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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총파업 투쟁 신호탄과 故 이용석 열사


▶◀ 11월 총파업 투쟁 신호탄, 전/비/연 '선봉' 투쟁과 故 이용석 열사

10월 22일 14시 대학로에서 총파업 투쟁 승리를 위한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가 열립니다. 한반도 긴장 분위기 속에서도 호시탐탐 '비정규개악안'과 '노사관계로드맵', 그리고 '한미FTA'를 관철시키려고 혈안이 된 노무현 정권을 끝장내기 위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선전포고'가 시작된 것입니다. 지난 3년간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벼랑 끝에 내몰린 비정규 노동자들이 (민주노총이나 민주노동당의) 선봉에 섰습니다.

그러나, 정세는 긴박하나 동력은 떨어져 있습니다. 노무현 정권이 군사독재를 능가하는 노동 탄압으로 현장을 짓밟고, 노동자를 수배 구속하며, 신공안탄압과 가압류로 목줄을 죄어 와도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은) 조직된 투쟁으로 맞서질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노총이 그 빤빤한 낯짝으로 노사정 밀실 담합하며 1300만 노동자를 팔아 먹어도, 그에 대한 '항의' 하나 제대로 못합니다. 한국노총의 야합을 강력 규탄했던 전해투 동지들만 영등포 구치소에 갇혀, 노동계급의 원칙을 상징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제 더 이상 비정규 노동자들과 전해투 동지들의 '선봉' 투쟁을 팔짱만 끼고 바라보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말로만 '노무현 퇴진', 11월 '총파업' 운운하며 주저 앉아 있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더구나, 단 한번도 남한 노동자 민중에게 도움이 된 적이 없었던_외려 방해꾼이었던 북한 김정일 정권의 핵실험으로 더 더욱 총파업 투쟁이 어려워진 지금, 당장부터 노무현 정권을 끝장내기 위한 총파업 투쟁 조직화에 돌입해야 합니다. 비정규 노동자들이 피눈물로 쏘아 올리는 신호탄, 22일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가 11월 총파업 투쟁의 돌파구가 되길 바라며, 두 가지 글을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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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KTX승무지부 민세원 동지는 '일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렇게 명백한 불법 파견에 대해서 당사자가 포기하지 않고 집단적으로 싸워왔는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당한 요구를 얻어내지 못한다면, 앞으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불법 하청으로 시달려도 구제할 수 있는 길이 없어질 것이다” , "국감 통해서 철도공사와 노동부의 문제를 폭로할 수 있으면 좋겠다”, 노동운동 진영에 대해서도 “이제껏 우리 문제에 대해 나 몰라라 해 온 것 아니냐”며 “연대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면서, 민세원 동지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고립된 장기투쟁사업장 동지들의 '연대' 절규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요구하는 것이 없으니까, 부담도 안 느끼고 방치하는 것 같아요. 이 문제가 노동자 전체의 중요한 사안이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것인 만큼 공공연맹이나 민주노총 차원에서 해야 하는 몫이 있는 건데… 노조가 본인들 기득권에 연연해서 기능을 상실하고 제 역할 못하면 없는 것만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지켜내야 할 건 노동자 개개인 삶의 소중함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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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탑골공원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에서 "비정규직철폐"를 외치며 故 이용석 열사가 분신한 지 3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비정규 노동조합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으나, 노무현 정권의 집중적인 탄압으로 비정규 노동자들의 상황은 더 악화되었습니다. 또한, 그 때나 지금이나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은 비정규 문제를 전면화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정일정권의 핵실험(만)이 위기가 아니라 계급전선의 와해가 진정한 위기임을 상기하며,,, 3년전 열사께 바친 글 한자락을 떠올려 봅니다.


(생전의 故 이용석 열사)

2003년 10월 26일 구름 한 점 없던 종로 3가의 오후를 잊을 수 없습니다. 시커먼 피연기와 불에 타 이글거리는 살내음으로 진동하던 ‘전국비정규직노동자대회’를 또박또박 기억합니다. 힘겹게 최초의 비정규직대회를 주도했던 전국 활동가들과 이주노동자들의 지극히 소박한 요구들도,,, 그리고 바로 눈앞에서 얼굴과 가슴 상판의 살껍질이 벗겨진 채, 119 간이침대마저 채우지 못하고 신음하는 그 작은 몸뚱아리 열사의 모습도,,, 열사의 그 간절했던 소망 한 구절 한 구절도,,, 새 봄 거름으로 부활할 ‘낙엽’처럼 하나 하나 또렷이 기억해 둡니다.

현대판 노비문서인 '비정규직관리세칙'을 반대하고 '고용안정'을 외치며 자신의 온 몸을 불사른 서른 두 살의 젊은 노동자,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광주전남지부장 이. 용. 석.

세원테크 이해남 지회장의 분신이후 3일만이며, 故 김주익열사, 故 이현중열사, 故 배달호열사를 떠나 보낸 지 불과 얼마만의 일입니다. 이 분들은 비정규직 관련 대선 공약을 철저히 외면하는 노무현 정권과 노조활동 탄압에 혈안이 된 자본에 맞서 벼랑끝 최후의 저항으로 '죽음'을 선택하였습니다. ,,, (정규직 vs 비정규직 구도의 허구성 1, 적의 기쁨조 = 아군의 자폭조 _ 새벼리, 20031028 중에서)

▶◀ 이용석동지 약력 ▶◀

- 72년 목포 산정동 출생. 2남 5녀중 4번째로 차남
- 목포에서 산정초등 문태중 홍일고등학교를 나옴
- 91년 전남대 금속학과 입학, 98년 2월 졸업
- 2000년 근로복지공단 목포지사에 조사요원으로 입사
- 2002년 1월 근로복지공단 계약직 직원으로 채용
- 2003년 노조결성과 더불어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노조 광주본부장으로 활동
- 2003년 10월 26일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에서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분신
- 2003년 10월 31일 15시 운명




다시는 볼 수 없는 열사의 해맑은 미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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