서 저자는 역설적으로 '한국전쟁으로부터 멀어지기' 연습이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그것은 역사의 망각이 아니라 화해와 진실을 위한 기억에서 출발한다. 어떻게 보면 이 저작들은 그 연습용 '교재'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결론에서 이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저자는 한국전쟁의 6개월 동안 전혀 고려되지 않았던 타협, 즉 휴전회담이 결국 1953년에 성사되었음을 지적한다. 그것은 "무조건 항복정책의 좌절로 인한 협상에 의한 종전, 즉 작게는 2차 세계대전 종결방식의 수정, 그리고 크게는 종전방식에서의 정치의 복원의 의미를 갖는, 국제정치와 세계외교사의 중대한 전환점의 의미를 갖는 것"이며 "세계전사, 나아가 세계사의 일대 전환점이었다"(745면)고 해석한다. 이런 인식이 오늘날 일방주의와 군사주의적 행동론의 위험이 고조되는 탈냉전시대의 동북아와 세계정치에서 평화를 위한 어떤 준거가 될 수 없을까?

4.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구체적인 개인과 현장의 감정에 충실하다 보니 저자의 개인적인 감정이 지나치게 분석과 성찰에 도입되는 문제를 드러내기도 한다. (특히 384-385면. 레지날드 톰슨 일행이 기록한 전쟁시의 비극적 장면에 대한 저자의 감정이입은 감동적이지만 한편으로는 그 감동의 표현은, 내가 문화정치학적으로 읽는다면, 적지 않는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혹시 책에서 슬쩍 드러나는 저자의 종교적 태도와 관련 있는 것은 아닐까?) 결론을 이루는 15장은 이미 앞장들에서 논의되었던 것을,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반복하고 있다. 또 한가지 문제는 그의 한국전쟁 발발 최초 6개월에 대한 미시적 분석이 최종 결론에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적지 않게 결론에서의 주장은 책 전체에서의 면밀한 분석과 관계없이 한국전쟁과 한국현대사 일반에 대한 저자 개인의 추상적 정치적 입장과 주장을 세밀한 논증의 뒷받침 없이 그냥 드러내버리고 마는 주관성에 빠진다. (물론 그 주장에 정당성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그의 주장에 동조하는 편이다). 그런 이유로 저자는 이곳 저곳에서 불필요하게 대 사상가들의 저작에서 인용하려는 욕망을 버리지 못한다. 앞으로 완결될 한국전쟁 최종 편에서 한국전쟁 부분과 전체를 아우르는 저자의 통찰이 또 다시 필요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큰' 결론은 이 책에서 그다지 필연적인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약점들은 그야말로 사소한 것들이다. 그것이 이 저서가 성취한 높은 인식론적 수준과 실증적 분석의 엄정성을 떨어뜨리는 것은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날 평화와 인권, 그리고 조심스러운 통일론에 대해 진지하게 고뇌하는 사람들에게 박명림교수의 대작은 참으로 귀한 성찰과 반성 그리고 전진의 계기를 동시에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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