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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진정성? 의심할 필요 없다"

[인터뷰] 탈북자 출신 북한 전문가 김형덕 "북한 지도층에 중요한 건 '명분'"
2018.06.15 11:16:57
 
 

 

 

 

"우리의 발목을 잡는 과거가 있고 그릇된 편견과 관행들이 때로는 우리 눈과 귀를 가리고 있었는데, 우리는 모든 걸 이겨내고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14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나란히 앉자마자 한 말이었다. '발목을 잡는 과거', '그릇된 편견과 관행들' 등은 분명 그간 북한의 잘못을 일부 시인하는 표현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통역사를 통해 김 위원장의 발언을 전해 듣는 동안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통역이 끝난 뒤엔 김 위원장에게 악수를 청한 뒤 엄지를 치켜세웠다. 70년간 지속된 적대 관계를 종식하는, 새로운 관계의 시작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김 위원장은 "많은 이들이 이번 회담을 일종의 판타지나 공상과학 영화로 생각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렇다. 두 정상이 나란히 앉아 악수하는 장면을 생중계로 시청한 전 세계 시청자들은 일견 당혹했다. 그들이 알고 있는 한, 북한의 지도자는 거짓과 오만으로 똘똘 뭉친 고집쟁이였다. 자국 인민들의 참혹한 현실을 외면하고 오로지 체제 선전에만 골몰하는 위선 덩어리였다. 김일성 주석도,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심지어 김정은 위원장 스스로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런데 김 위원장이 공개석상에서 자신과 선대의 과오를 일부 인정했다.

그러니, 김 위원장의 '공상과학 영화' 비유는 적절한 것이었다. 많은 이들이 '북한 지도자가 그럴 리 없다'고 고개를 갸웃한다. 특히 미국과 영국 등 서구 주류 언론과 전문가들은 북미 관계 정상화, 평화 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등 북미 정상회담 합의문 내용을 '허구'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정도가 어떻든 사람들은 김 위원장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다. 비핵화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 거듭 따져 묻고 싶어 한다.  

 

서구의 주류 언론과, 한국의 극우 언론, 그리고 일부 전문가들이 이른바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에 집착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과연 김 위원장의 진의는 무엇일까. '북미 관계 정상화', '평화 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는 가능한 것일까. 

 

 

ⓒAP=연합뉴스


지난 1993년 열아홉살의 나이로 탈북한 북한이탈주민 출신으로 통일·대북 및 이주민 정책을 연구해온 김형덕 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 소장의 견해를 들어봤다. 김 소장은 북한 내부 분위기를 잘 알고 있으며, 남북 관계, 북미 관계 등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연구를 해 온 전문가다. 

 

 

김 소장은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북한의 의지를 확인하기에 '완전한 비핵화'라는 표현으로도 충분하다"고 했다. "애초에 외교 관계에서 '불가역적'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CVID는 결국 말장난에 불과하다"라는 지적이다. 김 소장은 북미정상회담에 대해 "결과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진통이 있겠지만 북미가 서로 괜찮은 선택을 한 건강한 회담이었다"라고 평가했다. 

김 소장은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진정성을 살피려면, 김 위원장이 연이은 '평화 회담' 테이블에 앉게 된 동기를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북한 체제가 내부적 자원을 동원해 운영하며 발전을 꾀하기에 한계점에 다다른 시점에서, 국제사회로부터 '러브콜'이 오면서 체제 변환에 대해 북한 내부를 설득할 명분을 찾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지금은 전 세계가 사실상 하나로 연결돼서 살아갑니다. 한마디로 어떤 국가도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하기 힘든 세상이지요. 그런데 북한은 과거 대립시대의 관성대로 체제를 유지해온 나라 아닙니까. 북한만 서로 연결된 국제 사회 체제에 들어와 있지 않은데, 이런 상태가 오래 유지되면 결국 북한은 내부에서 붕괴될 수밖에 없습니다. 21세기 현재 전 세계는 인터넷과 정보통신 덕분에 하나로 연결돼 있습니다. 소통이 원활하지 않던 21세기 이전까지 중동이나 아프리카에는 장기 집권한 신정국가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 없어지는 추세입니다. 정보 통신의 발달 때문입니다. 비교 대상이 실시간으로 존재하니까요.

북한도 마찬가지입니다. 전 세계와 단절돼 있고 제재까지 받는 '폐쇄적 원시 국가' 형태로는 체제를 유지하기 힘듭니다. 그런데 다행히 김정은은 바깥 세계를 경험한 사람 아닙니까. 김정은은 지금 스스로 능동적으로 변화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아마 나이 많은 지도자였다면 북한은 어느 시점에서 급격히 붕괴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계기가 없다면 북은 점진적으로 붕괴하는 체제를 경험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북한은 과거 무정부 상태에 빠졌던 러시아처럼 엄청난 공황 상태에 빠질 겁니다. 아마 명분 없이 무작정 체제 변화를 꾀해 개방한다면 북한 사회 내에서 언젠가 강력한 반동이 일어날 것입니다. 명분과 안전장치가 필요하지요." 
 

ⓒ김형덕 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 소장. ⓒ프레시안(최형락)

 

 

문제는 지금까지 유지되던 북한 체제에서 기득권을 갖고 있던 이들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느냐는 것. 김 소장은 이를 '명분'으로 설명했다. 어찌됐던 북한도 동아시아의 '체면 사회' 전통이 있다. 중국, 일본, 한국처럼.  

"이제 북한도 선진국으로 가려는데, 그러려면 타이밍과 명분이 있어야 합니다. 기존 체제 안에서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을 납득하게 할 논리가 필요하겠지요. 북한은 기득권자일수록 답답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세계적인 보편주의 교육 대신 신정국가식 교육을 받으니까요. 그래서 김정은 입장에서, 북한 주민들에게 강대국과 대등하다는 느낌과 더 이상 외부와 만나도 붕괴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주민들이 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북한은 지금껏 '미국도 못 건드는 나라'라고 억지를 부려왔습니다. 실제는 다르지만요. 그래서 그것을 알고 있는 김정은이 미국을 상대할 계기를 만들기 위한 카드로 핵을 죽기 살기로 만든 것 아닙니까. 미국으로서도 국제질서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핵 비확산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고요. 그런데 그런 북한이 핵을 버리겠다니 미국이 북한을 만나지 않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회담이 성사가 된 것입니다. 북미 정상 간 이해관계가 잘 맞아떨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 소장은 그런 점에서 이번 북미 회담에 대해 북한 주민들이 상당히 만족스러워할 것이고 새로운 기대를 가지게 될 것으로 봤다. 회담 내내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대등한 지도자'라는 식의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북한 관영매체 <노동신문> 등은 이러한 북미 회담을 대서특필했다. 

그는 북한이 원하는 것은 물질적인 보상이 아닌 다른 정상 국가와 다름 없는 예우라고 지적했다. 

"핵을 버리는 과정에서 북한이 원하는 것들이 있겠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물질적 보상이 아닌 외부의 간섭이 없는 자주적 국가 운영을 원할 겁니다. 물질적 대가를 바란다고 보는 것은 우리의 잣대일 뿐입니다. 이번 회담에서 트럼프는 그러한 열망을 충족시켜줬습니다. 그러니 북한에서도 변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지요. 물론, 이번 회담이 잘 성사된 배경에는 문재인 대통령 역할도 크다고 봅니다. 북한이 처한 상황, 북한이 원하는 것 등을 미국에 잘 이야기해준 것 같습니다." 

김 소장은 두 정상이 전격적으로 만나 새로운 관계를 설정한 이상, 이러한 흐름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며 낙관론을 펼쳤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이 비핵화 조처를 하기 전까지 대북 제재를 유지하기로 한 점에 대해 호평했다. 북한도 제재가 해제되고 원하는 발전을 이루기 위해 국제사회가 원하는 비핵화를 위해 빠르게 움직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향후 남북미 관계에 대한 각종 분석과 전망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분석들을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김 소장은 "일부 남한 전문가들이 북한 체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로 막연하게 과거의 편견에 기초해 우리의 잣대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북한에 대해 깊이 공부하고 토론할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고 했다. 

 

서어리 기자 naeori@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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