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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한일관계의 국제정치

일본의 소프트파워 딜레마
미래전략연구원의 '지구촌, 분석과 전망' <6> 한일관계의 국제정치
등록일자 : 2005년 03 월 31 일 (목) 09 : 17   
 

  1. 한일관계의 미래에 꽂힌 과거의 칼
  
  한일관계의 특징을 가장 잘 묘사한 표현 중의 하나는 아마도 “가깝고도 먼 나라”일 것이다. 이 표현은 지리적으로 “가깝지만” 심정적으로는 “먼”나라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실제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일관계가 “가깝고도 가까워지는” 관계로 변하고 있었다. 정부간 관계를 보면, 한국정부는 한일 관계에 있어서 과거사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곤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줄곧 미래지향적인 방향으로 양국관계를 설정하는 기조를 유지해 왔다. 특히 김대중 정부 때의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은 양국관계에 있어서 과거와 미래 사이의 균형을 미래의 방향으로 이동시키는 결정적인 선언이었다고 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도 얼마 전까지 대일 정책에 있어서 과거에 대한 문제제기를 자제하고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을 정책기조로 삼았다. 한편 민간 수준에서는 한일간의 경제교류는 말할 것도 없고, 교육ㆍ관광ㆍ문화의 교류가 지속적으로 심화되어 최근에는 “욘사마 현상”과 같이 일본에서의 한류붐까지 조성되는 사이로 한일 관계가 가까워졌었다.
  
  이러한 한일관계가 결정적으로 주한 일본대사의 독도발언, 그리고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 제정, 그리고 극우세력의 극우적 교과서 채택율 상승 노력 등으로 다시 가깝고도 먼 나라로 되돌아가고 있다. 물론 이러한 사건들은 기폭제의 역할을 하였고 그 이전부터 일본 측에서 수상의 야스쿠니 신사 방문, 자위대의 무력사용을 허용하는 방향으로의 평화헌법 개정노력, 미일동맹의 강화를 통한 지역에서의 군사적 역할 확대,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식민지 과거사에 대한 망언, 천황, 기미가요 등에 관한 국수주의적인 발언 등 한국과 주변국을 자극해 왔던 것이 배경으로 쌓여 있었다. 이번 한일관계의 냉각과정을 냉정하게--항상 양국관계를 염려하는 사람들이 쓰는 표현이 바로 “냉정하게”라는 표현인데--추적해 보면 그 과정은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위해 노력한 양국의 사람들에 대해 일본의 보수세력이 꾸준히, 위압적으로 등을 돌리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과거사 관련 양심세력의 노력은 무라야마 수상의 비교적 진솔한 사죄 발언 등을 포함하여 매우 존경할 만한 것이었고, 한국 정부도 미래지향적으로 항상 냉정함을 잃지 않았는데, 일본의 보수세력은 자국의 수상들이 발언한 사죄내용을 스스로 부정하는 비민주성과 이중성을 보이면서 양국관계의 미래에 과거라는 칼을 지속적으로 꽂고 있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이는 누구의 잘못일까? 이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국제정치에서 이른바 인류 보편적 규범을 포함한 소위 관념이 국가간의 관계에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이론적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2. 여론의 수수께끼: 권력자들이 권력을 갖고 있는데 왜 여론에 신경을 쓸까?
  
  일반적으로 현실주의자들은 국제정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힘”이라고 주장한다.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맞는 말이다. 그런데 힘을 이해하는 것은 그러한 원론적인 주장과 달리 매우 복잡하고 어렵다. 힘은 그 생겨나는 원천이 매우 다기하고, 또 힘을 어떻게 사용하고, 견제하느냐에 관해서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이론들이 존재한다. 힘의 원천이 군사력, 경제력, 영토와 인구의 크기 등일 수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제도를 어떻게 잘 사용하고, 국제여론과 규범을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에도 달려 있다. 그리고 힘의 사용과 견제도 세력균형, 억제, 개입, 봉쇄, 추종 등 다양한 방법 등이 있다. 매우 천박한 현실주의자라면 그냥 단순하게 국제정치에서는 누가 강한가를 아는 것이 중요하고, 또 강한 국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 위험한 국제사회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단순한 논리를 끝까지 따라가다 보면 약한 국가는 종국적으로 강한 국가가 병합하고자 해도 그냥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강한 국가에 붙는 수밖에 없다. 즉 생존을 위해서 강한 국가에게 자국을 버리는 모순적인 결과가 생긴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그러한 행동을 한 사람들이 소위 매국노들이다. 그래서 현실주의자임을 자처하는 한국의 일각의 전문가들이 일본의 한국의 식민지 지배를 상당히 흔쾌히 받아들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미화하기까지 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힘을 강조하는 현실주의가 가장 간과하기 쉬운 것이 소위 말하는 소프트 파워(soft power), 즉 국제정치에서 상대 국가를 끌어당기는 관념의 힘이다. 관념의 힘도 말 그대로 힘인데, 이 힘은 근육을 사용하는 힘(muscular power)이기보다는 머리와 가슴에 호소하는 힘이다. 그리고 작동 기제는 상대방을 향하여 밀어내는 방향으로 작동하기보다는 자신을 향하여 상대방을 끌어들이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다시 말하자면 내가 무서워서 상대방을 다른 쪽으로 몰고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서, 또는 나를 경외해서 상대방이 우리 쪽으로 따라오게 하는 힘이다. 앞에서 나가면 뒤에서 쫒아오는 힘이다. 영어로는 Leadership과 Followership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힘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엄청나게 중요하다. 특히 지도자나 지도자급의 국가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왜냐하면 나의 끌어당기는 힘이 없다면 상대방은 나보다 더욱 끌어당기는 힘이 강한 쪽으로 떨어져 나가거나 아니면 내부에서 저항적 투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끌어당기는 힘이 없을 때 지도력이 발휘되지 못하는 것이다. 안정적으로 지속적으로 통치를 못하게 되는 것이다. 곧 지도력의 위기에 봉착한다. 지도자나 지도국이 무조건 힘으로 강제하여 원하는 방향으로 밀고만 나간다면 여기에 대항하는 대항 연합이 생겨 상당한 저항과 힘의 균형 노력이 생길 것이고, 종국적으로는 지도자나 지도국을 무너뜨릴 수 있다. 국내정치에서 압제정권에 대항한 민주화투쟁이 바로 그러한 과정이다.
  
  이러한 끌어당기는 힘은 다양한 원천을 가지고 있는데, 이 글에서 그 원천을 자세히 논하는 것은 지면과 시간의 제약상 자제하기로 하고 (다른 글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가장 중요한 작동기제 중의 하나가 여론(public opinion)이라는 것에서 출발하고자 한다. 국내에서의 여론이나 국제사회에서의 여론 모두가 소프트 파워가 작동하는 작동기제인데, 권력을 이미 소유한 국가의 지도자들이 선거 때가 아닌 평상시에도 여론에 신경을 쓰는 이유가 바로 여론에 반하지 않는 정책을 써서 국민들을 묶어두면서 안정적 통치를 하기 위해서이다. 여론에 따라 각료의 임면이 좌우되는 우리의 현실도 조금만 깊이 보면 지도자가 안정적인 통치를 위한 소프트 파워를 잃고 싶지 않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지도자들은 상대방을 안정적으로 통치하기 위해서 여론을 움직이는 soft power가 필요한 것이다.
  
  3. 일본의 소프트 파워 딜레마(soft power dilemma)
  
  범세계적인 차원에서 통치하고자 하는 국가는 패권국가 혹은 제국이며, 지역적인 차원에서 통치하고자 하는 국가는 지역 패권국가 혹은 지역적 범위의 제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역할과 지위를 원하는 국가들은 대상 국가를 자신에게 지속적으로 끌어당길 수 있는 소프트 파워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대상국들이 다른 쪽으로 떨어져 나가거나 저항과 반란을 꾀할 수 있다. 그런데 제국을 꿈꾸는 국가들은 소위 필자가 개념화한 소프트 파워의 딜레마(soft power dilemma)를 갖게 된다. 그 딜레마는 무엇인고 하니, 제국의 지도자가 국내적으로 국민들을 끌어당기는 소프트 파워가 국제적으로 타국을 밀어내는 힘으로 작동하는 것을 말한다. 민족주의가 가장 전형적인 예인데 민족주의를 통하여 국내에서 국민을 한곳으로 모으게 되면 그 민족주의가 타국에 위협으로 작동하여 타국을 밀어내게 되는 것이다. 현재 일본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일본이 민족주의적으로 과거를 합리화, 정당화, 영웅화하면서 국민들을 끌어당기지만 이것이 제국주의적 기억을 떠올리게 하여 주변국에 위협을 주거나 자극하여 주변국이 떨어져 나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세계 2위의 경제력에 걸맞게 미일동맹을 통하여 지역적 지도국가가 되기를 원한다. 왜 일본은 반성 없는 민족주의가 지역국가에 위협이 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까? 아니면 왜 신경쓰지 않을까? 왜 일본은 이러한 소프트 파워의 딜레마를 모르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첫 번째는 일본이 소프트 파워의 딜레마를 극복하는 방법에 관하여 깊게 고민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두 번째는 첫 번째와 관련하여 일본이 그러한 딜레마를 극복하도록 미국을 포함한 주변 국가들이 도와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프트 파워의 딜레마를 극복하는 방법은 국민과 주변국을 동시에 끌어당기는 힘을 찾는 것인데 그러한 힘은 국수적인 민족주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공감하고 따르는 인류보편적 가치(universal value)에서 나온다. 자유, 평등, 박애, 민주주의, 평화, 인권과 같은 가치들이 대표적인 인류보편적 가치이다. 세계의 제국의 위치로 향하는 미국이 패권을 오래 유지하는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은 민주주의와 인권과 같은 인류보편적인 가치를 외교의 기조로 하는 강대국이며 그래서 상대방이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 그리고 인류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미국과 같은 강대국이 존재한다는 것은 주변국의 입장에서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반면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국수적인 해석과 정당화는 바로 이러한 인류보편적 가치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어서 주변국의 반발을 사게 되므로 일본의 소프트 파워에 관한 학점은 낙제점이다.
  
  한편 한국과 미국을 포함한 주변국도 과거사의 문제를 무조건 미래지향적 관계라는 목표 하에 덮어버리고 넘어간 것이 일본의 자만심과 주변국에 대한 무시에 기여했다는 책임을 져야 한다. 주변국은 과거사의 문제를 인권, 자유, 평등, 민주주의라는 인류보편적인 기준에서 다루면서 지속적으로 일본의 말과 행위를 국제사회의 여론의 심판의 대상에 두었어야 했다. 이러한 과정이 사라지면서 일본의 보수적 지도자들은 국가관계는 군사력과 경제력과 같은 힘만 있으면 다 따라오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을 갖게 되었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다. 만일 독일에서 히틀러 무덤에 수상이 참배를 하고, 나찌를 옹호하는 교과서와 신문사설이 나오면 주변국과 국제사회의 여론이 가만히 있겠는가? 독일과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유지하기 위하여 주변국이 냉정하고 차분하게만 대응할 것인가? 독일의 그러한 행위는 지속적으로, 그리고 강하게 국제사회 여론의 심판의 대상이 되어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강한 여론과 관념의 힘이 국제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억지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4. 한국의 대일정책: 인류보편적 가치에 기초한 강한 원칙을 천명하고, 일본의 말과 행위를 지속적으로 국제사회 여론의 심판대상에 올리는 것
  
  국제사회에서 인류보편적 가치는 국제사회가 평화롭게, 자유롭게, 비교적 평등하게 하나되어 같이 공존할 수 있도록 하는 소프트 파워이다. 이러한 소프트 파워가 작동하는 기제는 인류보편적 가치에 어긋나는 발언과 행위에 지속적으로 비판을 제기하고 저항하는 국제사회의 여론이다. 따라서 국가관계는 미래지향적 관계를 추구하기 위하여 무조건적으로 문제를 덮고 넘어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문제는 곧 터지게 되어 있으며, 또 상대국이 잘못 가고 있는 것에 대하여 비판을 하지 않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국은 이러한 면에서 일본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잘못된 정책을 펴 왔다. 한국 스스로가 인류보편적 가치를 주장하기에 너무 결함이 많아서 그랬던 점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바뀔 때가 되었다. 한국 내부의 민주화가 진전되었기 때문에 밖으로도 인류보편적 가치의 잣대를 사용하여 한국과 타국 모두 국제여론의 심판 대상에 올려야 한다. 한국의 대일 정책의 방향은 분명하다. 식민지 제국주의 시대에 일어났던 일본의 인류보편적 가치의 위배가 다시 일어나지 못하도록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비가역적인 사죄와 반성이라는 원칙을 천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이 그러한 인류보편적인 가치를 위배하는지를 계속 검증하고, 확인하고, 투명하게 국제사회에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게 강하게 나갔을 때 일본이 꿈쩍도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카드는 무엇인가? 외교의 카드를 너무나 단순하게 생각하여 일본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수위를 높여가면서 대응하는 카드만을 생각하는데 꼭 그럴 필요는 없다. 우리는 일본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인류보편적 가치에 위배되는 일본의 말과 행위를 지속적으로 국제사회에 투명하게 공개하고 심판받게 하면 되는 것이다. 주일대사를 소환할 필요도 없고, 모든 일상적인 관계를 지속하되, 일본이 스스로 국제사회에서 계속 신뢰를 잃게 만들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소프트 파워를 갖고자 하는 일본에게도 교훈을 주는 것이며, 또 평화와 민주주의를 원하는 일본국민과 주변국의 국민에게도 모두 도움이 되는 것이다.
  
  한국의 숙제는 스스로도 국제사회의 심판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에 걸맞는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에 대하여 강하게 나가면 나간 만큼 한국 자신에게도 부담이 된다. 그렇지만 부담이 된다고 후퇴할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를 인류보편적 가치에 부합하는 선진적 사회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인권문제와 자유, 평등, 평화의 문제 등에서 당당하고 떳떳해져야 할 것이다. 현실주의자들이 말하는 힘의 논리만 따라가다 보면 종국에는 힘센 국가의 힘에 모든 것을 빼앗길지도 모른다. 독도도 뺏길지 모른다.

이근/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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