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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조선 저녁문화

http://blog.jinbo.net/hi

 

편집 예술

신문을 인터넷 판으로 보는 것과 지면으로 보는 것의 가장 큰 차이는 기사의 배열에 따라 느끼는 감도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왠만한 기사는 인터넷으로 훑어보더라도 종이신문을 손에서 놓기가 어렵다. 같은 기사가 말투와 단어의 차이로 전혀 다른 기사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 또한 똑같은 내용이라도 지면의 배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전혀 기사와는 별개의 느낌을 가지게 한다.

 

편집의 묘미에서 오는 이런 차이는 편집기술이 뛰어난 신문일수록 크게 느끼게 된다. 지면배치의 편집술을 예술의 경지로까지 승화시킨 신문은 당연히 조선일보다. 조선일보의 카피와 지면배치, 이건 다른 신문들이 따라올 수 없는 독보적인 수준이다. 흔히 조선일보의 일가친척으로 이야기되는 중앙일보나 동아일보조차도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편집술에 있어서만큼은 조선일보의 하수임에 분명하다.

 

조선일보편집술의 특징은 지면의 배치를 매우 자연스럽게 한다는 점이다. 기사의 순서를 정리함으로써 자신들의 의사를 밝히는 한편, 그러한 의사표현이 극단적인 형태로 누구나 그 의도를 뻔히 꿰뚫어볼 수는 없도록 하는 것이 또 이 조선일보의 편집술이다. 그래서 이러한 편집술을 쫓아가려는 다른 신문사들의 노력이 때로는 매우 유치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비교되기도 한다.

 

짝퉁임에도 불구하고 프로페셔널을 모방하려던 신문지 한 장이 또 기가막힌 편집술을 보였다. 역시 "아침조선 저녁문화"라는 꼴통 양대산맥의 한 축 문화일보다. 이 문화일보, 5월 17일자 신문에서 편집의 예술을 보여준다. 신문 6면과 7면은 신문을 펼칠 때 하나의 면으로 나타난다. 문화일보 5월 17일자 6면과 7면을 보다보면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 보인다.

 

왼쪽, 즉 6면에는 "Future 2030"이라는 주제로 2030년까지 로봇이 혈관을 청소하고 연료전지차가 돌아다니는 등 엄청나게 발전된 형태의 기술문명이 도래할 것을 예상하고 있다. 한 면 전체를 통틀어 SF적 환타지를 묘사하는데, 기술발전에 대한 엄청난 기대와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소제목만 훑어보면, '미생물 농약 대대적 보급, 대체장기용 동물 개량', '가상현실 게임 실용화, 유리형태 디스플레이', '국산우주선 타고 여행, 국제공동 달기지 개발', '접이식 디스플레이 출현, 생분해성 플라스틱도', '급성바이러스퇴치, 생체시계 이용 노화방지'... 헉헉헉... 숨이차서 더 이상 자판 못두드리겠다. 어쨌든 환타스틱하지 않은가? 영생불멸의 시대가 오고 있다뉘...

 

그런데 7면을 들여다보자. 맨 윗면에 두 장의 사진이 나란히 배열되어 있다. 왼쪽 사진은 고개숙이고 있는 한국노총 간부들의 모습, 오른쪽에는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회의를 하고 있는 기업임원들의 모습... 기획기사 제목 자체가 요염하다. "'고급차'타는 노조간부 '옆길'로"라는 대제목 아래 "경영진 못잖은 파워... 인사 등에 막강한 입김, 수십억대 주무르며 채용비리 등 '몸통'으로"라는 소제목이 붙어있다.

 

이 기사 안에는 그동안 소위 '귀족지도부'들이 저지른 온갖 파렴치한 행위가 일일이 열거되어 있다. 게다가 메인기사 옆에 박스기사로 '대기업 전 노조부위원장의 고백'까지 싣고 있다. 거의 "선데이서울" 고백시리즈같은 기사제목 붙여놓고 있는데, 그 밑에다가는 검찰이 진행하고 있는 노조비리 수사에 대해 소개하면서 굵은 제목으로 "노조비리 수사확대"라고 써놓았다.

 

물론 문화일보가 명명한 바 일부 '귀족지도부'로 인해 노동운동 전체가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는 거 인정한다. 그리고 그동안 노동운동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도덕성을 훼손하는 치명적 오류를 저지르는 자들에 대한 자정이 부족했다는 거 그거 인정한다. 그런데, 이 기사 읽어보면 마치 대한민국에서 노조활동 하는 모든 사람들이 각종비리에 직간접적으로 다 껴있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교묘한 마타도어.

 

기사에 대한 소개는 이쯤 해두고, 이 기사들이 7면에 실려있었음에 다시 주목하자. 6면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발전상을 이루어버린 2030년의 상황을 미리 보여주고 있다. 난리가 아니다. 이런 세상에서 한 번쯤 살아보고픈 욕망이 불끈 솟게 만든다. 그러다가 7면으로 눈을 옮겨보자. 2030년 도래할 미래에 걸림돌이 되는 인간들이 거기 있다. 이 '귀족지도부'들과 이들을 지도부로 모신 노조들. 얘네들이 뭔가 사고칠 것 같다. 아니 이미 사고를 치고 있다. 그리하여 6면의 2030년이 얘네들로 인해 왠지 불길해진다.

 

그리고 이 불길함의 근원지가 어딘지 결국 밝히고야 만다. 30면 하단 "오후여담" 코너는 "보지 못하는 '꽃'"이라는 제목으로 신비한 논리를 펼치고 있다. 어떤 교수가 이런 시를 읊었단다. "내려올 때 보았네/올라갈 때는 보지 못한 그 꽃". 그리곤 그 속내를 유감없이 드러내버린다. "경쟁은 개인은 물론 사회발전의 원동력이다. 모든 분야에서 정정당당한 경쟁이 필요하고 그 결과 역시 정당한 평가를 받는 것이 순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빗나간 평등주의에 눈이 가려져 경쟁을 꽃으로 보지 못하고 몹쓸 병균쯤으로 여기는 행태와 풍조가 정부정책과 우리 사회 일각에서 드물지 않게 나타난다. ... 기회균등이 아니라 결과의 균등을 요구하는 일부 시민운동단체 등도 그런 사례다. 아름다운 꽃을 꽃으로 보지 못하는 사회의 미래가 밝을 수 있겠는가."

 

이거다. 자본의 무한경쟁은 2030년의 꿈을 현실로 만든다. 그런데 그 비전에 장애물이 되는 것이 바로 노조, 시민운동단체 등 꽃을 꽃으로 보지 못하는 미물들이다. 요거 처단을 하고 정리를 해야 2030년의 꿈이 우리 앞에 도래한다. 그러니 돈 많은 분들 열심히 돈지랄 하시는 거 꼬운 눈으로 째려보지 마라... 장하다, 김종호 논설위원. 곡학아세, 아전인수도 이정도면 한 일가(一家)를 이룬 수준 되겠다.

 

그런데 그런 결론을 유도하기에는 문화일보 편집의도가 너무 뻔하게 드러난다. 즉, 매끄럽지가 않다는 거다. 잔머리는 굴리는 놈만 알고 딴 놈은 몰라야 효과가 있는 건데, 다른 놈들이 그놈 잔머리 굴리는 거 다 알고 있으면 잔머리 백날 굴려봐야 뇌만 익는다. 문화일보 편집하시는 분들, 차라리 조선일보 가셔서 좀 더 배우기 바란다. 하긴 뭐 이젠 조선일보의 편집술도 백일하에 그 노하우가 드러난 형편이라 배워봐야 남는 것도 없겠지만.

 

"공갈꽃"이라는 꽃이 있다. 쬐끄만게 참 이쁘게 생겼다. 그런데 코를 들이 밀고 냄세를 맡으면 백이면 백 기절을 하고 만다. 홍어삭히는 냄세가 나기 때문이다. 칠팔월 땡볕에 서있는 이동식 화장실 들어갔을 때 느끼는 현기증, 그런 거 느끼게 된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가속화하면서 도태된 자들에게 죽음을 강요하는 무한경쟁의 논리, 이게 바로 공갈꽃이다. 그 결과가 겉으로는 아름다워보일지 모르나 그 속은 썩고 썩어 사람들을 기절시키는 그런 꽃. 김종호 논설위원, 함부로 꽃 같다 붙이면서 곡학아세 하지 말지어다. 머리 나쁜 티를 꼭 그렇게 내야 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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