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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즐거움, 죽는 즐거움

법인 스님 2018. 06. 13
조회수 158 추천수 0
 

 

조오현.jpg» 지난달 30일 강원도 고성 금강산 건봉사에 거행된 조오현 스님의 다비식장의 오현 스님 영정 사진

 

얼마 전 설악산의 큰 어른 무산 스님이 적멸의 세계에 들었다. 재작년 백담사 무문관 선원에서 스님을 모시고 참선정진을 함께한 인연의 복을 누렸다. “삶의 즐거움을 모르는 놈이 죽음의 즐거움을 알겠느냐” 조오현이라는 필명으로 알려진 스님의 시 <적멸을 위하여>는 스님의 입적 후 나의 화두가 되었다. ‘죽음의 즐거움’이라니! 생과 사가 본디 경계가 없고 뜬구름과 같이 실체가 없다는 선언은 이미 진부하다. 문득 ‘삶의 즐거움’이 발목을 잡는다. 분명 재물과 권력을 움켜쥐고, 혹은 감각에 취하는 즐거움은 아닐 터이다. 답은 ‘적멸’에 있을 것이다. 헛되고 부질없는 생각과 감정을 단박에 놓아버린 그 자리에서 일상의 소소한 일들이 소중한 의미와 즐거움으로 꽃 피는 경지라고 가늠해 본다. 

 

  스님의 내면은 엄정하고 치열했다. 아울러 스님의 시는 탈속의 적멸과 자유가 뿜어 나온다.. 그리고 일상은 범속한 격을 훌훌 벗어 버리고 호방하고 따뜻하고 세심했다. 무엇보다도 무산 스님의 매력은 경전과 절의 담장을 넘어 세간의 삶과 언어에서 진리를 보고 듣는 데 있다. 좋은 말씀이 무어냐고 물으면  우리가 흔히 하는 말들에 주목하라고 했다. 오랜 세월 전해오는 속담에 우리가 가야할 길이 있다고 했다. 

 

새1-.jpg 

 

 그래서인지 수많은 세월 동안 우리 곁에 있는 말들이 새삼스럽다. 일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말들이 실은 경전의 말씀과 다르지 않고 오히려 생생하다. 나는 그 중에 인과율의 진리를 담고 있는 말들이 참 좋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어떤 행위에 상응하는 결과를 업보라고 한다. 악의 열매가 익기 전에는 악한 사람도 행운이 따르고 선의 열매가 익기 전에는 선한 사람도 화를 당한다. 그러나 악의 열매가 익고 선의 열매가 익으면 악한 사람은 화를 당하고 선한 사람은 복을 받는다.

 

  다만 시기의 다름이 있을 뿐 인과의 이치는 확연하다는 뜻이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미투와 적폐청산을 두고 어느 스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업보에 시차는 있을지언정 오차는 없다” 이 명문에 무릎을 치며 나는 이렇게 화답했다. “업보에는 오차도 없지만 시차도 없다”. 왜냐하면, 내가 누구에게 거짓말을 하면 당장에 그 거짓말이 드러날 수도 있고, 오랜 시간이 지나 드러날 수도 있다. 그 거짓이 묻힐 수도 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업보에 시차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내가 거짓말을 하면 나는 ‘즉시’에 ‘거짓말을 한 사람’이 된다. 거짓말을 하고 나서 사나흘 후에 내가 거짓말을 한 사람이 되는 결과는 있을 수 없으니까 말이다. 당연한 사실이 곧 진실이라는 깨우침을 준다. 

 

다비-.JPG» 오현 스님의 다비 모습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말은 이웃과의 관계에서 작동하는 매뉴얼이다.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이요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라는 경구와 닿아있다. ‘먹는 데서 인심 난다’라는 말을 늘 새기면서 암자를 찾는 벗들에게 정성껏 차 한 잔 나눈다. 자비의 나눔이 그리 멀지 않음을 일상의 말들에서 실감한다.

 

  그러고 보니 삶의 즐거움이 그리 어렵지 않음을 알겠다. 움켜쥔 손 다시 털어버리는 일, 무어 그리 어려울까? 우리 곁에 있는 말들, 그 말들과 함께 사는 일이 삶의 즐거움 아니더냐. 그렇게 스님의 시처럼 죽음의 기쁨도 누려볼까? “어자피 한 마리 기는 벌레가 아니더냐/ 이다음 숲에서 사는 새의 먹이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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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 스님
16세인 중학교 3학년 때 광주 향림사에서 천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대흥사 수련원장을 맡아 '새벽숲길'이라는 주말 수련회를 시작하면서 오늘날 템플스테이의 기반을 마련했다. 실상사 화엄학림 학장과 <불교신문> 주필, 조계종 교육부장을 지냈으며, 전남 땅끝 해남 일지암 암주로 있다.
이메일 : abcd369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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