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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뢰의 역사 다시 쓰자

[한-일 지식인 공동제언 ] ‘신뢰의 역사’ 다시 쓰자 ①
[한겨레 2005-04-08 19:42]

[한겨레]

일본 교과서 왜곡과 독도 문제로 한·일 간의 긴장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일본 문부성의 교과서 검정결과 발표를 계기로 <한겨레>는 한·일 지식인들의 ‘미래 제언’을 앞으로 세차례에 걸쳐 긴급 연재한다. 한·일 갈등과 대립의 실체를 드러내고, 용서와 화해, 공존의 미래를 위한 주문과 제언을 두 나라 모두에게 전하려는 뜻이다. 글쓴이들의 아픈 지적은 때로는 자국 내부를, 때로는 상대 나라를 향할 것이다. 이들의 글이 ‘한·일 우정의 해’ 2005년을 더럽히는 사람들을 향한 매서운 회초리이자, 그 반대편에서 평화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든든한 지팡이가 되기를 기대한다.

‘전범 과거’ 반성이 화해 열쇠 한일관계는 지금 ‘일본문제’로 인해 파란의 길목에 들어서 있다. ‘일본문제’란 ‘대내적 극우화’와 ‘대외적 팽창화’라는 일본 특유의 정치외교 행태와 사고방식의 집합을 말한다. 역사왜곡, 영토분쟁, 야스쿠니 신사참배, 전범 쇼와 천황 생일의 국경일 제정, 평화헌법 개정추진, 장관과 지사의 연속 망언 등 최근의 행동조합은 ‘일본문제’의 집중 분출을 의미한다. 특히 한일관계는 ‘일본문제’의 최악의 종합판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일본문제의 근원은 세계적 차원으로부터 발원한다. 오늘날 일본은 미국과의 동맹강화와 일본문제의 표출을 면밀히 연계하고 있다. 미일동맹강화는 일본문제의 행로를 결정짓는 중대 요인인 것이다. 둘째, 지역차원에서 일본문제는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발전과 군비경쟁, 세계화와 민족주의, ‘세계적’ 탈냉전과 ‘지역’냉전 심화 사이의 극심한 동아시아적 불균등 발전의 산물이다. 끝으로 한일관계 차원은 일본외교의 전형적 행태를 반영한다. 미일동맹 강화 뒤, 북핵문제 악화와 한미동맹의 균열을 계기로 한반도에 약간의 불안정이 깃들자 일본문제 관철의 한 정형을 만들려고 약한 고리를 집중 공략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일본문제의 이런 표출구조는 동아시아와 한반도 평화에 심대한 불안요인으로 작용해왔다. 따라서 한국의 전략은 역사대응을 넘어 동아시아와 한반도 평화, 지역협력과 국익을 향한 단호하고도 사려 깊은 선택과 국제연대를 요구받고 있다.

‘일본문제’ 수준낮은 민주주의 반영 무엇보다 일본문제는 일본 민주주의의 낮은 수준의 반영이다. 일본은 시민저항을 통해 체제를 변혁한 민주혁명의 역사가 없었다. 세계대전을 초래한 천황제 및 군국주의 악행에 대한 전후의 자각적인 국가사회적 청산 역시 결여됐다. 요컨대 일본문제는 일본 민주주의의 저발전과 표리를 이룬다. 또한 양심적·비판적 담론은 섬처럼 고립돼 국가정책으로 반영될 수 없다. 일본 양심단체와 국제연대를 통해 높이 소리쳐도 정부를 변화시키기 어려운 이유는 이러한 이중사회구조와 직결돼있다.

따라서 민주주의 발전은 일본문제 해결의 제일 요건이 된다. 첫째는 일본문제의 핵심인 천황제 폐지에 달려있다. 특히 식민경험 국가와 인민들은 전쟁책임의 요체로서 천황처벌과 폐지를 요구할 자격이 있다. 둘째 평화헌법의 유지다. 전범국가 일본은 전쟁재발을 방지하는 국제조치로서, 독일처럼 분단되는 대신, 평화헌법을 수용했다. 따라서 헌법 9조는 국제적 부전(不戰)조약의 성격을 갖기 때문에 일본은 국제사회 특히 전쟁당사국과 식민경험국들의 동의 없이는 개정할 수 없다. 셋째 야스쿠니 신사의 일급전범 위패를 타국에 설치될 동아시아 인권재판소나 전쟁박물관 같은 ‘지역 다자 인권·재판기구’로 옮겨야 한다. 일급전범의 관리를 일본이 맡아 정부대표가 공식 참배하는 것은 전쟁책임과 패전을 정면 부인하는 세계최악의 전후처리 사례다.

헌법개정, 식민경험국 동의해야 진실의 인정과 반성이 필요한 이유는 그것이 현재와 미래에 악행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자기와 타자에 대한 약속이기 때문이다. ‘과거’를 향한 반성은 곧 ‘미래’를 향한 약속인 것이다. 특별히 과거의 전쟁과 식민통치에 대한 오늘의 옹호는 미래의 행동을 위한 정신적 예비준비일 수 있어 더 용납될 수 없다.

동아시아 인민들은 왜곡에 기초해 역사전쟁을 감행하는 일본에게 양심과 양보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다만 문명국가의 최저 행동규범이라도 준수해달라는 것이다. 지속적인 사과와 참회, 독-불 및 독-폴란드 교과서 합의, 그리고 오데르 나이제 동쪽 영토의 포기를 통해 유럽인의 마음을 얻어 통일과 유럽통합, 유럽평화로 나아갔던 독일의 국량을 일본에게 기대할 수는 없다. 오늘의 일본에게 정녕 필요한 일은 미래의 후손들이 더 이상 선조들의 악행으로 인해 조롱받지 않도록 양식을 회복하는 것이다. ‘1등 경제와 3류 역사인식’, ‘1등 기술과 3류 도덕’ 국가라는 지금의 모습은 결국 아시아의 친구들을 떠나게 할 것이다. 아시아와 적대하고 구미로 달려가 전란으로 치달은 19~20세기의 탈아입구(脫亞入歐)가 아니라 아시아 및 구미와 두루 친한, 평화를 위한 21세기 입아입구(入亞入歐)의 지혜를 기대한다.

21세기 ‘입아입국’ 지혜 짜내야 독일의 바이체커 대통령은 종전 40주년을 맞아 1985년 “과거에 대해 눈을 감는 자는 현실을 볼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과거에 눈을 감은 일본은 현실은 물론 미래도 보지 못하고 있다. 진실의 인정은 화해의 최소 요건이 된다. 철학의 이론을 빌면 화해에는 ‘엷은 화해’와 ‘두터운 화해’ 두 가지가 존재한다. 전자는 혀끝에 기초한 화해라서 과거의 갈등은 언제든 재생된다. 후자는 내면의 반성에 바탕해 과거를 딛고 함께 미래로 갈 수 있게 해준다. 한일 우정의 해인 올해 우리는 일본에서 진실의 인정, 왜곡의 교정, 반성의 첫 걸음이 시작되기를 기대한다. 그러면 한국과 아시아 인민들은 ‘두터운 화해’의 손길을 내밀기 위해 먼저 달려갈 것이다.

박명림/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고립 자초하는 ‘주류 일본인’ 일본 시마네현의 ‘다케시마(독도의 일본 이름)의 날’ 조례 제정을 계기로 한국에서 불붙은 반일운동은 최근의 양호한 한-일 관계를 단번에 역전시켰다. 이 문제는 결코 일시적 반일운동으로 멈추지 않을 것이다. 문제의 뿌리는 한국 쪽이 아니라 오로지 일본 쪽에 있기 때문이다.


우선 옆에 있는 <대일본백과사전>(쇼가쿠칸 발행)의 ‘다케시마 문제’라는 항목을 간단히 인용한다. “한국에선 15세기 <동국여지승람> 이후 우산도라는 이름으로 무릉도(울릉도)와 함께 강원도 울진현에 소속시켜 영토로 인식해 왔다. 일본에서도 에도 시대에 어민들에 의해 그 존재가 알려지게 됐지만 자국령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포츠담 선언에 바탕한 연합군의 지령은 독도를 일본 영토로 인정하지 않았고, 한국 정부는 당연히 영유권을 행사했다. 일본 정부는 여전히 양보하지 않고 1965년 한-일 협정에서 미해결의 문제로 넘겼다. 이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는 일본인의 국제주의를 묻는 가장 엄중한 시금석이다.” 극히 ‘보통인’ 백과사전의 인용을 보더라도 독도가 역사적으로 한국령이라는 점이 당연하다. 지도상의 거리를 재봐도 한국의 울릉도 쪽이 가깝다.

한국 반일운동 원인은 일본 자신 시마네현은 왜 이번과 같은 일을 벌였을까? 이 글을 쓰는 것을 계기로 시마네현 지사에 질문서를 보냈다. 독도 문제 그 자체에 대해 나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주간 금요일> 4월1일호에 서울 주재 저널리스트 아오키 오사무가 참으로 적절한 해설을 썼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나의 견해를 밝힐까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고음을 무시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라는 그의 글에는 “한국민은 이번 사태를, 100년 전 시마네현 고시로 독도를 일본에 편입시킨 것이 식민지배의 단서가 됐다는 점의 연장선에서 보고 있다”고 한국 쪽이 항의한 내용이 나온다.

최근 일본의 우경화는 지리적으로, 역사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인 한국에 강한 우려를 안겨주고 있다. 헌법 개악 움직임, 자위대의 해외파병,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침략의 역사를 없애려는 교과서….

이런 경향에 대해 노 대통령은 이미 몇차례나 경고음을 보냈다. 지난 2월25일의 취임 2주년 연설에서 일본과 독일을 비교하고, 두 나라의 차이는 주변국의 신뢰의 차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나도 독일을 취재하고 르포기사를 쓴 적이 있지만, 2차대전 때 나치 독일이 저지른 침략에 대해 전후 독일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반성했는지 일본과 비교하면 참으로 ‘하늘과 땅’ 차이다. 친구인 독일 연구자의 표현에 따르면, 그래도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점수를 매기면 독일은 100점 만점에 50점 정도라고 한다. 일본은 2~3점에 지나지 않는다.

일 전후반성 100점 만점에 2∼3점 이런 일본과 일본인은 어떤 존재인가? 에이(A)급 전범 용의자 기시 노부스케를 전후에 아무렇지도 않게 총리로 뽑았다. 지금 총리는 전후의 가장 우익인 고이즈미다. 수도 도쿄에는 “(일-한 병합은) 그들(조선인)의 총의”라는 폭언을 내뱉은 ‘망상적 자위사관에 빠진 저질 정치가’ 이시하라 신타로가 지사로 있다. 최대의 문제는 고이즈미와 이시하라 자체에 있는 게 아니다. 이런 사람들을 뽑고 그대로 두는 낮은 수준의 ‘주류 일본인’에게 있다.

아오키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요구되는 것은 눈앞의 사태 진정이나 개선책이 아니다. 의문시되는 것은 일본이라는 나라의 모습이다. 숙원인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위해 미국에 꼬리를 흔들어 지지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이웃나라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면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대로 ‘안보리 상임국’ 웃음거리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도 바로 일본인이라는 무지하면서도 거만한 민족이다. 물론 일본인 100%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며, 훌륭한 일본인도 있지만 주류 일본인은 늘 이렇다. 이런 주류가 과연 바뀔 수 있을 것인가. 가장 소중한 이웃인 한국의 신뢰를 받을 때가 올 것인가. 이런 물음에 비관적인 두가지 요소를 지적하고자 한다.

먼저 일본 역사에는 혁명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메이지 유신 등은 물론 다르다. 혁명의 맹아나 좌절당한 봉기는 있었지만 폭력·비폭력을 불문하고 성공한 혁명은 없었다. 세계의 주요국 가운데 혁명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나라는 극히 드물다.


다음으로 최근 과학논문에 일본인 유전자에 관한 연구가 실렸는데, 약 70%가 ‘소극성’을 나타냈다. 일본인은 개인의 의지에 바탕한 행동변화는 어렵지만, 주위의 많은 사람이 행동하면 줄을 서는 ‘집단의존증’으로 쉽게 행동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미국인 유전자의 소극성은 약 20%에 지나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일본이 동북아에서 고립될 것”이라는 주한 일본대사관 관계자의 말은 고이즈미와 이시하라야말로 일본을 몰락시키는 장본인이란 얘기일 것이다.

혼다 가쓰이치/<주간 금요일> 편집위원(전 <아사히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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