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8월 후보 시절 전태일 재단을 방문했지만, 전태일 재단 측의 거부와 쌍용차 노동자들 등에 의해 방문이 무산됐다. 이어 청계천변에 위치한 전태일 동상에 헌화하고자 했으나 이 역시 쌍용차 노동자들에 의해 쉽지 않은 과정을 겪었다. 당시 박 후보는 전태일 동상 앞에서 “노동자가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어도 쌍용자동차 해고자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오히려 대한문에 설치된 쌍용차 노동자 분향소가 지난 4일 강제 철거됐고 이에 앞선 지난달 27일 재능교육 해고노동자 천막도 기습 철거됐다. 이와 함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대한 법외노조화 움직임도 벌어지는 등 노동탄압 양상은 이명박 정부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때문에 박근혜 정부의 노동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이 대선 핵심공약으로 경제민주화와 국민대통합을 내세웠지만 여기에 노동이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29일 발표한 2013년 업무보고에는 이 같은 문제가 고스란히 노출된다. 총 62페이지의 업무보고에 노동계 최대 현안인 ‘쌍용차’는 불과 2번 언급된다. 그나마 해법도 아닌 현 노사관계 문제에 있어 “비정형적 노사분쟁 해결을 위한 합리적인 조율기제가 미흡했다”는 평가의 한 사례로 언급될 뿐이다.

고용노동부의 보고서는 전반적으로 ‘고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재 대립적 노사관계의 원인도 “대기업·정규직 노조의 단기적 이익 극대화 추구, 상급단체의 과잉 정치활동” 등 노조의 문제를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진단이 이러니 해법도 없다. 고용노동부는 ‘미래창조형 상생의 노사관계’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를 위한 방법도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 추진’이란 추상적 형태로 나타난다.

그나마 이번 업무보고에서는 최저임금과 임금체불, 불법파견에 대한 해결의지를 보였다는 점이 전향적이나, 사회적 의제가 돼 버린 쌍용차 등 노사관계 현안에 대한 어떤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8월, 서울 종로 청계천 6가 전태일 다리를 방문, 헌화를 하려다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으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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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공통적으로 박 대통령이 노동을 권익의 문제가 아닌 관리의 대상 정도로 보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최저임금 일부 인상 등에 대해선 성과가 나올 수 있지만 노동권에 대해서는 무시하고 배제하는 전략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지난 10일 고용노동부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이 같은 문제가 제기됐다. 은수미 민주통합당 의원은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업무보고의 대부분이 일자리 문제였고 노사관계나 노동권 문제에 대해서는 업무보고의 비중이 너무 적었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때문에 현안질의의 경우도 대부분 고용 쪽 비중이 높았다”고 말했다.

은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은 공약부터 노동권 문제가 없었다”며 “전태일 동상 방문은 제스처였고 쌍용차 국정조사도 말 바꾸기를 했다”고 지적했다. 은 의원은 “노동자에 대해 ‘배려’의 관점에서 접근하지만 ‘권리’로 접근하는 관점이 없다”며 “때문에 노동권에 대해 박근혜 정부가 획기적인 정책을 펼칠 것이란 기대도 없고, 다만 노동권에 입각해서 법을 준수할 수 있도록 할 것인지는 두고 볼 문제”라고 말했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이명박 정부가 ‘반노동’이었다면 박근혜 정부는 ‘무노동’이라고 얘기할 정도”라며 “노동에 대한 기본적인 관심과 관점이 현저하게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소장은 “전교조 법외노조 논의나 민주노총을 배제하는 방식을 보면 노동을 홀대하거나 배제하는 방식이 눈에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노동을 사회의 중요한 주체로 구성하는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관리 대상으로 보고 있는 것”이라며 “국민대통합을 말할 때, 노동을 어떻게 포용할 것이냐 정당하게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할 것이냐가 핵심인데 현재까지는 이명박 정부의 연장선에서 배제하고 홀대하는 정책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전향적인 반전이 있지 않는 한 오히려 노동은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이와 같은 지적에 대해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노동이 없다는 지적은 받았지만 고용과 노동은 사실 분리하기 어렵다”며 “고용노동부 입장에서는 비정규직 문제나 사내하도급, 노사관계 등 노동분야가 업무보고에 포함이 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안사업장 문제는 업무보고에 쓰기 어렵다”며 “현대차 문제의 경우도 사내하도급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노총 김미정 정책실장은 “결국 노동이 고용에 대한 하위개념으로 밖에 자리 잡지 못했다”며 “고용률을 높이는, 수치에 집착을 하면 노동권이 보장될 일이 없다”고 우려했다.

김 실장은 “박근혜 정부의 노동관은 무시 수준이 아니라 노동기본권을 중심으로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배제하는 전략”이라며 “이명박 전 대통령이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창조컨설팅 문제 등 이미 노동을 탄압하고 방조하는 토대를 마련했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그 토대 위에서 반 노동정책이 구체화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노총 강훈종 대변인도 “지금 정부가 노사 관계보다는 고용 쪽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다보니 현장의 여러 현안들이 뒷전으로 밀려나 해결하려는 의도 크게 없어보인다”고 지적했다.

다만 강 대변인은 박근혜 정부의 노동관에 대해 “그건 좀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며 “경제민주화나 고용률 70%, 중산층 70% 복원이 나쁜 말은 아니지만 정책 실현이 문제”라고 말했다. 강 본부장은 “하지만 아직 가시적인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인 조준호 진보정의당 대표는 “노동문제의 핵심은 노사 문제에 있다”며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현대차 불법파견, 한진중공업의 손배 가압류 등이 사실은 한국사회의 주요 갈등요건이고 그렇다면 노동부가 정리해고를 방지한다거나 관리감독 철저히 하는 등 사전 예방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지금은 노동 없는 고용노동부가 될 것 같다는 우려가 된다”며 “박근혜 대통령도 취임사에서 노동이라는 단어 자체를 언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이어 “노동자에 대한 인식이 ‘1500만 월급쟁이’라는 수준이 될 것 같다”며 “이 나라가 노동 없는 나라가 된다면 이명박 정부 때의 비즈니스 프렌들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