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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 이랜드 비정규직 투쟁을 다녀와서(현보람, 경인교대 4학년)

 

 

 

간절한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고도 이랜드 물건을 사야겠다면...

 

 그곳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치열했다. 그 와중에도 쇼핑을 하겠다고 밀고 들어오는 손님들과 손님을 끌어당기는 점주들 사이에서 나는 쭈뼛쭈뼛하다 길을 내주곤 했다. 그 광경을 본 조합원분이 달려오셔서 왜 길을 내주냐며 몸으로 작은 틈새조차 막으셨다. 그랬다. 어쩌면 나는 ‘연대’란 이름으로 비정규직 철폐를 함께 외치겠다고 가긴했지만 그/그녀들만큼 절실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정규직이란 이름으로 몸이 부서져라 일했지만 그 나마의 일자리에서 쫓겨나야했던 서러움은 그/그녀들의 투쟁을 더욱 치열하고 절실하게 만들었다.


 비정규악법시행과 동시에 시작된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두 달이 넘었다. 발 빠르게 투쟁의 현장에 함께 하진 못했지만 학교 가까운 곳에 있는 계산점 홈에버 노동자분들의 투쟁을 시작으로 이랜드-뉴코아, 홈에버 비정규직 투쟁(이하 이랜드 투쟁)에 함께 하기 시작했다.

 이랜드점거 투쟁에서 필요한 한 가지가 있다면 바로 인내심이다. 매출0원을 목표로 매장을 점거하는 투쟁이기 때문에 문을 막고 앉아서 보내야 하는 12시간은 참으로 많은 분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현장이기도 하지만, 승리를 생각하며 인내해야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여느 토요일, 인천 구월동에 있는 뉴코아 점거투쟁에 함께 했다. 처음에 주차장에서 여러 연대 단위들과 비정규직에 관한 여러 발언들을 듣고, 노래도 부르면서 12시간 점거를 결의하면서 앉아있었다. 그러다가 정문으로 함께 가서 정문을 막고 하는 집회에 함께 하기 시작했다. 정문 앞은 정말 몸싸움, 기싸움이 치열했다. 이미 전경들이 정문을 빽빽하게 막고 있었고, 점주들은 그 틈을 타 손님들을 끌어당겼다. 그 정도만 해도 좋으련만, 이랜드 사측에서 고용한 용역깡패들과 점주들이 노동자들의 집회를 방해하기 위해 집회 아닌 집회를 하고 있었다. 그들이 집회를 방해하는 방식은 참으로 저급했다. 영업사실을 알리고 손님을 끌어 들이는 것 정도는 양반이었다. 집회에 연대하기 위해 온 학생들에게 ‘학생은 집에 가서 공부나 해라.’를 시작으로 온갖 막말하기 시작하더니 쌍욕도 난무했다. 더구나 해고당한 노동자분들께 ‘일을 못했으니깐 짤렸지!!!’ 라는 도저히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말들을 했다. 그 가운데서 전경들 틈을 헤집고 쇼핑을 하러 들어가겠다는 손님들에게 ‘오늘 하루만 뉴코아를 이용하지 말아 달라.’는 말은 어느새 눈물 없인 할 수없는 절규가 되어 있었다.


 전경들과 노동자 분들, 연대하러 온 사람들, 그리고 사측에서 고용한 용역깡패들과 점주들까지 함께 모인 집회자리에서 앞에 서신 지긋한 나이의 노동자 분이 말씀하셨다. 자신에게도 전경들의 나이만큼 나이를 먹은 아들이 있노라고. 그래서 전경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전경 여러분도 제대하고 사회 나와서 취직하면 거의 비정규직입니다. 비정규직이 갖는 서러움을 아십니까? 우리가 지금 싸우는 건 여러분의 미래를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랬다. 이랜드 투쟁은 단순히 그/그녀들만의 싸움이 아닌 이 사회에서  자기 몫을 다하며 일을 하고 살고 있는, 혹은 그 역할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전 민중의 싸움이었다. 이 싸움의 과정과 결과가 어떻게 되느냐는 앞으로 비정규악법이 만들어낼 모든 싸움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것은 내가 이랜드 투쟁의 현장에 함께 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랜드사측과 보수언론들은 연대단위들을 향해 민주노총은 개입하지 말라며 외부세력은 물러가라며 손가락질을 하고 있지만 비정규직 문제에 있어서 외부세력은 없다. 비정규악법이 끼치게 될 악영향들에 대해 모든 노동자들이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에 이랜드문제를 자신의 문제처럼 여기고 함께 싸우고 있는 것이다. 이랜드의 승리는 모든 노동자의 승리이기 때문이다.


 정문 틈을 막고 있는데 아는 언니가 뉴코아를 들어가려고 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언니, 오늘 하루만 뉴코아 이용하지 말아요.”

라고 말했다.

 “어머, 네가 여기 왜 있니? 이러지마. 이러면 내가 죄짓는 것 같잖아.”

언니 손을 붙잡고 들어가지 말라고 말하는 나에게 언니는 이렇게 말하며 쇼핑을 하러 들어갔다. 언니 말이 맞다. 쇼핑하고 싶어서 들어가는 언니가 죄를 짓은 것은 없다. 하지만 언니가 불매운동에 참여하면서 비정규직노동자를 일회용품 쓰듯 쓰고 버리는 당신들의 매출을 올려줄 수 없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줬다면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는 노동자분들에게 힘이 되지 않았을까? 이랜드가 민중들의 힘이 살아있다는 것을 훨씬 더 깊이 깨닫게 되지 않을까? 이랜드는 이윤을 남기기위해서 얼마나 잔머리를 굴리는지, 또한 그 과정에 노동자의 권리나 삶에 대한 고민 따윈 있지도 않은 잔인한 자본이다. 이런 잔인한 자본에게서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찾아오기 위해선 모든 사람들의 연대와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언니를 바라보며 느꼈다.

 이쯤에서 예비교사라는 나의 정체성을 굳이 꺼내면서라도 비정규직 문제는 결코 나와 멀지 않은 문제임을 강조하고 싶다. 경쟁과 효율성, 차별과 배제라는 이름으로 다가오는 교원구조조정의 폭풍은 반드시 비정규 교원확산이라는 비구름도 함께 몰고 올 것이다. 이랜드 노동자들이 정규/비정규가 아닌 그저 당당한 노동자로 떳떳하게 일하게 될 그날, 나도 교사 노동자로서 당당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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