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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길과 유럽사민주의

 '제3의 길'과 유럽사민주의의 변천:

독일사민당, 영국노동당, 프랑스사회당, 이탈리아좌파민주당의 비교

 

정병기

2003.04.25 국제정치학회 춘계학술대회, 2003.05.24 맑스코뮤날레 발표논문

맑스코뮤날레 조직위원회 편. 2003. 『Marx Communnale: 지구화 시대 맑스의 현재성』, 제2권. 문화과학사. pp. 50-69 수록l

 

차  례 

1. 서론

2. 현대적 국민정당화와 '제3의 길'

1) 노동자 계급정당의 창당과 이념 및 목적

2) 현대적 국민정당으로의 변천

3. '제3의 길'의 이념과 정책

4. 결론

  

1. 서론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점에는 언제나 양 극단이 존재했던 것처럼 '제3의 길'을 둘러싼 논쟁도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따라서 지구화 시대로 표현되는 오늘날의 세계질서에서도 또 다른 '제3의 길' 논쟁이 일어난 것이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제3의 길' 논쟁도 시대와 체제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아 시대적 배경과 체제의 변화에 따라 그 모습과 내용을 달리해 왔다. 특히 자본주의 체제 등장 이후, 과거의 제3의 길 논쟁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또는 맑스주의)간 '체제(system)' 대안과 관련된 것이었다면, 오늘날의 논쟁은 자본주의 질서 내에서의 '최소국가'와 '복지국가'간 '국가 개입 대안'을 둘러싸고 전개되고 있다.1)

물론 각 국이 취하는 '제3의 길'의 구체적인 주장과 내용이 동일하지는 않다. 영국과 독일의 '제3의 길'이 기든스(A. Giddens)의 논리에 입각하여 중간층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적 정치의 한 지류로 빠져들어 간 반면,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길은 현대의 '전통 사민주의'(복지국가와 케인즈주의) 노선에 중간층 강조 전략을 결합하려는 시도였다. 이러한 차이는 프랑스 사회당이 영국 노동당과 독일 사민당을 비판하며 "우리는 자본주의에 대해 비판적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대응한 것에서 잘 드러난다.2)

'제3의 길'에 대한 평가도 상이하다. 퍼거(W. A. Perger)가 현재의 '제3의 길'을 '공산당 선언 이후 정치적 이념 시장에서 일어난 최대의 성공적 거사'로 칭송한3) 것과는 달리, 독일 사민당을 비판한 초이너(B. Zeuner)는 '노동운동의 전통으로부터 완전히 단절해 간 길'4)이라고 혹평하였다.

이 글은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의 사민주의 정당들5)의 강령상 이념과 정책을 중심으로 위와 같은 역사적 변천을 추적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계급정당으로서의 창당 당시로부터 최근의 '제3의 길'을 선택하기까지 네 정당들의 이념과 정책 및 변화를 몇 가지 주요 기점으로 나누어 정리하여 그 계기와 내용을 비교 분석하면서 최종적으로 '제3의 길'의 본질적 내용을 천착하고 비판할 것이다.

사민주의 정당들은 계급정당으로부터 출발하여 맑스주의 및 자본주의비판과 오랫동안 관련되어 왔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정당 일반의 변화와도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네 정당들의 비교 분석은 맑스주의 및 자본주의비판과의 관련성 속에서 계급정당의 국민정당6)화 과정에 맞추어 그 내용을 밝히고, 또 국민정당화 이후의 과정은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고찰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책에 대한 고찰은 지면 관계상 일반적 경향에 한정해 비교할 수밖에 없음을 미리 밝혀 둔다.7)

  

2. 현대적 국민정당화와 '제3의 길'

 4개국 좌파정당들의 변화과정을 단계별로 비교하면 다음 표와 같고 이를 다시 그림으로 표시하면 아래 그림과 같다.

창당이념과 노선변화 과정

 

독일 사민당

영국 노동당

프랑스 사회당

이탈리아 좌파민주당

창당 과정

·1875, 사회주의노동자당(SAP): 라쌀의 전독일노동자연맹(ADAV)과 맑스주의적 사민주의노동자당(SDAP)이 통합

·1891, 사민당으로 개명

·1900, 노동대표위원회: 영국노총(TUC) 주도에 독립노동당, 사회민주동맹, 페이비언 협회가 참여

·1906, 노동당으로 개명

·1905, '인터내셔널 프랑스지회(SFIO): 맑스·블랑키즘적 사회당(PSdF)과 개혁주의적 사회당(PSF)이 통합

·1969∼74, 사회당으로 개명 후 사회주의자들 통합

·1921, 이탈리아공산당(PCI): 맑스의 혁명적 사회주의

·곧 그람시의 '진지전' 개념 수용

창당 이념과

목적

라쌀주의(국가사회주의)와 맑스주의(혁명적 사회주의)의 절충(사회주의적 목표와 의회주의적 실천)

노동조합의 이익을 국회에서 대변

개혁적 사회주의와 블랑키즘 및 맑스주의의 병존

혁명적 사회주의에 입각하여 그람시의 진지전 전략 수용

주요

노선변화

과정

① 1891, 에어푸르트 강령으로 맑스주의 강화

② 1890년대∼1차대전(수정주의 논쟁), 맑스주의 포기와 라쌀주의 복귀; 공산주의자 분리

③ 1959, 고데스베르크 강령으로 '친근로자적' 국민정당화

① 1918, 생산·분배·교환수단의 사회화와 산업민주주의(당헌 4조)

② 1950년대, 수정주의(산업민주주의 포기)와 케인즈주의로 국민정당화

③ 1970년대 후반, 케인즈주의까지 포기하는 신자유주의적 경향 노정

① 1920, 혁명적 사회주의자 분리로 개혁주의적 사회주의로 잔존

② 1969∼74, 급진공화파들까지 통합하여 당내 정파 재편, 1970년대는 좌파와 중도파가 주류

③ 1978, 공산당과 결별, 우파세력 강화, 좌파도 우선회

① 1944, 톨리아티의 살레르모 대중정당화 선언

② 1956, 이탈리아식 사회주의 선언(스탈린 노선 비판 시작)

③ 1977∼79, '역사적 타협'으로 '유로코뮤니즘' 본격화

최종 노선 변화와 '제3의 길'

·1989, 베를린 강령으로 현대화 노선 강화

·1998, '신중도' 노선 등장, 녹색당과 연정구성

·1999, 블레어-쉬뢰더 성명으로 현대적 경제정당화

·1994, 블레어의 '신노동당' 노선 등장

·1995, 당헌4조 폐지, 현대적 경제정당화

·1997, 노동당 집권

·1991, 전통 사회주의 이념 포기하고 다원주의화(국민정당화)

·1997, '쇄신좌파' 노선 등장, 공산당 및 녹색당과 연정구성

·1991, 1차 당명개정(PDS)으로 공산주의와 결별

·1996, 중도정당들과 연정구성

·1998, 2차 당명개정(DS)으로 유럽사회주의 (유럽사민주의)공식화

 1) 노동자 계급정당의 창당과 이념 및 목적

 네 나라중 사민주의 계급정당이 가장 먼저 등장한 국가는 독일이다. 라쌀주의적 전독일노동자연맹(ADAV)과 맑스주의적 사민주의노동자당(SDAP)이 합당하여 사회주의노동자당(SAP)이 창당된 것이 1875년이었다. 그후 1891년 에어푸르트(Erfurt) 전당대회를 통해 독일 사민주의 정당은 오늘날의 이름인 사민당(SPD)으로 개명하였다. 영국과 프랑스에서 사민주의 정당이 창당된 것은 독일보다 약 25∼30년 뒤늦은 1900년과 1905년이었다. 영국과 프랑스의 사민주의 정당들도 일정한 기간이 지난 후 현재의 당명을 갖게 되었다. 영국 노동당과 사민당은 창당한 지 6년 혹은 16년 뒤에 개명을 했지만, 프랑스 사회당은 오랜 통합과 분열의 역사를 거쳐 창당 후 64년이 지난 1969년에야 오늘날의 명칭을 갖게 되었다. 한편, 이탈리아 공산당은 당시 사회당으로부터 분리해 나온 그람시(A. Gramsci) 등에 의해 1921년에 설립되어 일정한 노선변화를 겪은 후 1991년에 좌파민주당(PDS)으로 개명하여 점차 사민주의화되어 왔다.8)

창당 당시의 이념과 목적도 창당 배경에 따라 상이하게 나타났다. 영국 노동당이 노동조합에 뿌리를 두고 있었던 것과 달리, 독일 사민당과 프랑스 사회당은 노조운동과는 별개로 독자적 노동자정치운동의 성과물로 탄생하였다. 물론 독일 사민당과 프랑스 사회당도 노동자계급정당이라는 속성에 따라 창당 이후 노조와의 관계가 긴밀해졌음은 당연하다. 이탈리아 공산당은 당명과 같이 맑스의 혁명적 사회주의(또는 과학적 사회주의)에 입각하여 창당된 후, 그람시의 전략적 발전에 따른 진지전을 도입하게 되었다. 노조와 정당의 관계에 있어서는 진지전에 의한 그람시적 설정이 양자의 변증법적 관계에 가장 충실한 형태라 할 수 있지만, 이후에는 점차 공산당의 지도를 강조하게 되면서 당에 대한 노조의 종속성이 생겨나기도 했다.9)

영국 노동당은 영국노총 TUC에 의해 '노동조합이 대표하는 노동자들의 이익을 의회에서 대변'하는 것을 목적으로 창당되었다. 노동당의 창당에는 물론 기존 노동자계급정당인 독립노동당과 맑스주의적 사회민주동맹10), 그리고 사회주의적 지식인들의 모임인 페이비언 협회도 참여했다. 그러나 노동당내 조직구조와 의사결정구조에는 최근의 변화가 있기까지 단체당원제와 블록투표제에 의해 노조의 권한이 강력하게 보장되어 왔다.

프랑스 사회당과 독일 사민당의 창당에는 노조의 영향력이 작용하지 못한 반면, 이탈리아 공산당을 제외하면 맑스주의자들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컸다. 특히 독일 사민당에서 맑스주의자들의 역할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라쌀주의자들과 대등한 것이었다. 때문에 창당 이념은 맑스주의적 이념과 라쌀주의적 실천의 절충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내용적으로 면밀히 관찰하면, 강력적 이념에 있어서도 맑스주의적 혁명성이 제대로 표현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늘날 프랑스 사회당의 모태가 되는 사회주의 정당이 출현하게 된 것은 시기적으로 영국 노동당 창당과 비슷하지만, 출현 방식으로는 독일 사민당과 유사하게 기존 두 정당이 통합하는 형태였다. 혁명적 세력으로 분류되는 맑스주의자 쥘 게드(J. Guesde)와 블랑키스트 바이양(E. Vaillant)이 이끌던 '프랑스의 사회주의당(PSdF)'과, 라쌀주의와 유사하게 공화국을 통한 사회주의 건설을 주장하는 개혁주의적 사회주의자인 조레스(J. Jaurès)가 이끌던 '프랑스 사회주의당(PSF)'이 통합하여 탄생한 '인터내셔널 프랑스지회(SFIO)'가 그것이다. 그러나  PSdF 내에 두 계파가 존재함으로써 실질적으로 프랑스 사회당은 세 입장의 절충이었다고 할 수 있다.

 

2) 현대적 국민정당으로의 변천

 네 정당 모두 전반적인 우경화 현상을 보여 왔다. 그러나 창당한 지 약 20년이 지난 후 이탈리아를 제외한 세 나라의 좌파진영에서는 공통적으로 좌파들의 강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는 각 국의 특수한 정치경제적 배경과 창당이념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의회 진출을 통한 정치적 수단에 의해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킨다는 목표에 머물렀던 영국 노동당의 1차 노선 변화는 1918년 전당대회에서 당헌 4조의 채택에 의해 이루어졌다. 생산·분배·교환 수단의 사회화와 기업경영에서의 산업민주주의를 당의 강령적 목표로 삼게 된 것이다. 이후 사회화의 현실적 형태인 '국유화'가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인 복지와 평등을 보장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노동당의 최종적인 강령 목표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러한 급진적 노선 변화는 당시 영국 인민들의 의식변화를 일정하게 반영하고 있었다. 그에 따라 노동당은 약 5년 후인 1923년 191석을 얻어 자유당과 함께 연정을 구성하기도 했으며, 1929년에는 악화되는 경제 위기 속에서 제1당이 되는 데 성공했다.

노동당의 2차 주요 노선변화는 세 차례 총선에서 패배한 1950년대였다. 영국 자본주의의 황금기인 이 시기에는 케인즈식의 재정금융정책으로 소득증대와 완전고용 및 소득재분배를 이룩할 수 있다는 신념이 노동당의 지도부와 이론가들 사이에 팽배했었다. 그래서 독일 수정주의가 독일 자본의 번영기에 등장했던 것과 같이, 국유화나 계획화 및 산업민주주의는 더 이상 필요 없다는 수정주의와, 노동당은 더 이상 노동조합의 정당이 아니라 국민의 정당이어야 한다는 인식이 이 시기에 크게 대두했다.

세 번째 주요 노선변화는 케인즈주의적 신념까지 포기하는 1970년대 후반의 변화이다.  1973년 야당 시절의 노동당은 국민기업청(NEB) 설립을 통한 국유화를 내용으로 하는 사회주의적 정책 강령11)을 발표하는 등 일시적 좌선회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1976년 캘러한(J. Callaghan) 노동당정부는 IMF 구제금융을 전후해 임금 억제와 재정지출 삭감 등을 실시함으로써 처음으로 신자유주의적 경향으로 전환하였다.12)

노동당의 최종 노선변화는 1994년 블레어 당수의 취임으로 시작된 '신노동당' 노선의 등장과 함께 시작되었다. 신노동당 노선은 블레어가 '유일한 제3의 길(The Third Way)'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실제 내용은 대체로 보수당 정부의 신자유주의를 수용하고 있다. '계급정치'가 아닌 '국민정치'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 신노동당 노선은 케인즈주의에 입각한 전통사민주의 노선을 완전히 탈피하였다.13) 1970년대 후반의 신자유주의 경향 시작이 IMF 구제금융에 따른 외부적 강제에 의한 것이었다면, 1990년대 신노동당 노선의 신자유주의는 집권을 위한 자발적 선택이었다. 1995년 당헌 4조의 폐지는 이러한 노선변화에 따른 필연적인 수순이었다. 영국 노동당의 현대적 국민정당화는 독일 사민당과 같은 '현대적 경제정당화'에 다름 아니었다.

라쌀주의와 맑스주의의 동거로 시작된 독일 사민당의 1차 노선변화는 1891년 에어푸르트(Erfurt) 강령에서 나타났다. 독일 사민당은 창당 시기가 영국 노동당과 프랑스 사회당보다 20여년 앞섰던 것과 마찬가지로 1차 노선변화도 그만큼 빨랐다. 1차 노선변화의 시기는 사회주의자탄압법이 실패로 드러나고 경제침체에 따른 노동자 생활의 악화를 배경으로 맑스주의자들의 세력이 강화된 데에서 비롯되었다.

에어푸르트 강령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대한 대안과 혁명적 노동자운동이라는 투쟁목표를 제시하면서 노동자계급에 의한 정치권력의 장악과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의 폐지를 명확히 제기하였다. 물론 이 강령도 실천 강령에서는 라쌀주의를 그대로 답습했고,14) 이념 부분에서도 변형된 맑스주의15)로 현상했다는 지적이 있다.16) 그렇지만 사회주의노동자당의 고타(Gotha) 강령에 비해서는 분명 좌선회의 모습을 띤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곧 이어 시작되어 1차대전까지 이어지는 수정주의 논쟁을 계기로 독일 사민당은 의회주의적 계급정당의 길을 노정하게 된다. 수정주의 논쟁 이후의 사민당은 라쌀주의가 담보하고 있던 온건한 혁명성조차 상실해 간 것이다. 이는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탈당하게 되는 계기의 하나가 되기도 했다. 1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유럽 대륙의 혁명 열기가 사민당 내에서는 수정주의를 강화시킨 반면, 사회적으로는 공산주의자들의 세력을 강화하여 사민당과 결별하고 독자적 정당을 꾸리는 방향으로 작용한 것이다.17)

한편 1950년대 영국 노동당의 국민정당화 시작과 대비되는 독일 사민당의 변화는 같은 시기인 1959년 고데스베르크(Godesberg) 강령에서 나타났다. 이 강령에서 선언되고 1960년대 중후반 연정참가로 완성된 국민정당 노선은 근본적으로 계급관을 포기한 것으로서 자본주의 질서의 유지를 목표로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질서를 수용하는 한도에서나마 당시에는 아직 사민당이 '친근로자'18)적 이념과 정책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독일 사민당이 '친근로자'적 국민정당의 속성조차 포기한 것은 1989년 베를린 강령과 1999년 블레어-쉬뢰더 성명을 통해서였다. 당의 사회적 기반을 중간층으로 이동하면서 신자유주의적 이념과 정책을 수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신중도'와 '제3의 길'로 수용되는 '현대적 국민정당'은 영국 '신노동당' 노선과 마찬가지로 국가 경제의 국제경쟁력을 강조하는 '민족적 경쟁정당'이자 시장 원리를 신봉하는 '현대적 경제정당'을 일컫는 것이다.

프랑스 사회당의 1차 노선변화는 영국 노동당과 같은 시기인 1차대전을 전후하여 일어났으며, 당시의 혁명적 열기는 독일에서와 마찬가지로 프랑스 공산당의 분리 창당으로 작용하였다. 1920년 투르(Tours) 전당대회를 통해 혁명적 사회주의 세력이 분리해 나가고, 개혁적 세력만이 블룸(L. Blum)을 중심으로 SFIO에 남게 된 것이다. 이 때부터 조레스와 블룸의 노선을 중심으로 한 프랑스 사회주의자들은 자신들을 좌파로부터는 공산주의 세력과 구별짓고 우파로부터는 공화주의 세력과 구별짓게 되었다. 특히 조레스적 관점에서 본다면, 프랑스 사회당의 목적은 무계급사회가 아닌 국민적 합의에 기반한 사회주의 공화국을 수립하는 것이다. 따라서 1920년 이후의 프랑스 사회당은 계급정당의 정체성을 갖지 않았거나 매우 약하게 띠었다고 할 수 있다.19)

프랑스 사회당의 2차 노선변화는 1920년대의 분열과 오랜 정체 기간을 거쳐 사회주의가 프랑스 정치의 한 축을 형성하게 되는 1970년대에 일어났다. 1969년 알포르빌(Alfortville) 전당대회를 통해 기존의 SFIO가 사회당으로 탈바꿈한 것이 그 전조였다. 이 사회당은 1971년 에피네(Epinay) 전당대회를 거쳐 1974년에는 다양한 사회주의 정당들을 통합하고 중도파를 이끄는 미테랑(F. Mitterrand)을 중심으로 커다란 성격 변화를 겪게 되었다. 새로운 통합 사회당의 정파들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미테랑의 중도파 외에, 좌파로는 슈벤느망(J. P. Chevènement)을 중심으로 한 맑스주의 연구집단 CERES(Centre d'études, de recherches et d'éducations socialistes)가 있었고, 우파로는 제3공화국 급진공화당(Parti Radical) 세력을 이끌던 로카르(M. Rocard)의 급진공화파가 있었다.20)

일부 평자들이 에피네 전당대회를 사회주의에 대한 급진주의의 승리로 평가할 정도로, 급진공화파의 합류는 1920년 이래 사회당 노선의 중대한 변화를 의미했다.21) 대외적으로도 사회당은 공산주의와 급진공화주의 사이에서 후자에 더 가까워지게 되었다. 1970년대 이후 사회당내 세력관계의 변화는 물론 세 정파간 연합의 결과였다. 그러나 당권을 장악한 미테랑은 사회주의자이기 이전에 공화주의자였으며, 당은 그에게 권력의 장악과 행사를 위한 도구였다. '인간의 권리에 기반한 사회주의'를 강조하는 미테랑 계파의 중심된 가치는 개인의 자유, 민주주의와 의회주의의 결합, 특권의 해소 등이었다.22)

이러한 변화는 사회당이 공산당에 비해 낮은 지지율을 얻은 1978년 선거를 계기로 나타나는 3차 노선변경에 직접 반영되었다. 좌파진영 대변에 위기를 느끼게 된 사회당 내에서는 공산당과 연대를 주도했던 좌파인 CERES 그룹이 약화되고 우파인 로카르 계파가 강화되었다. 로카르는 공산당과의 공동강령이 지나치게 국가주의적이며 중앙집중적이라고 비판하면서 "반자코뱅적이고, 지방분권적, 자주관리적"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경제정책적으로는 긴축정책, 인플레이션 억제, 유럽과 세계에 대한 개방화를 주장하였다.23)

그러나 사회주의 개념의 수정은 우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슈벤느망도 1984년 '현대 공화국(République moderne)'이라는 새로운 정치집단을 만들고 CERES 그룹 명칭을 '사회주의와 공화국(Socialisme et République)'으로 변경하였다. 이어 1987년 릴(Lille) 전당대회에서의 슈벤느망의 주장에서 나타났듯이, 이들에게도 이제는 사회주의가 먼 미래의 일로 치부되고 현재적·현실적으로는 공화국만이 쟁점이 된다는 것이다.24) 좌우를 막론한 당내 정파들의 전반적 우경화는 1991년 이후의 최종적 노선변화를 예고했다.

1991년 임시 전당대회에서 채택된 당 기획안은 10년 동안을 주도했던 기존 원칙과의 단절을 명확히 했다. '민주주의적 사회주의의 도덕과 방법'이라는 텍스트의 한 절에서 사회주의는 하나의 '도덕' 또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정의되었다. 곧, 하나의 제시된 길로의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유, 평등, 사회적 정의, 연대, 관용, 책임 등 다양한 가치들을 배제하지 않는 다원주의성을 띠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영국 노동당이 1995년 이후 '현대적 경제정당화'의 의미에서 현대적 국민정당화의 길을 완성했고, 독일 사민당도 블레어-쉬뢰더 성명을 계기로 영국 노동당의 뒤를 밟아간 것과 달리, 프랑스 사회당은 국민정당화의 시기는 빨랐지만 최종적인 노선변화에 있어서도 '친근로자성'을 유지하는 국민정당 노선을 벗어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람시 이후 이탈리아 공산당의 주요 노선변화도 크게 네 차례로 나타난다. 1차 노선변화는 1944년 톨리아티(P. Togliatti)가 귀국한 후 살레르모(Salermo)에서 대중정당(massparty)화를 선언하면서 정치전략과 사회전략을 구분한 것이 계기였다. 곧, 사회전략 면에서는 반독점과 산업노동자에 핵심을 두지만, 정치전략 면에서는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반파시즘 투쟁을 중심으로 여러 진보정당들을 규합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정치전략으로 삼은 것이다. 이는 계급정당 노선을 고수하되 당의 구조와 전술을 개방하려는 노력이었다.

2차 노선변화는 영국 노동당과 유사한 시기인 1956년 이탈리아 공산당 8차 전당대회에서 시작되었다. 2차 노선변화 역시 톨리아티의 주도로 시작된 것이었는데, 주요 내용은 탈스탈린화를 통해 "사회주의로의 이탈리아식 길(via italiana al socialismo)" 노선을 정립한 것이다. 2차 노선변화는 1차 노선변화와 달리 유로코뮤니즘의 초석이 되는 한편, 1980년대에까지 이르는 장기적 변화의 계기로 직접 작용하기도 하였다.

3차 노선변화는 '유로코뮤니즘'의 본격화로 알려진 1970년대 말 베를링게르(E. Berlinguer)당수의 '역사적 타협(compromesso historico)'이다. 중산층과 중도세력과의 동맹을 목표로 하는 '역사적 타협' 전략은 1977∼79년간 의회다수 참가의 형태로 정권에 참여하게 된 것을 말한다. 이것은 공산당이 의회내 정부불신임 투표를 포기하는 댓가로 기민당 정부의 긴축정책에 공산당의 사회개혁 정책을 수용한다는 정책연립의 형태였다. 이 전략은 유로코뮤니즘의 일환으로서 "소비에트 사회주의와 자유방임 자본주의간 제3의 길"을 추구하는 전략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유로코뮤니즘의 '제3의 길'은 사민주의적 길과는 달리 아직 맑스주의와 레닌주의 및 그람시주의의 테두리를 벗어나지는 않았다.25)

'역사적 타협'에 대해 이탈리아 노조들도 양보노선으로 선회하여 공산·사회계 정파노조인 노동총동맹(CGIL)이 제안한 EUR노선(로마의 회담장소의 이름을 따서 명명)으로 일컬어지는 전략을 통해 정부의 긴축정책을 수용하고 임금인상투쟁을 자제하는 대신 공산당과 개혁세력의 개혁정책을 기대하고 지원했다.26)

그러나 이 '역사적 타협' 전략은 기민당 당수 모로(A. Moro)의 암살사건을 계기로 기민당 우파에 의한 권력장악으로 인해 지속될 수 없었고, 그에 따라 공산당내 지도부도 약화되었다.27) 이러한 지도부 약화는 1987년의 선거실패와 소련·동구의 변화라는 악재를 만나 개혁파들의 더욱 강한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여성해방에 대한 관심 증대, 환경정책 중시, 선거제도를 처음으로 이슈화, 사회주의 인터내셔널(SI)과 친밀한 관계 강화 등, 두 차례의 당명개정을 통해 최근 '제3의 길'로의 노선변화로 이어지는 일정한 강령변화가 이루어졌다.28)

1989년 18차 전당대회에서는 '민주주의'와 '강력한 개혁주의(reformismo forte)'를 전략목표로 설정하고 본격적인 당명개정 논의를 시작했으며, 1991년에는 '커다란 현대적 개혁정당'으로 자기위상을 정리하고 '좌파들의 민주주의 정당(PDS: Partito Democratico della Sinistra)'이라는 색깔 없는 당명을 선택했다.29) 1차 당명개정은 아직 사민주의화의 완성은 아니지만,사민주의화의 길로 연결되는 탈공산주의화의 길을 선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탈공산주의화의 길도 국민정당화의 하나임에는 틀림없으며, 이러한 국민정당화의 과정은 '좌파민주주의자(DS)'로의 2차 개명과 중도 포용 노선의 강화로 이어진 선거전략을 통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났다.30) 그러나 독일 사민당이나 영국 노동당과 달리 '친근로자'적 국민정당을 벗어나지는 않았으며, 프랑스 사회당에 비해서도 상대적으로 '전통적' 사민주의 노선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위 그림 참조).

  

3. '제3의 길'의 이념과 정책

 '급진중도'로 표상되는 영국 노동당의 '제3의 길'은 복지국가의 위기를 타개하고 신자유주의에 대항할 전략으로서, 사회민주주의가 취해야 할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되었다. 그에 따라 노동당은 '권리는 반드시 책임을 수반한다'는 의미에서 '포지티브 복지' 또는 '새로운 혼합경제'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당 차원의 '제3의 길'을 의미하는 '신노동당' 이념은 1995년 개정된 당헌 4조에 잘 나타난다. 즉, 노동당은 '민주적 사회주의당'으로서, "권력과 부의 기회가 소수의 손에 있지 않고 다수의 손에 있"으며, "권리를 향유하면서도 의무를 수행하고", "연대와 관용과 존경의 정신으로 자유롭게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31) 이 때 '신노동당'이 규정하는 사회적 정의는 시민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가리키되, 경제적 효율성을 저해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평등이란 모든 사람에게 균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해 각자가 자기의 잠재력을 최고도로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는 관점이다.

그러나 실질적 기회, 시민적 책임, 공동체와 민주주의에 대한 '신노동당'의 강조는 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를 초극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특수한' 정치철학을 형성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만약 경기가 나빠져 실업률이 상승한다면, 조세나 재정적자의 증가를 반대하는 '제3의 길' 노선은 힘을 잃고, 결국 전통적인 유럽사민주의 정책(국유화나 재정적자 증가에 의한 경기부양책)이나 신자유주의 정책(건전 재정의 유지로 실업을 증가시키는 정책)으로 휩쓸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결국 신노동당의 '제3의 길'은 매우 애매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평등'에 대해 '제3의 길'은 기회의 평등이나 개인의 책임을 중시함으로써, 결과로 나타나는 불평등을 사실상 인정한다. '지구화'에 대해서도 불가역적 과정으로 받아들이면서 그것이 야기하는 온갖 폐해를 시정하려는 의도를 보이지 않기 때문에 지구화와 타협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신중도'로 불리는 독일 사민당의 '제3의 길'은 1989년 베를린 강령에서 시작되어 1999년 블레어-쉬뢰더 성명으로 완성된다. 우선 베를린 강령은 '사회적 정의'를 "재산과 소득 및 권력의 분배에서 더 많은 평등을 요구"하는 것으로 규정하였다.32) 그러나 이 강령에서 언급되는 '사회적 정의'도 구체적인 정치적 실천목표로 제시된 것이 아니라, 추상적 규범으로만 제시된 것이다. 따라서 영국 노동당과 마찬가지로 그 '정의'가 요구하는 '더 많은 평등'도 엄격히 결과적 평등의 개념으로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기회와 출발의 평등으로 전환될 여지가 있다.

1960년대 말 집권기에 평화정당의 성격을 획득한 이후 경제적 분배와 평등을 넘어 탈물질주의적 가치들로 무장한 현대 사회의 새로운 문제점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했다는 측면에서 이 강령은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강령의 문제점은 경제적 사안들뿐만 아니라 새로운 가치들에 있어서조차 경쟁 및 시장의 개념과 타협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통일 이후 1990년대에는 이러한 정의 개념에 대한 언급조차 줄어들다가 1998년 연방의회선거 당시에는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33) 추상적 규범으로 제시된 '민주적 사회주의'가 정책적 실천으로 이어지면서 일정한 모순을 일으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블레어-쉬뢰더 성명은 베를린 강령과 현실 정부정책간의 괴리를 후자에 맞추는 방향으로 해소한 것으로서 '현대적 경제정당'화로의 노선변화를 완성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른바 '현대적 사민주의자들'은 '제3의 길'로 포장된 '신중도'를 "21세기를 위한 현대적 통치"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그 실질적 내용은 경제적 지구화를 옹호하고, 재정안정과 조세부담경감이라는 '워싱턴 합의(Washington Consensus)'를 자발적으로 수용하는 반면, '사회적 시장경제'라는 '라인 자본주의(rheinischer Kapitalismus)'와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를 거부할 뿐만 아니라, 노동운동으로부터 사민당을 단절시키고자 하는 것이다.34)

독일 사민당과 적녹연정의 '제3의 길'은 명백히 고전적 분배정책과의 결별을 의미한다. 곧 분배의 결과가 아니라, 부 자체의 증가로 인해 가난한 사람들의 소득도 증가한다는 이른바 '엘리베이트 효과'를 강조한다는 것이다.35) 그 전략은 성장과 경쟁력이 될 수밖에 없으며, 결과적으로 경제력과 시장의 역할에 의지하고 그 강화와 확장을 위해 또 다른 형태의 물신화된 "권력환상(Machtillusion)"36)으로 현상한다.

한편 조스팽 사회당 정권에 의한 복지국가의 개혁은 상당부분 1984년 이래 사회당이 추진해 온 복지국가 개혁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사회당내 다수 중도계열을 형성하고 있는 미테랑 계열의 조스팽은 사회당의 좌우 편향을 적절히 조절하면서 중간적인 길을 걸었던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사회당 자체가 이미 상당부분 우경화되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러한 중도의 길 역시 우경화된 중도임에는 틀림없다.

프랑스 사회당이 표방하는 '쇄신좌파'는 그러한 변화의 중심에서 당내 우파들이 주장해온 공화주의 강조를 좇아간 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회당의 정체성은 사회주의적 조치를 통해 유지되기보다는 '공화주의적 연대'를 통해 재형성되고 있었고, 조스팽 정부의 정책에서도 그 점은 지속되고 있었다.

따라서 영국과 독일의 '제3의 길'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전통적 사회주의의 맥락을 덜 벗어났다는 평가도 가능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공화주의'라는 프랑스식 개혁 사회주의의 가치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무지개 연정의 구체적인 정책도 공산당의 연정참여라는 요소를 차치하면 신자유주의적 정책으로의 수렴이라는 보다 넓은 범주의 일반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곧 부유층에 대한 세금 증가를 비롯한 소득 불평등 감소 정책이 전통적 좌파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음이 인정되지만, 기업의 사회적 부담금을 낮추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연장선상에 놓인 조치들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탈리아 좌파민주당이 주장하는 '유럽사회주의'는 1차 당명개정 당시 민주집중제를 공식적으로 포기하고(실질적으로는 이미 베를링게르 사후 1984년에 포기했다), 자본주의 극복을 언급하지 않게 됨으로써 시작되었다. 이제는 사회전략적으로도 산업노동자가 사회구조상 중심이 아니라는 입장으로 전환하였으며, 공정하고 효율적인 공공행정과 깨끗한 환경으로 대표되는 'better services'라는 특별 이슈로 '시민'에게 다가가고자 한다.37)

유럽 사민주의 진영에 가장 늦게 합류하여 아직 '친근로자'적 국민정당의 영역에 머물러 있기는 하지만, 이탈리아 좌파민주당도 이제는 수권정당의 이미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좌파민주당이 진단하는 이탈리아의 위기는 '도덕적, 사회적, 제도적 위기'로서 '지배계급의 혁신과 민주체제의 재구축'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좌파민주당이 원하는 수권정당의 이미지는 이러한 위기를 '좌파의 막강한 힘과 현 정부에 대한 신뢰할 만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개혁정당'이다.38)

그렇지만 이탈리아 중도-좌파 정부의 정책적 내용은 유럽통화동맹 가입을 위한 긴축재정을 중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색채를 벗어나지 못했다. 물론 하원에서의 절대다수 의석 확보 실패로 인해 재건공산당의 지지를 받아야 했던 집권연립(월계수동맹 l'Ulivo)은 재건공산당이 제시한 주35시간제 도입, 남부빈곤문제 해결, 적극적 실업해소정책을 유럽통화동맹 가입 후에 실시하겠다는 약속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2년후 유럽통화동맹 가입에 성공한 후에도 재건공산당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에 따라 1차 월계수동맹 내각은 붕괴되었다. 뿐만 아니라 연정 지지를 두고 재건공산당이 분열함으로써 새로운 연정 수립에 성공한 2, 3차 월계수동맹 내각도 적극적 사회경제 정책의 실시에는 소극적이었다.

  

4. 결론

 독일 사민당, 영국 노동당, 프랑스 사회당과 이탈리아 좌파민주당은 모두 창당 당시에는 노동자계급정당이라는 정체성을 가졌었다. 그러나 노조가 자신의 정치적 대변을 위해 만든 정당인 영국 노동당은 자본주의체제 내에서 노동자계급의 자유와 평등과 연대를 확보하고 향상시킨다는 의미에 한정된 계급정당이었다. 독일의 사민당도 처음부터 혁명적 사회주의와 구별되는 국가사회주의적 전통을 가졌다는 점에서 영국 노동당과 유사하다. 프랑스 사회당에서도 공화주의적 성격을 띤 개혁주의적 사회주의파가 창당 때부터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했으며 공산당의 분리 건설 이후에는 주도 세력이 되었다. 영국, 독일, 프랑스의 사민주의 정당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탈계급적인 '국민정당화'의 가능성을 배태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반면 공산당으로 출발한 이탈리아 좌파민주당은 그람시적 전략의 변화 개연성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혁명적 계급정당의 원칙에 충실했다고 보인다.

그러나 '신노동당'의 '제3의 길'은 자본의 세계화 흐름에 대해 현상타파적이 아니라 현상추수적이라는 점에서 보수당의 신자유주의를 계승하고 있다고 비판받는다. 독일 사민당의 '신중도'도 계급정당과 국민정당 사이에서 선택된 '제3의 길'이었던 친근로자적 국민정당을 넘어 부르조아적 국민정당과의 또다른 '제3의 길'인 '현대적 경제정당화'를 선택함으로써 역시 우파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이어받았다. 특히 블레어-쉬뢰더 공동성명 이후 두 정당의 차이점은 더욱 줄어들어, 대미관계 등 대외정책상의 차이만 존재할 뿐이다.

그와 달리 프랑스 사회당은 공산당과의 끊임없는 경쟁으로 인해 국민정당화의 길은 빨랐지만, 최종적 노선변화에서도 '현대적 경제정당'으로까지 나아가지는 않았으며 아직도 상대적으로 친근로자성과 공산당과의 연대가능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탈리아 좌파민주당도 '좌파'의 이미지를 고수하면서 현대 사민주의의 전통적 정책을 원칙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중도-)좌파 정부가 실행하는 정책들도 신자유주의적 논리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었다.

이와 같이 '제3의 길'은 여러 측면에서 나라와 시기별로 다양하게 나타나는 한편, 영국과 독일, 프랑스와 이탈리아라는 두 국가집단별로 상이하게 현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역사적 동시성의 측면에서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이념의 수준이나 획기적 정책의 고안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기존의 좌파적 정체성을 상실해 간 길이라는 일반성을 띠었다. 현대 사민주의의 전통적 케인즈주의 정책 외에는 세계화 시기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대안 마련에 실패함으로써 신자유주의 정책을 답습해 간 결과이다. 따라서 '제3의 길'은 사민주의라는 '현대적 국민정당'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정치이며, 현대 정당정치 지형에서 좌우 개념은 '친근로자적' 국민정당과 부르주아적 국민정당의 경쟁지형으로 현상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볼 때, '제3의 길'로 포장된 유럽 사민주의의 최근 노선도 신자유주의 시기에 합리화의 수혜자들과 사회적 신흥계층들과 같은 새로운 "지구화 계급(globale Klasse)"39)을 위한 것으로서, '아래로부터 위로의 재분배'를 통해 사각지대나 사회저변층들을 더욱 벼랑으로 몰고 가는 신자유주의 기획과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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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주>

1) Gerhard Hirscher and Roland Sturm, ed., Die Strategie des 'Dritten Weges': Legitimation und Praxis sozialdemokratischer Regierungspolitik (München: Olzog, 2001), p. 9 참조.

2) Frankfurter Rundschau, 1999. 10. 28.

3) Die Zeit, 1999. 9. 16.

4) Bodo Zeuner, "Der Bruch der Sozialdemokraten mit der Arbeiterbewegung: Die Konsequenzen für die Gewerkschaften," in Klaus Dörre, Leo Panitch and Bodo Zeuner, et al., Die Strategie der 'Neuen Mitte': Verabschiedet sich die moderne Sozialdemokratie als Reformpartei? (Hamburg: VSA, 1999), p. 131.

5) 물론 이탈리아 좌파민주당의 경우는 공산당이었다는 점에서 다른 세 국가의 사민주의 정당들과 사뭇 역사를 달리한다. 그러나 이탈리아 좌파민주당도 1991년 이후 사민주의를 표방하는 만큼 사민주의 정당들과의 비교가능성이 충분하며, 특히 '제3의 길'과 관련된 논의에서는 더 이상 빼놓을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한다.

6) 일반적으로 '국민정당(Volkspartei)'은 특정 계급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계급정당의 대당 개념으로서,  ① 당원과 지지자의 사회구조적 성격이 사회 전체의 계층구조와 상당할 정도로 일치하고, ② 수평적·수직적 당조직구조에서 사회의 이해관계 다원성이 실질적으로 보장되고 이해관계의 균형과 갈등의 해소가 민주적으로 규정되고 운영되며, ③ 당의 정책은 국민 일반의 공동선을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정당을 일컫는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은 정당들이 각계 각층의 지지 획득을 위해 주장하는 내용일 뿐, 현실적으로는 ① 계급 화해와 국민 통합에 기여하는 한편, ② 당내부적으로 당원구조를 은폐하고 당외부적으로 사회적 기반(지지자)구조를 은폐하는 기능을 한다고 비판된다. Alf Mintzel, Die Volkspartei: Typus und Wirklichkeit. Ein Lehrbuch (Opladen: Westdeutscher Verlag, 1984), p. 24 참조. 이 글에서는 '국민정당'을 강령적·조직적 측면에서 탈계급적인 정당을 지칭하는 개념에 한정하여 사용한다. 한편 당조직이 대중에게 개방되어 가입서를 제출하고 일정한 당비를 내는 당원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정당을 지칭하는 '대중정당(massparty)'은 '간부정당'의 대당으로서, 국민정당과는 구분의 차원을 달리하는 개념이다. Maurice Duverger, Political Parties (London: Methuen & Co., Ltd., 1978) 참조.

7) 영국과 프랑스에 관한 많은 부분은 김수행, 안삼환, 홍태영과 함께 수행한 연구의 결과인 근간 단행본『제3의 길과 신자유주의: 영국, 독일, 프랑스를 중심으로』(서울대 출판사)와 정병기, 「신자유주의와 '제3의 길': 영국, 독일, 프랑스의 비교」, 『현장에서 미래를』, 제83호, 2003년 1월 참조.

8) 여기에서 영국의 사민당과 이탈리아의 사회당 및 사민당은 논외로 한다.

9) 정병기, 「독일과 이탈리아의 노조-좌파정당 관계 비교: 독일 사민당(SPD)과 노총(DGB), 이탈리아 좌파민주당(DS)과 노동총동맹(CGIL)」,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편), 『현장과 이론 3』, 콜로키움 발표 논문집, 도서출판 현장에서 미래를, 2001,

10) 맑스주의자 하인드만이 1881년 결성한 '민주연합(Democratic Federation)'이 1884년 개명한 조직으로, 이후 '영국공산당(Communist Party of the Great Britain)'으로 성장했다. Malcolm Pearce and Geoffrey Stewart, British Political History 1867∼2001: Democracy and Decline (London: Routledge, 2002). p. 240.

11) 고세훈, 『영국노동당사: 한 노동운동의 정치화 이야기』, 나남, 1999. 366∼384쪽 참조.

12) 김수행, 「영국 노동당 100년의 역사」, 『다리』, 2000년 여름과 Geoffrey Foote, The Labour Party's Political Thought, 3rd edition (London: Macmillan, 1997). 참조.

13) Eric Hobsbawm, Ken Gill, Tony benn, et al., The Forward March of Labour Halted? (London: NLB, 1981) 참조.

14) 박호성, 『노동운동과 민족운동』, 역사비평사, 1994, 63∼64쪽; Hermann Oncken, Lassalle: Eine politische Bibliographie (Stuttgart und Berlin: Deutsche Verlagsanstalt, 1923), p. 526.

15) Carlo Schmid, Europa und die Macht des Geites, Bd. 2 (Berlin, München und Wien: Scherz, 1973), p. 280.

16) 맑스주의적 정당으로 건설된 사민주의노동자당 강령에서부터 이미 라쌀주의의 영향은 근본적으로 나타났으며, 현대 사민당에 이르기까지 라쌀주의의 의미는 실천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강령적인 면에서도 결코 포기되지 않고 있다. 독일 사민주의 정치의 변화는 맑스주의의 전통에서 혁명적 성격을 수정해 온 결과가 아니라, 라쌀의 전통에 맑스주의를 이론적으로 접목하려던 과정이 실패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정병기, 「라쌀의 국가관과 독일사민당에 대한 라쌀주의의 영향과 의미」, 『한국정치학회보』, 제36집, 2002년 여름 참조.

17) 이와 반대로 영국에서는 노동당 내의 좌파 세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18) '근로자'라는 표현은 일제의 잔재이자 군사정권이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을 탈각하기 위해 사용한 개념이라는 점에서 적절한 용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독일에서도 이와 유사한 의도로 사용되기 시작한 용어로서 '일자리수요자(Arbeitnehmer)'가 있다. 다른 대안이 없는 한, 여기에서는 그에 상응하는 용어로서 '근로자'라는 용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19) Alain Bergounioux and Bernard Manin, Le régime social-démocrate (Paris: Puf, 1989) 참조.

20) 통합 이후에도 사회당은 일정한 기간 동안 개혁적 사회주의 노선이 주류를 형성했지만, CERES 그룹의 주도 아래 유로코뮤니즘적 공산당--1976년 프랑스 공산당도 22차 전당대회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폐기하였다(에티엔 발리바르, 『민주주의와 독재』, 최인락 역, 연구사, 1988 참조)--과 연합하여 '공동강령'을 채택하기도 했다(Fernando Claudin, Eurocommunism and socialism (London: NLB, 1978), pp. 65∼67).

21) Hugues Portelli, "L'intérgration du Parti socialiste à la Ve République," in Olivier Duhamel and Jean-Luc Parodi, ed., La Constitution de la Ve République (Paris: Presses de la FNSP, 1988).

22) Alain Bergounioux and Gérard Grunberg, Le long remords du pouvoir. Le Parti socialiste français 1905∼1992 (Paris: Fayard, 1992), p. 259.

23) Michel Rocard, Parler vrai (Paris: Seuil, 1979), p. 117이하.

24) 물론 공화국과 사회주의의 연관성과 관련된 슈벤느망의 주장도 공화국의 확대를 통한 사회주의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는 조레스 이래 지속된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25) Erhard Brütting, ed., Italien-Lexikon (Berlin: ESV, 1997); Santiago Carrillo, 'Eurokommunismus' und der Staat (Hamburg and Berlin: VSA, 1977) 참조.

26) 정병기 (2001), 앞의 글, 55∼77쪽 참조.

27) 그에 따라 1984년부터 베를링게르(E. Berlinguer)의 뒤를 이은 나타(A. Natta) 당수 시절에는 지도부의 약화로 인해 세 파간 다수책임제가 등장하였다. 당시 공산당의 주요 세 정파는 중도파 베를링게르계(berlingueriani), 좌파 잉그라오계(ingaiani), 당개혁파 나폴리타노계(napolitaniani)였다(Gianfranco Pasquino, "Programmatic Renewal, and Much More: From the PCI to the PDS," West European Politics, vol. 16 (1993), p. 158).

28) Ibid., pp. 167∼170.

29) 20차 전당대회에서 당권파이자 개혁파인 오케토(A. Occhetto)/나폴리타노(G. Napolitano)계가 발안한 당명개정안에 대해(67.4% 찬성) 네오그람시언인 잉그라오계(ingraiani)와 스탈린주의자들인 코수타계(cossuttiani)가 반대하였다(26.6% 반대). 그러나 당명개정이 확정되자 잉그라오계는 잔류했으나 코수타계는 외곽의 좌파들과 결합하여 재건공산당(공산주의재건당 RC)을 창당하였다. 잉그라오계도 잉그라오(P. Ingrao)가 은퇴한 후에는 대부분 재건공산당으로 이적하였다(Piero Ignazi, Dal Pci al Pds (Bologna: Il Mulino, 1992), p. 133)

30) 1차 개명은 탈당한 정통 공산주의자들이 다른 좌익 소수파들과 연합하여 재건공산당(RC)을 창당함으로써 기존 노선과의 단절이 뚜렷했던 것과 달리, 2차 개명은 중도-좌파 정권(월계수 연맹) 출범후 부총리로서 좌파민주당내 월계수파를 이끌던 벨트로니(W. Veltroni)와 당수로서 다수파 지도자인 달레마(M. D'Alema) 사이의 노선 논쟁과 주도권 다툼의 결과일 뿐, 노선의 변화나 '정당'으로서의 조직변화와 연결되지는 않았다. 벨트로니가 월계수연맹을 미국의 민주당과 같은 느슨한 형태의 통합된 정당으로 발전시키고자 했던 반면, 달레마는 월계수연맹과 무관하게 좌파민주당을 중북부 유럽 좌파들의 특성들을 소화하며 중도적 좌파들까지 포함하는 범좌파 연합체로 재조직할 것을 구상했었다. 그러나 달레마의 보다 궁극적 목적은 강령노선의 변화보다, 월계수연맹이 정부를 이끌어 가는 정치적 역량이 부족하다는 판단에서 강력한 수권 주체를 세우고, 더 나아가 국내와 전유럽 좌파 진영에서 입지를 높여나간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2차개명에서 '당'의 생략은 실질적 의미를 갖지 못하므로 DS도 '좌파민주당'으로 번역하는 데 무리가 없을 것이다. 2차개명과 관련된 논쟁과 정파간 갈등에 관해서는 다음을 참조: Partito Democratico della Sinistra, Cristiano sociali, Comunisti unitari, Repubblicani per la sinistra democratica and Socialisti laburisti, eds., Un nuovo Partito della Sinistra: Documenti e materiali (Roma: Salemi Pro. Edit., 1997); Rinaldo Vignati, "Il leader e il partito. Il Pds dopo il II congresso," in Luciano Bardi and Martin Rhodes, eds. Politica in Italia: I fatti dell'anno e le interpretazioni, edizione 98 (Bologna: Il Mulino, 1998); Valdo Spini, La rosa e l'Ulivo: Per il nuovo partito del socialismo europeo in Italia (Milano: Baldini and Castoldi, 1998).

31) Pearce and Stewart, op. cit., p. 569.

32) Vorstand der SPD, ed., Grundsatzprogramm der Sozialdemokratischen Partei Deutschlands (Bonn, 1999).

33) Uwe Jun, "Die Transformation der Sozialdemokratie: Der Dritte Weg, New Labour und die SPD," Zeitschrift für Politikwissenschaft, vol. 10 (2000), Nr. 4, p. 1518.

34) Birgit Mahnkopf, "Formel 1 der neuen Sozialdemokratie: Gerechtigkeit durch Ungleichheit. Zur Neuinterpretation der sozialen Frage im globalen Kapitalismus," Prokla: Zeitschrift für kritische Sozialwissenschaft, vol. 30 (2000), Nr. 4, pp. 489∼491.

35) Klaus Dörre, "Die SPD in der Zerreißprobe: Auf dem 'Dritten Weg'," in Dörre, Panitch and Zeuner, et. al., op. cit., p. 10.

36) Wolf-Dieter Narr, "Gegenwart und Zukunft einer Illusion: Rotgrün und die Möglichkeiten gegenwärtiger Politik," Zeitschrift für kritische Sozialwissenschaft, vol. 29 (1999), Nr. 3, p. 374.

37) Pasquino, op. cit., pp. 171∼172; Giuseppe Mammanella, "Il partito Comunista Italiano," in Gianfranco Pasquino. La politica italiana: Dizionario critico 1945∼1995 (Roma and Bari: Laterza, 1995), pp. 287∼309.

38) Spini, op. cit. 참조.

39) Joachim Bischoff and Richard Detje, "Widersprüche der 'Neuen Mitte': Strategie zur Bändigung des Kapitalismus?," in Dörre, Panitch and Zeuner, et. al., op. cit., pp. 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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